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도 다큐가 있다고? 아니 있었다고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기존 공중파 드라마의 아성에 '신선한 기획'을 통해 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나꿔챈  tvn답게 다큐도 달랐다. 2018년 10월에서 12월까지 '미세먼지, z세대' 등 현대인들이 관심이 높은 주제에 대해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는 <시프트>가 방영되었다. 정시아, 김원준,  대도서관 등이 직접 출연하여 다큐에 대한 대중적 접근을 도왔던 이 신선한 시도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7부작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사라져도 <시프트>가 제안한 '인식의 전환'은 남았다. 

<시프트>의 막을 연 건 '미세먼지'이다. <호모더스트쿠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를 먼저 챙기는 세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가 된 슬픈 족속, 바로 미세먼지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오늘의 한국인들, 그들이 <시프트>의 첫 주인공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될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한 대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공기청정기가 7대가 되었다는 이 시대 대표적 호모더스트쿠스 정시아,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네이버 까페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미세먼지 치수를 믿지 못해 '어스널스쿨'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미세먼지 예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셀프 예보족'도 등장했다. 까페에 올라오는 '셀프 예보', 순식간에 2000 명이 조회를 한다. 심지어 어디를 가든 미세먼지 측정기를 들고 다니고, 집에서 미세먼지 지수가 0이 안되면 두려워 하는 '미세먼지 불안장애'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세먼지'에 대해 걱정을 지나 과민, 공포 등을 느끼고 사는 현대인들 이들에게 물었다. 독일처럼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자동차에 세금을 많이 매기면 어떻겠냐고, 파리처럼 자동차가 도심에 진입할 수 없도록 통행료를 높이면 어떻겠냐고, 그러자 사람들이 반문한다. 중국이 저렇게 미세먼지를 쏟아붓는데, 자동차 좀 줄인다고 미세먼지가 나아질 거 같냐고, 과연 그럴까?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오는 한에서 우리의 하늘은 깨끗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호모더스크쿠스'의 대표 정시아가 나섰다. 

그 문제라는 중국의 미세먼지 
2015년 중국이 동부연안에 소각장 227개를 세울 계획이란다. 거기다 공장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산둥 반도로 이전한단다. 안그래도 중국으로부터 오는 미세먼지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중국의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 하니 '분노'가 끓어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산둥반도 공장 대거 이전 설은 실체가 없었다. 소각장을 더 짓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부 연안에 짓는 건 아니란다. 이런 자료를 펴냈던 아주대 김순태 교수조차 중국의 미세먼지가 줄었다는 새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미세먼지로 문제가 되었던 공장들은 헐렸고, 엄격한 배출 장치 규제로 대기 질은 한결 좋았져다고.

 

 
그렇담 결국 우리를 분노케했던 실체는 없었던 건가. 아니 우리나라는 더 심각해 지는데 중국의 공기질은 좋아지고 있다니. 그렇다면 종종 그 중국에서 대거 이동해 오는 저 노란 미세먼지 위성 사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른바 '엘로우 한반도'라 알려진 중국발 미세먼지의 사진, 하지만 이에 대해 연세대 지구환경 연구소 김준 교수는 이게 미세 먼지라기 보다는 해상 안개라 정의한다. 해상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위성에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고. 물론 그 안개에 미세먼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온 것 뿐만 아니라, 서해안 제철소나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 것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가 해외에서 왔다고 관측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싶다. 도대체 중국이 우리 공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대기질을 공동연구에 돌입했다(korus-aq). 2016년 5월부터 6주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건 국내적 요인이 52%, 중국이 34%, 북한이 9%에 이른다. 이 40일의 조사 기간 동안 38일이 기준치를 넘겼고, 그 중 24일이 나쁨이었다. 고정관념과 달리,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 단 3일에 불과했다고 연구 결과는 말한다. 
 

 

같은 영향, 다른 반응-일본 
그런데 중국과 가까운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본, 그 중에서도 큐슈는 중국과 밀접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60%가 중국 탓이다. 하지만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영향도 10%나 된다. 

그런데 큐슈 사람들 반응은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냐는 반응이다. 우리나라처럼 분노하고 항의를 해야한다기 보다는, 공기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삼아 환경 개선에 대한 기술 지원이라던가, 기술 협력의 방향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 

이러한 일본의 다른 접근은 그저 국민적 정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찌기 50년전부터 미세 먼지에 대해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온 '내력'의 차이라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일찌기 산업화와 함께 도쿄의 심각한 공해를 경험한 바 있었던 일본은 미세먼지 인벤토리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에 따라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등 그에 맞는 정책을 오랫동안 실시해 왔다. 그러기에 똑같이 미세먼지의 역습을 당했지만 큐슈와 우리나라의 공기는 달랐다. 

