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글', <해리포터>라는 작품이 만들어 낸 이 용어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통 명사'처럼 쓰인다. 해리포터를 읽은 이가 아니더라도 '머글'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터이다. 

'머글'이라는 용어의 맞은 편에는 '마법사'가 있다. 런던 지하철 역 기둥을 통해 갈 수 있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 그곳에는 노래에도 등장한 저주의 주문 '아바다 케다브라', 공중부양의 '윙가르디움 메디오사'처럼 주문을 외는 마법사들이 있다. 작가 조앤 롤링이 창작해낸 세계가 책으로, 영화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문화 콘텐츠로 살아 숨쉰다. 

 

 

팀 버튼이 만든 별종들의 세계 
마법사들의 학교 호그와트, 그리고 마법사들과 머글들의 분리된 세계,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돌아온 팀 버튼 감독은 바로 이런 해리포터 식의 세계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낸다. 마법사 대신, 그 자리에 '별종'을 넣는다.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처럼 보는 이를 돌로 변하게 만드는 '고르곤', 헤라클레스조차 귀와 눈을 막아 피했던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세이렌 등 고전 속 신비한 존재들에, 늑대인간, 심령술사 등이 '별종'이라는 이름으로 '네이모어' 학교에 모여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 신부> 등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은 90년대의 영화와 이후 에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진 <아담스 패밀리>를 소환한다.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수심어리다'.)'라는 영미권의 고전 시가인 마더 구스에서 유래한 문구, 장미 봉우리를 잘라내고 가지를 거꾸로 장식하고, 단두대를 사랑하는  매우 '고어(Gore)'스런 취향의 가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인한 '언사'를 내뱉는 딸에게 기꺼이 '웬즈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답게 '평범이'들의 학교에 다니던 웬즈데이는 동생과 자신을 따돌리고 괴롭히던 아이들이 수영하는 곳에 피라냐를 풀어넣고 쫓겨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니던 그리고 어머니의 동급생이던 라리사가 교장으로 있는 네이모어로 전학을 오게 된다. 

호그와트가 머글들의 세계와 분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반면, 별종들의 학교 네이모어는 제리코라는 소도시에 자리한다. 별종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게서 풍기듯, 네이모어는 제리코 재정에 막대한 도움을 주며 학교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하지만 언제나 평범이들의 세상에서 '별종'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리코 사람들은 네이모어의 자금력에는 기꺼이 환대하지만 보안관 도노반(제이미 맥셰인 분)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늘 사건만 생기면 네이모어, 즉 별종들의 짓일 꺼라 의심한다. 

그런 곳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모두를 대하는 웬즈데이가 전학을 오고, 그 즈음 제리코에는 괴물로 추정되는 연쇄 살인마가 판을 친다. 별종 중의 별종 웬즈데이는 자신을 '마녀'라며 죽이려던 동급생이 자신의 눈 앞에서 괴물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다음 날 죽은 줄 알았던 동급생이 멀쩡하게 학교를 떠난다. 그걸 두고 볼 웬즈데이가 아니다. 

 

 

별종들을 통해 드러난 10대의 세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피라냐를 풀고, 그 못지 않은 독설을 뿜어내는 웬즈데이란 주인공은 팀 버튼 감독답다. 제니 오르테가가 분한 웬즈데이는 기괴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사사건건 부모의 세계에 대해 저항하고 반항하는 10대의 모습을 절묘하게 반영한다. 또한 독설을 내뿜고, 부모의 포옹조차 마다하지만 알고보면 웬즈데이는 부모의 인정과 지지, 그리고 사랑을 깊은 마음 속에서 갈구하는 또래 소녀일 뿐이다. 

웬즈데이 뿐만 아니다. 별종이라지만 그들 모두 아직 성장 중에 있는 청소년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다. 운나쁘게? 혹은 운좋게 웬즈데이와 한 방을 쓰게된 늑대 소녀 이니드(엠마 마이어스 분)는 핸드폰조차 쓰지않는 극단적 아싸인 웬즈데이와 달리, '핵인싸'의 우울함이라고는 1%도 없을 것같지만, 어서 '늑대' 각성하라며 여름 캠프까지 보내려는 가족에 시달리는 10대 소녀의 또 다른 모습을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웬즈데이와 제이비어(퍼시 하인즈 화이트 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세이렌 비앙카(조이 선데이 분)는 사이비 심리 집단으로 돈을 버는 엄마의 조력자가 되어야 하는 경제적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인기있는 심령술사의 아들 제이비어는 늘 유명세의 아버지 그늘에서 허우적댄다. 

