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되돌아 보면 1998년 <정사>로 떠들썩하니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이래, 이재용 감독만큼 그의 작품 세계가 '파란만장'한 감독이 있을까? 세상은 최근 1000만이란 숫자로 기록되지 않은 그의 이름이 낯설지 몰라도, 그의 이름을 따라 작품을 쫓아온 관객이라면 최근 그의 인터뷰 제목처럼,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궁금함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삶과 고뇌의 이력으로 그의 다음 여정에 대한 궁금증이다. 마치 투명한 유리창처럼 그의 생각이 온전히 작품으로 드러나는 감독, 그래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 삶을 나눌 수 있는 감독, 이재용 감독이 2016년 들고 온 작품은 <죽여주는 여자>이다.
이재용과 그의 그녀들
이재용 감독 영화에서 '여성'은 대부분 영화의 중심에 놓여있곤 한다. 98년 <정사>는 2016년에도 '불륜'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에서 일찌기 '바람난 유부녀 서현(이미숙 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그 적나라함은 2003년 <조선 남녀 상열지사>에서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숙부인(전도연 분)에 이르르면 극에 달한다. 세련된 미장센으로 가두어지지 않는 여성의 욕망을 통해, 닫힌 사회에 대한 냉소를 퍼부었던 이재용 감독, 하지만 그의 다음 행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도발'과 '파격'이란 수식어가 달리는 <다세포 소녀>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그가 관심을 보인 대상은 여성, 단지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던 '부인'에서, 상식 밖의 10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다세포 소녀>는 대세 감독이었던 이재용을 아웃사이더로 만들었고, 이후 그의 행보는 <다세포 소녀>의 서사 못지 않게 파격적으로 이어진다.
2009년 <여배우들>은 말이 고현정, 김민희, 최지우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이름을 올렸을 뿐이지, 막상 그녀들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다큐인지, 픽션인지 모호한 영화를 통해 이재용에 대한 혼돈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그 혼돈을 통해 그 어떤 스타 다큐보다도 진솔하게 인간으로서 여배우들의 삶을 통찰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지, 이재용 감독은 <감독이 미쳤어요>란 파격적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넘나든다. 과연 이 감독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시점, 뜻밖에도 2015년 그가 들고 온 작품은 가장 평범한 극영화 <두근두근 내인생>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그의 여성에 대한 천착은 멈추질 않았으니, 부인과 10대 소녀, 여배우를 경유한 그가 관심을 준 것은 자기보다 늙어가는 자식을 둔 엄마였다. 그렇게 '죽음'과 '엄마',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던 그가, 2016년 그 '고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껴안은 것은 '죽음 앞에 선 여성'이다.
그렇게 <죽여주는 여자>는 삼팔 따라지로 의지가지없이 남한으로 흘러들어 공장 직공 등 안해본 일 없이 하다가, 돈이 된다 하여 '양공주'를 하다 이젠 나이들어 먹고 살기 위해 '박카스 아줌마'가 된 소영(윤여정 분)의 이야기이다. 즉 이재용의 여성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 것은 여성성에의 천착이라기 보다는, 조선이래 이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된 도덕이 가장 강고하게 요구되는 대상이자, 그러기에 가장 직접적인 희생자였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정절녀, '가족'이 최우선이 된 산업사회, 그리고 고도의 산업 사회에서 그 꽃이 된 여배우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고비에서 만나게 된 '박카스 아줌마'는 우리 현대사가 토해놓은 가장 적나라한 결과물이다.
현대사의 마돈나, 소영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먹고사는 것'이 보상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몸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소영,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모성의 상실과 여전히 자신의 몸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막다른 삶이다.
영화는 소영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그 이전 영화에서 이재용이 실험했던 바 '다큐'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가 깃들어 사는 도시를 지그시 바라본다. 영화의 시선은 천천히 여전히 여성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녀가 신은 높은 굽의 신발로 걷는 느릿한 걸음을 따라 도시를 경유한다. 그녀의 일터인 탑골 공원 등과 그녀의 주거지인 이태원 등, 불야성을 이룬 메가 폴리스 서울이 숨긴, 그림자 서울의 모습을. 영화 속 서울은 즐비한 도심의 빌딩 대신, 노인네들이 하릴없이 죽치고 있는 공원과 스산한 등산로, 이방인이 낯설지 않은 거리와 속살같은 골목을 비춘다. 그리고 도시는 재개발을 거쳐 번쩍번쩍 현대화되지만,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스러져간 구도심처럼 변화되는 세상에서 재개발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먹고 살기 위해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도 안된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보낸 소영, 하지만 사회가 거세한 그녀의 모성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는다. 나이든 몸을 돌보기 위해 호구지책으로 '박카스'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그녀이지만, 병원에서 우연치 않게 만난 코피노 민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의사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가 내뱉은 소년에게서 자신이 젊은 시절 보살피지 못한 채 입양시켜버린 아들을 떠올리며 부등켜안은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만큼이나 도시에 깃들어 살지만 도시가 돌보지 않은 노년의 인생을 구제(?)한다. 이방의 어린 소년과 죽음을 앞둔 보살펴줄 이 없는 노년들, 현대화된 도시가 품지 않고 뱉어버린 '생'을 모성을 잃고도 모성을 놓치지 않은 소영을 통해 보살핀다. 그녀는 '죽여주는 박카스 아줌마'에서 도시가 쓰레기치우듯 내뱉어버릴 노년의 삶을 '구원해 주는' 마지막 보호자가 된다. 도시의 마돈나처럼.
하지만 '성모'가 된 마돈나와 달리, 도시의 마돈나의 삶은 가차없다. 늙은 그녀에게 사회가 베풀어 준 '양로원'은 차가운 감옥, 그리고 찾아가는 이 없는 무연고의 죽음이다. 그녀가 잡혀갈 때 '언니'라며 울부짖던 동거인들의 슬픔이 무색하게, 영화는 그 흔한 '신파'의 미련마저 떨친 채 끝까지 냉철함을 잊지 않고, 박카스 아줌마로써 소영의 삶을 직시하며 여운을 짙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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