 

 
우리는 분노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공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국제적 보상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  한중일도 그렇지만 나라와 나라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유럽에서도 이 문제는 골칫거리이자, 오래된 역사적 과제이다. 30년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럽이 산성비 논쟁에서도 알수 있듯이, 어느 한 나라만 좋아진다고 해서 산성비의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유럽은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협약(CLRTAP, 1979)를 통해 정기적 모니터링 등을 통해 공동의 과제로 해결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9. 2. 7. 16:40

다시 설이다. 며칠을 쉬고, 어디를 가고 다들 마음이 먼저 분주해지는 시간, 하지만 ,ㅅ자만 들어도 골이 지끈지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설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름 냄새가 나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전을 부쳐야 하는, 여전히 어느 집안의 며느리라는 위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며느리'들이다. 역귀성에, 명절 대신 여행이라며 트렌드가 바뀌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의 행사치레로서 명절의 전통은 강고하게 한 편에서 지탱되고 있다. '며느리 잔혹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1996년의 명절 특집급 <곰탕>을 다시 보며 며느리로서의 삶에 대해 짚어보자. 

 

 

1996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다. 설 등의 특집 드라마가 융성하던 시절, sbs는 <울밑에 선 봉선화>, <노란 손수건>, <어여뿐 당신> 등 전통과 여성의 갈등을 작품으로 풀어온 박정란 작가와 <천국의 계단>,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장수 피디가 의기투합하여 2부작의 <곰탕>을 설 특집극으로 만들었다. 김혜수를 타이틀 롤으로 하여, 김용림, 류현경, 류시원, 한재석, 정우성 등 당시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출연했던 이 드라마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뉴욕 페스티벌 tv 부문 특별상, 휴스톤 국제 영화제 tv 부문 금상을 받으며 '한국적 여인상'을 대내외에 알렸다. 

열 세 살의 민며느리 
시작은 1919년 고종이 돌아가시고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불붙던 시절 서울, 양반이라지만 식구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살림살이, 이제 열 세살이 된 딸인 순녀는 충청도 부잣집이라는 정씨 댁에 쌀 삼백 섬에 '민며느리(빈곤한 가정의 딸로서 대체로 10∼12세 때 데리고 와서 양육하여 혼기가 되면 며느리로 삼는 제도)'로 들어가게 된다. 

 

 

가마를 타고 며칠을 걸려 도착한 시댁, 목욕 재계하고 어른들께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민며느리'인 순녀가 한 일은 이 집에서 남자들을 먹이기 위해 끊이지 않고 만든다는 곰탕 재료를 손질하는 일, 한 겨울 뒷마당에서 찬물에 손을 담가 소뼈며 부속물을 다듬는 것이었다. 

겨우 곰탕꺼리를 마련해 가마솥에 끓이며 행랑댁과 함께 어두운 부엌 마루에서 바가지에 담긴 밥을 먹던 며느리 순녀, 들이닥친 시어머니는 그녀의 옷을 벗겨 몸을 검사한다. 손이 귀한 집에 겨우 아들 하나를 생산하여 내내 집안 어른들께 혈연에 대한 부담을 짊어졌던 시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쌓인 한을 고스란히 이제 겨우 초경을 마친 순녀의 몸에 토해낸다. 아들을 많이 낳아야 한다며. 

 

 

남편이 없어도 며느리 
그렇게 3년을 지냈다. 드디어 혼례식을 치뤘다. 하지만 첫 날 밤을 치루자마다 정씨 집안 외동 아들인 남편 인성은 서울로 유학을 떠난다. 고향이 서울인 순녀를 놔두고. 

순녀는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점차 부풀어 오르는 배를 부여안고 여전히 곰탕을 끓이랴 시부모를 봉양하랴 손이 마를 날없이 며느리의 역할을 다하며 세월을 보낸다. 드디어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온 남편은 만삭의 아내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도 않은 채 무거운 가방을 들리고, 보다 못한 남편의 친구가 만삭의 몸으로 낑낑대던 그녀의 가방을 받는다.  그래도 순녀는 남편이 돌아와 설레고 반가웠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남편만이 아니다. 악극단의 가수 출신인 채봉이라는 여자도 남편을 찾아오고 심지어 그녀가 남편과 한 방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결국 그런 시련 등으로 인해 그토록 기다리며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아이를 떠나보내고, 다시 남편도 서울로 떠나버린다. 

사업을 한다며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 심지어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렸고, 거기서 아이까지 낳았다. 고향길로 가며 이 동네 땅이 다 자기네 꺼라며 자랑하던 그 정씨 일가의 땅은 그 '사업'의 핑계로, 해방과 전쟁, 격동의 시대 속에 사라져 버린다.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그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순녀, 남편도, 자식도 없이 빈 손으로 그곳을 떠난다. 