매회,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의 그 'woe'가 들어가는 소제목으로 시작되는 8회차의 시리즈는 차갑고 냉혈한같은 소녀 웬즈데이가 네이모어에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한 학기가 끝나고 그곳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시간동안 홀로 아가사 크리스티못지 않은 추리 소설가가 되겠다고 타자기를 두드리던 소녀는 부모님이 보낸 스파이였다가 그녀의 충복이 된 잘린 손, 씽과 함께 제리코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어디 연쇄 살인 사건 뿐인가. 오랫동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아왔던 아버지의 오랜 혐의도 해결해내는 활약을 보인다. 

또한 10대 청소년 답게 제리코 마을 까페에서 알바를 하던 도노반 보안관의 아들 타일러와 제이비어 사이에서 첫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어낸다. 물론, 아담스 패밀리의 딸답게 그녀의 첫사랑은 연쇄살인와 얽혀 그녀를 위험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세상 그누구도,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조차 거부하던 소녀는 천진난만한 '동방지기', 이니드와 얽히며 카누 경기에도 나서고, 마을 제단식에서 첼로 연주자로 나서기도 하며 견고하게 닫았던 자신만의 성문을 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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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종 vs. 평범이 
우리 사회에서 '머글'이란 용어가 독특한 뉘앙스로 자리매김하듯이, <해리 포터>의 세계관에서 마법사의 순혈주의와 머글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볼드모트라는 거악의 근원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웬즈데이가 전학간 별종들의 학교 네이모어, 그리고 학교가 자리한 제리코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들은 그 유래가 제리코 마을에서 벌어진 별종 학살 사건으로 이어진다.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별종들, 그리고 그들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혐오'의 근원이 현재의 살인 사건의 뿌리가 된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건의 중심으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웬즈데이,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는 바로 이런 여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에 의지해 풀어간다. 그리고 그저 매력에만 그치지 않고 또래 청소년 서넛 쯤은 거뜬히 들쳐엎어 버리고, 표적의 중심을 꿰뚫어 버리는 석궁 실력에, 물론 때로는 그녀의 '독고다이'가 헛발을 짚을 지언정 냉철한 추리 능력을 가진, '먼치킨'의 능력을 가진 소녀, 독설을 내뿜는데 묘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웬즈데이의 분투기와 성장기가 돌아온 팀 버튼의 시간을 채운다. 



by meditator 2022. 12. 7. 19:56

셜록에게 셜록만큼 똑똑한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가정으로 <에놀라 홈즈>는 시작된다. 그런데 왜 하필 여동생이어야 할까? 이건 영국을 중심으로 그간 백인 남성 중심의 고전들을 성과 인종적 평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문화적 시도의 일환이다.

 

 

당대 최고의 탐정 셜록, 그를 키운 어머니는 아직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선각자로서 참정권 운동에 나선 패미니스트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 분)였다. 일찌기 오빠들이 집을 떠나고 어머니와 남겨진 막내 여동생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 분), 어머니는 딸에게 격투기를 가르치는 등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에놀라 홈즈 1> 은 에놀라가 전적으로 의지하던 진보적인 어머니가 사라지고 그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탐정 에놀라의 서막을 연다. 

이제 <에놀라 홈즈 2>는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탐정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에놀라 홈즈가 본격적으로 '탐정'일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도 허용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 그런 시대에 여성이 탐정 사무소 문을 열었다고 '문전성시'를 이루겠나. 탐정 사무소라고 들어와 여성이 탐정이라니 질색을 하고 나가는 사람들, 에놀라를 찾아와 오빠 셜록에게 부탁 좀 해달라는 사람들, 이대로 문을 닫아야 하는가 싶은데 소녀 베시가 탐정 에볼라를 찾는다. 성냥 공장에 다니는 자기 언니를 찾아달라는 사건이었다. 

언니 세라는 베시와 함께 성냥 공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기꺼이 맡은 에놀라는 수사를 위해 성냥 공장 직공으로 들어간다. 모든 직공이 다 여성인 공장,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것같은 미성년 베시에서 부터 아줌마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나무판자를 쪼개 여기에 인을 입혀 성냥을 만든다. 베시와 세라가 함께 살던 집을 조사하던 중 성냥 공장과 세라의 실종에 일련의 관계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챈 에놀라는 공장 사무실에 잠입 장부 중 일부분이 뜯겨져 나갔음을 알아낸다. 장부를 뜯어낸 건 세라였을까? 

