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분, 세 시간 여라기에 지레 걱정을 했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라도 있어야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지 않나? 뭐 이러고, 그런데 기우였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181분이라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의 길이로 밖에 안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수많은 등장 인물,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어벤져스를 이끌어 왔던 쟁쟁한 히어로들의 들고 남을 산만하지 않게 하나의 '서사' 안에 꾸려넣은 '편집'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엔드 게임'으로서 '어벤져스'가 빛을 발한 건 물량을 쏟아넣은 화려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 조차도 결국 승패를 가름하게 만드는 건 '철학적 세계관'과 그것을 풀어내는 '서사'로 부터 기인한다는 걸 '마블'이, 안소니 루소, 조 루소, 루소 형제가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는 것이다. 

 

 

인피니티 워- 신이되고자 한 빌런
블록버스터 영화는 거개가 외계인의 침공이라던가, 지구를 뒤덮는 자연 재해라던가 지구에 대한 가공할만한 종말론적인 위협으로 시작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궁극의 위협을 가져온 건 바로 '타노스', 외계 빌런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우주의 힘이 담긴 인피니티 스톤 여섯 개를 담을 장갑, 인피니티 건틀렛을 차고 등장한 타노스, 그런데 이 외계 빌런은 뜻밖에도 스스로 '필연적인 존재(inevitable)'가 되고자 한다. 

일찌기 늘어나는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고정된 자원이 지구, 나아가 우주를 멸망으로 이끌것이라는 '혜안(?)'을 가지게 된 타노스는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손에 넣은 우주의 힘을 가진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으로 지구와 우주를 '구원'하고자 무차별적인 '심판'을 행했고 그 결과 지구는 물론, 우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이런 일련의 타노스가 '행한 일'은 흔히 '종말론'적인 신앙에서 그려지는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과도 같다. 타락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40일 밤낮으로 비를 쏟아부었다던 '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 일을 마친 타노스는 자신이 행한 '최후의 심판'을 거스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다치면서까지 인피니티 스톤을 파괴했고,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마치 천지창조 뒤의 휴식을 취한 '신'처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 그의 의도는 어쩌면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배들로 즐비했던 뉴욕의 바닷가는 이제 고래들이 뛰노는 곳이 되었으니. 그가 바랬던 지구와 우주의 균형이 이루어져 가는 거 같다. 

 

 

그런데 그가 없애버린 그 '인피니티 스톤'을 되찾기 위해 감히 '지구의 한 줌도 안되는 어벤져스' 무리가 '양자 물리학' 따위를 동원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다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고자 한다. 반을 살려놓았더니 사라진 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오류를 다시 한번 되풀이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온 타노스는 이번에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라그나뢰크(신들의 몰락)처럼 아예 '기억'할 '존재'들을 싸그리 없애버리고 '천지창조'부터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타노스 그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이기에 바로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정의내린 '필연적인 존재', 지구어로 번역하자면 '신'이다. 

인간의 역사 -어벤져스 
하지만 그런 '필연적인 존재'의 '전지전능한 작업'에 반기를 든 무리들이 있다. 바로 '어벤져스', 과학 기술의 성과를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아이언맨',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토르, 과거의 냉동인간이 해동된 '캡틴 아메리카', 과학적 돌연변이 '스파이더맨', 헐크',  영성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등등 인간의 상상력이 도출해낸 다양한 캐릭터의 히어로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타노스'에 대항했던 건 아니다. 

에너지원 큐브를 이용한 적의 등장으로 지구가 위험에 처하자 국제 평화 유지기구 쉴드(S.H.I.E.L.D)의 국장 닉 퓨리(샤뮤엘 L 잭슨 분)가 어벤져스 작전을 개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를 위시하여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 헐크(마크 러팔로 분),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 호크 아이(제레미 러너 분) 등을 호출하여 적들에 대항한 동맹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들의 동맹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평화 유지 프로그램의 오류로 부터 탄생한 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린 적은 지금까지 지구 방위군으로 명망을 날렸던 어벤져스를 오히려 지구를 파괴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로 규정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지구 파괴와 인명의 피해를 양산하는 '어벤져스'의 존재는 어벤져스 팀 자체 내의 '철학적 이견'을 발생시키며 어벤져스의 갈등과 해산을 가져온다. 

이러한 '갈등'은 그저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의 서사적 갈등을 넘어,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되었던 인류사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타노스가 인류의 반을 절멸시켜 인류와 지구를 구원하고자 했을 만큼, 인간의 문명, 그 발전은 또 다른 파괴와 폐해를 낳았고, '발전'과 '수호'라는 이름으로 인류는 지구 곳곳에서 또 다른 '점령'과 '파괴'를 일삼아 왔다는 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 낸 '괴물' 울트론과 맞서는 과정에서, '파괴'에 대한 반성으로 '통제'를 선택한 '아이언맨' 등의 그룹과 그에 맞서 통제를 벗어난 히어로들를 규합한 캡틴 아메리타의 그룹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시리즈에서 갈등의 정점을 달하지만, 결국 타노스에 의한 인류, 및 우주 절멸의 순간을 맞이하며 동지들을 잃게 되면서 다시 한번 힘을 모으게 된다. 

인류가 사라진 곳에 숲은 무성해지고, 고래들이 뛰어놀게 되었지만, 인류는 자신들의 반을 잊지 못한 채 '상실의 나날'을 이어갔다. 결국 인간의 삶을, 인류를 지탱하고 유지해 가는 건,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로 이루어졌던 '역사'였음을 증언하는<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하여 '인류의 동맹'으로 다시 한번, '과학'의 힘을 빌어 '전지전능한 파괴'에 도전하여 '연대'한다. 

 

 

'상실'로 부터 시작된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그 상실의 아픔을 '필연'으로 수긍하는 대신, '양자 물리학'이라는 최첨단의 과학을 끌어안으며 '과거'를 복구하고자 한다. 비록 폐해를 남발하는 인류의 역사였지만, 필연적인 존재의 심판 대신, 그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를 스스로 선택하고자 한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절정을 이룬 대규모 물량의 타노스 대 어벤져스의 전투 씬이 감동적일 정도로 다가오는 건, 그 씬에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적 물량과 함께, 두 시간이 넘도록 그 최후의 전투를 위해 다져넣은 동지적 인류애에 대한 서사 때문이다. 뒤늦게 얻은 딸을 두고 나선 아이언맨의 결자해지, 그리고 기꺼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블랙 위도우 등 어벤져스들의 전우애를 바탕으로 하여 결정적인 순간 그간의 이견을 불식하고 '합체'한 어벤져스 팀,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돌아온 사라졌던 동지들의 복귀, 혹은 복구의 감격과 함께 대장정의 엔딩을 화려하게 빛낸다. 

 

 

결국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결론은 숱한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류애'와 '인류 역사', 그리고 '인류 발전'에 대한 긍정적 헌사이다. 신의 심판 대신, '인간'의 손으로 자신들이 벌려놓은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주체적 의지의 '반신론적' 표명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심에, 미국 문명의 정점인 '아이언맨'과, 아메리카니즘의 대변자인 캡틴 아메리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by meditator 2019. 4. 30. 06:04

지난 3월 최악의 초미세먼지(PM2.5)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공기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다. 하지만 그런 '공포'만큼이나 그 '원인'을 둘러싼 '갑론을박' 또한 더해만 갔다. 원인을 제공하는 중국에 대한 극심한 불만 만큼이나 그런 중국에 대해 미온적 대처를 하는 정부에 대한 불평도 늘어갔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80~90년대에 비하면 한층 좋아진 상태란다. 이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 좋아졌다니, 이렇게 혼돈스러운 '미세 먼지'의 논란의 진실을 <sbs스페셜>이 조목조목 파헤쳤다. 

