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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배우 정우는 그 누구보다 귀가 간지러운 한 주를 보냈다. 아니 남들이 하도 자기 얘기를 해서 귀가 간지러운 정도가 아니라, 기사로 나올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만 터져도 들들 볶이는 연애 가쉽성 스캔들이 무려 두 개나, 그것도 그저 사귄다, 사귀었다를 넘어, 복잡한 삼각 관계를 연상케 하는 사건들이 터졌기 때문이다. 최근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정우가 연기하는 '쓰레기'캐릭터가 여자들의 로망인 '무뚝뚝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상한 멋진 오빠'캐릭터로 워낙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저 해프닝으로 지나갈 정우의 연애사는 입가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 마디 보태는 심각한 사안이 되었다. 유명세라기엔 혹독한 한 주였다.
정우의 가쉽성 스캔들 기사들은 지금 한참 <응답하라 1994>에서 나정(고아라 분)이를 여동생을 넘어 연인으로 자각할락 말락 하는 쓰레기 역할을 해야하는 배우 정우에게도, 이제 본격적으로 삼각 연애 구도를 만들어 가려는 제작진에게도 부담이 될 거라고 예상되는 게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11월 8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에서, 정우는 그저 여전히 쓰레기였다.
(사진; 텐아시아)
처음<응답하라 1994>의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여러모로 우려가 되었었다. 주인공을 맡은 정우는 연기를 잘 한다고 인정은 받았다지만 인지도도 낮았을 뿐만 아니라, 스무살 대학 초년생을 연기하기에는 중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하라 1997>의 남자 주인공 서인국은 이미 슈퍼스타k 첫 시즌의 우승을 거머쥔 아이돌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가졌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응답하라 1994>에서 정우가 결국 여주인공의 사랑을 쟁취하는 서인국이 될지, 아니면 '좋은 오빠'로 남게되는 송종호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후발 주자로 등장한 칠봉이(유연석 분)와 달리, 초반부터 쓰레기를 남자 주인공으로 집중 조명해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저 '우려'에 불과했음을 제작진과 정우는 증명해 냈다. 그저 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인데도 보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런가 하면 정말 그 집 아들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는 '멋진 오빠'요, 그러면서도 '쓰레기'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열렬한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스캔들 기사가 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저 쓰레기는 쓰레기로 받아들이게 할 만큼.
이미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의 신드롬을 넘어서는 궤적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이 있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미 전작의 묘미를 터특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제작진이 던져 준 떡밥에 설레발치며 나정이의 남편감을 예상해 보고, 칠봉이와 쓰레기의 노선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또래 배우들의 몰입감으로 말랑말랑한 순정 만화를 보는 듯한 <응답하라 1997>과 달리, 여전한 청춘들의 연애사로 전개되어 가는 <응답하라 1994>임에도 전작보다 더 감칠 맛 나는 드라마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전작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캐릭터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쓰레기 역의 정우는 물론이고, 그것보다 한 술 더 뜬 것이 삼천포 역의 배우 김성균이다. 그가 등장했을 때, 아버지 역의 성동일 조차 그의 외모에 감히 반말을 맘놓고 하지 못할 정도로 이제 막 대학을 입학한 '프레쉬맨' 역할의 삼천포 김성균은 어느모로 보나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이제 8회의 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삼천포는 정말 대학 1년생같아 보인다. 그 누구와 방도 같이 써본 적이 없고, 누구랑 무엇을 나눠 본 적이 없는 귀하디 귀한 지방 부잣집의 외동 아들, 그래서 서울 생활은 물론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생활에 눈치코치 없는 그럼에도 열심히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려 노력하는 삼천포가 종종 귀여워보이기 까지 한다. 저 사람이 영화 <화이>에서 그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거침없이 사람을 가해하던 아빠 동범이었는지, <이웃집 사람>의 살인마였는지 전혀 떠올리지 않게 만든다.
삼천포 만이 아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고군분투했음에도 멀쩡한 허우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유연석도 <응답하라 1994>에서 비로소 허여멀건한 서울 놈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반질반질하다 못해 빤질빤질해 보이던 해태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던 빙그레 역시 조금씩 드라마 속으로 한 발 한 발 자신을 들여놓고 있는 중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도 도학찬(은지원 분)이나, 방성재(이시언 분) 등의 캐릭터가 재미있었지만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라는 포지션이 분명해 보였지만,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들은 마치 집단군물를 추듯, 각 캐릭터가 분명한 자신의 스토리와 성격을 가지고, 드라마 내에서 우뚝 서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간의 합종 연횡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응답하라 1994>가 캐릭터의 성찬이 되고 있는 이유는 극본 상의 단단한 캐릭터 구축에 있지만, 그 캐릭터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의 힘 역시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감독과 작가진이 정우가 출연한 전작 영화 <바람>을 좋아했고, 그 영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왔다시피한 '쓰레기'캐릭터는 물론이고, 마흔살 아저씨같은 장국영을 스물살로 보이게 만드는 삼천포나, 해태 등은 그 역할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정우, 김성균, 유연석 모두 여러 작품을 통해 단련된 내공이,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4>는 매회, 전작에서 이미 재미를 톡톡히 본 나정이의 남편 찾기에 대한 기묘한 떡밥을 던지며 드라마적 흥미를 이끌어 내고 있다. 하지만, 쓰레기와 칠봉이, 그리고 나정이의 연인 관계의 결말만큼, 삼천포, 해태, 그리고 정대만(조윤진 분)의 삼각관계의 결말이 궁금해 지고 애닳아진다. 이미 드라마는 나정이의 남편 찾기라는 떡밥을 넘어서 캐릭터의 진기명기만으로도 풍성한 진수성찬이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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