 

 

성냥 공장으로 간 에놀라 
<에볼라 홈즈 2>에서 실종된 여성은 세라 채프먼, 그녀는 1088년 매치걸스 스트라이크((Match Girls’ Strike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를 주도한 실존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처음 에볼라가 공장에 간 날, 공장 입구에서 남자 직원이 직원들의 얼굴을 살피며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리프스'라면서. 전염병이라며 돌려보낸 이 증상은 사실, 공장 측이 원료를 아끼기 위해 독성이 강한 백린을 성냥 원료로 쓰면서 '아래턱 부분에서 괴사가 일어나며 턱이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증상'이었다. 

애니 베전트라는 언론인이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공장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자의 인중독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폭로한다. 애니 베전트에 대해 공장은 소송 등을 벌이며 대응했지만, '우리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입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1400 여 명의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선다. 이때 이 파업을 주도한 여성이 세라 채프먼이다. 

<에볼라 홈즈 2>는 이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적 파업을 극중 주요 사건으로 만든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픽션'으로서의 재미를 더한다. 즉, 알고보니 실종된 세라 채프먼은 연인인 공장주 아들 윌리엄과 함께 공장주의 부도덕한 인 사용 사실을 폭로하려 했다는 식이다. 또한 세라는 동료 메이와 함께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그 댄서로써의 능력을 살려 시슬리라는 여인으로 변장, 이제는 진보적인 의원이 된 에볼라의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루이스 파트리지 분)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라의 연인 윌리엄도, 동지였던 메이도 모두 목숨을 잃고 에놀라는 탐정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헨리 카빌이 분한 셜록, <에볼라 홈즈 1>에서는 배우의 존재감에 비해 비중이 적었던 것과 달리, <에볼라 홈즈 2>에서는 에볼라의 성냥 공장 실종 사건과 셜록의 국고 분실 사건이 맞물린다. 두 사건이 만나게 되는 곳, 그곳에서 모든 일의 배후에 드디어 실종 사건의 지도로 '만나서 반가워요 홈즈'라는 기발한 인사를 남기는 '모리아티'가 등장한다. 

 

 

여성 탐정 셜록 시리즈답게 셜록에게 도전장을 내민 모리아티 역시 미라 트로이(그녀의 이름을 재조합하면 모리아티가 된다. 샤론 던컨 브르스터 분)라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에놀라가 가는 곳마다 등장하던 이 흑인 여성,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흑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래서 존중받지 못한 흑인이자, 여성이 백인 남성 셜록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농락하는 가장 지능적인 악인이라는 설정은 기발함을 넘어 상징적이다. 

또한 첫 번째 시리즈에서 폭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무력 사용을 마다치 않던 전투적 패미니스트 어머니 유도리아와 그녀의 동지 이지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에놀라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셜록은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빼낼 수 없게 되자,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와 이지스는 자신들이 만든 폭탄을 던지며 에볼라를 탈옥시킨다. 

돌아온 에놀라, 그녀는 오빠 셜록과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와 함께 모리아티의 하수인 그레인 경감 등을 무찌르지만 증거가 되는 문서가 불태워지면서 인중독 사실이 덮힐 위기에 놓이게 된다. 문서가 없으면 안될까? 가장 강력한 증거들, 에놀라와 세라는 동료들이 일하는 공장으로 달려가 여공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바로 영화로 온 매치걸스 파업이다. 

by meditator 2022. 11. 14. 22:14

스테디 셀러 인기 프로그램 중에 <자연인>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산골짜기,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사연'과 '야생의 삶'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찾아간 mc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에 소속되어 사는 삶이 여의치않았음을 '토로'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자연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성'들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홀로 야생의 삶을 살아내는 게 여의치 않은 탓이 크리라. 그 여의치 않은 야생의 삶에 자신을 던진 한 여성이 있다. 우리에게는 <원더우먼> 시리즈에서 안티오페로 낯이 익은 '로빈 라이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랜드>이다. 

 

 랜드 ⓒ 넷플릭스

 

