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비정상회담>에 전달된 안건은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까봐 걱정하는 나, 비정상인가요?'라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의문이었다.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 이 세 사람이 진행하기에는 버거운 주제라 판단한 제작진은 급하게 진중권 교수에게 sos를 쳤고, 이에 진중권 5월 18일 혐오주의 편에 이어 가장 최단 기간 내에 게스트로 재출연하여 품격높은 토론을 이끌었다. 


전쟁의 위협에서 시작되어, 세계 정세에 대한 현명한 해석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정상 vs. 비정상에 대한 표결로 토론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비정상에 손을 들었던 타일러 라쉬는 '전쟁은 시대에 따라 모습이 바뀐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항시적으로 전쟁 중이다. 단지 그 형태가 바뀌어 다수의 국가대, 다수의 국가가 맞부닥치는 대전의 형태가 아니라, 각 지역 국가 내의 내전 형태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현재에도 지구촌의 여러 국가는 내전 상황에 놓여져 있다. 이게 바로 3차 대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도발적 해석으로 토론의 물꼬를 튼다. 이런 타일러의 의견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진 쪽은 제 2차 대전 중 사용된 무기의 양과, 살상된 인명의 숫자를 들어 대전과 내전은 그 형태와 질을 달리한다며, 현재에 국지적으로 진행되는 내전의 범람을 곧 3차 대전이라 몰고가는 것은 논리적 무리수라 지적한다. 



이렇게 갑론을박하는 G12들의 격렬한, 하지만 심도깊은 의견 교환에, 세 MC들은 눈만 끔뻑거리는 상황에서, 진중권 교수는 명쾌하게 정리를 해낸다. 즉, 대전과 내전은 전쟁이라는 형태는 같지만 질을 달리한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예로서, 우리나라의 6.25를 든다. 6.25의 배후에는 구 소련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있었지만 우리가 6.25를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최근에 내전이 잦다고 해서, 그것을 제 3차 대전이라고 규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진중권 교수는 타일러 라쉬의 의견처럼 전쟁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서 민족국가가 중심이 되었던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더 이상 진영과 진영간의 대결이 극대화된 대전의 형태는 힘들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이렇게 제 3차 대전이란 막연한 전쟁의 공포, 혹은 우려로 시작된 '즉자적' 질문은 G12들의 다양한 의견과, 그 의견을 적절하게 수렴하게 자신의 식견을 덧붙인 진중권 교수의 마무리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아마도 진중권 교수가 없었다면, 타일러 라쉬의 어찌보면 속단에 가까운 논리도, 그 반대의 막연한 개념도 허공으로 흩어져 세 MC의 공허한 유머로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진중권 교수의 적절한 마무리로 생각해 볼만 하지만, 결코 논리적 비약이 아닌, 현재 세계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마무리 되었다.

진중권, 논쟁의 중심보다는, 토론의 마무리 구원 투수가 되다. 
키보드 워리어 라는 진중권 교수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로 섣불리 판단한다면 그는 오히려 전쟁의 위협을 강조할 것 같지만, 오히려 G12 중 전쟁의 위협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달리, 전쟁의 형태는 달라질 것이며 더 이상 전세계적 대전의 위협은 없을 것이라며 '낙관'의 편에 자신을 둔다. 이후에 자연스레 이어진 각 나라의 패권에 대한 해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풀려져 가면서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는 쟁쟁한 국가의 출신들 답게 역사적으로 패권을 가진 국가들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간다. 또한 역사적으로 서로 앙숙이었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한때는 앙숙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어른들 시대의 이야기가 된 독일과 프랑스의 이야기도, 미래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답정너'의 중국의 장위안과, 타일러 라쉬, 그리고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독일의 다니엘 린데만, 러시아의 벨라코프 일리야의 입이 바빠진다. 결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달러의 위력, 소프트 콘텐츠의 저력 등을 들며 미국의 우세를 점치는 편과, 깨어나고 있는 중심 중국의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이런 편가르기식 의견 나누기에서, 진중권 교수는 우스개로 시작된 제 3세력의 해석을 확장시킨다. 즉, 여전히 달러 경제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우세가 쉬이 수그러들지 않고, 중국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지만, 유럽 등 여타 세력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다극화된 세계로 갈 것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의견은 앞서 제 3차 대전에 대한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일관성을 가진다. 