 

 

미세먼지, 정말 좋아졌나? 
최근 장재연 아주대 교수의 미세먼지와 관련된 주장이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장교수의 주장은 산업화가 극에 달했던 80~90년대에 비하면 외려 최근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는 그 정도가 덜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직접 장교수가 주장했던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통계적 수치를 직접 조사해 봤다. 장교수의 주장이 맞았다. 초미세먼지 농도는 꾸준하게 낮아져 왔다. 고농도 미세먼지도 매해 감소하는 추세이다. 심지어 90년대의 미세 먼지 농도는 지금의 두 배 정도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대기 환경이 나빠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사람들이 그저 막연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 미세먼지 측정소의 지난 4년간의 자료를 데이터화 한 결과, 지난 4년 동안 미세먼지가 극심한 1월에서 3월까지 고농도 미세먼지의 지속 시간이 2015년 12시간에서 2018년 20시간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객관적 수치상으로는 미세먼지 양은 줄어들고 있지만, 예전 같으면 오전에 잠시 혼탁하던 하늘이 이제는 하루 종일 뿌옇게 보이니 사람들에겐 당연히 지금이 더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정말 중국으로 부터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하루 종일 하늘을 '점거'하는 미세 먼지, 그 원인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국민 청원에 등장할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일까? 

베이징에 사는 한 시민은 오랫동안 베이징의 하늘을 매일 아침 촬영해 왔다. 그런 그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베이징의 하늘은 한결 맑아졌다고 한다. 그러면 수치상으로는 어떨까? 제작진이 직접 베이징에 가서 매일 매일 측정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 당국의 발표와 달리 베이징의 공기 질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나빴다. 국제 기준치에 근접한다는 발표와 딴판이었다. 그런데 왜 좋다는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1년 평균으로 통계를 발표하는 '데이터'의 함정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중국발 스모그의 습격과 함께 우리 사회 '음모론'으로 등장한 것이 중국 정부가 베이징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공장들을 우리나라에 좀 더 가까운 산둥성으로 대거 이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베이징에 있던 공장들을 대거 이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혹으로 삼았던 산둥성이 아니라, 베이징 외곽에 있는 '허베이성'이 그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하늘이 맑아진 대신 허베이성의 하늘은 스모그로 뿌옇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허베이성 사람들에겐 그런 공기의 질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산업적 활력을 준 공장들이 더 반갑다. 

이렇게 다시 한번 중국으로 부터 오는 미세먼지의 유입이 확실해 졌지만 그 책임 요구는 쉽지 않다. 정진상 교수는 중국인들이 즐겨 터트리는 폭죽으로 부터 중국발 미세 먼지의 성분을 분석하여 미세먼지의 과학적 원인을 규명해 냈지만, 이게 국제적 보상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캐나다로 부터 미국이 국제적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법의 변화에 따라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가 그런 원인의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보상을 면해줄 수 있다는 등 보상의 관례나 사례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미세 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 분야에 과학적인 투자를 집중하고 있고 그와 함께 수치 상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어 더더욱 우리나라가 보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중국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중국만의 문제일까? 다큐를 연 건 미세먼지 측정기이다.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와 매일 학교를 오가는 학생의 등에 인간의 호흡과 동일하게 공기를 빨아들이는 '미세 먼지 측정기'가 매달렸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이 '미세 먼지 측정기'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린피스와 함께 제작진이 직접 실험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의 경우 그가 하루 종일 매달고 다니는 미세 먼지 측정기의 그래프가 들쭉날쭉하다. 반면, 매일 학교로 오가는 학생의 경우 등하교시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덜 심한 날과 상관없이.

즉, 제작진이 매단 미세 먼지 측정기의 수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관측된 미세먼지 농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니고 있는 길, 즉 자동차들이 내뿜고 있는 배기 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중국'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우리 곁의 자동차와 공장 등에서 뿜어내고 있는 미세먼지에 우리는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재연 교수가 주장하는 바도 일맥상통한다. 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저 미세먼지가 좋아졌다가 아니다.  미세먼지의 정도는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 질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적 결과물'들에 대해 살펴보고 점검하며 이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 라는 근원적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다. 

또한 미세먼지를 둘러싼 갈등은 '정책'의 스펙트럼과 효율성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당장 미세먼지가 심한 상황에서 아토피 등 각종 알레르기 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시급하게 각 교실 등에 공기 정화기 설치 등을 요구하지만 이런 부모들의 긴급하고도 즉각적인 요구에 정부나 학교 당국은 '절차' 등의 문제를 내세워 미온적으로 대처하여 그 '개선의 속도'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부추겨지고 있다. 

by meditator 2019. 4. 29. 05:13

10년의 시간, 매 주 꾸준히 해왔던 게 있을까? 아마도 먹고 자는 거 말고는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일이라 쳐도 10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해온 사람들이 있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0주년, 440 회의 시간을 달려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이 특별한 시간, 하지만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유스케)>, 흔히 유스케라 부르는 이 프로그램, 이 약자의 본보기가 되었던 슈스케가 명멸해버린 지금도 밤 하늘 그곳에 늘 있던 그 별처럼 이번 주도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요즘 유스케가 언제 하는지 아시는가. 토요일, 일요일까지 오가던 이 프로그램이 요즘은 금요일 밤 11시 20분에 한다. 12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 하던 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평범 속의 진리 
그 특별한 10주년을 연 건 놀랍게도 10년의 시간동안 한번도 <유스케>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김현철이다. 유희열의 말처럼 이상하다. 몇 번은 나온 거 같은데, 언제더라  노총각 4인방이라고 하며, 윤상,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이 나와서 서로 놀리며 흥겹게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던 게. 그게 벌써 언젠가 싶게 다들 아기, 아니 얘들 아빠들이 되었다. 그 네 명이 노총각으로 나왔던 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였는지, <이소라의 프로포즈> 였는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르고 같았던 kbs2의 계보을 이어 오늘의 <유스케>가 있으니, 그 앞서 선배들까지 따지자면 유장함 뮤직쇼의 계보이다. 

어쨋든 그렇게 10주년을 맞이했는데도 여전히 <유스케>에 출연하지 않은 가수들이 있단다. 10주년 맞이 인터뷰를 한 유희열의 오랜 '고소원'인 조용필부터,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파릇파릇한 신인가수들까지. 

10주년을 맞이한 <유스케>가 특별했던 건, 바로 여전히 이 무대에 서야 할 가수들이 있고, 언젠가 이 무대에 설 가수들이 있다는 그 '존재감'의 확인이었다. 이제는 <복면가왕> 아저씨로 젊은 층에게 더 어필한다는 19살에 '천재'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던 <춘천가는 기차>와 <연애>의 김현철이 30주년 앨범을 기약할 수 있는 무대가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을까.

 

   

 

또한 정말 우주에서 온 음악같은 신비하고 묘한 본인들이 표현하듯 본데없고 그래서 자유로운 방송 처음이라는 우주 왕복선 사이들 미러의 '난 아마 회사에 뼈를 묻지 싶다, 가난은 나를 잡고 나는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 다치기 전 내 두 눈을 감기고 싶어, 150씩 일년 계약, 거둬주신다면 작업실에 쳐박혀서, 우싸미 하나 1back 하나, 정규 하나, 잘할 자신 만만, 나같으면 투자 가' 이라는 유희열의 표현대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이후로 모처럼 신선했던 '설마는 사람잡고 철마는 달리고 싶어'와 같은 음악을 들을 곳이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가 새로운 설레임이었다면, 볼빤간 사춘기는 그런 <유스케>의 '선구안'의 증명이다. 불과 몇 년 전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유스케>에서 첫 무대에 섰던 '볼빨간 사춘기', 그 이상한 그룹명과 함께 '서양 수박 1위'가 소원이 야무지다 느껴졌던 그 시간을 이제 다시 돌아온 <유스케>에서 여유롭게 자랑의 한 품목으로 펼친다. 어디 볼빨간 사춘기 뿐일까. 아이유에서 부터, 내로라하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첫 번째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유스케>였었다. 

그 어떤 화려한 팡파레와 축하 공연보다 김현철로 시작해서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로 마무리된 이 날의 <유스케>만큼 앞으로도 계속 유스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래 해서 계속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래 여전히 계속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낸 시간, 그래서 10주년 <유스케>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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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그리고 뮤지션 유희열 
또한 인터뷰에서 총무,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정의내린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의 음악과 함께 10주년의 곳곳에서 직조되어 빛났다. 30주년이 된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듣고 이런 사람과는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던 고등학생 유희열이 프로듀서 김현철이 말한 자신의 작품을 성취감에 대한 지론을 듣고 토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유희열 뮤직 월드의 시작은, 김현철 6집의 <이게 바로 나예요>이 병약하게 '술마시면 취하고 넘어지면 아파요'라고 읊조리듯 부르던 객원가수 유의열에서, 크러쉬를 객원가수로 하여  함께 부른 'you&me 수많은 사람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thar just you 너를 만난 건 믿디 못할 놀라운 기적' U&I를 거쳐, <무한도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그래, 우리 함께>,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었어'의 감사 인사로 마무리되며 mc 유희열과 그의 음악을 돋을새겼다. 

