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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12회, 함께 여행을 떠난 혜원(김희애 분)과 선재(유아인 분), 선재는 혜원을 위해 음악 어플을 다운받아주고, 친절하게 혜원이 좋아할 만한 90년대 음악까지 다운받아준다. 그런 선재에게 혜원은 말한다. 자신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고. 대신 혜원이 선재에게 들려달라고 했던 음악은 혜원도, 선재도 태어나기 전의 음악이라는 1973년에 발표한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다. 피아노를 통해 교감을 이루고, 그 교감을 바탕으로 사랑으로 맺어진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맨]만큼 적절한 음악은 없을 것이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으며 선재는 그 노래에 심취하고, 혜원은 조용히 오열한다.
하루 전날 방영된 <마녀의 연애>3회에서 반지연(엄정화 분)과 윤동하(박서준 분) 역시 음악을 논한다. 반지연이 자신이 좋아하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불러주지만 윤동하는 그 노래를 모른다. 이어서 반지연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부르자, 윤동하는 그건 '동방신기'의 노래라고 답한다. 겨우 서로 아는 노랜가 싶어 함께 부르기 시작한 '붉은 노을'을 반지연은 '이문세'의 버전으로, 윤동하는 '빅뱅'의 버전으로 엇갈려 부른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노래는 불협화음 속의 화음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다음 날 윤동하는 함께 와인을 마시는 순간 좋은 노래라며 반지연이 좋아했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들려준다.
(사진; osen)
그저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통해 제법 나이 먹은 여자들의 연애를 다룬 두 드라마 <밀회>와 <마녀의 연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밀회> 역시 <마녀의 연애>와 다르지 않게 선재는 혜원을 배려하여 그녀의 시대의 음악을 골라준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 시대는 없다. 그것은 마치 그녀에겐 삶이 없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대신 그녀에겐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친구이자 오너였던 서영우(김혜은 분)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노래가 혜원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 맨'을 통해 혜원과 선재는 다시 한번 공감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은 둘 사이의 나이차이란 무의미하다. 마치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빌리 조엘의 음악처럼.
반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마녀의 연애>에서 기준은 윤동하가 얼마나 반지연을 이해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자기 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무려 14살이나) 서른 아홉살의 반지연을 스물 다섯의 윤동하가 이해할수만 있다면 이 연애는 오케이다. 그래서, 기센 팀장님이던 반지연은 번번히 윤동하 앞에서 여성으로서의 갸날픔을 들키고, 그래서 윤동하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거기에, 직업 여성으로서의 멋짐은 옵션이다. 반지연을 이해하고, 어느 틈에 그녀를 사랑스러워 하기 시작한 윤동하의 무장 해제는 그가 선택한 음악 '희망 사항'으로 대변된다.
먹을 만큼 먹은 그녀들의 연애라지만, <마녀의 연애>에서 반지연의 나이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한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실감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반지연이 서른 아홉이건, 서른이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서른 아홉이라며 스스로 질색하지만, <마녀의 연애> 속 그녀에게서 나이로 인한 연륜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지연으로 분한 엄정화가 서른 즈음에 하던 로맨틱 코미디와, 그녀가 서른 아홉의 반지연이 되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별 차별성이 없다. 그저 세상에 많고 많은 연상연하의 사랑 중 하나일 뿐.
하지만, <밀회>라는 드라마를 가득 채우는 것은 선재와 혜원의 사랑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재를 사랑하고 되돌아 보니, 미국 조그만 카페에서의 시간만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혜원의 삶이다. 열 네살이나 차이가 난다면서도 덥석 엄마 앞에서 사귀는 남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혜원에게는 없다. 비단 유부녀라서가 아니다. 선재와의 일탈이 혜원의 삶 전체를 벼랑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그녀도 몰랐던 그녀 자신의 위태로운 도박으로 드라마는 충만해진다. 가질 만큼 가지고, 조금 더 하면 더 큰 욕망을 채울 것같았던 중년의 삶이, 사랑으로 인해 괴멸되는 그 중년의 허무함이 <밀회>의 공기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이건, 치명적인 멜로이건, 두 드라마 모두, 드라마의 관점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때론 심하게 상투적이거나, 평면적이다 싶을 만큼 여주인공의 편에서 전개된다. 그들 삶의 결정권은 여주인공에게 달려있다. 남자 주인공들을 등장할 때마다, 자기 자신보다는 여주인공들을 걱정하고, 어쩌면 그렇게 여주인공들이 원하는 것만 해준다. 마치 텔레비젼의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년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결의라도 다진 양. 그게 아니라도, 너도 나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에게, 걱정마라,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진 연하남을 만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은, 처음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하던 반응이 무색하게, '스물 다섯이라니, 땀 냄새도 향기롭겠다던' 반지연의 친구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서른 아홉 노처녀에게 다가온 친절하디 친절한 훤칠한 청년이건, 마흔이 넘은 중년의 위기로 다가온 천재 피아니스트이건, 마치 자신이 회춘이 되는 듯, 그저 감사할 따름일지도.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감사함에 옵션이 따른다는 것이다. <밀회>나, <마녀의 연애>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갑'이다. 잡지사 팀장이거나, 문화 재단 부대표 정도는 되어야, 그래서 특종을 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이거나, 천재를 한 눈에 알아봐줄 정도의 식견을 있어야, 저렇게 설레이는 훈남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언제적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하는 것이 팀장님이거나, 재벌남이었듯이 말이다. 아, 거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서른 아홉이건, 마흔이건 절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와 몸매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한참 젊은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정말 현실의 남자들이 조선시대 꼬마 신랑처럼 자기 보다 열살 이상 많은 여자들을 여자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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