<비정상 회담>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들 
결국 제 3차 대전에 대한 위협에서 시작된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는 '호국 보훈의 달' 특집답게 순차적으로 우리나라의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져 간다. 이어진 '통일'에 대한 G12의 의견. 그런데 정작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다니엘은 한국의 통일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다지 큰 경제적 차이를 가지지 않은, 그에 비해 국토의 압도적 우세로 시작된 독일의 통일은 그 이후 25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엄청난 부담을 독일에게 지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이미 경제적 격차가 너무 현격해진 남과 북, 그리고 통일에의 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통일이 다가온다면 한국은 그걸 소화해 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다니엘의 의견을 받아든 진중권 교수 역시 그에 동조한다. '통일바라기'일 것 같던 세간의 편견과 달리, 그 역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일러 러쉬의 생각처럼, 정전 상태인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는 데 자신의 의견을 더한다. 이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경제적 격차가 난 한반도에서 갑작스레 다가올 '통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결과를 나을 지도 모른다고 의견을 덧붙인다. 오히려 외국이라는 쉽게 교류를 트며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관계가 '통일'이라는 화두에 얽혀 어려워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더한다.

6월 22일 호국 보훈의 달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걸고 시작된 '전쟁과 평화'의 특집은 <비정상회담>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아마도, 이런 주제가 G12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끼리의 의견이었다면, 거기엔 또 이른바 '진영 논리'라는 편가르기가 더해졌을 것이며, <썰전>에서 보듯이 강용석처럼 자신의 편을 위해 막무가내식 들이대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비정상회담>에도 중화주의적 논리를 내세운 장위안의 '답정너'가 종종 등장하지만, 그외의 G12들의 심도깊은, 그리고 다양한 해석으로 인해,  '답정너'로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아마도 진영 논리의 싸움판이 되었다면 진중권 교수 역시 예의 '키보드 워리어'의 기질을 살려 편견을 사로잡기 위해 또 한 사람의 싸움꾼이 될 수 밖에 없을수도 있지만, G12의 객관적인 다양한 의견 들 속에서 진중권 교수는 가장 객관적인 해석자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고, 세간에서 그를 오해(?)하는 것과 달리 가장 완곡한 입장을 피력해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시청자들 역시 누군가의 편에서, 혹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들여다 보았단 '전쟁',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해 한번쯤은 객관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진짜배기 '호국보훈의 달' 특집이 되었다. 모처럼 <비정상회담>이 제 몫을 해낸 시간이었다. 바라건대, 진중권 교수가 비상근 게스트가 된 이런 자리가 종종 마련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6. 23. 11:38

추석 특집으로 선을 보였던 <헬로 이방인>이 외국인 예능 대세라는 트렌드를 타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였다. 

추석 특집 최악의 mc로 뽑혔다던 김광규가 자신은 mc가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mc'계의 이방인이자, 한국 대표 노총각으로 잔존한 가운데, 추석 특집에서 등장했던, 중국의 레이, 미국의 데이브, 독일의 존, 콩고의 프랭크가 다시 합류하고, 새롭게 캐나다의 조이, 일본의 강남, 일본의 후지이 미나, 파키스탄의 알리, 리비아의 아미라가 새로운 이방인으로 들어왔다. 

헬로 이방인 첫방송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의 미움을 살 꺼라는 공고문이 무색하게, 한국 거주 10여년이 넘는 겉모습만 외국인인 아미라와 알리에서 부터, 이미 추석 특집에서 부터 한국인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레이, 그리고 이제 한국에 발을 디딘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조이까지 한국어가 낯설지 않다. 
아니, 한국어만이 아니다. 만나자 마자, 띠까지 들먹이며 아래 위를 따지는 모습은, 딱 한국인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이쁘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에서 부터, 시장에 가면 값부터 깍는 모양새에, 심지어, 연세대 재학생인 존과, 고대 재학생인 알리의, 고연전, 연고전 실랑이에 이르면, 김광규의 '졌다'하는 실소가 딱 내 맘이다 싶다.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누나 동생하며 왁자지껄하며 어울리는 모습이 딱 우리네 모습이다. 