자연인이 된 여성
<자연인> 프로그램은 '자연인'이라지만 예능 프로그램답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 삶의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찾아간 mc에게 대접한다며 삼겹살 구워주고 닭 삶아주는 식이다. 그런데 <랜드>의 주인공 이디(로빈 라이트 분)는 차원이 다르다. 랜트카를 빌려 짐을 싣고 나무만이 무성한 언덕 위 집에 도착한 그녀, 이 집을 소개해준 이에게 차마저 가져가라 한다. 핸드폰은 이미 오다가 쓰레기 통에 버렸다. 말이 집이지, 오래전 한 노인이 살다 생을 마감하고, 폐가다시피 한 지 오랜 집이다. 유리창은 깨지고, 집안에는 멀쩡한 게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속에 어울려 있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힘든 경우다. 어떤 때 그럴까? 영화 초반 이디의 사연에 대한 정보는 충분치 않다. 그녀의 친구로 짐작되는 여성이 이디에게 삶을 놓지 말라하고, 그런 친구의 '조언'조차 이디는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삶'이 모욕이 되는 순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지는 순간, 그렇게 이디는 세상에, 사람들과 함께 머물 수 없어 홀로 도망치듯 깊은 산 속 오두막을 찾아왔다. 그녀가 내던진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고통'을 대변한다. 사람이 싫다는 그녀의 저항이 그녀의 상실을 설명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차도, 핸드폰도 없이, 깡통 통조림만 잔뜩 싣고 오두막으로 숨어들 듯이 찾아든 그녀, 영화의 제목처럼 '랜드'에 문외한인 그녀는 '삶'을 버리는 심정으로 '랜드'에 자신을 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랜드'의 그녀는 '고통'스러워 할 여유가 많지 않다. 오래 전 와봤다지만 낯선 그 '지역'에서 그녀는 '생존'하기 위해 매일매일 '전투'를 벌인다. 그래도 추워지기 전에는 할 줄 아는 낚시도 했다. 텃밭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야생 동물들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참치 통조림을 그냥 따서 끼니를 때우던 그녀, 하지만 아직은 '사냥'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날, 멀직이 떨어진 화장실에 있는 틈을 타서 열린 집 안으로 곰이 들이닥쳤다. 화장실에서 벌벌 떨던 그녀가 곰이 떠난 뒤 돌아간 집에는 남아난 것이 없었다. 바닥 구석에 굴러다니는 비스킷 조각을 입으로 밀어넣지만 닥쳐오는 추위와, 그보다 더한 '허기'가 그녀를 잠식한다. 그녀가 원했던 건 '죽음'이었을까? 

 

 랜드 ⓒ 넷플릭스

 

'상실'의 연대 
굶어 죽는 건지, 얼어죽는 건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녀의 집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한참 뒤 정신이 든 그녀의 집에는 불이 피워져 있고, 그녀는 따뜻한 이불 안에 뉘어져 있다. 그리고 간호사가 그녀에게 약을 건넨다. 

죽어가던 그녀를 구한 건 미겔(데미안 비쉬어 분), 사냥을 다니던 그가 그녀의 집에 연기가 더는 오르지 않는 걸 보고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녀에게 도움을 준 대가로 건네던 돈을 거절한 그는 대신, 이 야생의 삶에 무지한 그녀에게 살아갈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사냥을 하는 법, 올무를 만드는 법,  그리고 사냥한 동물을 먹을 수 있게 처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그, 완강하게 세상을 거부한 채 오두막에 웅크리고만 있는 그녀에게 '두레박'같은 손길을 전한다. 

그녀에게 애견마저 넘겨준 그, 그런 그가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소식이 끊기자, 드디어 그녀는 처음으로 길을 나선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데 100달러를 걸었다고 웃는 미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 술에 취해 운전을 했고, 그러다 아내와 딸을 잃은 그는, 이다에게 외려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이다는 비로소 그런 그에게 말한다. 자신의 남편과 아이가 극장에 침입한 괴한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미겔은 용납할 수 없었던 자신을 이다를 도움으로써 구한다. 그리고 이다는 그의 도움을 통해 비로소 '자연인'으로의 삶에 천착한다. 그들의 '상실'이 그들 서로를 구한 것이다. 

 

 랜드 ⓒ 넷플릭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낼 힘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이다는 세상을, 사람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왔던 곳, 아이가 좋아하던 곳으로 떠난다. 자꾸 삶을 독려하며 재촉하는 세상을 등지고. 

그녀를 살려낸 미겔이 그녀에게 묻는다.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그런 미겔의 질문에 이다는 말한다. 그저 이 곳의 삶에 하루하루 익숙해져 가는 것일뿐이라고. 아이를 낳고 우울증에 걸린 산모가, 그녀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는 게 재미있어? 난 사는 게 힘든데, 그러자 슬퍼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다정하게 말했단다. 얘야, 사는 건 재밌어서 사는 게 아니란다. 그냥 그저 사는 거란다 라고. 그저 살아가는 시간이 때로는 그 어떤 위로보다 '치유'가 된다. 

