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 발레), 이 어울릴 것같지 않은 조합을 그린 영화가 뜻밖에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 처음은 아니다. 아직 쓰마부키 사토시가 꽃미남이던 시절, 해체 위기에 몰린 남고 수영부에 갖가지 사연으로 잔류하게 된 다섯 명이 돌고래 조련사를 선생님의 맞아 꼴찌들의 반란을 그려냈던 2002년작 <워터보이즈>를 유쾌했던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얼'만한 감동이 있을까? 2010년 AFI 디스커버리 채널 실버닥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한 편의 다큐가 있다. 바로 <맨 후 스윔>이다. 다큐는 평생 수중 발레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던 평범한 직장인들, 마흔 줄의 그들이 이제는 상관없을 것같은 성장과 도전이라는 화두를 안고 비공식 세계 남자 선수권 대회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려냈었다. 

 

 

이 다큐는 2018년 이제는 <드립 투> 시리즈로 익숙해진 롭 브라이든이 자신보다 잘 나가는 아내의 바람을 의심이나 하는 공허함에 시달리다 우연히 수중 발레 팀을 만나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영국 영화 <스위밍 위드 맨>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9년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 <세라비, 이것이 인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질 를르슈가 메가폰을 잡아 '프랑스 버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 찾아왔다. 다큐에서 영국 영화로. 이제 다시 프랑스 버전으로 거듭 '리부팅'되고 있는 남자들의 수중 발레 도전기, 그 중에서도 프랑스 버전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뜻밖에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여는 건 뜬금없는 동그라미와 네모론이다. '철학'의 나라답게 남자들이 수중 발레를 하게 되는 상황을 퍼즐 네모에 동그라미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난센스'로 풀어낸다.  아이가 네모난 퍼즐에 동그라미를, 동그란 퍼즐에 네모를 집어넣으려고 애쓰다 신경질적으로 퍼즐을 집어던지고 자리를 떠나버리는 오프닝, 그 오프닝에 이어 등장하는 건 주인공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 분)과 그의 가족이다. 

백수 2년차 한 눈에 보기에도 제 정신이어 보이지 않는 베르트랑의 초췌한 몰골, 거기에 시리얼에 약을 말아먹어야 할 정도인 매우 건강하지 않은 상태, 가계를 책임지는 아내, 아버지라지만 도무지 아버지 대접을 해주지 않는 아이들, 그렇게 매우 건강하지 않은 그가 우연히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간 체육관에서 남성 수중 발레단 모집 광고를 본다. 

 

 

그 무엇에도 권태로워보이던 베르트랑은 홀리듯 수중 발레단에 신청을 한다. 마치 동그라미가 네모를 만나듯. 하지만 정작 그가 가서 만난 그 '수중 발레단'은 '오합지졸'이란 말로도 설명이 모자란 '루저남'들의 모임이었다. 아마도 원작 다큐, 영국 리메이크 <스위밍 위드 맨>,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중 가장 '루저'한 주인공들을 들라면 그건 아마도 프랑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일 것이다. 

백수 2년차 우유에 약말아 먹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 베르트랑, 하지만 그런 베르트랑은 로랑(기욤 까네 분)에게 자기보다 더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로랑은 감정 조절이 안되는 듯 매사가 비관적이며 신경질적이다 못해 벌컥벌컥 화를 내곤 다 때려치우라며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외적으로 보면 직장도 있는 그의 형편이 제일 나은 편이니. 이 수중 발레단의 형편이 어떨지는 뻔하다. 

자칭 로커라지만 노인들 게임장 막간 공연이나 따라다니며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식당일을 하며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를 끌고 전전하는 시몽(장 위그 잉글란드 분), 수영장을 파는 사장님이라지만 도대체 수영장을 판 지가 언제적인지 자금에 쪼달리다 못해 보험을 타기 위해 자신의 차에 불을 지르는 해프닝을 벌이는 마퀴스(베누알 포엘부르데 분), 거기에 수영장 잡일을 하며 호구 취급을 받는 티에리(필리페 카테린는 분)까지 멀쩡한 사람이 없다. 심지어 스리랑카에서 온 아바니쉬(발라잘방 타밀셀방 분)는 프랑스어로 대화가 안된다. 그런 그들의 현재 유일한 미덕이라면? 제 아무리  싸우고 화를 내도 다음 시간에 다시 그곳 풀에 모여 수중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로 온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는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들에게 수중 발레를 가르치는 강사 델핀(비르지니 에피라 분), 그녀의 캐릭터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읽힌다. 남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수중 발렌지 자맥질인지 모를 불분명한 연습을 하는 동안, 강사 델핀은 다이빙대에 앉아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는다. 한때 듀오 로 수중발레 메달리스트, 동료의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현역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알콜 의존증 치료 모임에 나가고 있다. 

