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혹>은 드라마의 내용이 소개되는 순간부터, 1993년작,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은밀한 유혹>이 언급될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세월이 흘러, 데미 무어를 유혹하던 중후한 신사 로버트 레드포드는, 고혹적인 재벌녀 최지우가 되었고, 젊은 데미 무어는, 몸짱 권상우가 되었을 뿐이다. 아니 십여 년 된 옛 영화를 들먹일 것도 없다. 피고지는 각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 중, 재벌남과 젊은 주부, 혹은 부유한 여자와 젊은 남편, 그리고 그의 아내 식의 고리타분한 애증의 관계들이 새록새록 재 부팅되는 경우는 빈번하다.
하지만, 그런 소재의 뻔함에도 불구하고, <유혹>은 그런 뻔함을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드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쩌면, '멜로'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1부 1처제의 부조리함을 논하는 드라마적 장치 본연의 호기심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견고하리라 믿었던 사랑이 파열음을 내는 그 지점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시청자들이, 그리고 드라마의 주인공 차석훈(권상우 분)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3일의 시간에 10억의 대가를 제시했던 유세영(최지우 분)의 유혹은 시시했다. 그녀는 아내를 버리고 온 차석훈에게 그저 자신이 홍콩에서 하고자 했던 컨설팅 관련 업무의 보조적 역할만을 맡겼을 뿐이다.
하지만, 유세영이 차석훈에게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차석훈과 나홍주(박하선 분)을 바라보았던 그 질시의 눈빛은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을 넘보지 않는 유세영에게 안심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 차석훈에게 나홍주는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절규하며 분노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유혹>은 그저 삿된 남녀간의 유혹을 넘어서, 부부간의 사랑, 혹은 신뢰에 대한 문제 제기로 드라마의 시야를 넓힌다.
차석훈은 유세영과의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미 차석훈은, 돈 10억에 자신을 위해 3일을 쓰라는 유세영의 요구에, 아내를 공항에 홀로 남겨 둔채 가버린 그 순간, 아내를 배신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혹>에서 차석훈의 선택은, 얼마전 화제를 끌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 문제 의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가 나은진(한혜진 분)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미경(김지수 분)은 복수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작, 호텔까지 갔던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육체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미경은 분노한다. 그 분노의 핵심은 '사랑'이다. 그저 스쳐지나갈 욕망의 '바람'도 견딜 수 없지만, 심지어, 둘이 진짜 사랑을 했다니! 라는 좌절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송미경의 좌절감은, 공항에서 차석훈을 기다리던 나홍주의 좌절감이다.
차석훈의 상황은 절박하다.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의 집은 자신으로 인해 담보로 잡혀 있으며, 돈을 구하지 못한 자신은 이대로 귀국하면 고스란히 장인의 집도 날리고, 감옥 행이다. 1회의 <유혹>은 바로 그런 차석훈의 절박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2회, 그런 차석훈에게 유세영은 단 3일에 10억이라는 유혹을 한다.
그 누구보다 남편 차석훈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건 아내 나홍주이다. 심지어, 그녀는 아버지의 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려고 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10억을 얻기 위해 유세영에게 달려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차석훈은 유세영과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고 했지만, 이미 유세영에게 달려가던 차석훈은, 그가, 그리고 시청자들이 예상했듯이, 보조적 업무 이상의 일을 기대했었고, 아내 나홍주는 누구보다 그 '딜'의 실체를 안다. 즉, 자신들의 결혼을 담보로 한 '딜'에서 그것을 알면서도 달려간 남편 차석훈, 그의 절박함을 알면서도, 아내 나홍주는 그를 용납할 수 없다. 결국 그가 던지고 달려간 것은, 자신들의 결혼 서약이기 때문에.
개인 파산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몸을 바쳐서라도 돈을 주겠다는 '딜'과, 그런 딜의 목적이 결국은, 한 개인의 소박한 행복이라는 결론은,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유혹>이라는 드라마에 현실성과, 그에 바탕을 둔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다. 애틋하게 포옹하는 차석훈 부부를 바라보던 유세영의 미묘한 눈빛처럼, <유혹>이 뻔한 드라마를 넘어, 심리극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만드는 지점이다.
물론, 일관되게 결혼의 도덕성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달리, 1, 2회만에, 유혹과 파멸의 징조를 보이는 <유혹>은 포진된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의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믿음에 천착하기 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어, '멜로' 본연의,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로 변주될 가능성이 높다. 3일 째 아침, 이제는 돌아가도 좋다는 유세영의 결정에, 뜬금없이, 첨밀밀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차석훈의 행보가 그걸 증명한다. 이미 깨져버린 그릇을 다시 붙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깨져버린 그릇을 붙일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로 <유혹>은 판을 달리할 듯하다. 부디 아침 드라마식의 스테레오 타입의 결론이 아닌, 시청자들이 '나라면?'하면서 멜로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고품격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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