이다는 말한다. 도망치거나 피해서 이 곳에 온 게 아니라고. 스스로 선택해서 온 거라고. 산속 오두막을 선택한 그녀는 그곳에서 결국 살아낸다. 처음 도끼질조차 낯설었던 그녀가 이젠 총으로 거뜬히 사냥을 하고, 그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토막낸다. 더는 미겔이 도와주지 않아도 이제 그녀는 오두막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도, 오랜 친구의 다정한 우정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지만, '자연'에서의 시간이 그녀를 회복시켰다. 그녀가 자신을 던져 살아낸 '시간'이 그녀에게 삶을 돌려주었다. 




by meditator 2022. 7. 11. 16:29

'오은영 쌤' 덕분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적으로 익숙한 학문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족'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내면 아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전까지는 그 '문제'의 촛점이 '아이'에 맞춰져 있다면, 최근에 들어서는 그 갈등의 근원으로 부모,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가 어린 시절 가진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드러난 문제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가족'의 문제이다. 

여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한 여성이 있다. 어른이 된 그녀는 여전히 그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기로 했다. 심지어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그 '아이'가 그녀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가족의 색깔> 속 아키라(아리무라 카스미 분)의 선택이다. 

 

 

25살, 엄마를 선택했다
아키라는 25살이다. 한참 '창창'할 나이, 그런데 '결혼'을 선택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그녀에게 마지막 남았던 당근을 나누어 주고, 카레에는 '고구마'를 넣으면 맛있다며 고구마도 나누어 주던 '따뜻한 남자' 슈헤이, 가슴 통증이 와서 병원에 급히 입원했지만 놀라서 찾아간 아내 아키라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웃겨주려 애쓰던 남자, 영화는 그렇게 아키라의 남편을 그린다.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여성이 이미 다 큰 아이가 있는 남자 슈헤이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녀가 원하던 안락한 가정 대신 '시련'을 주었다. 어느날 가슴이 아프다며 입원한 남편, 놀라 달려온 아내를 웃으며 달래주었지만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이 남긴 건 동업 사기로 인한 빚, 그래서 그들이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날라갔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들이 남았다. 

과연 아키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도쿄의 아파트를 처분한 아키라는 슌야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가고시마를 향한다. 아들의 죽음도 몰랐던 시아버지 세츠오(쿠니무라 준 분)에게 남편의 유해를 전한 아키라는 당분간 자신들이 시아버지 댁에 머물수 있게 해달라 청한다. 그리고 철도 기관사인 시아버지 덕에 기차 덕후였던 남편을 꼭 빼닮아 아버지 못지 않게 기차를 좋아하던 아들을 위해 '기관사'에 도전하고자 한다. 

겨우 25살이지만 아키라는 의연하게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없는 슌야의 부모 노릇을 감당하려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자동차 면허조차 없는 아키라가 '기관사'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일까?

자신을 놀리는 친구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보호자로 호출된 아키라, 아키라는 의연하게 제가 슌야의 '부모'입니다를 외치지만 영화 속 슌야는 아키라를 늘 '아키라짱'이라 부른다. 부모의 날, 아키라에게 학교에 오지말라고 당부한 슌야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는 것처럼 쓴 글을 발표한다. 그런 슌야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하는 아키라, 하지만 슌야의 입에서, 아버지 대신 아키라가 없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만 듣고 만다. 

 

 

슌야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기관사의 길도 여의치 않다. 이제는 사양 길에 접어들었지만 지역민들의 열의에 힘입어 미니 열차로 운행하는 가고시마 열차, 순조롭게 기관사가 되나 싶었지만 기찻길로 뛰어든 사슴을 치고, 그 죽은 사슴을 바라보는 어린 사슴을 보고 나서는 아키라는 좀처럼 예전처럼 그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진다. 

죽은 남편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들, 그리고 젊은 엄마라는 이질적인 '가족 구성원'이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가족의 색깔>, 그 서사의 줄기를 이루는 건 '가족'됨을 지향하는 한 여성의 '의지'이다. 영화는 슌야가 낳자마자 슌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슌야의 아빠가 아이를 기르기가 힘들 것을 염려한 시아버지는 슌야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결정에 동의한다. 형편으로 보면 그게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슌야의 아버지 슈헤이는 그런 '어른'들의 결정을 거슬러 홀로 아이를 키워냈다. 

