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여 센센이셔널한 파급을 일으켰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는 이후 개체인 인간은 자유 의지와 문명을 통해서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보완했다. 그렇다면 2019년 5월 6일 방송된 <장내 세균 혁명>을 리처드 도킨스가 봤으면 어땠을까, 세균을 또 다른 주체로 세우려 하지 않았을까? 

꾸준히 현대인의 건강과 식습관에 대한 건전한 모색을 해오고 있는 <sbs스페셜>이 이번에는 그 시선을 '장내 세균'으로 돌렸다. 

 

 

장트러블이 일상이 된 현대인
63세의 김진숙 씨 잦은 방귀, 트림에 설사를 달고 산다. 56세의 이금씨는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와서 고생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소식이 오면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야 할 정도라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훤하다. 38세 강용관씨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그는 혹시나 휴게소를 지나고 나서 신호가 올까봐 휴게소마다 미리 억지로라도 볼일을 보려고 애쓰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와 한 집에 사는 그의 아내 이해일 씨는 그와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도 변비로 고생 중이다. 심하게는 2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갈 정도로. 

60대에서 부터 30대까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현대인들 대다수가 겪는 불편함을 넘어선 고통들일 것이다. 도대체 왜 세대를 막론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장트러블'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몸, 그 중에서도 장내에만 100조, 많게는 400조의 세균이 산다. 그 종류만도 수 천가지가 넘는 세균, 그 세균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맞추며 우리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몸에 유익한 균들도 있지만, 반대로 위의 증상에서 보여지듯이 방귀, 트림, 설사, 변비, 심하게는 복통, 궤양 등을 유발하는 유익하지 않은 균들도 있다. 결국 우리의 장은 '세균들의 '왕좌의 게임', 그 전쟁터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장을 그저 소화 기관이 아닌 면역 기관으로 보고 있다. 

출연자들의 장내 세균을 분석해 봤다. 잦은 방귀와 트림, 설사에 시달리는 김진숙 씨의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키는 퍼미큐티스 균이 많았다. 변비와 설사가 오락가락하는 이금씨의 경우 병원성 균들, 대장균,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질균등이 다른 균에 비해 활발했다. 강용관 씨의 경우 매일 밤 야식과 함께 먹는 알코올이 장내 균들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려 77%가 박테로이스균이 점령한 상태이다. 

 

 

우리 몸의 주인은 세균?
즉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누구는 설사를 하고, 다른 누구는 변비가 오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장내 세균총이 달라서이다.  하루에 50kg의 대변을 보는 코끼리, 엄마가 큰 일을 보자 아기 코끼리가 달려가 엄마의 똥을 먹는다. 초식 동물의 경우 아직 장내에 미생물군이 미성숙한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똥을 먹음으로써 엄마의 장내 미생물을 '계승'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균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는 엄마의 산도에 정예부대로 모여있던 락토 바실라스 균 등 유산균 샤워를 시작으로  엄마의 모유를 통해 비피더스 유산균 등을 취하여 장내 미생물총을 형성해간다. 

이렇게 엄마를 통해 건강한 유산균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군을 형성한 아기들은 하지만 커가면서 각종 스트레스와 인스턴트 식품, 불균형한 식습관에 음주 등을 통해 장내 세균층이 무너져 간다. 위 6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례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육식'을 매우 즐기며, 간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야식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데 술 까지 한 잔 하는 식의 식생활 패턴을 가졌다.

결국 평생 동안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나의 장내 세균층이다. 그런데 장내 세균층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인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장트러블'때문만이 아니다. 장내 신경은 뇌 시경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장내 세균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치매와 장내 세균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치매가 박테로이스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중인 한국인 박사 허준열 교수 부부는 대부분 자폐아들이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에서 착안하여 엄마 쥐의 장내 세균인 절편 섬유상 세균이 새끼의 자폐 증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세로토닌'의 90% 이상을 장내 세균이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 학계는 장을 '제 2의 뇌'로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장트러블'을 넘어, 인간의 뇌를 관장하는 장내 세균들, 다큐는 '호모 박테리아누스'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결국 '장 건강'을 관리하는 건 '장트러블'을 넘어 100세 시대 아이부터 노인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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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건강이 곧 뇌의 건강
그렇다면 장 건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영양 성분'이 관건이 된다. 즉 우리 몸에 우리가 섭취하는 것에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세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예로 들면 흰 쌀로 지어진 밥은 사람이 소화시키지만, 현미 밥의 경우 그 껍데기의 식이섬유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통곡류와 해조류 등이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런 것들을 많이 섭취해서 장을 건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진 미생물들은 대장 점막을 자신의 먹이로 삼고, 그렇게 되면 점막이 약해져 그 틈 사이로 염증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 초반 12살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시작하여 19살이 된 환자는 결국 타인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하여 자신의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60대부터 30대까지 각종 '장트러블'로 고생하던 사람들도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틱스 등의 유익균을 일주일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상태가 호전되었다. 

