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1월 16일 방영 예정이었던 <삼시 세끼> 어촌편은 장근석 소속사의 탈세와 관련된 구설수로 인해, 한 주 방영이 미뤄졌다. 과연 애초에 홍보를 해왔듯이,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이 세 사람의 어촌편 <삼시 세끼>가 단 한 주 만에, 물의를 일으켜 스스로 물러난 장근석을 드러내고, 얼마나 완결성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일찌기 <1박2일>에서 부터 시작하여, tvn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까지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나영석 피디의 위기가 지레 점쳐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1월 23일 첫 방송을 선보인 <삼시 세끼> 어촌편은 과연 이 프로그램에 장근석이 합류했었는가를 기억하기 조차 힘들게, 차승원, 유해진의 <삼시세끼>어촌편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그에 앞서 방영되었던, 이서진, 옥택연의 <삼시 세끼> 정선편과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삼시세끼>를 빚어 냄으로써, 나영석의 위기가 아니라, 능력자 나영석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1박2일>이 융성하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을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미션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도했으나 <1박2일> 외에 그 어떤 프로그램도 생존하지 못했다. <꽃보다> 시리즈가 트렌드가 되자, 이번에는 연예인들을 데리고, 전 세계로 떠나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역시나 그 중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삼시 세끼>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생활을 예능화하자, 또 여기저기서 배우 출신의 연예인들을 역시나 시골 마을로 끌어들이지만,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후속 주자의 불운을 탓하기에 앞서, 다른 프로그램들과 나영석 피디가 만든 프로그램들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엑스포츠 뉴스

나영석 피디가 만든, 아니 정확하게는, 나영석 피디 사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영석 피디, 이우정 작가,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 세끼> 어촌편을 함께 하는 신효정 피디 등, 나영석 피디와 함께 하는 일군의 무리들을 나영석 사단이라 지칭한다면, 이들 나영석 사단의 특징은, 패러다임를 새롭게 창출해 내고 있다.

일찌기 <1박2일>을 통해, 야생 버라이어티의 새 장을 열었다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그저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에 할배와 누나, 그리고 중년들을 초빙함으로써, 전 세대가 공유하는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 <꽃보다> 시리즈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서진을 활용해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처럼 시작된 <삼시 세끼>를 통해, 슬로우 라이프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능의 트렌드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 늘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했던 전작들이, 다음 작품에서 버전업, 버전 업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1박2일>은 야생의 조건에서 강고한 미션을 주어, 리얼리티의 극한을 밀어부쳤다. 까나리 액젓까지 시음하는 열악한 조건에서, 출연하는 멤버 각자의 성격에 따라, 캐릭터가 부여되었고, 그 캐릭터들의 이합집산, 이것이 <1박2일>을 전국민적 예능으로 끌어올린 강력한 견인차가 되었다.

이렇게, 야생이라는 조건과 거기에 주어지는 미션이라는 성격은, <삼시 세끼>까지 이어지지만, 그 강도와 조건은 달라졌다. 극한의 조건, 강력한 미션이라는 상황은 둔화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이서진, 옥택연이라는 인물의 정서와 캐릭터가 프로그램을 이끌고 간다. <1박2일>때도 그저 다섯 사내들이 청소년들처럼 청소년들처럼 잠자리와 먹거리에 목숨을 걸듯이 게임을 하는 그 과정을 보기 위해 매주 채널을 고정시켰다면, 그것이 <삼시 세끼>에 와서는, 오히려,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정선 시골 마을이라는 조건도, 거기서 매 끼닌 앞의 텃밭에서 나는 먹거리와 정선에서 장을 봐온 것들만으로 세 끼를 해먹다는 미션들이, 온전히 '그딴 걸 왜해?'하면서, 도시의 삶을 칭송하는, 하지만, 결국은 기왕에 하는 거 꼼꼼하게 해내고야 마는, 이서진이라는 인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었다.