<헬로 이방인>은 <비정상 회담>이 드러낸 한국 속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국인의 진솔한 모습과, <나혼자 산다>의 무지개 라이프가 합친 듯한 빛깔을 드러낸다. 
동서양을 두루 배분한 각 나라의 출연자들은, 할랄 닭고기를 사오고, 이층 침대 꼭대기에서 엉덩이를 드러내며 기도를 하는 등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지만, 후지이 미나가 가져온 일본 전통 놀이 기구 켄다마를 서로 해보고, 함께 한국의 닭도리탕을 해 먹는 등 이방인들만이 빚어 낼 수 있는 '따로 또 같이'의 문화를 보는 재미를 톡톡히 선사한다. 

김광규가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 현관 앞에는 출연하는 이방인들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그리곤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외국인이 160만 명에 이르는 현실을 밝힌다. 마치 그들이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들의 대표인 듯 보인다. <국경없는 청년회 비정상 회담<이하 비정상 회담)>도 마찬가지다. 가나의 샘 오취리, 캐나다의 기욤 패트리, 터키의 에네스 카야, 벨기에 줄리안 퀸타르트, 이탈리아 알베르토 몬디, 중국 장위안, 미국의 타일러 라쉬, 프랑스 로빈 데이아나, 일본의 데라다 타쿠야, 호주의 다니엘 스눅스, 독일의 다니엘 린데만 등에서 보이듯이, 각 나라의 대표를 골고루 뽑아놓은 모양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비정상 회담>의 타일러 러쉬와 <헬로 이방인>의 아미라는 서울대생이다. 촌놈 취급 당하는 <비정상 회담>의 샘 오취리는 알고보면 서강대생이고, <헬로 이방인>의 존과 알리는 연세대, 고려대생이다. 미국의 데이브의 우스개 말로, <헬로 이방인>에 이른바 sky가 다 모였다. 어디 그뿐인가, 콩고의 프랭크 역시 성균관대생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강남, 후지이 미나, 데라다 타쿠야, 줄리안 퀸타르트, 다니엘 스눅스, 에네스 카야 등 연예계에서 활동하거나, 활동할 예정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면, 유명 자동차 회사 카딜러에, tv아나운서 출신에, 컨설팅 회사 마케팅 매니저란다. 
국적만 외국인이지 연예인이 아니면, 몇 손가락 꼽히는 국내 대학의 학생이자, 내로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색이 맞춰져 있다. 

'비정상회담' 대니 “미국선 부모 자식간에도 계약서 쓴다“


말이 160만 외국인을 대표로 하는 이방인들이라지만, 거기 어디에도 한국에 '노동'인력으로 수급되어 온 동남아 대표들은 없다. 
'한국에 온 10년 동안 때로는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갖은 욕을 다 먹으면서도, 돈을 벌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그 모든 것을 다 견뎌왔다'는 <인생 수업 프로젝트>의 네팔인과 같은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출연자는 골고루  모은 듯하지만, 상당수가 푸른 눈의 하얀 피부의 백인이요, 거기에 동양권이라 해도 중국와 일본을 넘지 못하고, 아프리카 사람은 말 그대로
구색을 맞춘 듯, 양 프로그램에 단 한 명에, 색다른 국가로, 중동의 몇몇 나라들이 등장한 것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그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들이 개그맨 지망생이건, 모델 지망생이건, 어느 정도 존중감을 가지고 바라봐 주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들이 대학생이건 그렇지 않건, 시골에서 온 촌놈 대하듯 한다. 터키나, 파키스탄, 리비아등 낯선 국가와, 그나라 풍습에 대한 자세 역시 일관되게 신기한 풍물 보듯 하는 모양새를 넘지 못한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인이란, 그렇게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에 공부하러 온 대학생, 그도 아니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 유수 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부인 듯 하다. 실제 우리나라 외국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저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일 뿐,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방인'이 아니라는 듯이. 결국 우리 안의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최근 각광받기 시작하는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의 모양새이다. 말은 우리 안의 이방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하지만, 기실은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감을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by meditator 2014. 10. 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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