장, 세균을 통해 돌고 돌아 온 길이지만, 결국 다큐가 도달한 곳은 인스턴트와 육식 위주의 편향적 식습관을 가진 오늘날 현대인들이 장은 물론 갖가지 신체적 이상 증상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장, 건강한 뇌,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은 물론, 우리 몸의 어쩌면 실제적 주인일 수 있는 세균들이 좋아하는 통곡물과 해조류, 그리고 각종 유산균들이 구비된 건강한 식단을 먹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증명이다. 

by meditator 2019. 5. 7. 07:00

<이몽>은 실존 인물인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이다. 최근 김원봉에 대한 국가 유공자 대우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실존 인물 김원봉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은 <이몽>은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 이에,  <이몽>의 윤상호 피디는 '김원봉은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인물이라 하면서 정작 드라마는 김원봉이라는 실존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이름과 상징성만 가져왔을 뿐, 허구가 가미되어 새로이 창조된 역할'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만, 정작 캐릭터는 창작에 의거했다는 <이몽>의 김원봉, 드라마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변절자를 두고 마주 선 이영진과 김원봉
드라마를 연 건 '파랑새'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운동 세력에게 답지한 60만불의 성금, 대한민국 국무원 비서장을 한때 역임했던 김립은 이 자금을 운반하던 중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다 오면직 노종균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사라진 독립운동 자금, 이 자금을 찾기 위해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애를 쓰고  그 자금과 관련된 '파랑새'라는 인물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정보를 김원봉은 얻게 된다. 

바로 그때 이영진(이요원 분)이 일하는 자혜 병원에 한때 의전에서 동문수학하던 김에스더가 찾아온다. 우연인 듯했지만 자혜병원 의사가 되었다는 그녀가 이영진은 그저 반갑기만한데, 그런 반가움을 나눌 사이도 없이 총상 환자가 들이닥친다. 바로 변절하여 마쓰우라(조선명 노정술, 허성태 분)에게 동지들의 정보를 넘기려 했던 박혁이 김원봉의 총을 맞고 실려온 것이다. 

죽어가는 박혁에게 정보를 빼내려는 마쓰우라, 혹시나 살아서 다시 동지들의 정보를 넘길까 우려하여 찾아든 김원봉, 그리고 그런 양쪽의 입장과 무관하게 환자를 지키려 하는 이영진, 이 세 사람의 입장은 생사를 오가는 박혁의 병실에서 첨예하게 맞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박혁을 두고 마주하게 된 김원봉과 이영진, 그저 환자 앞에서 기꺼이 자신의 몸으로라도 막아선 의사 이영진과, 독립운동가 김원봉일 뿐인 줄알았다. 

 

 
드라마와 역사, 그 행간이 낳은 독해의 어려움 
드라마는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지 앞에서 총구를 떨구는 김남옥(조복래 분)을 다그치며 기꺼이 변절자를 처단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김원봉, 변절의 이유가 있지 않겠다는 남옥의 말문을 단호하게 막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가 쪽팔리지도 않느냐는 김원봉의 신념은 단호하다. 그리고 그 단호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배달원으로, 심지어 경찰로 변신하며 자혜병원, 종로 경찰서까지 거침없는 김원봉은 만능키 히어로로 시간을 건너뛰어 시청자 앞에 나타났다. 

드라마는 단호한 독립운동가로서 김원봉이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동지의 배신을 죽음으로서 응징하는 설정을 응용했고, 이의 실행을 위해 때와 장소를 불문한 변신의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실존 인물의 이름만 도용한 캐릭터라 하지만,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로서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첫 회에 배신한 동지를 처단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걸로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문득 배신한 박혁의 입에서 '파랑새'와 '한국인 여의사'라는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그렇다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형사들이 진을 친 자혜병원과, 심지어 일본 경찰의 중심부인 종로 경찰서를 그렇게 홀홀단신 위험을 무릎쓰고 변장을 거듭하며 드나든다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드라마의 캐릭터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고개가 갸웃해진다. 