평범한 듯 했지만,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가장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빛났던 시간,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빛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하지만 힘있게 강변했던 시간, 그래서 다음 중에 다시 만나러 가고 싶은 10주년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9. 4. 27. 06:01

로맨틱 코미디의 관건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 이성이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휴머니즘'이 아닐까 라고 tvn  수목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 대한 '오해'로 시작된 <그녀의 사생활> 속 라이언 골드와 성덕미의 관계, 그 얼크러진 실타래를 풀어가는 건 뜻밖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다. 

 

 

오해, 사랑을 위한 배경지식?
성덕미(박민영분)는 채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이다. 전직 관장이었던 재벌가 엄소혜가 남편의 비리와 미술관을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물러나고 새로운 관장으로 입양아 출신의 라이언 골드(김재욱 분)가 오게된다.  지난 시절 그녀가 없으면 채움 미술관이 돌아가지 않는다 할 정도로 헌신하여 차기 미술관 관장이 돼도 손색이 없다 싶었던 성덕미,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장춘몽'은 라이언 골드의 등장과 함께 무너지는 건 물론, 엄소혜의 텃새로 인해 오해를 사며 '해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신임 관장인 라이언 골드와의 사이는 적대적일 수 밖에.

그런데 성덕미에게는 보여지는 큐레이터라는 직업 외에 또 하나의 숨겨진 직업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아이돌 차시안의 열렬한 팬이자, 그를 위한 팬까페의 홈마스터(홈마), 차시안이 뜨면 그녀는 마스크까지 검은 색으로 자신으로 가리고 그를 담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항에서 입국하는 라이언 골드와 부딪치며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팬 다이어리를 그에게 떨어뜨리게 된다. 상심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녀와 같은 취미 생활의 동지인 이선주(박진주 분)가 시안이 머물렀던 호텔 스위트룸에서 호캉스를 보내는 것으로 위로를 해주려는데, 이미 그 방에 머물렀던 라이언 골드와 방을 바꾸는 해프닝을 벌이는 가운데 라이언은 두 사람을 동성애자라 오해하게 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주인공 남자와 여자인 라이언과 성덕미가 매번 부딪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뜻하지 않은 오해까지 하며 해고와 동성애 사건을 겪게 된다. 해고의 해프닝은 그에 대한 성덕미의 얕은 복수심에서 벌어진 라이언의 카페인 알레르기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성덕미는 라이언의 생사여탈의 가해자이자 구원자가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본의 아니게 점점 더 긴밀해져 간다. 그런 가운데, 미술관 전시회를 위해 함께 차시안의 집을 찾는 과정에서 생긴 시안 팬들의 오해로 성덕미가 '테러'의 위협을 받게 되고, 이에 라이언은 스스로 그걸 막기 위해 '가짜 연애'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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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랑의 시작 
라이언이 가짜 연애를 제안한 이유는 그저 시안의 팬들을 막아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호텔에서 목격한 사실을 근거로 성덕미를 사회적 약자로 배려의 대상이라 생각한 그는 그녀의 정체성이 드러나서 고통받는 대신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어주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또 다른 오랜 친구인 남은기(안보현 분)가 찾아와 '아우팅' 운운하자 그는 분노해 그와 유도 대련을 펼치며 자신이 성덕미에 대해 생각한 바를 흘리고, 그로 인해 성덕미는 라이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라이언은 자신이 그녀를 터무니없이 오해한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지만, 정작 성덕미는 그런 라이언의 배려에 마음이 울리고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그 둘의 가짜 연애를 의심하는 관장 딸이자 성덕미의 경쟁 팬홈 마스터인 신디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함께 한 강원도 길, 그곳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노석 작가의 오랜 벗인 사진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사진에 대한 덕미의 해석, 안녕이란 제목이 세상과의 이별을 뜻하는 '굿바이'가 아니라 사진 밖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안녕 나는 이렇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마'라는 위로의 의미란 해석에, 이른바 라이언이 '동공 지진'하게 되는데. 엄마가 자신을 버려 어린 시절 입양이 되어 누군가의 손을 놓치는 게 싫어 타인의 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라이언이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덕미의 해석에 얼어붙었던 라이언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라이언 만이 아니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으로 중학교 때 만나 무려 30년 동안 자신을 바라봐 왔지만 엄한 가정에서 자라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 상처로 남았던 노석 작가의 얼어붙은 사랑마저도 덕미의 그 따스한 해석에 마음을 돌리도록 만든다. 

그렇게 비록 사회적 약자라 오해했지만 기꺼이 자신을 지켜주려는 라이언, 오랜 아픈 사랑의 상처를 가진 노석 작가의 마음조차 돌려세운 성덕미의 따스한 시선, 결국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성 간의 연애를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건,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온기, 선의,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는게 아니냐고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불신, 오해를 넘어, 이제 서로에 대해 온기를 느끼며 '덕질'의 초기 단계에 빠져드는 라이언과 덕미의 '덕질 연애', 그들의 '휴머니즘 러브'가 궁금해 진다. 

by meditator 2019. 4. 25. 15:12

사이다 백만 개를 주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던 <열혈 사제>가 떠났다. 그런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회를 거듭할 수록 근로감독관의 활약이 열렬해 진다. 전직 국정원 대테러 전담반 요원이었던 신부님이 조절되지 않는 분노를 화끈한 액션을 앞세워 구담구 적폐 카르텔의 소탕 작전으로 돌렸다면, 조장풍으로 날렸던 전직 유도 선수 출신 선생님 역시 한 액션하시지만, 그래도 '근로 감독관'이라는 직업답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며 공무원도 얼마든지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는 중이다.  사제님의 열일도 구원받은 구담시, 이제 근로 감독관 조진갑(김동욱 분)의 열일로 구원시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88만원 세대의 슬픔, 그 기원은?
장은미는 휴먼테크의 파견직 사원이다. 오랫동안 취직 못했던 그녀가 언니에게 잘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회사의 막내 사원인 그녀의 회사 생활은 '지옥'이었다. 2년 동안 제 시간에 퇴근을 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 며칠 째 들어오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 그녀가 근무하는 책상 한 귀퉁이의 약병들은 그녀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오력'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견디지 못하고 나간 경력직 사원 4명 몫의 일을 해야했던 그녀, 사무실의 온갖 잡일에서 부터 기획안까지 쉴 틈이 없었다. 일만 많은 게 아니었다.  클라이언트의 변심은 그녀가 일을 못해서라고 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은 그녀를 동네 북처럼 두들겨 댔다. 그래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처럼 '여기서 못버티면 어디 가서 뭘 하겠냐'고 했고,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장은 자기 말을 안들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붙이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버티다 못한 그녀가 언니에게 자신을 좀 어떻게 해달라고 울며 하소연을 했다. 

동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찾은 언니, 하지만 뜻밖에 언니가 들은 말은 '노동 계약서'가 없어서 노동자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법'의 테두리를 확인했을 뿐,  결국 견디지 못한, 아니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다 못해 접대 자리까지 불려나간 동생은 다음 날 뇌진탕을 일으킨 채 발견됐다. 

 

 

노동 계약서가 없는 계약직, 파견직 사원  이 문제를 맡은 특별한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자신들의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다는 변명 반, 그런 적이 없다는 배째라 반으로 나오는 사장의 뻔뻔한 저항에 부딪친다. 

이에 조진갑 근로 감독관은 알바 노동자 소년들의 체불 임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휴먼 테크의 장시간 노동을 적발하는 한편, 휴먼 테크를 넘어 원청과 하청의 관계로 휴먼 테크에 또 다른 갑이 되는  '티에스'라는 악의 축을 저격한다. 또 한편에서 파견직이라는 이름으로 은미와 같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노동 계약서도 없이 다단계 식으로 이 기업 저 기업에 파견하는 파견직 보도방의 비리로 적발한다. 즉, 드라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고통받는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저 한 직장 내 프레임을 넘어 사회 구조적으로 대기업에서 부터 하청, 재 하청을 해가며 결국 그 모든 사업적 부담을 최 하단의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에게 업무적으로, 거기에 한 술 더 떠 체불 임금으로 떠맡기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액션을 조미료, 근로감독관의 이름으로 
하지만 파견직 사원의 부당한 고용을 밝히기 위해 파고 들어간 원청 티에스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조진갑에 대해 그의 상관 구원지청장 하지만(이원종 분)은 냉정하게 반대한다. 

