ebs다큐 프라임은 10월 10일부터 3부작으로 <게임에 진심인 편>을 방송한다. 그 중 1부, <내 장례식에 틀어줘>는 제목 그대로 한 노인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성당에서 진행된 경건한 장례식, 고인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영상을 튼다. 그런데 눈물을 훔치던 경건한 분위기가 무색하게 고인이 열렬하게(?)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보여진다. 살아생전 고인이 가장 즐겨했던, 혹은 행복한 순간, 결국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행복한 모습에 함께 웃음을 짓는다. 

 

 
게임이란?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은 50여년동안 일보에 대해 글을 써온 미국 출신 평론가의 글 모음집이다. 일본에 대해 분석한 그의 글들 중 특히 주목을 끄는 건 일본 사람들이 즐겨하는 '파친코'에 대한 분석이다. 온통 시끄럽고 번쩍거리는 기계에 진심으로 매달려 파친코를 즐기는 사람들, 그는 그런 사람들의 '몰아'의 경지를 흡사 종교적 몰입이나 명상의 순간에 견준다. '제한적이고 동원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안전과 확실성에 대한 보장이 없던 자아가 이제 소외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면서 자아로부터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가시고 불만에 찬 자아는 잠시 파친코 기계에 매달린 소외의 시간을 통해 정화된다는 것이다. 이 심오한 '오락'에 대한 분석, 하지만 그 '심오한 분석'은 이제 ebs 다큐프라임의 <게임의 진심인 편>으로 이어진다. 

다큐는 게임을 '뉴노멀'이라 단정짓는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게임을 한다고 한다. 10대의 93%야 그렇다 치고, 40대의 80.4%가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아이템 구매율은 50대가 20대를 넘어섰단다. 허긴, 지하철에서 핸드폰에 열중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거의 반 정도의 비율이 '고스톱' 게임 삼매경이다. 한때는 지인은 핸드폰 게임에 빠져 눈이 나빠졌다고 토로하기 했다. 그저 아이들이나 하는 거라 치부했던 게임인데 '뉴노멀'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느새 우리 일상 속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큐는 그런 현실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게임에 대해 무지하다고 질타한다. 중독이나 시간 낭비, 현실 도피이거나, 산업이나 신생 스포츠 장르로 치부하며 게임에 대해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부, <내 장례식에서 틀어줘>는 대표적인 게임케스터 전용준 씨가 '게임의 신'으로 등장, 8년차 게임 개발자이면서도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자)'인 서태훈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1994년 최초의 mmorpg 게임 '바람의 나라'로 부터 시작하여 프린세스 메이커,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했던 게임 속 캐릭터가 되도록 만들어 '퀘스트(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해결해가며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가간다. 

사람들이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저녁 8시부터 10시 즈음이란다. 사람들이 즐겨하는 10개 게임의 시간을 더하면 인류가 지구에서 산 시간의 7배나 된단다. 즉 이제 게임은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기에 다큐는 게임을 이해하는 건 곧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고 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러기 위해 다큐가 제시한 게임의 기본 철학을 위해 요한 호이징하가 소환된다. 게임에 진심인 인간, 그 근저에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를 즐기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놀이가 아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개발자 송재경은 게임에는 '숨겨진 원리'가 있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 축구가 굳이 잘 쓸 수 있는 손이 아닌 발재간만으로 경기를 운영하듯, 게임은 현실에는 없는, 그런데 활동을 제한하는 '장애물'같은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 장애물을 감수한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임에도 그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바로 이런 제약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다큐는 짚는다. 

게임의 역사만큼 그 시간동안 명멸한 게임들이 많다. 스타크래프트가 열리는 곳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이 즐기는 게임으로 남았다. 게임의 생로병사, 그걸 '관장'하는 건, 결국 '플레이어', 프린세스메이커의 개발저 아카이 타카미는 그걸 '캐치볼'이라 정의한다. 플레이어의 능동적 개입, 개발자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 과정(interaction), 더 나아가,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플레이 룰 아래서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게임을 펼쳐가는 과정은 결국 플레이어에 의해 게임이 실질적으로 창조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게임 세계 내에 나를 '위치'시키고 그곳에서 플레이를 하고 보상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돌아오는 '피드백', 그런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 그리고 마치 다른 존재가 된 듯 몰입의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로 게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다큐는 말한다. 

그런데 하고많은 것들 중에 왜 사람들은 게임을 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일까? '재미 이론'을 주장하는 미국의 게임 개발자 라프 코스터는 인간의 두뇌는 새로운 패턴 학습을 즐긴다고 말한다. 점프를 하고 공간을 뛰어넘고 목적지에 도달해내는 과정에서 기쁨과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꾸 죽어도 또 살아날 수 있는 , 게임이라는 특별한 공감 안에서 사람들은 '난이도'와 '숙련도'를 뛰어넘으며 노련하게 적을 사냥하고, 적을 무찌르며 기쁨을 느낀다. 또한 이제 이 과정은 '개인'만의 만족을 넘어 집단적인 상호작용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성취감을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다. 

그러기에 다큐는 정의한다. 게임이란 가장 인간적인 활동이라고, 그러기에 사람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도, 애써 더 재미있게 게임을 하기 위해 기꺼이 게임 속 '난관'에 자신을 내던진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변했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욱 인간적인 활동,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본능을 맘껏 발산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시뮬레이션'된다. 안전하게 '인간 사회'를 경험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설사 실패를 한다해도, 몇 번이나 죽어도, 다시 몇 번이나 살아날 수 있듯이 '안전한 실패'를 누린다. 가장 인간적인, 하지만 무한 반복될 수있는 삶의 시뮬레이션, 굳이 이걸 마다할 이들이 있을까. 

by meditator 2022. 10. 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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