드라마 속에서 '파랑새'로 오해를 받았던 김에스더는 알고보니 '파랑새'가 아니었다. 지청천 부대에서 선생님과 의사로 활약했을 정도의 인물인데,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3.1운동 당시 제암리 사건의 명령자였던 헌병 소장을 암살하기 위해 홀홀단신 이영진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온 의사이다. 결국 독립운동 세력의 파랑새로 암살 작전을 위해 잠임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개인적 원한이었다는 김에스더의 암살 시도, 지청전 부대에서 의사로 활약할 정도의 독립 운동 내에서 역할을 가진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나 개인적 원한으로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도 안이한 설정이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비록 개인적인 독립운동가의 작전이라 하더라도 그 여파가 한 개인에서 끝나지는 것이 아니란 것에서 보여지듯 결국 드라마는 지청전 부대에서 활약까지 한 독립운동가 김에스더를 '개인적 모험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비록 개인적 모험주의자라 하더라도 김에스더는 헌병대장을 암살하려 한 사람, 일개 의사가, 그것도 신원 조차도 파악되지 않은 어제 부임한 의사가  이상이 있으니 검사를 하잖다고 달려온 헌병 대장도 그렇고 그 일련의 작전의 어설픔은 차치하고 그런 김에스더의 '모험주의적 일탈 복수'에 달려온 이영진은 기어코 그녀의 작전을 무위로 돌리고 그녀를 적들의 총구에 희생되도록 만든다. 1920년대 여자 의사라는 설정의 비현실적인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영진의 극중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 회차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가 그렇게 했던 것이 김원봉과 다른 입장, 즉 무장 투쟁이나 암살 등과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맞서겠다는 '파랑새'로서의 그녀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신념'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내가 친했던 언니가 지금 개인적이든 어떻든 자신의 작전 실행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그걸 굳이 가서 들통나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할 필요가 있을까? 드라마 속 설정은 김에스더를 구하려는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은 김에스더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 굳이 이영진을 위기에 몰아넣기 위한 작위적 설정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혜병원도, 종로 경찰서도 내 집 드나들듯 자유롭게 드나들던 김원봉은 이제 내 편이 하나 죽었으니, 상대편도 하나 죽여야 한다며 김에스더가 죽이려다 실패한 헌병 대장을 '손쉽게', 그가 변절자 박혁을 죽이기 위해 그토록 극 초반 종횡무진했던 것과 다르게 대번에 죽여 버린다. 


 

 

안이한 서사, 독립 운동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
<이몽>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한 김원봉과 이영진, 두 사람의 독립 운동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싶은 듯 보인다. 하지만 '독립 운동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서사적 기반이 설득력있게 짜여져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 노출이 전체 독립 운동에 파급되는 여파가 큰 시점에 그래서 변절자를 기꺼이 동지의 입장에서 처단하려는 시점에 홀로 헌병 대장을 사적 복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돌아온 독립운동가 하며, 그렇다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숨은 독립 운동가에, 그렇다고 대뜸 그녀의 복수를 대신한 의열단이라니, 멋들어진 분장과 활약과 액션 사이를 메꾸는 서사가 치밀하지 못하다. 

위의 '도올이 본 독립 운동사 -밀양 아리랑'에서 보여지듯이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는 의열단의 무장 독립 투쟁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조국과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참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혈지사를 규합하여 적국의 군주 이하 각 대관과 일체의 관공리를 암살해야 한다. 끊임없는 폭력만이 국가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취의 시간은 많은 의열단원들의 체포와 죽음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동지들의 잇다른 죽음은 의열단장 김원봉으로 하여금 개인적 테러가 아닌 무장 투쟁으로서의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물론 1920년대 의열단과 김원봉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당국자들과 친일파 지주, 자본가들에게는 최대 공겁의 표적이었으며, 2,30대 젊은이들한테는 민족 해방의 상징적 존재'(님 웨일스가 만난 장지락이 본 김원봉)였다. 그렇게 192,30년대의 상징적 독립 운동가 김원봉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몽>이 보여주는 건 과연, 그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그 상징적 존재였을까란 반문을 하게 된다. 어설픈 서사에 멋진 액션을 채워진 드라마로 그려진 김원봉, 과연 이 사람이 2019년에 되새겨 볼 그 김원봉일까. 차라기 성공도 실패도 한계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어쩌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 필요한 위인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9. 5. 5. 17:20

