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tv에 등장하기 전에 요식업계에서 성공한 ceo로 이름을 알린 백종원, 여배우 소유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이끌던 때만 해도 그가 쉐프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줄 사람들은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한식 대첩>을 거쳐,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이 시대 화제의 중심 인물로 등장했다. 


6월 10일 오전 검색어를 오르내리는 '백선생 만능 간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등장한 백종원을 화제로 이끈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고급진 레시피이다. 계란 노른자로 만들어야 하는 정통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로 뚝딱 만들어 내고, 흰 콩을 불려 삶아 곱게 갈아야 만들 수 있었던 콩국물을 두부 한 모로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내는 그의 '고급지지 않은' 레시피는 화제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자기만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레시피를 통해 백종원은 그저 가게를 여럿 연 ceo가 아니라, 내공있는 쉐프로서 사람들의 인정을 스스로 쟁취해 내었다. 



백선생이 가르치면 '집밥'도 다르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찾아왔다. 이름하야, <집밥 백선생>, 말 그대로 요리의 ㅇ자도 모르는 네 명의 남자들을 데리고 '요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찌기 <ebs 오늘의 요리>를 기점으로 요리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들은 많다. 그리고 그 요리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은, 말이 요리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지, 언제나, 늘 천편일률적으로 요리를 가르쳐주러 나온 요리사의 내공있는 요리 실력 자랑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매번 tv에 등장했던 음식을 집에서 막상 해보려고 하면 재료에서 부터 시작하여, 막상 요리사는 쉽게 했는데 내가 해보니 만만찮은 과정 상의 장애에 부딪쳐 전혀 다른 요리로 결과하는 마는 것이 그간 요리 강습 프로그램의 현실이었다. 

그렇듯이, 말이 집밥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집밥 백선생>이지만, 무에 그리 다를 게 있겠냐 싶었다. 그런데, 달랐다. 백종원이 하면, 요리도 다르게 가르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요리 교습의 첫 스타트가 바로 '상상하라!' 라는 것이다. 
실력있는 쉐프가 주방에 서서 후다다닥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 가운데 제자들을 옆에 세워놓고, 한다는 말이, 상상하라! 라니. 순간 어느 고승의 선문답을 보는 듯한 기시감에 빠져든다. 

소란스럽게 요리를 못하는 제자들의 일상을 소개한 첫 회를 지나고, 드디어 주방에 윤상, 김구가, 박정철, 손호준 등 요리라고는 해보지 않은, 심지어 이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비로소 도마 등의 기구를 산 초짜 제자들을 데리고 요리를 시작한 백선생, 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요리는 '김치전'이었다. 

요리를 상상하라!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이야 김치전이라는 게 김치 숭숭 썰어 밀가루 적당히 풀어 뚝딱 만들어 내기 손쉬운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방에 처음 서본 이 네 남자들에게 김치 한 포기를 전해주고 김치전을 만들라니, 당장 '멘붕'에 빠진다. 그때 백선생은 말한다.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김치전을 상상해 보라고. 

그건 단지 그 첫 요리뿐이 아니었다. 4회 '따뜻한 밥에 반찬 하나'에서 각자 만들기로 한 밑반찬을 위해 장을 보고 온 제자들에게 그는 다시 한번 상상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요리는 세번 만들어 진다고. 첫 번째, 머릿속으로 만들어 보는 요리, 자신이 무엇을 만들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지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이른바 '시뮬레이션'을 통해 요리의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요리는 실패를 해도 상관이 없으니까. 
그렇게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요리를 기반으로 두번 째 재료를 준비하라고 한다. 상상 속에 요리를 해보았기 때문에, 재료 역시 그에 따라 준비가 되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만들어 보고, 그에 따라 재료를 준비해 보고, 그 다음에 진짜 요리를 시작하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흔히 요리를 처음 해본 사람들이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어디서 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말이 김치를 썰어 밀가루와 섞어서 뚝딱 부치는 김치전이라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김치를 얼마나 어떻게 썰어야 할지, 밀가루는 어떻게 섞어야 할지, 매 순간 모르는 것, 그래서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 투성이인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 백선생은 주목한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으로 '상상'을 제시한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먹어본 김치전을 떠올려 보고, 거기에서 아, 김치는 이 정도 들어갔지, 김치를 잘게 썰었었네, 밀가루는 하면서, 생각해 보고, 거기에 맞춰 음식을 하면 별로 어렵게 요리에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이 백선생의 지론이고, 그의 지론 덕분에 초짜 요리사들은 첫 시간 두려움없이 김치전 만들기에 돌입할 수 있었다. 



4회에는 조금 더 난이도가 높아진다. 각자 만들고자 하는 요리가 달라진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백선생은 가지무침, 감자조림, 달걀 장조림, 새우 볶음을 만들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상상하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상상에 들어간 제자들은 자신들이 머릿속으로 만들어 가는 요리 과정 중에 막히는 것을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백선생은 그에 맞게 적절한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이렇게 상상한 이후의 요리 과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네 명의 제자가 서로 다 다른 요리를 하지만, 그들은 그 요리 과정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상상을통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의문이 나는 점을 백선생과의 소통을 통해 해결하고, 다시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점을 개선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적게 걸리는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맛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제자들 네 명과 함께 장을 보고, 그들과 함께 그들이 만들 요리를 생각해 보고, 재료를 눈으로 준비해 보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비록 눈으로지만, '진짜' 요리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백선생의 요리 교육 과정을 보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주가 아닌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교육의 맛을 경험하게 된다. 



어려운 계량 용어 대신 알기 쉽게 종이컵을 사용해서 양을 알려주는 방식,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허브 대신, 파를 길게 썰어 허브인척 사용하는 융통성,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화제가 되었듯이 '이런거 벌써 가르쳐 주면 안되는데' 하면서 가르쳐준 모든 조림 요리에 만능이 되는 '간장 소스'처럼, 요리를 특별한 '쉐프'의 영역에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상의 재미로 만들어 낸 백종원은, 요리를 가르침에 있어서도 '요리'가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범사로 끌어내려, 접근성을 높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방식은, 놀랍게도, 그저 요리 강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난해한 영역인 '교육'에 대해 본연의 질문까지 한번 던져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요리 잘하는 쉐프 백종원을 넘어, 인간 백종원이 가지는 내공이다. 
by meditator 2015. 6. 10.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