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에서 <캡틴 아메리카><토르>까지 세계의 확장
답답한 현실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의 불가능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마치 동굴 속과 같은 그 곳에서, 현실을 돌파해줄 꿈같은 영웅들을 만난다.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든 극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마블, 마블은 일찍이 2008년 <아이언맨> 이래 거의 해마다 새로운 영웅들을 탄생시키며 자본주의 사회 극장의 영웅군의 선두 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극장의 영웅은 여전했다. 반듯한 슈퍼파워 외계인 슈퍼맨이 있었고, 악당인지, 영웅인지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그럼에도 언제나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거부하지 못하는 배트맨이 있었다. 하지만 나날이 고도화되어진 문명과 그에 걸맞게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에 닳아진 대중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석의 영웅'들은 훈장처럼 시들해져만 갔다. 바로 그때 심기일전하는 마블과 함께 등장한 영웅 <아이언맨>이 있었다. <아이언맨>은 '도덕' 교과서나, '철학' 교과서같은 이전의 영웅들과 달리, 가장 '속물적'인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다. 그 스스로 '재벌'인 주인공이 자신의 돈으로 맘껏 뿌리며 그 결과물로 만든 '아이언맨'을 통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설정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 그러기에 가장 현실에서 길어올리기에 적절한 환타지였다. 결국은 기승전 재벌의 권력인 세상에서, 제 멋대로이지만 착한 재벌의 환타지라니.
그렇게 현실의 가장 자본주의적 인간인 '아이언맨'이 등장했는가 싶더니, 거기에 2011년 두 명의 히어로를 더 얹는다. ( 물론 아이언맨과 함께 찾아온 자본주의 과학 기술이 낳은 괴물이자, 영웅 헐크도 2008년 <인크레더블 헐크>로 합류한다. 하지만 본격 마블의 헐크로 활동한 것은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보다는 어벤져스 시리즈에 합류한 마크 러팔로의 헐크이기에 2008년의 헐크에 대한 언급을 더하진 않겠다) 바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해 <토르>의 토르이다. 두 영웅은 각각 '역사'와 '전설'을 담당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세계 전쟁을 수행하는 세계의 방위군 역할을 하던 시대의 '미국'을 상징한다. 그 시절 미국의 평범한 청년이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통해 영웅이 되듯, 변방의 국가 미국이 몇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 전 세계의 보호국으로 성장하던 그 시대의 가치관과 그 시대의 부도덕, 아이러니를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구현한다. 그에 반해 고도화된 문명의 시대에 '망치'란 어불성설의 무기를 들고 설치는 고대 인간이란 자가당착을 절묘하게 설득해낸 토르는 바로 서양 역사의 근간이 된 '설화'적 인물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미국과 달리 큰 흥행의 성공을 얻지 못한 것처럼, 토르에 대한 배경 지식에 있어서의 익숙함이 바로 영화 성공의 근간을 이룬다. 마치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홍길동이란 영웅을 옛날 이야기처럼 듣고 자라나듯, 서양 문화 속 망치를 든 힘센 거인 토르의 익숙함은 순조롭게 영웅의 세계 안에 '전설'의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게 마블은 현실의 자본주의 세계에, 과거 미국과 전설의 영역을 더해가며 영웅들의 수와 함께 세계를 확장해 간다. 즉 그저 새로운 영웅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확장해 가는 식으로 서사의 영역을 넓혀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어벤져스' 군단은 아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지구를 위협하는 적의 존재가 세계 그 어느 곳을 넘어, 과거, 천상계, 우주, 그리고 이제 시간과 공간 너머 그 어디까지 그 어느 곳에 뛰어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구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새로운 세계와 익숙한 히어로물의 서사
<닥터 스트레인지>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인지라는 영웅이 우선이 아니라, 그가 품고 올 세계를 앞세운다. 잘 나갔던 외과 의사,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교통 사고로 두 손을 잃은 불운의 주인공이 자신의 손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만난 새로운 영적인 세계. 하반신 마비의 환자가 뛰어당기며 농구를 할 수 있지만 그의 신체적 치료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하듯, 여전히 두 손은 떨지만 영적 능력으로 공간을 확장시키고, 차원을 이동하고, 유체를 이탈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새로운 세계에만 함몰된 건 아니다. 예의 <아이언맨>이래 히어로물의 익숙한 구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장 섬세해야 할 외과 수술실에서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고, 그 음악의 연대 알아맞추기를 하는 천재적 능력의 외과 의사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 그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 못지 않은 자뻑형 인간이다. 무기 사업가 토니 스타크가 부상을 철갑 슈트로 극복하듯, 닥터 스트레인지는 교통 사고로 쓰지 못하는 손을 치료하기 위해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 분)의 수하로 들어간다. 그의 아래서 예의 천재적 능력으로 순조롭게 에인션트 원의 능력을 흡수한 닥터 스트레인지, 하지만 '속물'인 그는 자신의 수술 능력 회복에 관심이 가있고, 하지만 그에게 닥찬 운명은 '세계를 구하는 영웅', 그 영웅의 도정에 수술에 능통한 의사와, 생명을 구하는 영웅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결국 스트레인지는 까다로운 망토가 선듯 그를 택하듯, 운명적으로 짐지워진 자신의 길을 향해 나선다.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 그 인간적인 캐릭터에게 닥친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길에서 만난 뜻하지 않은 영웅의 운명, 그리고 선택 등은 그간 히어로 물에서 반복되어 답습되어 온 익숙한 서사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생소한 유체 이탈 등의 공간과 시간의 확장, 변형이라는 '영적 세계'의 난해함을 익숙한 영웅 서사로 채워가며 신선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선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뻔한 영웅물의 서사를 tv 시리즈 <셜록>과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기괴하고 천재적인 캐릭터로 이미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를 통해 설득하고자 한다. 물론 그래서 익숙해서 지루하고, 신선해서 생경할 위험성도 동시에 내포한다. 그 익숙함이 뻔하게 받아들여지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컨셉을 가진 히어로물이 될 터이고, 그 새로운 세계가 경이롭다면 마블 월드의 확장에 기꺼이 공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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