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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2 <한식 연대기 1부 정치의 맛 > 정치가 탄생시킨 '시대의 맛'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시작해서 1947년 국영 서울 방송국으로 출범한 kbs의 아카이빙(특정 기간 동안 필요한 기록을 파일로 저장 매체에 보관해 두는 일.)은 그 자체로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kbs는 이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눈부신 한강의 기적, 88올림픽의 성공, IMF 위기 극복 등 KBS의 풍부한 아카이브를 발판으로 격동의 근현대 120년 역사 안에서 한식이 정치, 경제, 사회와 어떤 상관관계로 변화 발전하는지 밀도 있게 짚'어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부작 <한식 연대기>이다.
그 중 9월 10일 방영된 1부는 '정치의 맛'이다. 올 5월 종영된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으로 분했던 주상욱 배우가 프리젠터로 등장한 1부에는 한국한 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의 설명에 기대어 우리 현대 정치사와 '한식'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정치와 한식의 실례를 증명하기 위해 홍준표, 박지원, 심상정 세 사람의 정치인이 각각 자신이 즐기는 '한식'을 통해 정치 속 한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가 만든 한식
정치와 한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1890년 조선 시대의 밥상 위에는 이른바 '고봉밥'이 올려있다. 고봉 가득 흰 쌀밥에 고깃국을 푸짐한 한 끼 식사의 표본으로 삼았던 조상들답게 사진 속 남자는 왜소하지만 그가 먹을 밥상의 밥은 무려 640g, '거인'의 밥그릇처럼 엄청나다.
그렇게 '밥'을 즐기던 우리 조상들, 그런데 이 '고봉밥'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정치'이다. 1973년의 표준 식단제는 지금 우리가 식당에서 만나는 고봉밥의 1/3 정도 밖에 안되는 공기밥을 표준으로 정했다. 심지어 돌솥밥도 안됐다. 이제는 우리 삶에 너무도 당연하게 스며든 '한식'의 요소요소들에 얼마나 많은 정치가 영향력을 끼쳤는지, <한식 연대기 - 1부 정치의 맛>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 그는 취임 선서에서 '국민을 굶기지 않고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던 시대는 홍준표 시장조차 '가난ㄴ이 참 고통스러웠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1963년 우리 국민 소득이 100달러,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대였다.
박정희 정부는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공급된 미 잉여 농산물 원조, 원조받은 밀가루가 있으니 쌀을 적게 먹는다면 항시적인 쌀부족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6,70년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에 든 '국수', 그게 바로 '혼분식'의 결과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던 오래된 곰탕집은 혼분식 시대의 물결을 넘어서고자 '만두'를 빚어 팔았고, 하루 몇 천개 씩 만두를 만들던 기억 때문에 84세의 주인 김희영 씨는 이제는 만두를 먹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짜장면도 올랐어', 우리는 물가가 오르면 그 기준을 짜장면에서 찾는다. 짜장면이 그 기준이 된 것도 바로 '혼분식 장려 운동'때이다. 70년대 60원쯤 하던 짜장면, 하지만 전국 각 짜장면 가게마다 정해진 값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민 식단'의 지표로 짜장면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이 즐겨먹는 짬뽕, 탕수육 등 가격을 정부가 정했다. 값싼 짜장면 가격 통제로 인해 전국에 짜장면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2300여 점포, 하루 600만 그릇을 먹는 여전히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서민 식단'의 대표 주자로 여전히 짜장면은 자리매김한다. 어디 짜장면 뿐일까,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 우리가 즐겨먹는 '밀가루 음식'들이 '서민 음식'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시절이다.
이제는 사라진 '통일벼',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일반벼보다 2배 반이나 높은 통일벼가 1972년 보급되기 시작하며 1976년 드디어 쌀 자급화에 성공하게 되며 '한식의 역사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박정희의 시대는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며 들어선 전두환 정권,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울분을 달래려 했다. 또한 1980년 컬러 방송의 시작으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요리'가 tv프로그램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1년 여의도 에서 '국풍 81'이란 이름의 대규모 문화 예술 축제를 개최하여 시선을 돌리고자 했다. 100만 명이 다녀간 이 축제를 통해 지역 음식이던 전주 비빔밥을 비롯하여 충무 김밥, 춘천 막국수, 순창 고추장 등이 전국적인 '메뉴'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 호황을 발판으로 한 금기된 욕망이 마음껏 분출되는 한편에서 언론 자유는 탄압되었고 노동 운동은 암흑기를 거치고 있었다. 1964년 국가 산업 단지로 등장한 구로 공단에서는 70년대 후반 이미 11만영의 노동자들이 '때우기' 식의 짜디짠 간의 '짠밥'을 먹으며 우리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이들과 학생운동의 성장은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다. 더는 먹고 살고 보자의 슬로건만으로는 국민들을 '탄압'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성장'과 함께 '분배'가 새로운 시대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또한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적 안정은 밥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1985년 향토 음식이던 수원 왕갈비가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왕갈비를 비롯하여, 삼겹살, 돼지 갈비, LA 갈비 등 밥상의 육식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 불과 5kg이던 연간 육식 소비량은 2000년 30kg을 넘어 이제 52kg으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고기'를 즐기게 되는 식습관의 변화를 선도하는 ** 가든들이 등장했다. 삭막한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식당에서나마 여유를 즐기며 고기를 뜯고 싶어했다. 고기를 자르는 '가위'가 흉측하다던 외국인들, 하지만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한식 요리의 '가위'는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우리 한식의 위상은 국가적, 문화적 위상과 함께 올라갔다.
정치인, 정치인의 음식들
다큐는 이렇게 정치와 함께 변화를 겪은 '한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정치인들의 '음식'을 살핀다. 정치철만 되면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은 시장으로 달려간다. 민심의 바로미터가 시장이기에 서민 음식을 잘 먹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얼마나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잘 할 것인가를 증명한다.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 '정치국밥'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음식'을 통해 그들의 정치를 살펴볼만한 정치인들도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YS 김영상 대통령과 DJ 김대중 대통령이다.
1993년 문민정부를 이끈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서민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소탈한 한끼 식사의 상징 칼국수는 YS가 이끌고자 한 개혁 정치의 코드로 등장한다. 또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의 시절 대통령이 '솔선수범' 우리밀 칼국수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을 표상화'시켜냈다.
그런가 하면 극심한 지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된 DJ는 홍어를 즐겨 먹으며 호남의 맛을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대통령 덕에 인기를 얻은 홍어는 전라도 만으로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남미, 칠레, 아르헨티나 홍어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1993년 우르과이 라운드를 기점으로 한 쌀 시장 개방에서 부터 시작된 다양한 식자재 시장의 개방이 있다.
정치인이 즐겨먹는 음식만이 아니다. 국빈 만찬 등 국가적인 '한식'의 밥상은 '독도 새우'라던가, '미국산 소고기' 등에서 보여지듯이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된다. 서로 다른 정치적 색을 가진 정치인들을 모아놓고 먹는 '비빔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즐겨먹게 된 '갈비'류, 식당에서 만나는 '스테인레스 밥그릇', 그리고 무심코선택한 짜장면을 비롯한 칼국수, 수제비 등의 밀가루 음식들, <한식 연대기- 1부 정치의 맛>은 그런 익숙한 한식들이 외람되게도 우리 현대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위정자는 백성의 음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사기'의 구절을 내세운 아카이빙 다큐, 과연 우리가 지나온 현대사는 저 사기의 문구를 '실현'한 시절이었을까? '아카이빙'에 대한 회고와 감상을 넘어, 우리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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