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 오늘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맞은 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고정 관념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등 남자 편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 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자다운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남자답게'가 끝났는데, 여전히 '여자답게'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 편,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그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두번 째 수업.
역시나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라면, 만약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며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Think outside of the box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난무하는 감각적 뉴스,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건들을 계속 자극적으로 양산해내고 아이들은 그런 '뉴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그거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자신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익힌 '응 니에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에서 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를 무분별하게 습득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감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의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성평등' 교육만이 이런 현실에 대한 '백신'이 될 거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야동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가 유투버로 부터 아이들에게 까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현실에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저 여성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들다는 성역할에 대한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한번이 당장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네,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아져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에너지로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거칠게 반응하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란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하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미개'해서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진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이라는 소회 끝에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 남학생보다 운동을 덜 좋아하는 여학생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에서,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꿔가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이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표현의  관행 자체에 대해 선생님들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간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 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의 신록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 딸끼 뷔페가 작은 보답을 전한다. 



by meditator 2019. 5. 4. 14:37

제주도,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왜 가십니까? 아마도 <다큐 시선- 제주가 사라진다>의 리뷰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사람들은 왜 하고많은 대한민국의 여러 관광 명소 중에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저 제주에 가는 걸까? 거기에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잘 발달된 휴양지가 많아서? 들고 나는 공항이 편리해서? 이런 질문들 중에 여러분들이 제주에 가는 이유가 있나요?  

 



아름다운 비자림 숲을 보러 가기 위해 비자림 나무를 자르다. 
제주시 구좌읍, 거기엔 천년의 숲이라 칭해지는 비자나무 숲, 비자림 숲이 있다. 천연 기념물 374호, 수령 500년에서 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 단일 수종으로 세계 최대 규모, 높이 7~ 14m,  직경 50~110cm의 나무들이 지난 3월 잘려나갈 위기에 놓였다.

'나무 자르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예요'라는 숲 지키미들의 몸을 던지는 절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 칭해지는 27.3km에 달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 이 '천년'의 나무들이 잘라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논란'의 현장이 지금 제주가 앓고 있는 몸살의 현주소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고 싶어, 천년의 나무들을 보고 싶어 제주로 몰려가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천년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비자림로 확장 공사, 그 궁극에는 바로 제주 재 2공항이 있다. 국내선 여객 수송 1위의 현 제주 공항, 하지만 시설 규모로는 국내 7개 공항 중 5위, 공항 시설 능력 과포화 상태, 이에 원희룡 제주 지사를 비롯한 국토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제 2의 제주 공항을 만들기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제주 2공항은 곧 이를 둘러싼 제주 시민들 사이의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시작이었다. 

독자봉

정상 동편 전망대에 올라서면
온평, 난산, 수산, 일출봉, 저멀리 우도까지 지척이다.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내 눈 속에 깊이 박아두었다. 
오름 뒤편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묻었다. 
마을 사람들은 독자봉 건너에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높은 고향 하늘이다  -강원보 


난초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난산리', 이 작고 아담한 마을에는 3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난산리를 비롯한 주변 5개 마을은 제주 제 2공항이 들어서면 청사와 활주로로 인한 소음과 분진 피해를 입을 곳들이다. 이 가구 중에 원희룡 지사에게 달걀 세례를 퍼부은 김경배씨가 산다. 평범한 굴삭기 기사였던 그,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산일출봉을 닮은 조형물까지 만들어 가며 가꾼 그의 터전, 그저 지금처럼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공항 건설'과 함께 없어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42일간의 단식을 했다. 그의 부모님 세대들이라고 다를까. 당신들은 돌아가시면 그만이라면서도 공항이 들어서면 나고 자라고 삶의 터전이었던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시름에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 어르신들. 

 

 

공항 아래 용암 동굴, 과연 안전성은? 
제주의 생명인 오름, 대수산봉을 비롯한 10개의  오름들도 제주 2 공항을 비롯한 난개발에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  오름만이 아니다. 신공항 예정지에는 서궁굴 등 용암 동굴들이 이미 밝혀진 것 외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자연 유산으로 권고되고 ,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수산굴은 보존해야 할 곳이지만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오름이나 숲 등의 훼손과 다르게 용암 동굴의 문제는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있다.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수많은 비행기가 날고 드는 공항 아래 동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안정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질 파악을 위한 시추 작업을 동반한 정밀 지반 조사를 해야 하지만 어쩐일인지 2003년 문헌에 의거한 채 사업비를 전액 반납, 의혹을 남긴다. 

