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는데는 몇 주가 걸리더니, 페르시아, 인도 신화는 6분 만에 끝냈어,'

수업이 끝난 후 카말라(이만 벨라니 분)의 친구 나키아(야스민 플래체 분)가 불평스럽게 말한다. 그녀들은 '무슬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서구' 중심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서구 근대의 글로벌스텐다드한 관점의 권력을 논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오직 하나이며, 그 하나의 중심에는 '서구 중심'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근대적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그 중에서도 조그만 섬나라 크레타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그리스 신화'라는 이름으로 복습하고 또 복습하는 것이 우리가 배우는 서구 문명사의 첫 걸음 아닌가. 그 '크레타' 문명은 어디서 왔는가? 바로 그 옆의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전파'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리스의 작은 섬'에 머문다. 실제 '근대'이전까지 서구에 비해 동양이 훨씬 더 문명적으로 앞섰다는 것이 이제는 정론임에도 여전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서양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서양 중심의 '관점'에 문화적 전환이 이루어졌고, 문화적 전환 중에는 이른바 '탈중심주의', 즉 우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서구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화의 시대 다양한 이유로 인한 이주로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기존의 서구 중심적 세계관의 존재 이유는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중이다.

또 한 가지, 서구 중심의 세계관은, 다른 말로 '남성 중심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적 변화는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씌여온 '서사'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모색과 고민을 한다. 그런 면에서 6월 8일 공개된 디즈니 플러스의 <미즈 마블>은 변화하고 있는 '탈중심주의'적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미즈'는 'mistress'의 약자로 여성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남성이 '미스터'라는 말로 통칭되는 것과 달리, 여성이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와 미세스로 나뉘어지는 것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에 따라, 성평등적 관점에서 1970년대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된 명칭이다. 이렇듯 제목에서부터 <미즈 마블>은 이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무슬림 소녀, 히어로가 되다
공개 전 예고편 등에서 강조하다시피 <미즈 마블>의 주인공 카말라 칸은 무슬림 소녀이다. 카밀라의 부모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자식들에게는 이런 역사적 상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옆 저지시티에 사는 카밀라의 집안은 무슬림 전통에 따라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고, 가족적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에게는 너희들이 하고픈 걸 마음껏 하며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는 부모들, 하지만 정작 10대의 카밀라는 '무슬림의 전통'을 고집하는 가족, 그 중에서도 어머니와의 '갈등'이 고민이다. 

캡틴 마블 덕후인 카말라는 마블 캐릭터 코스튬 축제에 가기를 원하지만 밤 9시가 '통금'인 카말라네 집에서는 그런 '외출'은 허락이 안된다. 더구나,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는 어머니는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활보하는 자체가 용납이 안된다. 결국 카말라는 가족들 몰래 그녀의 '덕후 친구 브루노(매튜 린츠 분)의 도움으로 축제에 참가한다.

축제에는 캡틴 마블 코스튬 대회에 있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하려 한 카말라, 그를 위한 의상을 자체 제작하던 중 할머니가 보내준 팔찌를 차게 되고, 그 '팔찌'를 매개로 '슈퍼 파워'를 발견하게 된다. 

캡틴 마블 덕후인 10대 소녀가 주인공인 만큼 시리즈는 '덕후' 활동으로 유툽과 같은 영상 활동을 한다던가, 시시때때로 공상에 빠지는 소녀의 환타지적 정신 세계를 '에니메이션'과 같은 터치로 그려내면서 10대에 어울리는 감성을 펼쳐보인다. 

'덕후'에 너무 열심이어서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가는 소녀, 하지만 선생님의 훈계가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소녀는 굉장히 익숙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팔로워 수'를 통해 '인기'를 드러내는 새로운 세대의 감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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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그런데 왜 카말라는 '캡틴 마블'에 빠져들었을까? 시리즈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수업 시간 피구를 하다 코피를 흘리도록 공에 맞거나, 학교에 등교하는데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그녀를 집적대는 친구들, 그리고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조 짐머 등을 통해 저지시티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무슬림 소녀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뉴욕에 사는 무슬림 소녀의 처지는 카말라의 친구 나키아를 통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무슬림 이지만 백인과 같은 외모를 지닌 나키아는 그로 인해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히잡'을 착용한다. 

하지만 나키아의 히잡은 그녀의 '대사'로 '종교적인 착장'이라고 설명되기 전까지는 트렌디한 패션탬처럼 보여진다. <미즈 마블>은 카말라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혹시나 편견을 가지고 봐왔던 '무슬림'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서구적인 복장의 아버지, 반면 식사 전에 장황한 기도에 몰입하는 오빠라던가,  카말라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참여한 무슬림 축제 등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무슬림 집단들이 출현한다. 세상이 보는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무슬림' 안에도 보수적인, 혹은 진보적인, 다양한 색채를 지닌 집단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카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한 나키아에게 모스크 대표 위원 선거에 나설 것을 독려한다. 그리고 카말라의 지원에 힘입어 나키아는 도전한다. 그런가 하면 '은따'같던 카말라는 자신의 '덕후 활동'의 정체성에 고민을 하다, 코스튬 대회를 통해 자신에게 흐르는 '슈퍼 파워' 에너지를 발견한다. 할머니가 보내준 '팔찌' 덕분인가 했는데, 공학도 친구 브루노는 그것이 '카말라 본연'에서 우러난 에너지임을 일깨워준다. 

그 누구, 혹은 어떤 도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서 슈퍼 파워 에너지가 흘러나온다는 걸 알게 된 10대 무슬림 소녀는 이제 더는 위축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등교한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거침없이 잡아낸다. 조금씩 익혀가는 슈퍼 파워로 건물 옥상에 떨어지려 하던 소년을 구하게 된 카말라, 10대 무슬림 소녀 히어로의 성장기는 '질풍노도'이겠지만, 언제나 '마블' 시리즈가 그렇듯 그 시련을 통해 강해지고 성숙해 질 것이다. 



by meditator 2022. 6. 1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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