 

 

조강지처라는 굴레 혹은 숙명
호구지책을 하자니, 시집살이 내내 끊임없이 끓여대던 곰탕 밖에 없었다. 곰탕 집 열 돈이라도 보태달라 만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자식 과외 시킬 돈도 없다며 순녀의 입을 막는다. 어렵사리 겨우 천막을 쳐서 차린 곰탕 집,  그녀가 견뎌온 시련의 세월을 배신한 남편과 달리, 그 시간의 맛에 세상 사람들이 화답한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의 곁에 남은 건 남편을 찾아 고향집에 온 풍각쟁이 채봉뿐. 그래도 여전히 인성의 아내라는 호적에 새겨진 글씨는 그녀에게 조강지처라는 자부심인지 굴레인지를 남기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곰탕을 끓이며 살아온 세월 어느덧 곰탕집이 40주년이 되고, 늙고 병든 남편이 돌아온다. '며느리'로 살아온 인생이 거둔 뒤늦은 결실인지 또 다른 짐인지.  

 

 
민며느리로 들어와 남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서의 삶을 견디고 버텨낸 순녀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끓여야 제대로 된 맛이 나는 음식인 <곰탕>에 빗대어 그려낸  이 드라마는 류현경, 김혜수, 김용림 연배가 다른 세 배우를 통해  '전통적 여성상'을 그 시대의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설명한다. 

질곡의 가부장제, 그 희생자이자 헌신적 실천자들 
쌀 삼백 섬에 팔린 '매혼'의 대상, 한 집안의 며느리라지만 일하는 식솔이나, 대를 잇는 수단, 심지어 개명의 물이 든 남편마저 외면한 여자 아닌 여자, 하지만 순녀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바람이 나다 못해 살림을 차리고 그 살림 차린 여자에게서 아들을 얻은 남편임에도 오래도록  '조강지처'라는 허울, 아니 그녀를 유일하게 증명할 그 '허명'에 매달린다.  심지어 평생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 그녀는, 시어머니가 겨우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포한이 되듯이, 외려 아들을 낳아 대를 잇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다 늙고 병들어 돌아와 그제서야 너무 미안하다는 남편에게 그녀는 뜻밖에도 미안하단다. 평생 미워해서, 때로는 남편보다 남편의 친구를 더 그리워해서. 

드라마는 일제, 해방, 전쟁 등 격변기에 전통적 가족 제도의 굴레 속에서도 곰탕처럼 뭉근하게 삶의 정취를 피어낸 순녀의 삶을 통해 전통 여성상의 수난과 인간 승리를 그려내려 했겠지만, 2019년에 다시 본 순녀의 인생은 척박하기가 그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2019년에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다하지만 불과 한 세대 전의 삶이다. 남자들로 대를 이어온 가부장제의 가족 제도가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사회에서 나고 자라고 그 가족 제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에 그리 무슨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자신을 놓치지 않고 곰탕처럼 견디고 뭉그러져 그 끝에서 도달한 경지는 그 누구도 쉽게 예단 할 수 없는 한 시대의 표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공감할 수 없다지만, 과연 순녀의 삶에서 2019년은 멀리 떨어져 나왔을까? 호칭도 다 뜯어 고친다 하지만 주인공이 시댁의 전통에 따라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태로 보면 외양을 달라졌을 지언정 여전히 가부장제적 가족 제도의 뿌리는 곰탕보다 더 뭉근하게 우리 삶의 근저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번 설에 여전히 전부칠 걱정을 하는 수많은 며느리들의 사례에서 처럼. 

아이러니한 건, 드라마 <곰탕>에서 처럼, 시집살이를 하던 순녀가 나이가 들어 조강지처의 자리를 고집하고, 아들을 하나 밖에 못낳은 시어머니가 정작 순녀의 몸을 훑으며 아들낳기를 종요하는 것처럼, 정작 가부장제의 실천자들이 뜻밖에도 그 희생 당사자인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편을 거두자 비로소 자신의 임무를 다한 듯 보이는 순녀의 일생,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어느덧 그 체제의 희생자에서 체제의 가장 강력한 추종자가 되어 그 체제의 재생산에 헌신적이 되어가는 여성들, 그것이 바로 드라마 속에서도 보여지는 질곡의 고부 관계, 혹은 가족 관계의 딜레마다. 즉, 가부장제는 '남자'의 것이 아니라, 결국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짓는 사회적 체제였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다. 

하지만 그 질곡조차도 사실은 '역사적'이다.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던 가부장제가 사실은 신사임당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 모계적 전통이 강했던 조선에서 유교주의를 통치 이념이 체체내화 되기 시작한 중기 이후에야 어렵사리 정착되었듯이, 헤어날 길 없는 명절의 악순환은 어쩌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족 관계의 굴레보다는  차라리 비혼을 택하겠다는 당찬 선언으로 조만간 자체 해산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래된 전설같은 곰탕을 끓이는 순녀의 이야기는 절정이라 쓰고, 결말의 첫 장을 쓸 지도 모를 2019년 설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by meditator 2019. 2. 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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