스포츠 센터에서도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중 발레 아저씨들에게 같은 센터의 수구 팀이라도 나타나면 한껏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독려하는 델핀, 그리고  ​​​​​​​알콜 의존증 치료 모임에 나간 그녀는 환희에 찬 얼굴로 자신의 알콜릭을 극복하게 된 계기는 바로 사랑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사랑이란 수영장에 나타나 너를 좋아해 본적도 없다며 더는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며 그녀를 '스토커' 취급을 하는 남자였다. 마치 초원의 빛 속 한 구절처럼 '빛의 영광'이여, 라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 오합지졸 수중 발레단을 한껏 멋진 팀인양 포장하고, 자신의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관계를 아름답다 말하는 델핀의 '현실 부정',

하지만 그런 '현실 부정'은 그녀만의 인식이 아니라, 매주 열심히 수중 발레를 한다 모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로커가 아닌 자신의 현존재도, 가족의 아픈 과거도, 무능력한 현실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비껴서있는 수중 발레 팀 모두의 상태이다. 가라앉아가면서 여전히 스스로 헤엄치지는 못하고 있는.

 

 

이대로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sink or swim
그런 팀에게 사건이 생겼다. 그들의 강사이자, 위로였던 델핀이 수영장에 나타나 그녀를 스토커로 몬 남자 때문에 다시 알콜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강사직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때 '수호 천사'로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견원지간같았던 수구 팀의 감독, 휠체어에 앉은 아마도 한때 델핀의 파트너였던 아만다(레일라 벡티 분), 

하지만 수호천사인 줄알았던 아만다는 델핀과 딴판이었다. 그녀를 죽이고 싶다 할만큼 혹독한 훈련, 그저 시간을 때우던 그들을 몰아붙이며 제대로 해보라며 다그치던 그녀, 덕분에 본의 아니게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게 된 팀은 농담처럼 시작한 노르웨이 세계 선수권 대회를 향한 꿈에 구체적으로 다가간다. 

영화는 원작의 다큐처럼 배불뚝이 루저남들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기적처럼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기적'을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의 초라한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채 비껴서있던 이들이, 수영복마저 훔치는 해프닝을 벌이면서도 그 '도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자존심만 내세우던 베르트랑은 동서의 가구점에 나가 '갑질'을 견디며 일을 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아버지를 닮아 어머니에게 외면당했던, 하지만 미워하며 닮듯이  어머니처럼 자기 자신도 감정 조절을 못하던 로랑은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수용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가 없을 뿐 로커의 자존심을 내세우던 시몽은 더는 로커가 아닌 자신의 현존재를 수용한다. 그는 무대 대신 수중 발레의 독무에서 로커로서 만개했고, 그의 조명 동료 역시 가장 화려한 조명으로 그와 그의 팀을 빛냈다. 그렇게 가라앉는 대신 조금씩 삶이 물장구를 치던 이들은 그 삶의 도전처럼 버거웠던 수중 발레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남자인 그들이 수중 발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혹 '게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았던 시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시몽의 낡은 트레일러를 몰고 노르웨이를 향한 길을 떠났다. 그리고  1등을 했어도 다시 그 길을 따라 돌아온 그들, 주변 사람들은 반겼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그들에 대한 기사 한 줄 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찰라'의 영광을 기억한 그들의 오늘, 발걸음은 가볍다. 그들은 저마다 이제 삶을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엔 그저 투닥거리기만 했던 이들이 어느 틈에 동트는 노르웨이의 언덕에서 함께 어깨를 겯고 환희를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된 시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없이 찌질했던 그들의 울컥한 인간 승리, 거기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협연이 빛난다. 

by meditator 2019. 7. 27. 22:14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