법대로 하고자 하지만 법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조진갑, 그때 지난 상도운수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한때 제자 김선우(김선규 분)가 동앗줄을 드리워준다. 김선우가 고등학교마저 못마치도록 만들었던 왕따 사건의 주동자였던 양태수(이상이 분)가 그를 자신의 운전사로 고용하여 다시 한번 사사건건 갖은 괴롭힘과 모멸감을 주는 상황, 김선우는 이제 더는 상도 운수 때처럼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대신 스스로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양태수에 대한 적극적 복수를 하고자 한다. 즉 신원을 보호해준 내부 고발자가 티에스와 고용 계약서도 쓰지 않은 장은미와 여러 차례에 걸쳐 업무 사항을 나누었다는 증거 서류를 '고발'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 

 

 

이에 '내부자 고발'이란 카드를 뽑아든 조진갑은 '내부자'가 빼낸 서류를 빼내기 위해 무단으로 티에스에 잠입, 하지만 매달 바뀌는 번호키로 인해 고전하던 중 전처 주미란(이세영 분)에게 들키고 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무실을 방문한 우도하(류덕환 분) 덕분에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 조진갑, 티에스와 명성병원의 전산 시스템 구축 협약식이 있던 날, 사경을 헤매는 동생에게 병문안은 커녕 문자로 해고 통지서를 보낸 휴먼 테크 사장에게 분노하던 언니를 진정시키는 한편, 하지만 구원지청장을 설득해 얻어낸 '체불 임금으로 인한 특별 근로 감독' 개시를 선언한다. 결국 파견직 장은미의 눈물을 근로 감독관 조진갑의 방식으로 닦아준 것이다. 


양태수로 인해 선생님직을 잃었던 조진갑, 하지만 이제 근로 감독관이 된 조진갑은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운다. 김선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양태수를 천덕구가 주먹을 날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을 때도 선생님이던 시절의 분노 대신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양태수의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 영상이란 딜을 통해 두 제자를 무사히 법의 심판으로 부터 구제하고, 이제 비록 그가 애초에 원했던 원청 폭로는 아니지만, 대신 체불 임금으로 인한 근로 감독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티에스의 손발을 묶는데 성공한다. 주먹을 쥐었지만 그걸 날리는 대신 근로 감독관으로 '준법적 방향'을 택해서 조금은 에둘러가는 길을 택한 조진갑, 한 방의 주먹보다 법이란 효율적인 승부처를 택한 그 싸움의 방식이 주는 '사이다'는 주먹 한 방과는 또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카타르시스를 준다. 

by meditator 2019. 4. 24. 05:59

똑같은 '치매' 노인이라 하더라도 '도시'와 농촌, 그 환경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농촌에 사는 분들의 경우,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공동체에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일궈온 '일의 현장'에서의 분리되지 않음이 그들의 치매를 중증으로 악화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도시에서 나이듦이란 평생을 종사해온 업으로부터의 '퇴직'이란 이름의 방출에서 부터 '노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음'이란 삶의 활력소 중 중요한 부분을 잃게 되는데서 오는 '상실감'을 짊어져야 '숙명'을 짊어져야 한다. 바로 그런 '나이듦'의 고민에 대해 '도발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일찌기 가회동 괴짜 할아버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쓸모 인류; 어른의 쓸모에 대해서 묻다>란 책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조류를 제시했던, 4월 21일 <sbs스페셜- 가회동 집사 빈센트, 쓸모있게 나이들기>의 빈센트 막시밀리안 리가 그 주인공이다. 

 

 

“집을 디자인하고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년이라면 이후 그 집을 유지하는 시간은 50년이 넘어. 디자인하고 짓는 단계에서 잘만 하면 집은 1백 년도 너끈하게 유지할 수 있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보다 지을 때 잘 지어서 오래 사는 게 환경을 위한 일이잖아. 뭐든 한 번 설치해서 영원히 사용하면 공해가 없고 말이야. 친환경 물건을 사고 먹고 쓰는 행위보다 더 사회적이고 실질적인 에코 라이프지-  그림 그룹과의 인터뷰 


100년을 살 집을 가꾸는 68세의 청춘
이제 68세의 우리나라로 치면 '한창 노인'이다. 그런데 쉐다 못해 벗겨진 머리를 뒤로 묶어 꽁지 머리로 만들고, 거기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날마다 다른 색깔의 원색의 옷차림에 컬러플한 고무신을 챙겨신은 그의 몸놀림으로 보자면 350살까지 살 예정인 '한창 청년'이란 그의 말 그대로이다. 

이 '68세 된 청년'의 직업은 '집사'이다. 아내 우노 초이(63)를 모시고 가회동 집을 돌보는 집사, 그의 하루 일과는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굽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달걀, 우유, 물이 1:1:1 비율로 들어간 이른바 '못난이 빵' 팝오버(popover)를 심혈을 기울여 오븐에 구워낸 그는 종을 울려 아내를 깨운다. 맨발의 잠옷 차림으로 홀처럼 뚫린 가회동 집 복도를 걸어나온 아내는 기꺼이 집사 빈센트가 만든 빵의 시식자가 된다. 

가회동 집 바닥에는 그와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 브랜드의 꽃인 아네모네와 환대를 뜻하는 파인애플 문양과 '아폴리니아'란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알바니아의 항구 도시 아폴리니아가 멀리 가회동에 와서 집사 빈센트가 만들고 싶은 따뜻한 남쪽 유럽의 도시를 상징하는 집의 이름이 되었다. 

2년 전 미국에서 은퇴한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아내가 이곳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내와 자신의 친지들의 '소셜 클럽'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집사'의 삶을 자처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가회동 집을 빌려 지금의 아폴리네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곳을 그의 손길로 고쳤다. 

"졔 집에 산다는 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적 주인으로서 공간을 갖는 거야" -<쓸모인류>


은퇴한 남자가 개조한 집이라 해서 <자연인>에 나오는 그런 투박한 집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겉으로 보면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견고한 스테인리스 가구에 보랏빛, 핑크색 컬러감이 더해진 이국적 디자인의 모던한 공간, 코넬데 토목 건축과를 졸업한 '공대 출신' 답게 , 하다못해 화분 받침 하나도 c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한 설계도를 통해 '안전'과, '기능성', 거기에 경제성과 아름다움까지 다 갖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집사 빈센트가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곳이다. 

 

 


환경적 삶의 실천자 
보랏빛 마감으로 모던한 화장실, 하지만 살펴보면 물때가 끼지 않게 고려된 높이의 장식장과 인체 공학적으로 가장 볼일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높이에 마련된 변기에서 부터, 볼일을 보는 맞은 편 문을 열면 만나게 되는 호텔처럼 잘 접힌 휴지 걸이까지, '완벽한 배려'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의 집도 아닌 빌린 집, 하지만 그는 '소유'하지 않지만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퇴직', 끝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의 마감일 뿐이라 생각한 그는, 아침의 빵굽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아기를 낳는 것 빼고 안하는 것이 없이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밖에서 벌어 쓰는 돈을 '소비'하는 삶을 그 삶에서 누리는 것이 삶의 최선인 양 생각해오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 몸의 돈이 '음식'이라던가, 우리 몸을 감싸는 피부가 '집'이니 돌보고 가꿔야 한다던가 심지어 인터넷으로 사면 12000원짜리 화분 받침을 십 여만원을 들여 설계를 하고 발품을 팔아 만드는, 아니 내 집도 아닌 집을 2년에 걸쳐 공을 들여 고쳐 쓰는  그의 삶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갈 '자본주의적 삶'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도대체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대기업 항공업체에 입사, 198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적 대우를 받던 그는 그런 차별에 항의했다가 강제 퇴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부터 4년 여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지구와 싸우는 것 같던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 그는 처음으로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가는 그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고, 결국 4년만에 승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재산'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배우면서 내 스스로 내 몸으로 체득해 낸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보다 그런 밖의 것이 아닌 오랫동안 내 꺼가 될 '백 배가 아니라 천배'나 더 많고 소중한 재산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기꺼이 'just do it!'이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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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隨處作主-서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집사의 삶을 살아가는 그를 도와주는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의 까다로운 레시피때문에 고전하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에게 그가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고, 그의 견고하고 정밀한 장식장을 마련해준 을지로 뒷골목의 기름밥 장인들에게 '친지'같은 예우를 갖춘다. 그들이 그의 소셜 클럽 아폴리네아의 초대 손님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 도시에서 나이듦의 고민은 '치매' 이전에 시간과 일과 그리고 돈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자본주의적'으로 늘 내 밖의 무언가를 소비하기를 강제하는 삶의 궤도에 맞춰가야 하는 고민이다. 바로 그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체제에 대해 집사 빈센트의 삶은 '도발'이고 심지어 '혁명'이다.  내 몸이 , 내 몸을 움직여 쌓인 것이 재산이 되어 가는 새로운 시도, 바로 그런 시도를 빈센트는 'just do it'이라 한다. 그리고 그런 빈센트답게 집사 학교에 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by meditator 2019. 4. 23. 15:02