 

슬로우 라이프는 이미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도한 <인간의 조건>에서 선을 보인 것들이다. 나영석 피디가 사라진 <인간의 조건>이, 인간적 삶을 위한 다양한 미션들로 진화한 반면, tvn으로 온 나영석 피디는, <삼시세끼>라는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는 정반대로, 정해진 공간, 정해진 미션 안에서, 인물이 살아 숨쉬는 말 그대로, 느긋한 삶의 조건을 프로그램으로 재연해 냈다. '미션'이라는 이름의 흉내가 아니라, 안착한 공간에서, 자연에 스며들어가는 도시인의 모습에서, 삭막한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들이 밥해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묘한 경지를 맞보게 한 것이다. 또한 이미 그 단초는,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바쁜 삶을 평생 이어오던 할배들의 노년의 선물과도 같던 여행, 누나들의 휴식과도 같은 여행, 그리고, 90년대의 전성기를 보냈던, 이제는 아버지가 된 뮤지션들의 변함없는 열정을 확인했던 여행 속에서, 빠쁘게 살아가는 삶에 쉼표를 찍는 여행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삼시 세끼> 어촌편은 어떻게 버전 업이 되었을까?

앞서도 말했다시피 애초에 <삼시세끼>는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세 사람의 만재도에서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 나영석 피디가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도무지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면, 세 사람의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도 완벽하게, <삼시 세끼>어촌의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일찌기 <이장과 군수>를 통해 시골 마을 두 친구의 걸쭉한 삶을 재연해 냈었던 두 사람은, 두 사람 스스로가, <이장과 군수>가 연상된다고 하듯이,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을 선보인다. 가리고 비껴가도 종종 장근석의 뒤통수와, 다리 한 짝이 등장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이 신경쓰이지 않는다. 때론 차승원이 아내가 되고, 유해진이 남편이 되고, 또 때론 그 반대가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며, 그저 오래된 중년의 두 친구의 그림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여지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정선의 시골 마을에서, 만재도라는 여섯 시간 배을 타고 가야 하는 어촌으로 옮긴 상황만 변화된 것이 아니다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상황이, 단적으로 <삼시 세끼>를 <삼시두끼>로 변화시키듯, <삼시 세끼>와는 전혀 다른 맛의 프로그램을 창출해 낸다. 정선 시골 마을에서 매사에 툴툴 거리면서도, 곧이 곧대로 제작진이 시키는 삼시 세끼를 순순히 만들어 내었던 이서진, 옥택연과 달리, 온전히 풍광 좋은 만재도에 와서, 하루 종일 통발을 살피고,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단조로운(?) 삶에 반기를 들고, 차승원과 유해진은 삼시 두끼만 먹을 것을 결정한다. 예전 <1박2일>같았으면 어림없을 결정이, <삼시세끼>에선 가능해 진 것이다. 마치 일정을 마친 최지우가 이순재 선생님 일행과 함께 하루를 더 보내게 되듯이 말이다. 사람사는 생활에서 가능한 일탈과 해프닝들이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일부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해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땔감을 쪼개 불을 피우는 대신, 귤로 아침을  때우고, 만재도 산의 바람을 맞고, 차승원은 늦잠을 즐긴다.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지분은 여전하지만, 세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기에 조미료를 피할 수 없다는 차승원식의 요리가 스리슬쩍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하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집착하는, 하지만 차승원의 급한 성격에는 곧 꼬리를 내려주는 유해진의 넉넉함이, 그저 어촌이라는 환경의 차이를 넘어, 새로운 버전의 <삼시 세끼>에 대한 기대를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위기를 그저, 솎아내기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나영석 사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게 버전업 되는 나영석 피디의 예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그램에 일관된 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사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늘, 나영석 피디 사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엔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래서, 야생 버라이어티가 되었든, 할배들의 여행이 되었든, 시골 마을의 슬로우 라이프가 되었든, 인지상정으로 자꾸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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