형편과 편의, 그걸로 보자면 아키라의 결정도 무모해 보인다. 영화는 시아버지의 시점에서 과거 아들과 이제 아들조차 없는 며느리의 결정을 '오버랩'하며 '가족'을 묻는다. 하지만, '가족'을 이루는 건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자신을 끝내 '아키라짱이라 부르는 슌야, 정작 '아들'을 위한다는 그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휴직까지 당할 처지에 놓인 아키라, 그런데 자신을 응원해 줄줄 알았던 시아버지가 말한다.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스스로 기관사가 될 수 없다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두 여성
영화는 선택에 기로에 놓인 두 젊은 여성을 등장시킨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던 아키라와 슌야의 담임 선생님, 노천 변에서 토하고 있던 선생님에게 119를 부르려 하던 아키라는 그녀가 가정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축복'받지 못한 아이니 지우겠다고 결심했던 선생님은 미혼모라는 '존재'를 차치하고 생명의 잉태 그 자체를 '축하한다'고 전한다.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를 스스로 낳아 기를 것을 결심한다. 반면 아키라의 결심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응원해 줄 것 같은 시아버지의 냉정한 한 마디, 그리고 보호자가 되기로 했지만 자신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슌야, '위해서'라는 명목의 그녀의 결심이 그 근간에서 부터 흔들린다.

아빠로 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던 선생님이 그 답을 자신에게서 찾은 것처럼, 아키라에게 필요했던 시간 역시 '누구'가 아닌, 자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돌아온 아키라에게 슌야는 말한다. '아키라는 아키라 짱'이라고. 슈헤이나, 죽은 엄마를 대신한 자리가 아니라, 25살 아키라의 자리인 곳,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직업으로 기관사, 비로소 아키라는 부모로써도, 직업인으로서도  '견습' 딱지를 떼었다. 

전형적인 일본 가족 영화의 정서가 물씬 품어나는 <가족의 색깔>, 하지만 잔잔한 듯한 분위기 안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심상치 않다. 가족이라는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던져진 '과제', 전형적인 '가족주의'인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도발적인 답을 준 영화이다. 


by meditator 2022. 6. 27. 23:58

학교와 락음악이라 하면 이제는 고전이 된 <스쿨 오브 락>이 떠오른다. 우연히 음악 교사가 된 로커 듀이 핀(잭 블랙 분), 자신이 혹한 그룹에서 쫓겨나 학교 대리 교사인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지만, 고답적인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들과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함께 성장하는 영화이다. 학교로 간 락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신선했던 영화, 이제 또 한 편의 락 영화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락을 하는 선생님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락을 선택한 아이들 케빈과 헌터, 그리고 에밀리의 이야기다. 

왕따,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 학생의 선택 
헌터(에드리언 그린스미스 분)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매냥 헌터가 비아냥대듯이 여성들의 가슴에 '식염수 주머니'를 넣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어릴 적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 후  떠나고 그 엄마 얼굴이 가족 사진에서 잘려 나간 이후 늘 일과 연애로 바쁜 아버지, 헌터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구원을 '락'에서 찾았다. 지하의 그의 방 곳곳을 메운 메탈리카 등 메탈 락 밴드의 사진들(실제 메탈리카 멤버들이 결정적인 장면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긴 머리, 가죽바지, 그에게 메탈은 '구원'이자, 삶의 열쇠이다. 하지만 그 거친 복장에도 불구하고, 학교 주먹 좀 쓰는 애들한테 맥없이 나자빠지고 마는 헌터의 모습처럼 그 '구원의 열쇠'는 어쩐지 '찌질'한 헌터의 어색한 포장지같다. 

또 한 명 <그것>의 제이든 마텔이 분한 케빈은 헌터의 유일한 친구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계기가 헌터처럼 케빈이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걸 헌터가 구해줘서이다. 체육 수업을 받는 대신에 고적대를 택했듯이 케빈은 학교 생활의 주변을 조용히 맴돈다. 그런데 고적대 작은 북이나 겨우 치는 케빈에게 락에 심취한 헌터가 드러머의 길을 종용한다. 헌터가 만든 '고문 기계'라는 곡, 하지만 그걸 치기 위한 장비도, 능력도 케빈에게는 없다. 

그런 케빈의 눈에 들어온 한 소녀가 있다. 같은 고적대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에밀리(아이시스 헤이스워스 분)다. 감정 조절 장애가 있는 에밀리는 약을 끊는 바람에 혼자 다른 음악을 하듯 부는 클라리넷을 지적하는 선생님께 욕을 하며 대들고 만다. 근데 그런 에밀리가 어쩐지 케빈은 맘에 든다. 더구나 에밀리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을 본 케빈은 그녀가 헌터와 함께 하는 메탈 밴드의 '베이스' 파트를 맡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청소년 영화'라고 해도 '청소년 관람 불가'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메탈 로드>도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막상 영화는 '순한 맛'이다. 상대 밴드의 드러머의 상습 약물 복용, 폭력, 베드씬 등 적나라한 내용들이 들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머리를 밀고 검고 하얀 색으로 칠을 해도 무시무시하게 '메탈릭'해 보이기 보다 어쩐지 애잔하고 심지어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그런 장치들이 세 주인공들의 우정과 애정의 삼각 관계 속에서 적당하게 양념처럼 뿌려진다. 