촛불을 들고 구체제를 물리치고 '적폐청산'을 내걸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언 3년 여가 지났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의 슬로건은 무색하게 연일 가쉽성 사건들만 난무하고 그 사건들의 이른바 실체는 갈수록 오리무중인 채, 정국은 다음 선거를 둘러싼 세 싸움의 양상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적폐 청산'이란 말 자체가 구태의연해져 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 '임무'를 꾸준히 가열차게 실천하는 분야가 있다. 뜻밖에도 그건 시청자들의 밤을 밝히는 드라마들이다. 월화수목금토, 우리는 매일 저녁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드라마로 만난다. 현실이 되어야 할 이야기들, 그렇게라도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달랜다. 

 

 

분노는 정의로 치환된다-<열혈 사제> 
시작은 본당에서 쫓겨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사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통에 대뜸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트라우마에 절어 폐인이 되어가던 그를 거둬주었던 이영준 신부의 구담 성당으로 오지만, 그가 맞딱뜨린건 이영준 신부의 죽음이다.

이영준 신부 자살 위장 사건 그 뒤에는 구담 구청장, 경찰서, 구담시 국회의원, 그리고 특수 수사부 부장 검사 등 구담구 지역 카르텔이 있었다. 당연히 김해일 신부는 '분노'하고 홀홀단신 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직 국정요원답게 거침없는 그의 액션은 <정글의 법칙>이 떠난 빈 자리를 꽉꽉 메운 채 답없는 세상에 답답해 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속시원하게 뚫어주며 시청률로 보답을 받기 시작한다. 

구담구 지역 카르텔로 시작했던 사건을 '왕맛 푸드 사건'을 거쳐,  '버닝 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무렵 절묘하게 구담구 내의 사교 클럽 라이징 썬 사건으로 연역해내며 드라마의 현실성을 증폭시켜나가는 한편, 김해일이라는 독고다이 분노 조절장애 사제의 헌신적 분노를 구대영 형사(김성균 분),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하여, 서승아 형사(금새록 분), 한성규 사제(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오요환 편의점 직원(고규필 분), 쏭싹 중국집 배달원(안창환 분)까지 구담구의 정의로운 시민들을 구담구 카르텔에 대항하는 구담구 어벤져스로 재편하며 드라마의 전선을 살려냈다. 

현실에서 지지부진한 '버닝썬'은 드라마 <열혈 사제>로 오면 '라이징 썬'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문홀딩스의 차명 사업자들, 아들을 문홀딩스 대표로 내세운 박신우 의원, 구담구청장 정동자, 구담 경찰서장 남석구, 검사 강석태 등을 속시원하게 까발리고, 이들이 구담구 어벤져스의 작전에 따라 서로 이전투구하며 몰락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과정을 통쾌하게 그려내며 박수를 받는다. 

 

 

통수 위에 외통수 - <닥터 프리즈너> 
<닥터 프리즈너>를 여는 건 태강 병원 응급 의학센터 에이스였던 의사 나이제(남궁민 분)이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던 고지식한 의사였던 그는, 태강 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으로 인해 아끼던 환자 부부를 잃는 건 물론, 의사 까운을 벗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자신이 투옥되었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무 과장으로 부임하고자 한다. 

왜 교도소 의무 과장이었을까? 여기엔 바로 나이제가 의사직을 잃게된 깊은 원한의 이유가 있다.  형사 소송법 471조에 의거하면, 형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을 때 이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해당 교도소 과장의 동의를 받아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때문에 일개 교도소 의료 과장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서서울 교도소에서 그 권력을 누려온 것이 바로 선민식(김병철 분)이었다. 그는 이런 교도소 의무 과장의 재량에 의거 재벌, 정치인 등에게 형 집행 정지를 이용해 돈과 권력을 누려왔었고, 그 과정에서 나이제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나이제의 선민식을 향한 복수는 곧 그가 누려왔던 교도소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져 왔던 부도덕한 정, 재계 카르텔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 된다. 교도소 의무 과장 자리에서 부터, 출자자 명부, 하은 병원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선민식과 나이제의 '통수'에 통수는 결국 복수와 정의를 향한 나이제의 외통수 앞에 선민식이 무릎을 끓고 만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정의'의 목적에 충실한 '다크 히어로' 나이제의 방식은 <열혈 사제>의 분노 액션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제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하은 병원을 선민식으로 부터 받아내어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야심차게 내보인다. 결국 카르텔의 허브였던 선민식을 제친 나이제가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태강 그룹이라는 재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승계를 위해 '살부'도 불사하고, 정민제 의원마저 살해 사주한  이재주(최원영 분)과의 본격 한판 승이다.  과연 재벌 회장을 상대로 한 외통수 나이제의 통수 작전이 이번에도 먹힐 지, 엎치닥뒤치락하며 선과 악의 롤러코스터가 주는 마력이야 말로 <닥터 프리즈너>의 결정적 매력이다. 

 

 

금권 카르텔에 대항하는 고지식한 선의 - <더 뱅커>
매회 끝을 알 수 없는 통수의 향연인 <닥터 프리즈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마도 동시간대 수목 드라마인 mbc의 <더 뱅커>일 것이다. kbs2 드라마의 부진을 깨끗이 잊게 만드는 <닥터 프리즈너>가 20% 시청률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김상중, 유동근, 채시라 등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에 잘 짜인 대본으로 승부스를 건 <더 뱅커>는 안타깝게도 4% 대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더 뱅커>를 평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만화는 물론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감사역 노자키>의 리메이크작인 <더 뱅커>는 대한 은행이라는 금융계의 절대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정의의 드라마틱한 전개로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직이었던 공주 지점장이었던 노대호(김상중 분)는 지점 폐쇄라는 불운을 겪지만 뜻밖에도 행장 강삼도(유동근 분)에 의해 감사로 위촉된다. 벌써 3번이나 행장을 연임한 강삼도는 어수룩한 노대호를 감사 자리에 앉혀 그의 공명정대한 감사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배임 행위'로 육관식 부행장을 밀어내는데 이어, kt 부정 취업이 연상되는 국회의원, 국정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금감원장의 압력인 채용 비리 사건으로 도전무(서이숙 분)를 토사구팽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한 부행장 이해곤(김태우 분)이 은행을 개혁할 꺼라며 자신의 편에 서라는 회유에, 그건 부행장님의 권력욕일 수 있다며 돌아선 노대호 감사, 드라마는 이합집산하는 대한 은행과 그를 둘러싼 정재계 카르텔 속에서도 꿋꿋히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의 길을 고지식하게 고수하는 감사의 정점이 어딘가 궁금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행장 강삼도가 그가 꺼내든 은행 개혁과 관련된 D1보고서를 덮으라 하며 노대호의 동지였던 한수지(채시라 분)까지 부행장으로 회유하며 <더 뱅커>는 본격적인 노대호 대 강삼도의, 일개 감사와 대한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금융 카르텔의 권력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이제이,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하는데 그 누구보다 교활한 강삼도 앞에 우직한 노대호 감사의 칼날이 먹힐지 거기에 이해곤과, 한수지의 욕망의 끝은 어딜지, 그 욕망과 정의의 파노라마, 그 귀결점이 궁금하다. 

