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지천으로 쌓여, 우리로 하여금 '포만감'과 '과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게 하는 설음식이다. 그런데 2013년 설을 맞이하여, 그 음식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깨어주고, 심지어 '힐링'까지 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 특집으로 찾아왔다.

바로 방랑식객 임지호의 <식사하셨어요?>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게, 일요일 밤 11시에 찾아드는 sbs스페셜을 통해 그간 꾸준히 식객 임지호씨의 전국 팔도 심지어 시베리아까지 방랑 여정이 전파를 탔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면 그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라도 그곳에서 지천으로 나는 것을 이용하여 감히 먹기에 아까운 아름다운 예술작품과도 같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는 사실 늦은 밤 몇몇에게만 알리기에는 아까운 그것이었다.

그러던 차, 설 특집으로, 물론 이번에도 늦은 시간이었지만, sbs스페셜이란 간판을 떼고, 단독으로 방랑식객 임지호의 식사하셨어요가 등장했다.

 

 

 

1회지만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김혜수와 임지호가 여의도 한복판에서 만난다. 거기서 임지호는 빌딩 숲 속에서 기특하게 스스로 자라난 민들레 등을 캐어내 한 상을 차린다. 비록 자생이지만 도시에서 자라난 풀들의 오염을 걱정하자, 임지호는 말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듯, 풀들도 그러하다고, 잘 씻어서 먹으면 된다고. 그 흐르듯 던진 말과 그의 투박한 손에 씻겨져 음식으로 탄생한 민들레 전병은, 그저 도시에서 생존한 음식이 아니라, 도시라는 탈생명적 공간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과의 공명을 낳는 감동 그 자체였다. 마치 민들레도 살아가듯이, 사람도 그렇게 도시 속에서 살아낼 수 있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듯이.

 

이런 식이다. 임지호의 방랑은, 인스턴트에 찌든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 낙엽을 맛보게 한다. 낙엽 과자라며. 정작 어른인 mc 이휘재는 산에서 나뒹구는 낙엽을 먹는 게 두려워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이 먹자고 하는데, 웬걸, 아이들이 먼저 덥석 베어문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미소를 짓는다.

sbs스페셜에서도 그랬다. 아토피가 극에 달한 아이들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이걸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하지만,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그때도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나갔었다. 그래서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자연에서 캐어내어, 그 성취함을 함께 음식으로 만들어 내고, 자연스레 거부감을 없애 갔었다.

임지호씨의 음식, 혹은 여정을 함께 하다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은, 단지 그가 만든 음식의 '자연주의'에만 있지 않다. '자연주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한번도 임지호씨는 안된다, 아니다 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맞벌이 주부의 '햄국'을 한 숟가락 담뿍 떠먹고는 얼굴에 웃음을 함빡 짓고 '맛있네'라며, '인스턴트에 사람들이 중독되는 이유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편하게 말한다. 그러고는 주부가 두려워해 마지 않는 나물 무치기가 인트턴스 음식만큼 만들기 쉽다는 걸 가르쳐 준다. '쉽지! 쉽지!'를 반복하며.

 

음식만이 아니다. 일찌기 어릴 적 어머님을 여의고 떠돌아 다니며 인간사 희노애락을 온 몸으로 겪어 낸 내공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임지호씨만의 인생관으로 버무려져 나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뒤늦게 깨닫고 슬퍼하는 하지만 선뜻 여전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아이들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하지 말라고, 항상 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라며, 자신도 살면서 늘 어머니가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말은 위로 이상의 인생에 대한 잠언이었다.

특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풍성한 내용을 담기 위해 세 꼭지의 인물에, mc 두 사람과 임지호씨와의 하룻밤까지, 약간은 그 '방랑'의 행로가 급하긴 했지만, 도심의 빌딩 숲에서 캐어낸 먹거리에서 시작하여, 겨울 바다와 숲을 거쳐, 힐링이 필요한 가족까지, 꽤 풍성한 설 이브의 시간이 되었다.

 

최근 주중 거의 모든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성 토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저조한 가운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바로 이런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 집에 모여 사는 개그맨들의 '힐링하며 1주일 보내기'가 인기를 끌고, kbs2의 '안녕하세요'가 일반인들을 게스트로 불러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화제를 끌고 있듯이, 일반인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임지호식 담론으로 달래주고, 거기에 자연주의 '힐링'까지 덧붙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진짜 '힐링 캠프'가 될 것이다.

 

한때 예능 프로그램의 여주인을 해보았기 때문에 특집 시간 내내 넉넉한 내공을 보여준 김혜수에, 그녀를 '누나'라 부르는 마흔 두 살이지만 아직은 가벼운 이휘재의 조합도 신선했다. 이 정도라면 정규 프로그램으로라도 어줍잖은 토크 프로그램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식사하셨어요?'의 입성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2. 9.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