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에게 '지리'라는 과목은 참 지루한 과목이었다. 토양, 식생, 기후 등 여러 가지 분야로 끝없이 나누어진 세계 곳곣을 외우고, 또 외워도, 외워야 할 것이 남은 그저 '암기 과목'이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에서 '세계 지리'는 참 흥미로운 간접 여행의 시간이다. 과목을 맡으신 분이 젊은 시절 세계 여러 곳을 배낭여행으로 다녀 보셨기에, 수업 시간마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사실'에 그곳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얹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겐 그저 '암기'의 내용이었던, 그랜드 캐년 등이 아들에게는 선생님이 가본 세계에서 제일 멋진 장관으로 기억된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배우느냐의 문제이다.
그동안 입시 교육에서 천대받아, 서울대를 가는 학생들만 선택하는 과목으로 대접받던 국사 교육이 다시 정규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수능 교육 현장에서, 필수로 돌아온 교육이란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외워야 할 것을 더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심지어, '검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 등은 과거의 역사 인식에서 조차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하는 21세기의 후진적 역사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일본에게 역사를 왜곡했다고 욕할 것 없이,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왜곡'과 폄하'가 횡행하는 역사 교과서에서, 아이들은, 그리고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방황할까.
그런 의미에서 매주 월,화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빠스켓 볼>은 청소년들에게 한번쯤은 보라고 권하고 싶은 드라마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어설픈 부분이 많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가난한 남자와 부잣집 여자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거기에 끼어든 또 다른 잘나고 멋진 부잣집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사랑과 갈등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생뚱맞게도 '농구'라는 종목을 통해 빚어진다. 게다가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아직 신인인 탓에, 단 하나의 표정으로 모든 연기를 하며, 감정이 늘 차고 넘쳐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처음엔, <추노>의 감독이었던 곽정환 감독이 추노같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찾다가, 일제시대에 '농구'라는 소재를 어겨 넣은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렇기도 한게, 농구장의 경기 장면은 드라마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빼어났으며, 추노의 추격씬만큼 박진감이 넘치지만, 그것에 홀려 드라마를 보기에는 배우들의 연기나 스토리가 너무 인내를 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드라마는 조금 다른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오히려, <빠스켓 볼>에서 볼거리를 제공하며 시청자들을 낚는 농구장 씬은 떡밥이요, 그것을 통해 제작진이 보여주고픈 것은 바로 일제 시대의 '세밀화'가 아닐까 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빠스켓 볼>에서는 다른 일제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 대표적으로는 지난 해 인기를 끌었던 <각시탈> 등에서 등장했던 일제 시대의 클리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일제시대가 그려진다.
일본 군부, 그 아래 붙어가는 어용 귀족,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빌붙어 자신의 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본가, 그리고 다시 거기에 빌붙어 자시의 이익을 챙기는 스스로를 '빼앗는 것 밖에 모른다는 식민지 시대 하자품' 공윤배, 그리고 그런 공윤배에게 핍박을 당하는 강산과 그의 이웃들과 같은 일제 시대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가 상세히 설명되어진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그저 도식적으로 '친일파'와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는 그 시대의 이분법이 '팜업 북'처럼 상세하게 펼쳐진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시작된 철거가 일제 시대부터 였다는 것도,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철거랄 것도 없는 거적데기 덮은 움막도 감지덕지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이, 그리고 그 보금자리가 때로는 생명과 함께 부질없이 날라가 버리는 것도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웠다는 현실이 구체적 상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생'을 했다는 사실들도 세세하게 그려진다. 일본의 국화를 비로 쓸었다고 갖은 수모를 겪고 꽃잎을 손으로 하나하나 담아야 하는 모습에서, 아비를 징용으로 잃고 똥지게를 지며 살아가다 그 자신 마져도 보리쌀 한 됫박에 끌려가게 생긴 소녀까지 '조센징'도 모자라, '요보'라 불리는 당시 사람들의 처지가 구구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러다 보니 뻔해보이던 주인공들의 캐릭터조차도 회를 거듭해 갈 수록 색깔이 입혀진다. 그저 일제 시대 잘 나가던 연희전문의 스타 농구 선수였던 민치호는 자신의 무신경한 친일 행각으로 아비를 잃었다는 소녀를 통해 각성한 지식인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의 각성은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황국 신민 서사'를 거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저 읊으라는 걸 읊지 않고, 고개를 숙이라는 걸 숙이지 않았을 뿐인데, 민치호는 끌려가고 징역을 살게 될 처지에 이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민치호에게 동조하던 관객들도 무차별적으로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시대라는 걸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목격하게 된다.
그에 대적하는 주인공 강산의 처지도 만만치 않다. 천재 농구선수이지만 가난때문에 기회를 잃은 그는 거짓된 신분으로 여주인공 신여성 신영을 만나다 '경성 방적' 농구 선수에 민치호를 대신할 스타가 되지만, 그를 둘러싼 시대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일본인에게 조아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사랑하는 신영을 생각하면 불의에 눈감고 오로지 농구만 생각하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일제에 짓밟힌 경험을 가진 밑바닥 삶을 살았던 강산에게 일제에 대한 반감은 그저 '자각'을 넘어선 삶의 '절감'이기 때문이다.
11월 5일 4강에 올라간 강산을 보러 경기장에 와, 강산을 활짝 웃게 했던 신영이 강산이 자랑스럽게 황국신민 서사를 읊는 모습을 보다, 이건 아닌 거 같다며, 민치호가 감옥으로 이송되는 곳, 그를 지지하기 위해 연희, 보성 전문의 젊은 농구 선수들이 모인 그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빠스켓 볼>이 그저 사랑 이야기나, 농구 이야기를 넘어선 그 무엇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대표적 예이다. 교과서를 통해, 도식적으로, 혹은 그저 몇 줄의 암기 사항으로 외웠던 사실들이, 그 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고뇌와, 현실로 드라마를 통해 전해진다.
종종 인터넷을 통해 웃지 못할 요즘 아이들의 역사 인식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유관순이 누구냐던가, 안중근은 아는데, 윤봉길이 누구냐던가, 선생님은 그저 교과서를 외우듯 가르치고, 그 앞에서 고개 박고 자는 아이들이 무얼 제대로 기억하겠는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역사적으로 번연히 우리나라를 핍박한 인물로 기록된 '기황후'를 재해석하겠다며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몇 년 뒤에, 이완용을 재해석하겠다는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말란 법이 어디있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종 교과서 중 어느 곳에서는 노골적인 역사 왜곡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있는 해방 전후사를 그려내겠다는 야심을 보여준 <빠스켓 볼>의 시도가 고맙다. 대학 시절 송건호 선생의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죽어있던 역사가 살아움직이던 느낌이었다. 뭐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빠스켓 볼>을 보며, 수업 시간에 졸며 귀등으로 넘겼던, 그 시대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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