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어집을 외우지 못해 컨닝 페이퍼를 만들던 풋내기 경호관, 당선된 대통령이 나를 위해 죽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대통령이 제가 모실 첫 대통령이라며 주먹을 앙다짐하던 새내기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 이제 그는 대통령(이동휘 분)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되어 대통령의 나를 지켜줄 수 있겠습니까' 란 말을 실천하게 되었으며, 그를 우습게 보고 살려보내주었던 재신 그룹 회장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인물로 성장해 버렸다.


그렇게 성장해 가는, 아니 이미 부쩍 성장한 한태경이지만, 7회,8회를 거치며 그를 인도하는 건 이미 죽은 그의 아비들이다. 그의 아버지 한기준, 그리고 또 다른 아비 함봉수가 그에게 지시등이 되어 나타난다. 

(사진; 채널예스)

7회, 경호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김도진이 있는 재신 호텔 스위트 룸까지 쳐들어 갔지만 눈앞에서 아버지의 기밀문서 98이 타버리는 것을 막지 못해 회한에 쌓여 소줏잔을 앞에 높고 앉아있는 한태경 앞에 경호실장 함봉수가 앉는다.
대통령을 암살하다 한태경의 손에 죽은 함봉수이지만, 지금 그의 앞에 앉은 함봉수는 그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경호관이 된 이래 경호관으로서의 그의 등대가 되어주었던 함봉수이다. 그런 함봉수가 말한다. 네가 하려고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쏘아 죽이던 그날처럼 다시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면 결코 망설이지 말라고 손을 내밀어 준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그 누구하나 믿을 사람이 없는 한태경은 그 어느때보다도 애절하게 자신이 죽인 함봉수 경호실장의 손을 잡는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도 치루지 못한 함봉수 실장의 처지가 거론되자 냉정한 동료들과 달리 한태경은 그건 단 한 번의 실수라고 눌러 못박는다. 비록 동료 경호관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한태경에게 함봉수 경호실장은, 그가 본능처럼 경호관으로서의 감을 되살려 낼 때마다, 그와 함께 등장해 그의 길을 밝혀준다. 비록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그에게 여전히 함봉수는 스승이다. 경호관으로서 그의 아비다. 그래서 그가 그 누구보다도 의지한 그의 아비가,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다 동료들에게조차 배려받지 못하는 개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한태경은 더 견딜 수 없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한태경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아버지가 16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고 그때부터 줄곧 혼자서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고군분투하셨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도 혼돈스러워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비밀문서 98의 실체를 접하면서 아버지가 미처 밝히지 못한 채 죽은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행보에 유도등이 되는건, 그처럼 사건을 밝히고자 애썼던 아버지의 지난 모습이다. 

하지만 친아버지건, 정신적 아버지건, 그리고 상징적인 아버지 대통령까지, 그 아비들은 자신이 저지른 오류에 짓눌린 인생들이다. 98년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함봉수는 그리도 냉철하던 경호관으로서의 이성을 저버린 채 그 시절 상관이던 참모총장의 마수에 이용당해 버렸고, 아버지 한기준은 사건의 내막을 모른채 다수의 사람들이 죽어간 사건의 자금 심부름꾼이 되어버렸다. 팔콘의 개라 자처하며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이동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젊은 경호관 한태경이 떨쳐 일어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역사적, 사회적 과오를 범한 아버지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를 반성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록 잘못된 방향이었지만 함봉수의 의도와, 아버지 한기준의 의도는 다르지 않다. 원치 않게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주고자 한 것이다. 이동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태경은, 시인 서정주가 뒤늦게 그리고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나의 아비는 노비였다 라며 자조하던 것과 달리, 아비들의 과거를 밟으며, 그들이 미처 밝히지 못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경호관의 경험을 상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함봉수, 그리고 이제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고자 나선 한태경에 한 걸음 앞서 홀로 움직이던 한기준을 보여주는 <쓰리데이즈>는 상징적이다. 
단지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 대한 독려가 아니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아비 세대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아비로써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진중하게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겠다고 하는 이동휘 대통령은 그래서 현실에 없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 어른들 우리의 모습이다. 아직은 주저앉아서는 안되는 기성 세대와, 그런 어른들의 독려를 받은 젊은 세대가 힘을 합쳐야 겨우 또 역사의 한 고비를 넘을 수 있다는 게 <쓰리데이즈>가 힘겹게 내뱉고 있는 이야기다. 


by meditator 2014. 3. 28.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