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철로 만든 길,  '철도'를 놓은 것이다. '근대' 문물의 빼어난 상징 철도, 하지만 그 '근대'의 길을 통해 '제국주의'는 달렸다. 조선을 관통한 철도는 '만철'(만주 철도)로 뻗어나가 대륙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실어날랐다. 

지난 5월 11부터 방영한 <5원소, 문명의 기원> 5부작은 물, 불, 흙, 철, 나무 다섯가지 물질을 통해 인류 문명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양과 서양, 오늘날과 과거를 종횡무진하며 물질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중 4부는 '철'의 역사이다. 다큐는 정의한다. 인류는 여전히 '철기시대'라고. 

 

 

정복과 투쟁의 도구, 철 
서기 43년 로마는 영국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350년간 영국을 점령하고 정복해 나갔던 로마, 하지만 로마의 정복에도 끝은 있었다. 우리가 미술 시간에 만난 그 '아그리파 장군'은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 스코틀랜드 하드리아누스 빙벽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20세기의 발굴단은 당시의 인치투털 요새 구덩이에서 수레와 함께 약 100만 개의 철못을 발굴했다. 무거워서 차마 가지고 후퇴할 수 없었던, 하지만 적에게 '철'을 넘길 수 없었던 로마군은 '철'을 숨겼다. 

벨기에 브뤼셀에 아토미움은 철의 분자구조를 1650억배로 확대시킨 건축물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의 분자구조를 알았다. 하지만 전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매우 민주적인 금속 '철광석'을 인류는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강인한 금속, 인류의 역사를 철을 활용하기 위한 실험와 도전의 역사였다. 또한 철을 차지하기 위해, 철을 가지고 싸웠던 역사이기도 했다. 

철을 향한 그 비밀의 문은 우주에서 비처럼 내렸다. 대기권을 뚫고 철, 니켈의 합금 '운철'이 쏟아져 내렸다. 지구 상의 철이 '산소'로 인해 산화된 철광석의 존재로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대기권을 뚫고 '환원' 과정을 거친 운철은 '철기 시대' 이전 양질의 철을 얻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철은 투탕카멘의 단검처럼 '신성한 존재'의 것이 되었다. 

기원전 12,3세기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은  철을 두드려 '강철'을 만들 줄 알게되었다. 철기를 녹일 줄 알게 된 인류는 무엇을 했을까? 이것으로 바퀴살을 만들고 전차를 만들었고,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 이 강력한 '철'에 근거해 탄생한 국가는 무려 500년 동안 전쟁과 무역을 통해 그 영향력을 뻗쳐 나갔다. 

 

 

하지만 '철'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산화', 부식되고 녹이 스는 것이다. 그 '단점'을 해결한 건 인도 문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의 제철 기술을 전수받은 인도였다. 철을 흙으로 만든 도가니에 녹여 두드려 만드는 당시로서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우츠 강철'이 만들어 졌고, 인도 최대의 수출품이 되어 7세기의 인도양을 지배했다. 우리가 아는 신밧드의 모험은 그 교역이 만들어 낸 문화적 상상력이다. 

수출된 인도의 강철은 무엇이 되었을까? 시리아로 넘어간 우츠 강철은 아름다운 물결 무늬를 띤 다마스커스 검이 되었다. 내려쳤을 때도 깨지지 않고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잘라낼 수 있는 예리한 검은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전승 무기가 되었다. 

철의 역사는 이처럼 전쟁의 역사이다. 더 강력한 철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는 단단한 무쇠인 생철과 쉽게 구부려지는 연철을 합친 앞선 기술의 칼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볏짚을 철 속에 섞어 접고 때리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본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이런 칼은 어떨까? 대만의 전통 칼 제작에서는  무연고 시신의 뼈를 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의 뼈에 있는 '인' 성분이 철의 강도는 높인다는 중국 전통의 제작 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런 갖가지 전통적 제작 방식은 모두 화학도, 현미경도 없던 시절 더 강한, 더 유연한 철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 그 결과물들이다. 

발견과 개척의 선봉, 철 
기원전 3000년 경 터키에서 시작된 제철 기술은 세계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중세의 갑옷과 전투씬은 철이 바꿔놓은 풍경이었다. 철은 무기만 되었을까?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하루와 또 다른 하루 사이 '불가지'의 세계 속에서 인류는 24시간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다. 또한 17세기 바다로 향한 선원들은 나침반 만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보다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1714년 영국 의회는 상금 2만 파운드를 내걸고 정확한 경도 측정 도구를 공모했다. 뉴턴조차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은 불가능하다'라고 장담하던 시대,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목수이자 시계공이었던 존 해리슨이 철제 스프링을 철판에 감은 시계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시계, 그 철판에 감은 그 철제 스프링이 없었다면 근대의 발견은 존재할 수 없었다. 

 

 

또한 산업 혁명의 견인차가 된 철로 만든 보일러는 어떤가? 철로 만들어진 선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는? '석탄'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꾼 1차 산업 혁명의 '견인차'는 '철'이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철로를 깔 수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혁신'이 될 수 없었다. 

인류의 발전은 '철'로 만든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철은 문명의 도구였고, 다른 이름으로 '전쟁의 도구'였다. ebs 다큐 프라임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성격을 규명한다. 특히, 4부 철은 인류 발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전세계 그 어느 곳에나 존재했던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되었다. 철로 인해 세계는 연결되고 문명은 뻗어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확장과 발전의 결과물은 평화롭지도 호혜적이지도 않았다.  '철'의 문명 위에 서있는 오늘, 과연 이제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나갈 것인가. 


by meditator 2022. 6. 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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