아마도 <메탈 로드>의 가장 큰 미덕은 왕따이거나, 부적응자, 그리고 감정 조절 장애를 겪는 청소년들이 '메탈'이란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애쓰는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카드는 허용해도, 아들을 위해 시간과 맘을 허락해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카드로 '메탈' 장비를 사서 학교의 '배틀 오브 밴드'에 출전하고자 한다. 사실 '메탈 밴드'를 표방하지만 헌터의 겉멋과 어설픈 케빈의 연주가 버무려진 상황이었을 뿐인데, 그래도 두 사람은 열심히 준비해 간다. 무엇보다 겨우 작은 북 리듬 정도를 연주하던 케빈이 헌터가 준 음악을 들으며 메탈릭한 연주자로 거듭나는 부분이 흥미롭다.

청소년 영화답게 이들의 밴드 출전은 험란하다. 물론 그 험란함은 충분히 해피엔딩을 예상할 정도의 험란함이다. 둘도 없는 친구 헌터와 케빈은 케빈의 여자 친구가 된 에밀리와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늘 카드만 쥐어줄 뿐 무관심했던 아빠는 헌터의 폭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처방을 내린다. 물론 '영어'의 몸이 된 헌터를 케빈이 구하며 두 사람은 결국 애초에 목적한 대로 '베틀 오브 밴드' 경연에 나서게 된다. 


 

어설프기만 했던 두 찌질한 소년이 '메탈' 정신을 표방하며 좌충우돌한 끝에 선 경연장, 거기에 에밀리가 합류한다. 예의 '메탈' 정신을 늘 운운하던 헌터의 연주와, 앳된 미소년에서 제법 거친 드러머가 된 케빈의 성장도 볼만 하지만, 소심과 폭주를 오가며 자신없어 하던 에밀리가 케빈의 응원에 힘입어 약대신, 메탈릭한 첼로 연주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은 통쾌하다. 청소년의 불안정한 감정을 그저 '약'으로만 다스리려는 오늘날의 세상에 한 방을 먹이는 듯한 설정은 주목할 만한 장면으로 남는다. 

'순한 맛'이라고 했던 것처럼 <메탈 로드>는 예측 가능한 설정과 스토리의 영화이다. 마치 예전에 주말마다 하던 디즈니랜드 아동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이유는 그저 잡풀처럼 밟힐 것 같은 아이들이 그 누구의 도움없이 밟혀도 다시 일어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우정과 사랑을 일궈가며 영화의 제목처럼 자기 삶의 'Lords'가 되어가는 과정은 '순한 맛'이지만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든다. 게다가 <스쿨 오브 락>의 한 주인공이 음악이었던 것처럼 클래식에서 부터 메탈에 이르기까지 음악들은 빠질 수 없는 듣고 볼 거리이다. 


by meditator 2022. 4. 17. 13:12

우리 '액션' 영화의 오래된 갈증이 무엇이었을까? 나현 감독의 <야차>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4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이 영화는 사천왕을 모시는 8명의 신 중 하나인 '야차'를 제목으로 내세운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지만 '부처님을 수호'하게 되는 야차가 가지는 양면성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강인(설경구 분)와 '블랙팀'을 통해 한껏 구현해 낸다.

4년 전 홍콩의 뒷골목, 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지프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그 차를 들이받는다. 한바퀴를 돌아 나뒹구는 차, 보통 액션 장면에서의 호흡보다 한 번 더 나아가며 이 영화의 정체성을 각인한다. 그리고 들이받는 지프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지강인, 거래를 하려했던 인물은 동료들을 배신한 지강인과 한 팀이었던 인물이다. 그에게 총을 들이댄 지강인은 배후를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잠시 뒤 하늘을 울리는 총소리, 배신자에게는 '자비'없는 처단만이! 이렇게 '야차같은' 장르의 이름표를 내보이며 영화는 시작된다. 

 

 

선양을 배경으로 한 무한액션 
'한국' 사회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물론 그럼에도 요즘 장르물을 중심으로 '총기'의 등장이 빈번해지고는 있다. 하지만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액션 장르에서 황야의 결투처럼 총기를 들고 끝장을 보는 서사에 대한 갈증, 그 갈증을 풀어내기 위해 <야차>는  '선양'이라는 지역적 장치를 선택했다. 

