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돌리다 어라? 했다, <도깨비>를 재방송해주나?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꽤 돼지 않을까? <진심이 닿다>말이다. <도깨비>에서 불멸의 비극적 사랑으로 인기를 끌었던 저승사자의 이동욱과 써니의 유인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들 것이다. 아니, 애초에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의 애절했던 사랑에 마음이 빼았겼던 사람들이 그 저승이와 써니가 출연한다 해서 <진심이 닿다>에 우선 채널을 고정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굳이 그런 관심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진심이 닿다> 속 이동욱이 분한 권정록은 변호사지만, 색깔만 달라졌을 뿐 <도깨비> 속 예의 롱코트를 '착장'한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했던 저승이의 표정도 그대로다. 유인나라고 다를까? 한때는 정치적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은 황후였지만, 현세의 써니가 자신의 무기로 삼았던 그 '철없음'은 이제 <진심이 닿다> 속 한류 스타인 오윤서에겐 성격으로 드러난다. 굳이 다르기 보다는 같아서 보게 만들고 싶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진심이 닿다> , 그래서 더 이 드라마의 진심이 의심스럽다. 

<진심이 닿다> 그리고 <도깨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랑하는 여인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던 비극적 사랑,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해피엔딩을 빌었다. 드라마의 마지막 여배우와 강력계 형사로 환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한번 같이 호흡을 맞춘 두 남녀 배우가 다시 만나기 힘든 드라마계에서 이동욱과 유인나의 만남은 그러려니할 수 있었다.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환생이라도 한 듯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오마주'한 듯 해도 거기까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니 <도깨비>말고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2018년 중반기 tvn의 화제작이었던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다. 물론 두 작품의 배경은 다르다. 부회장과 비서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변호사와 비서의 <진심이 닿다>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특별한 서사보다는 두 남녀 배우의 이른바 '케미'에 전적으로 의존한 작품이라는 것과, 츤데레 남자 주인공에, 발랄하고 자기 주도적인 원맨쇼에 가까운 캐릭터의 여주인공의 조화라는 점, 거기에 두 주인공과 호흡할 다채로운 캐릭터의 주변 조연 캐릭터가 포진하여 이들과의 시트콤에 가까운 설정 등으로 극을 채워간다는 점에서 <진심이 닿다>는 어쩔 수 없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을 떠올리게 한다.

<김비서>가 서사적 전개를 차치하고 두 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의 놀라운 캐미로 8%를 넘어선 시청률로 tvn의 효자로 등극했듯이, <진심이 닿다>는 이미 <도깨비>를 통해 화제성이 된 두 주인공 이동욱과 유인나의 캐스팅을 통해 그런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연하고자 한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진심이 닿다>로 온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는 아직까지는 전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외려, 전작에서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두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도깨비> 속 써니가 '철없음'을 혈혈단신 천애고아로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로 장착했다면, <진심이 닿다> 속 오윤서는 본의 아닌 사건에 연루되어 숙고의 기간을 가진 한류 스타임에도 그냥 철이 없다.  나름 드라마는 '장기'라 생각하며 한류 스타 오윤서를 설명하는 씬으로 각종 씨에프의 오윤서 버전을 빈번하게 삽입하는데, 그 자체가 보는 시청자들을 인내심에 빠뜨리게 한다. 아니 그것조차도 오윤서의 애교라 친다쳐도, 드라마는 2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오윤서의 원맨쇼와 그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벌여놓으며 조급한 시청자들의 손을 자꾸 리모컨으로 향하게 한다. 

 

 

상투적인, 너무도 상투적인 
츤데레 남주와 철없는 여주의 만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트콤과 같은 배경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2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해프닝' 이상 두 주인공의 '진심'을 제대로 드러내 주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철없음을 넘어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오글거리는 설정들을 참고 참아 2회 중반 쯤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철없음이 써니의 철없음처럼 거친 연예계 생활을 버텨낸 나름의 무기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짜고짜 냉랭함을 넘어 싸가지 없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갑자기 호의적 버전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이 닿다>를 보며 시청자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건 이미 전작에서 익숙한 두 남녀 주인공을 차치하고서라도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상투성' 때문이다.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 철없는 거 같지만 알고 보면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에, 남자의 첫사랑은 똑똑하고 당찬 걸크러쉬 여자 검사이다. 여검사 유여름을 설명하는 첫 씬, 검사들 회의 장면 당연히 남자 검사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 여성에게 성 편견에 사로잡힌 예단을 하고, 정의로운 여검사는 그런 남자 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은 이제 여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되는가 싶다. 

그렇게 주요 캐릭터의 설정과 함께 오윤서의 소속사 대표는 입으로는 오윤서에 대한 정을 읊어대지만 정작 손해는 절대 감수하지 않는 이해타산적인 인물이요, 그런 소속사 대표의 부탁으로 오윤서를 위장 취업시켜준 로펌 대표는 알고보니 오윤서의 열렬한 팬으로 불철주야 오윤서를 향한 '덕심'에 불타오른다. 여자만 보면 매력을 흘리지만 알고보면 마마보인 이혼 전문 변호사에, 극소심한 듯하지만 속내를 숨길 수 없는 변호사에, 능력자 터줏대감 비서와 그를 흠모하는 깡패같은 사무장이라니. 이준혁, 오정세, 심형탁, 장소연, 박경혜, 박지환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로 커버되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이젠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보니, 이들과 오윤서가 벌이는 해프닝들이 극의 활기가 되기 보다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보았던 시트콤의 재방송을 보는 듯하다. 

 

 

결국 2018년의 인기작이었던 웹툰 원작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2019년 <도깨비>의 두 주인공을 소환하여 다양한 조연진들의 포진시켜 다시 한번 비서 로코의 그 영광을 재연하려 했지만, 2회에 이미 상승세가 꺽여버린 <진심이 닿다>가 보여줄 진심의 길은 험란하기만 하다. (1회 4.736% -> 2회 4.583%)

무엇보다 이미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배우들의 호흡에 힘입어 인기가 있었지만 웹툰 원작 서사의 부실함을 지적받았던 바, 그러한 비판에 대한 개선없이  인기있는 컨셉의 무분별한 자기 복제가 <진심이 닿다>의 부진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로 호평을 받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로 인기를 얻은 박준화 연출의 차기작이기에 더욱 아쉽다. 

특히 케이블, 종편의 가세로 드라마 제작 편수의 폭발적 증가와 그를 감당할 질좋은 작품들이 양산이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2014년 <미생> 이래 웹툰은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콘텐츠 제공처가 되어왔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로코' 버전의 웹툰의 반복적 드라마화는 결국 <계룡선녀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등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진심이 닿다> 역시 그런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진심이 닿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드라마와 그를 따르지 못하는 제작 퀄리티 혹은 관습적인 제작 방식 등의 문제로 드라마계 전체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by meditator 2019. 2. 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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