또한 공역 문제도 걸린다. 군 비행기가 날고드는 군 작전 지역과 맞닿아 있는 성산 지역, 하지만 이에 대해 제주시와 국토부는 이 지역의 군이 해군이라 문제가 되지 않으며, 조정 가능하다며 이해를 구한다. 심지어 최근 들어 '폭설'에 잦아지는 기상 요인은 차치하고, 바람, 강수, 강설량만으로한 모호한 선정 기준, 거기에 타 지역 10년치의 기준으로 성산의 7년치 안개 일수를 퉁쳐버린 기준 등 의혹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철새 도래지도 주변에 있다. 제주 대표 해안 습지인 하도리,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2400마리 중 20 여 마리가 해마다 겨울을 나는 곳, 당연히 '버드 스트라이크'가 예상되지만, 비행기는 200m 이상 날기 때문에 괜찮다는 안이한 대처로 비웃음을 사고 있다. 

도대체 하나에서 부터 열 까지 안걸리는게 없는 성산읍, 그런데 왜 이곳이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해 신공항 반대 단체들 역시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2012년 용역에서 유력한 예정지로 선정된 곳은 제주도 유일의 평야 지대인 '신도'지역이었다. 사회적, 환경적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했던 이곳이 2015년 불현듯 '성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니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대하는 편에서는 왜 굳이 '새 공항'을 지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기존 공항 확장을 배제하느냐는 것이다. 

 

 

신공항,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원희룡 지사는 개인 유투브인 '원더풀 tv'를 통해 2015년 국토부 타당성 용역을 토대로, '기존 공항 확장 대안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활주로의 확장 공사로 인한 해양 환경 파괴 문제 등, 거기에 과밀한 교통 체증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측의 입장, 지난 4월 열린 기본 계획 수립 용역 보고회에서는 비행기의 바다쪽 선행과 대수산봉을 절취하지 않겠다는 국토부의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반대측의 거센 질문 세례에 보고회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이런 갈등만 벌서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대 인원이 들고 난다는 제주 공항, 만약 제주 제 2의 공항이 만들어 진다면 생산 유발 효과 8조 297억원, 부가가치 효과 2조 5510억원, 고용 유발 효과 3만 6040명 등을 낳는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고 한다.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 등 주변 인구 1천만 이상 5개 도시, 500만명 이상 13개 도시가 인접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동북아 요충지로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당성 조사를 현재 텅텅 비어있는 무안과 양양 공항은 안했을까? 즉, 이러한 수요예측 자체가 '희망'에 근거한 고무줄 결과물 일 수 있다고 반대측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성수기에 잠깐 붐비는 제주 공항을 개선하기 위해 또 하나의 공항을 만드는 것은 마치 명절 때 서울 부산 고속도로가 붐빈다고 고속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지 않냐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제주 제 2공항의 건설은 그저 공항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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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미래는?
이와 관련하여 좀 더 본질적으로는 지금 '개발 붐'에 있는 제주의 현주소에 대한 고민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한계에 이르러 필리핀으로 밀반출하다 돌려받게 되는 해프닝을 겪는가 하면, 무분별한 시설 개발로 하수 처리가 용량을 초과하여 해녀들의 밭인 바닷속 돌이 오염되고 푸석푸석해져 풀조차 점점 줄어드는 등 해양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예래 지역 휴양형 주거단지가 4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곳곳은 '관광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즉 한정된 자원을 가진 섬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제주,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이 2,30년 후의 제주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게 할 지,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램대로 더 좋은 시설을 갖춰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가 될 지, 아니면 과잉 개발로 인해 또 하나의 무안, 양양 공항의 탄생일지, 일출봉과 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는 게 제주의 풍광이 아니라, 비행기가 쉴새 없이 드나드는 제주 공항이게 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원한 건 '힐링'인데, 더 이상 '힐링' 할 수 없어진 그저 그렇게 뻔한 우리나라 여러 관광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릴 지, 제주 제 2공항 건설 문제는 바로 이런 미래 제주의 밑그림에 대한 갈등이다. 



by meditator 2019. 5. 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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