 

 

근로 감독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무한하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근로 감독관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걸 믿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에서 보여지듯이 각종 정치적 외풍과 거기에 더해 금권을 전횡하는 기업주에 맞서 일개 공무원이 근로 기준법을 법대로 구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MBC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바로 이 법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현실로 부터 '법대로'하는 히어로가 된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길어낸다. 

일찌기 유도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덕분에 폭력 교사로 낙인이 찍혀 직장과 가정을 잃은 바 있었던 조진갑은 어렵사리 얻은 근로 감독관이란 직분을 복지부동으로 버텨가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직을 잃게 만들었던 그 학폭 사건의 희생자였던 소년이 이제 다시 상도여객의 운수 노동자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예의 불의를 참지 못하던 '조장풍'의 기질을 살려낸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그 어떤 조폭이 떼를 지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포에, 눈 앞에서 깐죽대며 쳐보라는 구대길 이사장(오대환 분)을 향해 대뜸 주먹을 날려버리는 대책없는 용기, 하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때처럼 그저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은혜를 입었던 천덕구(김경남 분)가 운영하는 갑을 기획의 특출난 사업 능력을 뒷배로 하여, 구원시 노동지청은 물론, 검찰까지 회유한 구대길이 몇 천의 벌금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려 하자, 약간의 트릭을 거쳐 운행 정지라는 법적 조치를  통해 벌금을 메꾸려 밤낮없이 혹사당하던 버스와 운수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묘수를 통해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법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진갑의 법적 해결은 뜻밖에도 시민의 발을 정지시켰다는 역풍을 맞고 조진갑은 진상조사위에 회부된다.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조사위원들에게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라며 당차게 반문한 조진갑, 그런 가운데 구대길은 고의 파산을 통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하고. 조진갑에게 넘겨진 가짜 정보의 압수 수색과 구대길의 해외 도피, 그 간발의 차이를 넘어 결국은 구대길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해내며 근로 감독관으로의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열혈 사제>에서 부터,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까지> 주중, 주말을 휩쓸며 답답한 현실 대신 시청자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드라마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모두 '아재'들이 주인공이다. 마흔 줄의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직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아재들, 그들은 자신을, 혹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카르텔에 도전한다. 드라마는 이 평범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도전'의 키가 되는 건 뜻밖에도 그들의 직업이다.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는 신부라는 특별한 위치이지만 그 이전에 그가 속했던 국정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그가 해결해 가는 사건에 주된 '마스터 키'가 된다. 나이제 역시 의사였던 그의 과거가 지금 그를 서서울 교도소 의무 과장에의 도전에서 부터 선민식, 이재준에 대한 복수의 길에 가장 유리한 방패이자 칼이다. <더 뱅커>의 감사 노대호나,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건들로 인하여 그들의 '정의'가 불지펴진다. 

이렇게 아재들의 투철한 적폐청산,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핏대를 올리며 '정의'를 목놓아 외치지 않는다. 분노 조절장애 김해일 신부는 외려 때론 그의 분노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순수하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중독성있게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켜 전선을 확장키켜 나간다.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 나이제의 여유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썰렁해서 어느덧 정기 가버린 노대호의 아재스러움, 거기에 몸무게를 불려 그 덩치만큼 넉넉한 조진갑의 넉살이 이들 드라마의 날선 경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다던 그 전설의 복서처럼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매료시켜 내 편의 긴장을 풀어주되, 결코 정의의 전선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투철함으로 이 시대 넉넉한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한다. '넉넉함'과 '투철함' , 어쩌면 이들 드라마의 환영받는 주인공으로 부터 사람들이 그리는 히어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9. 4. 19. 17:51

아이가 6살 때였나, 이웃에 또래 친구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를 까보니, 그 '또래' 친구는 아이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런데 또 이 또래 친구는 2월이 생일이라 이른바 '빠른'으로 아이와 같은 학년에 입학할 처지였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과연 이 두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야 할까? '형, 동생'이 되어야 할까? 그저 동네 친구 하나 만드는 일인데 당사자의 엄마들은 물론, 그 주변 '아줌마'들까지 심각하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론은 이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두 아이들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두 아이가 그 때 형 동생이 되었다면 지금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거기엔 '형'뻘인 아이와 엄마의 '혜량'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등을 둘러싼 호칭과 관계의 문제는 녹록치 않다. sbs스페셜은 바로 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언어'와 '권위'의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바로 <왜 반말하세요>이다. 

 

 

말로 부터 시작된 관계의 해체 
다큐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방송국에 견학온 고등학교 방송반 학생들과 선생님, 그런데 학생들은 흰 머리가 히끗히끗한 마흔 줄의 선생님을 대놓고 '이윤승'이라 부른다. 이름만 부르는 게 아니다.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놓는다. 도대체 이 방송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윤승 선생님이 이윤승이 되기 까지 '사연'이 있다. 학교 안에서도 군기가 세기로 소문났던 방송반, 후배들은 저만치 선배가 가는 게 보이면 달려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하고 복창을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한다. 당연히 방송반의 모든 일들은 그에 따라 '상명하복'. 선생님은 오죽했을까? 새로이 방송반을 맡은 이윤승 선생님은 이런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방송반의 관례를 깨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바로 '내가 먼저 권위를 내려놓는 방식', 그래서 이윤승 선생님은 이윤승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에게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이 '나 이거 하기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좋다고 한다. 

호원이가 된 도련님의 사례도 있다. 이미 sbs <b급 며느리>를 통해 방영된 김진영 씨의 사례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친해서 '호원'이라 불렀던 남편의 동생,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서는 편하게 불렀던 시동생에 대해 '도련님'이나 '삼촌'이라는 호칭을 요구하며 형수와 시동생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형수의 여동생들에 대해 남편은 자연스레 이름을 부르는데 왜 남편의 동생에게는 호칭을 불러야 하는 것일까? 주변에서는 그냥 잠깐인데 참으면 된다지만 형수는 이런 호칭에서 부터의 차별이  '여자의 삶'을 어그러뜨리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된다. 

 

 

당신을 당신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가족에서 부터 사회까지 우리 사회에서 '호칭'으로 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문제는 복잡하다. 그 이유를 전문가는 '너, 당신'이라는 직접적 호칭의 부재에서 찾는다. 207개의 언어 중 '너, 당신'을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는 7개의 언어, 그 중 하나가 한국어라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너와 당신을 부를 수 없기에 새로운 호칭을 찾아야 했고, 그를 위해서 당신은 누군인가를 알기 위한 신상 정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 언어의 특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큐는 그 이유를 '상명하복'이 내재화된 우리 사회의 위계 질서에서 찾는다.  5,6살 아이들의 키즈 까페에서도 '너 몇 살이냐'로 시작되는 위계의 파악, 위계가 파악되면 바로 '형', '동생'이 되고, 동생 뻘의 아이에게 당장 '니라고 하지 마라'며 , '형이니 내가 먼저할게'가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권위적 질서 체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시작을 조선 시대의 장유유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다큐의 생각은 다르다. 고미숙 고전 인문학자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달리 조선 시대 서당은 나이 차를 두지 않는 '통교육 체제'였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은 나이에 대해 관대하여 25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서신으로 학문을 논했던 기대승과 이황처럼 나이를 막론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례가 흔했다고 전한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적으로 나이에 대해 '관대'했던 조선의 전통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민증부터 까고 보는' 연령별 위계 질서로 고착되었다고 오성철 교수는 지적한다. 모리 아리노리에 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군국주의 일본의 사상으로 채택되고 일본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의 사범 학교를 군대식으로 재편했다. 이른바 '사범형 인간'은 상급생을 '신'으로 받들게 하며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퍼뜨렸고, 군대 내 상명하복의 질서를 고스란히 근대 교육 제도화한데서 오늘날의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민주의의 잔재는 오늘날의 위계 질서를 만든 50%의 책임이 있다고 다큐는 부연 설명을 한다. 즉, 식민지의 유산이 절반의 책임이라면 학도 호국단, 국민 교육 헌장 등 일제의 관행을 고스란히 부활시킨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 교육이 오늘날 우리 사회 권위주의적 질서의 또 다른 한 축이라 다큐는 정의내린다. 사회 구조와 맞물려진 언어, 결국 정치적 권위주의가 일상의 권위주의가 되었고,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관행에 대한 성찰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제기한 것이 바로 '수평적 사회를 향한 수평적 언어'에 대한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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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주의와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만의 문제일까? 
단 몇 개월의 차이라도 형, 동생이 되는 우리 사회의 '연령별 수직 구조'에 대한 인식은 예리하다. 더구나 그 원인을 '식민주의와 독재 시대의 권위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바는 진일보된 신선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획일적일 수도 있다. 다큐에서 사례로 등장한 <대리 사회>의 소설가 김민섭씨의 사례처럼, 대학원생이던 그가 대리 운전 기사가 되자, 당장 '아저씨'에서 부터 '야, 너'로 호칭의 급격한 '전락'에서 보여지듯이, 과연 우리 사회 권위적 호칭의 문제가 '나이'의 장벽만의 문제일까?