선양, 한때 만주족의 수도였던 도시,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가장 큰 공업 도시가 된 이곳을 영화는 동북아 각 나라 스파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로 설정한다.  번성한 도시답게 밤에 더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하지만 조금만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잘해줄게'를 연발하며 데려가 신장, 간, 쓸개 등을 해체해 버리는 '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이다. 또한 마약 등의 사건에 현장범은 그곳에서 '사살'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대낮에 북한로동당에서 외화벌이를 총괄하던 문병욱이란 인물을 두고 북한 스파이들과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에 지강인을 팀장으로 한 국정원도 연루되어 있다. 애초에 블랙 팀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문병욱, 하지만 그 사건으로 문병욱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강인은 그를 되찾기 위해 D7라 불리는 일본인 스파이 오자와(이케우치 히로유키 분)의 아지트를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문병욱이라는 인물 찾기라는 사건을 씨줄로 선양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살벌한 쟁투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걸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를 묻다 
정의에 대한 질문, 그 시작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강직한 검사 한동훈이 등장한다.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공정은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한동훈 검사는 재벌 총수를 구속시키려 하지만 절차 상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 물러선다. 수사관들이 무단으로 총수의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된 밥에 스스로 코를 빠뜨리는 고지식함, 이렇게 영화는 한동훈이 내세운 원칙적인 정의의 한계를 먼저 내보인다. 

한동훈은 좌천되고 다시 돌아가 수사를 마무리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스스로 선양이라는 도시로를 택하게 만든다. 그저 선양 국정원 팀의 불투명한 보고를 감찰하면 된다는 명목이었는데 도착한 그를 맞이한 건 블랙 팀의 총격전이다. 

영화는 날 것의 액션씬에 더해, 지강인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의와 한동훈의 원칙적 정의를 대비시키며 서사적 흥미를 자아낸다.  적에 대해 가차없는 작전, 거기에 더해 배신자에 대해서도 추호의 용서도 없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문의 여성에게 고문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이 사사건건 한동훈으로 하여금 반발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첫 장면, 지강인이 같은 팀원이었던 인물을 '처단'하게 만들었던 '두더지'라는 암약하는 이중 스파이의 존재가 그 갈등의 고뇌를 깊게 만든다.

물과 불처럼 결코 섞일 수 없을 것같은 지강인과 한동훈, 그리고 블랙팀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한동훈에 대해 반발하는 블랙팀원들과의 신념과 인간적인 갈등을 영화는 주된 관전 포인트로 삼는다. <오징어 게임>에서 멀쩡한 대기업 직원에서 결국 자신의 승리를 위해 '협잡꾼'이 되어버린 상우였던 박해수가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고지식하고 원칙적이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지식해서 종종 웃픈 상황을 자아내는, 하지만 그래서 지강인이란 인물과 '버디(BUDDY)'가 되어가는 캐릭터를 맡아 극중 주된 재미를 이끌어 낸다.

 

 

<야차>는 어떤 면에서는 '정의를 이루어 내는 모든 방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며 절차적 정의에 천착했던 , 순수했던 인물 한동훈이 '선양'이라는 공간에서 '정의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는 블랙팀의 작전을 통해 스스로 '정의'에 대해 물으며 변화해 가는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 성장의 결과물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통쾌하게 선사된다. 

물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동훈의 맞은 편에 배신을 하는 이는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 밑바당에 팀원들이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의리'를 장착한 지강인이란 중심이 우뚝 서있어야 한다. 설경구란 배우가 오래도록 우리 영화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기점으로 다른 질감과 색채를 가진 배우로 새롭게 다가왔다. <야차>에서 설경구는 <불한당>이래 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질감의 연기, 그 연장선상에서 '니 껍데기를 벗겨줄게'란 대사에 전혀 이물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야차'같은 캐릭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낸다. 

제작진이 해보고 싶었다는 총성이 마구 울리며, 거침없이 상대방의 머리를 겨누는 선양이라는 스파이들이 번성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한 액션, 거기에 '정의'의 방식을 둘러싼 주연들의 갈등과 화해라는 서사적 재미를 통해 <야차>는 흥미로운 장르물이 된다. 물론, 눈밝은 관객이라면 예측 가능한 악역들, 굳이 <야차>만이 아니라 액션 장르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보여주기 식 선악의 대결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도시에서 한동훈을 소환하는 지강인의 호출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4. 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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