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인간의 몸으로, 솔선수범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 사랑의 현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날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는 크리스마스치고 경기가 예년만 못하다며, 덜 흥청거리는 인파를 걱정할 지언정. tv도 마찬가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어수선함을 보이되,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의 특별함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라디오 스타> 박준형의 말처럼, 최고의 'holiday'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성탄 특집 다큐 한편이 찾아왔다. <천상의 엄마>가 그것이다. 하늘이 보내 준 엄마를 기록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무려,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큐가 시작되고, 대 여섯살이나 될까 하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놀러 나간다. 그들을 인솔하는 건 초로의 수녀님 한 분, 아이들은 서로서로 수녀님에게 매미를 잡아달라, 물놀이를 해달라 며 매달린다. 그런데, 이 아이들, 수녀님에게, '엄마'라 부른다. 왜 '엄마'라고 부르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머리에 쓴 두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머리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린 초로의 수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웃는다.  할머니라 불러도 무방할 나이에, 아이들은, 그래도 자신들을 '엄마'처럼 돌보아 주는 수녀님을 엄마라 부른다. 그리고 수녀님도 어쩐지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 불러주지 않고, 수녀님이라 부르면 섭섭하시단다. 

부산시 암남동 산자락에 자리한 마리아 수녀회, 이곳엔 80여명의 엄마와, 그 엄마들이 키우는 600명의 아이들이 있다. 생후 1개월에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의 18살까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수녀님을 엄마 삼아 이곳에서 자란다. 6.25 전쟁 후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미국인 알로이시오 신부가 만든 이곳이, 2014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

▲ KBS 1TV <천상의 엄마>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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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에서 수녀님들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영, 유아반, 초등반, 중고등반, 각가 다른 생활관에는 수녀 엄마들은 적게는 대, 여섯명에서 많게는 열 댓 명까지의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뒹구는 방 한 편, 문을 열면, 이층 침대 하나로 가득한 골방이 나온다. 침대 이층에는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으로 가득찬, 그 아래 겨우 몸 하나 누일 공간이 남은 곳 이곳이, 아이들의 엄마 노릇에 몸이 부대끼면 잠시 들어와 몸을 누일 엄마 수녀님만의 공간이다. 벽에 걸린 몇 벌의 수녀복, 그것이 수녀님의 전재산인 이곳이, 수녀님은 편하다며 웃는다. 

엄마 수녀님들의 일상도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라도 좋은 음식 한 첨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마음도,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아이가 아프면 수녀복의 권위건 뭐건 다 내팽개치고 대뜸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는 것도, 그저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녀님들은 늘 진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안쓰럽다. 초로의 몸이 닳도록 아이들에게 스킨 쉽을 해줘도 열 댓명의 아이들에게 충만한 모정을 채워줄 수 없는 부족함에, 청소년기의 제 멋대로인 아이에게 한 잔소리가 행여나 마음의 생채기를 더할까 노심초사한다. 심지어, 이제는 다 커서 자식을 데리고 온 아이에게, 뒤늦게 서른 몇 명의 엄마로 살던 파릇파릇한 청춘의 멋모르던 엄마 시절의 잘못을 되새긴다. 그래도 품 안의 자식이라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둘 수 있어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진짜 혼자가 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말끝을 맺지 못한다. 

그렇게 해도 해도 다해지지 않는 '엄마'의 길을 지탱해 주는 건 바로 수녀님들의 신앙이요, '기도'이다. 그 바쁜 '엄마'의 일상 속에서도 빠짐없이 채워지는 하루 세 시간의 기도는, 그녀들이 '엄마'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근원이요, '엄마'로서 자신을 반성하며 채근하는 시간이요, '엄마'로서의 소명을 주신데 대한 감사의 시간이다. 아이들 걱정에 번거로운 생각에, 혹은 피로한 몸을 이기지 못하는 졸음에, 왜 자신이 '기도'에 온전히 충실핮 못할까 반성하면서도, '엄마' 수녀들을 버텨주는 건, 역시 온전히 '하느님'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도'이다. 

이곳에 있을 때는 착한 딸이었던, 그리고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아이는, 오랜만에 '엄마'를 찾아와, 늙은 엄마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다. 엄마로 사는 수녀님의 삶이 너무 고되다고. 
하지만, 이제 '엄마' 노릇도 힘에 겨워 손을 놓고, '경비'를 하며 소일하는 걸음마저 절뚝거리는 늙은 '엄마' 수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예외다. 그건, '고생' 이 아니라, 삶이라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그걸 고생이라고 어디 생각하냐고. 평생을 아이를 돌보다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은 수녀님은 반문한다. 내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냐고. 사진 속의 꽃같았던 아가씨였던 초로의 엄마는, 내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의 엄마로 살수 있었던 '소명'을 주신 것에 새삼 감사한다. 
다큐의 마지막, 한때 이곳에서 엄마의 자식 중 한 명이었던 아이가, 이제 엄마가 되겠다며 서원을 한다. 엄마가 되어 이곳으로 돌아온 아이를 박수를 치며 반기는 수녀님들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그 고되고 보람찬 삶에 들어온 아이에,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소회다.

'불경기'라도, 어떻게 하든, 영화 한 편이라도 보며, '놀아야' 하는 '크리스마스', 우리가 잊고 사는, 이타적 사랑에 대해 <천상의 엄마>는 되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엄마 수녀들의 조건없는 사랑에, 이기적 사랑조차 반추해 보게 만든다. 진짜 크리스마스는 여기에 있다. 


by meditator 2014. 12. 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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