다큐는 독일 68세대에 의한 나치 잔재 세력에 대한 일소를 통한 정치적 권위주의 해소 사례를 예로 들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뒤늦게 대두되고 있는 일제 잔채 청산, 그리고 나아가 독재 잔재 청산에 대한 일련의 흐름에서 '권위주의적 언어'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몇몇 사례로만 제시한 조선시대를 덜 권위적 사회라 예단할 수 있을까? 대리 운전 기사에게, 콜센터 직원에게 다짜고짜 '야'하고 하대하고 보는 그 의식은 외려 조선시대의 반상제도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의 완고한 가부장적 권위 주의의 기원 역시 조선 시대 유교를 차치하고서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학원 내에서 교수와 대학원생간의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한 것이 수평적 언어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까? 

다큐를 도발적으로 연 이윤승 선생님 역시 수평적 언어의 관계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우선 그의 혁명적 관계 시도가 동료 교사들의 불편함에 대한 토로로 고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아이들과 말을 놓는 건 권위주의적 관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지 진짜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고자 하는 건 아닌데 수평적 언어가 때론 관계의 혼돈을 낳기도 한다고 고민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다큐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it기업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붐처럼 일었던 수평적 언어 관행으로서의 '별명' 혹은 '외국 이름' 부르기와 같은 움직임이 상당수의 경우 이름만 '수평'적이며 실제 관계는 수직적인 '웃픈'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큐가 새로운 움직임으로 제시한 수평적 언어 모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는 이 모임을 통해, 자신들이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풀어낸다. 하지만 대표적 권위주의적 집단으로 제시된 해병대 전우회처럼, 우리 사회의 다수, 그 중에서도 남자 중 상당수가 '군대'라는 일정 기간 동안 '상명하복'에 대한 고강도의 훈련을 겪고 그 논리를 내재화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탈권위적 사회를 향한 출발점으로서 수평적 언어에 대한 모색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19. 4. 15. 05:26

배우 김윤석이 감독 김윤석이 되었다. 그 첫 작품이 <미성년>이다. 아마도 김윤석 배우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가 오랫동안 감독에 대한 꿈을 꾸어 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성년>은 반가운 영화다. 누군가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현장이니까. 나이가 들어 퇴색되고 무뎌지지 않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쁘다.

하지만 <미성년>은 그저 그렇게 배우 김윤석의 첫 데뷔 영화라는 측면에서만 반가운 것이 아니다. 모처럼 우리, 인간에 대한 '넉넉한 시선'을 풀어놓은 영화라는 측면에서 반갑다. 마치 하루 종일 격식에 맞춰 정장을 입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무릎 툭 튀어나온 낡은 츄리닝을 입고 퍼질러 앉아 기지개를 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나, 우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보는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어른의 딜레마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흔히 부모님들이 하는 말씀이다. 그 떡이 생길 어른 말씀이라는 거의 전제는 어른 말씀은 옳다라는 것이다. 어른은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성년>은 그 옳다는 어른에 대해 질문한다. 과연 그런가 라고. 

그리고 이 '옳지 않을 수도 있는 어른'에 대해 영화는 가장 흔하고도 속된 주제 '불륜'을 들고 나온다. 대원(김윤석 분)은 이 땅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아재'다. 그런데 이 '아재'에겐 비밀이 있다. 본인만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남들은 다 알아버린 비밀, 바로 미희(김소진 분)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딸 주리(김혜준 분)가 미희의 가게 주변에서 기웃거리다 미희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 분)에게 틀키고, 그 바람에 아내 영주(염정아 분)까지 알아버렸다.

아니 그건 어쩌면 타이밍의 차이일 뿐일 지도 모른다.  이미 아내와 각 방을 쓴지 2년 여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가는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대원의 바람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인 듯 보여진다. 아니 그것보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미희의 배는 어떻고. 게다가 회식 장소를 두고 오리집으로 할까요 하며 빙글거리는 직원을 보니 정말 대원을 빼고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혹' 해서는 안될 '미혹'의 나이에, '혹'하면 안되는 아내와 딸이 있는 가장의 바람인지, 불장난인지, 사랑인지는 동심원을 그리며 여파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세상에서 젤루 이쁜 딸도 알고, 아내도 알고, 미희는 아이를 '조산'하고 그 대책없는 상황에 대원은 그만 내빼버린다. 그가 '미희'와 시작했던 그 '사랑인지 바람인지'에서 고려치 않았던 결과들이다. 미희 말대로 '맘대로 되지 않는 바람'이라서 그런가, '책임'이란 단어와 동음이의어로 쓰이는 어른이 대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하다. 

이 대책없는 대원의 불장난, 그 마주쳐야 소리를 낸 당사자, 어쩌자고 남의 집 남편의 아이까지 가졌냐며 다그치는 딸에게 외려 너라도 엄마를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며 울음을 터트리는 미희. 돈만 쥐면 도박판으로 달려가는 남편 대신 열 일곱에 '책임'을 진 딸을 키우며 오리집을 하며 살아가는 미희의 삶을 들여다 보니 그녀가 뒤늦게 매달린 '사랑'이 짠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른스럽지는 않다. 

 

 

이 대책없는 두 사람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영주, 여전히 딸 주리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그 허울은 얇다. 더구나 미희의 조산 앞에 그녀의 자존심마저 약해진다. 아니 그녀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건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하나 없이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가정, 그리고 남편인지 웬수인지 모를 대원.

이렇게 <미성년> 속 어른들은 다 어쩌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른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 그 저지른 일에 대해 어쩌지 못한 채 '책임'지는 대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거나, 방임한다. 아니 '책임' 조차도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 맘'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어른'이라며 아이들을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서 저만치 밀어낸다. 즉 <미성년> 속 어른들의 상태는 바로 '어른' 그 자체의 '딜레마'다. 책임질 수도, 책임 지지지도 못할 상황에 놓여버린 어른의 삶. 그건 어쩌면 '도덕'이라는 교집합으로는 쉬이 메꿀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삶 자체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정의내린 어른이라는 깜냥 자체 미달인 '어른'들의 이야기. 이를 통해 '어른'이라는 우리의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짊어지고 사는 그 '어른'이 정말 어른맞냐고. 아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어른'이라는 성채가 허상이 아니었냐고. 

 

 
어른스러우려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인 아이들 
그리고 이렇게 어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맞은 편에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대략난감'인 어른들보다 어른스런 아이들을 내세운다. 공부의 세상 속에 밀어넣으며 아이들의 문제 조차도 해결해 주겠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기꺼이 책임감을 가지고 발을 밀어넣는 아이들. 

어찌어찌해서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딸 주리는 흔히 드라마가 설정하듯 철부지 딸의 캐릭터 대신에 어른스레 그 사실을 알게되어 충격을 받을 엄마를 걱정하고 수습하려 애쓴다. 윤아는 어떻고. 대책없는 엄마를 다그치면서도 어떻게든 그 사태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고 파탄난 가정을 봉합해보려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심지어 그 사태로 인해 등장한 '동생'을 들여다 보며 책임지려 까지 하며.

