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묻어두었던  삶의 질문들이 툭툭 던져진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나와 얽힌 인연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인가 보다. 

이정은과 엄정화가 친구라니, 극중 정은희와 고미란 말이다. 그런데 극중 인물에 집중하기 전에,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대표적 엔터테이너로 당대를 풍미했던 엄정화란 존재와, 우리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까지 대학로 연출에서 부터 마트 직원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생 역정을 겪으며 뒤늦게 그 이름을 알린 이정은이란 배우가 '친구'로 등장하는 '조합'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정은 배우가 메인 주연을 하는 드라마에 엄정화란 배우가 친구로 잠시 들렀다 가는 시절이 오는 날도 있구나. 


 

얽힌 인연, 우정 
실존의 배우가 주는 감상과 함께, 극중 고미란과 정은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절, 정은희는 도시락도 못싸오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은희를 미란이는 자기 집 승용차를 타고 지나며 구출해 줬다. 게다가 매일 은희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 씩이나 싸왔다. 둘도 없는 친구라며 '의리'를 외치는 은희와 미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제주를 찾는 미란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미란과 은희를 '공주님'과 '무수리'라 농을 건넨다. 

보는 이들만이 아니다. 인연의 속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제주에 도착한 미란은 생업에 분주한 은희에게 '그깟 생선'이라며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음을 야속타한다. 그런데 그 말이 은희의 마음을 후벼판다. 아니, 그저 지금 미란이 던진 말 때문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켜켜히 쌓아왔던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들이 자꾸 은희의 마음 위로 솟구쳐오르기 때문이다. 

'친구'란 우리가 살면서 맺는 대표적인 '인연'의 형태이다. 가족이 가족이라서 들여다 보면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기가 십상이듯이, 친구 역시 친구이기에 서로에게 불평등한 관계의 상흔을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저마다 우정의 이름으로 관계맺은 존재들을 되돌이켜 보면 그 시간만큼 그 안에 부유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질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늘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쉬웠던 은희에게 미란 역시 그런 존재였다. 미란은 은희의 어려운 처지를 배려했지만 그 상처받기 쉬운 마음까지 배려해주진 못했다. 엔터테이너 엄정화처럼 어릴 적부터 이쁘고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던 미란은 도시락을 두 개 싸오듯 착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사를 걱정해 달려온 미란의 마음을 사람들과 내기 꺼리로 삼을 만큼 자기 중심적이기도 했다. 은희는 그런 미란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그런 미란이기에 늘 상처받았다. 내 맘같지 않은 '친구', 그 친구의 '다름'이 나에게 '내상'을 입힌다. 

거기에 우정의 길을 엇갈리게 하는 건 무엇보다 '존재의 양식'이 아닐까. 은희가 폐경에 이르도록 가족들 뒤치닥거리하느라 여전히 '미혼'인 것과 달리, 미란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 미란이 딸과의 졸업 여행을 뒷전으로 하고 제주에 왔다고 하자,  미란은 '자기 밖에 모르는 년'이라며 자기에게 했듯이 그렇게 딸에게도 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은희가 전하지 못한 맘을 대신한 일기장으로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만 두 사람, 미란이 떠나고 옥동이 말한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한 그 의지가지 없는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고. '세 번이나'인 처지의 속내를 은희 역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깟 생선'이라는 말도, 은희를 무시한 게 아니라 너무 일만하는 은희가 안타까워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은희가 먹던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던진 미란의 속내도 들어보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처'받기 바빴던 은희는 그런 사정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저 한 시절 함께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불교의 업과 인과응보에 기인하여 시기가 되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인연'의 때가 있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미란과 은희의 '시절인연'은 그렇다면 언제일까?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친구란 이름이었지만 그 속내는 빚갚음이라 여겨졌던 관계는 '우정'일까? 

친구들이 '무수리'라 할 때마다 '내 무슨 무수리냐'는 그런데 은희  자신이 미란과의 관계를 그렇게 '규정'하며 지내왔던 건 아닐까. 어린 시절 가난한 자신을 보아준 그 '고마움'에 미란을 친구란 이름의 빚쟁이로 여기며 지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달음에 달려간 은희를 '만만한 친구'라 할 때 그런 미란에게 따지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고 돌아선 은희의 마음이 정작 '친구'가 아니라, 채무자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역시 '우정'을 빌어 '채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미란과 은희의 이야기는 은희의 묵은 상처를 깨닫게 되는 미란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미란의 이야기를 통해 정작 작가가 하고자 하는 건 상처로 겹겹이자신을 감싼 은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이만큼이 되어도 여전히 은희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아리다. 극중 종종 은희는 미란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아이로 등장한다. 단지 '추억'일 뿐일까. 아니 어쩌면 '은희'도 그렇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상처받기쉬운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첫사랑 앞에서도 거침없던, 제주도 수산 시장을 휘젓던 은희가 정작 미란 앞에서는 자꾸 위축된다. 관계를 왜곡하는 건 '그 시절에 멈춘 나'다. 

일기장 사건으로 인해 미란과 은희는 비로소 가난한 어린 시절의 채무 관계를 청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채무' 관계 속에는 이제는 '별로가 된'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적 우월함도 숨겨져 있다. 변변찮고 자기 중심적이라며 낮잡아 보던 미란의 진심을 서늘하게 깨닫게 된 은희, 늘 한 수 접어주던 은희가 입술을 꾹 다물고 뒷걸음치는 대신 따지러 간다. 비로손 은희는 '무수리'의 마음에서 한 발 나와 미란의 친구가 된다. 무덤으로 들어갈 뻔한 인연을 '재생'시킨 것이다. 





by meditator 2022. 5. 28.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