 

 

구멍난 '가족'의 틈을 메우려 애쓰는 아이들. 어른들이 방기한 책임의 세계에 자신을 기꺼이 들이미는 아이들. 그렇게 <미성년>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고정 관념, '철없고 대책없는 아이들'이란 세계에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책임지고자 하는 '어른'의 세계에 아이들은 아직 역부족이다. 아니 영화의 엔딩처럼 아이들은 어른스러우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일 뿐이다. 아니 '아이들'이기에 어른들의 그 심각한 사태에 웃을 수 있고, 엉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미성년>은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과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통해 '어른'의 경계를 해체한다. 어른됨의 버거움을 피력하고, 어른됨의 난센스를 드러내며,  애초에 우리 사회가 불문율처럼 정의한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한다. 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철딱서니 없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다. 결국 <미성년>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과 어른다운 아이 그 흐트러진 경계를 통해 이 사회가 강력하게 선을 그어 놓은 '어른'과 아이'라는 선이 어쩌면 불분명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찌질하기 한량없는 대책없는 고딩같은 대원과 아우토반 중2병같은 미희의  깜냥에,  자신의 감정조차 추스리기 힘들어 보이는 영주의 흔들림에 엄격한 학칙의 잣대를 들이대다 한참 모자란 찌질이들을 마주하듯 실소가 흘러나온다. 미희와 대원이 해맑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낡은 놀이 공원을 찾은 아이들의 미소처럼. 결국 <미성년>이 도달한 곳은 그 모자람에 대한 인정이요, 이미 늘어진 고무줄같은 어른의 세계에 대한 '관용적 이해'다. 그리고 그건 지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괴물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여유'의 틈이다. 

by meditator 2019. 4. 15. 03:38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임시 정부 100년을 맞이하여 이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임시 정부'에 대한 '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런데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리고자 하는 '임시 정부'는 제대로 '조명'되고 있을까? 혹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로서의 '임시 정부'는 몇 사람의 역사가 아닐까?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의원이 기억하고 있는 임시 정부를 거쳐간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2000 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몇몇 사람의 임시정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저 2000 여 명 중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선열들은 몇 분이나 될까? 바로 이 '기억되지 않은, 하지만 기억해야 할 독립 운동사, 독립운동가'에 대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역사의 빛 청년>는 간절하게 문제 제기를 한다. 그래서 시작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져 있지 않은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한 축이었던 '하와이 독립운동'으로 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5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려면>에서는 '조명하 의사'를 잊혀진 기억에서 떠올린다. 

 

 

일본 육군 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의거 
1928년 5월 14일 일본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대만, 구미노미야 구미요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일본 육군 대장의 환송식이 있었다. 무개차를 타고 환송 인파들 사이를 서서히 지나가던 구미노미야, 그때 인파 가운데에서 뛰쳐나온 청년 조명하가 단도로 그를 찔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만 총독은 해임이 되었고, 결국 구미노미야는 8개월 뒤 복막염으로 사망하였다. 

1905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명하 의사, 군청 서기로 근무하던 중 1926년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야간 학교를 다니며 고학을 하던 중 송학선이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하려 했던 금호문 사건, 나석주의 동양 척식회사 폭파 사건 등을 겪으며 독립 운동에 헌신하고자 마음먹었다. 이에 임시정부로 가고자 했던 조 의사, 상해로 가기 위해 대만에 들러 찻집에서 일하던 중 일본 육군 대장이 대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척살을 결심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조명하 의사는 '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한스러울 뿐이며 죽어 저승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신 채 10월 10일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했던 이순재 배우가 조명하 의사를 기리기 위해 대만을 다시 찾았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먹는다는 맛집 거리, 우리나라에서 대만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그 거리 맞은 편에 조명하 의사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대만 여행기를 다뤘던 <꽃보다 할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맛집 거리의 맞은 편에는 타이페이 형무소의 벽이 남아있다. 죽은 미군 병사의 기념비가 있어 길가던 외국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돌아가신 조명하 의사의 기록은 없다. 

 

 

기억되기 위한 조건 
그 이유를 다큐는 찾아간다. 조명하 의사에 대한 기록은 단 두 장의 사진, 의사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끝머리에 늘 태워라라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남겨지지 않은 기록, 기록으로 남겨져야 기억되는 역사에서 자신을 지워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결의는 역사의 행간 저편으로 흩어지기 십상이었다. '이대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윤봉길 의사의 편지를 받고 윤봉길 의사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안방 천장 위에 숨기고, 피란 길에도 품에서 놓지 않았던 윤봉길 의사의 동생 윤남의 씨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윤봉길 의사가 있었듯이 '기록의 소실'이 많은 독립 운동가를 오늘의 우리가 기억하기 힘든 첫 번째 이유이다. 

거기에 더해 왜곡된 기억이 독립 운동가들을 역사 저편에 묻는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 뒤 무려 한 달 만에 대만 일일신보는 조명하 의사의 의거를 다뤘다. 하지만 내용은 딴 판이었다. 모르핀 중독자, 세상을 비관하여 자살을 결심하고 충동적으로 사건을 벌였다는 식이다. 이봉창 열사의 의거를 취업이 어려웠다는 식으로 폄하했던 그 방식이다. 이러한 '의도를 가진 역사의 왜곡'의 여파는 길다. 대만 타이중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조명하 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김상호 교수는 오늘날 대만 만 역사 사전에 여전히 일본의 왜곡된 기사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통해 대만에 대한 안정적 통치와 자국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일본의 저열한 정책을 복기한다. 

 

 

재조명에 성공한 독립 운동가의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남겨진 사진은 겨우 두 장, 기록도 없이 은밀하게 활동했던 이회영 선생, 그런 이회영 선생에 대한 기록을 부인 이은숙 여사의 수기 <서간도 시종기>가 되살려 냈다. 그리고 이회영 선생을 받들었던 후배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도 더해졌다. 

그렇다면 조명하 의사에게는 후손이 없었을까? 아니 후손이 있다. 단지 저 멀리 호주 시드니에 있다.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 '이게 네 아버지의 유골이란다'는 어머님이 보여주신 유골로 만난 아버지를 우리 사회가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아들 조혁래씨는 선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8년 10월 10일 서울대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달림은 심각했다. 감사 계통 사람들에게 뇌물까지 줘야 했다. 아들이 못나서 아버지를 큰 사람을 못만들어 드렸다는 죄책감만을 짊어진 채 조혁래씨는 눈을 감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남은 가족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건가 라는 자괴감을 안고 손자는 조국을 떠났다. 

왜 똑같이 독립 운동을 하셨는데 기억되는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이 계실까? 여기엔 '시대적 변화'라는 외인도 무시할 수 없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은 수교 이전에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커우 공원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했다. 중국 정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국교가 정상화되자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세워지고 기념관이 만들어 졌다. 수교 이후 이회영 선생에게는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유공자 증서인 '혁명 열사 증서'가 수여됐다. 가족들도 몰랐는데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회영 선생이 돌아가신 여순 감옥에 안중근,  신채호 선생과 함께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을 만들어 줬다. 반면 동시에 그간 수교 상태에 있었던 대만과 단교 상태가 되어 버렸다.  대만의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가 대만을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조명하 의사는 배신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된 것이다.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조명하 의사는 주목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외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이승만과 가까운 사람들만 독립 운동가로 인정받아 국가 유공자가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좌익 계역 운동가들'이 주목받았다. 최근 모 정치인의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한 이유로 국가 유공자가 된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독립 유공자들의 인정과 등급이 달라져 왔다. 그런 가운데 아나키스트들은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다. 조명하 의사는 그 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명하 의사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조명하 의사를 대만에 있는 한국 교포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기린다. 타이페이 한국 학교에는 조명하 의사 흉상이 있다. 매년 추도식을 하고, 조명하 의사를 기리는 글짓기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조명하 의사 의거 90주년 이제서야 조명하 의사 연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 졌다. 손자 조경환씨도 참여했다. 고국에 돌아온 조경환 씨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의 유지를 뒤늦게라도 받들어 할아버지의 의거를 살아있는 역사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기록이 없어서, 아니면 기록이 왜곡돼서, 기억해줄 후손이 없어서, 혹은 있어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좌절해서, 그리고 그 기억에 시대와 정권의 변덕스런 흐름이 있어서,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의 수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제대로 된 독립 운동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임시 정부 100년 임시 공휴일제정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당당한 우리의 독립 운동사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 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이 개척하는 길은 반갑고 소중하다. 

by meditator 2019. 4. 1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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