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데이즈> 팬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태쓰노트'라는 말이 있다. 

영화 <데쓰노트>를 빗댄 말로, <쓰리데이즈>의 주인공 한태경과 엮인 사람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 속 상황을 빗댄 말이다.
그런 '태쓰노트'가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14회 태경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대통령은 걱정말라며 자기가 지키겠다던 그 말이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호실장 김상희(안길강 분)는 마지막 한 사람의 경호원이 되어 대통령을 도망가게 하고 총을 맞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태쓰노트'가 아니다. '동쓰노트'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14회 이동휘의 회상씬에서 처럼,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혹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 갔다.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김도진은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동휘 대통령에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김도진은, 악착같이 자신의 그 말을 실천한다. 
그렇다면 그간 <쓰리데이즈>를 통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동휘 때문일까? 15회, 그의 마지막 위령탑 추모 길에 동행하느라 숨져간 경호관들을 보면, 그냥 가만히 청와대에 있다가 사임할 것이지, 왜 거기는 가가지고 라는 생각이 들만큼, 경호관들의 죽음이 안타깝다. 
마지막에 홀로 적들을 맞써 싸우다, 함께 가자는 이동휘 대통령에게 어서 도망가서 당신이 할 일을 하라는 김상희 경호실장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제 이동휘는, 또 다시 자신 때문에 죽어간 저들 경호관때문이라도 죽을 수 없다.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다 이룰 때까지. 

김도진의 수하들에게 쫓기어 홀로 찻길로 뛰어든 이동휘를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진리 사건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였다. 혹시나 그 아내가 10년 전 일로 인한 억하 심정에 이동휘를 다시 저들에게 넘겨줄까 싶었는데, 아내는 말한다. 고맙다고. 
그저 택시 운전기사였던 남편이 친구들과 술 한 잔 먹겠다고 갔다가 개죽음을 당한지 10년, 딸에게 조차 아비가 왜 죽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어미는 이동휘 대통령이 밝혀준 진실에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김도진에게는 그저 돌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양진리 추모탑에 새겨진 가족의 해원이 이동휘의 속죄로 그제야 풀렸던 것이다. 

이동휘는 드라마 내내 무기력한 대통령이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집권 초기 높았던 지지율은 그의 정책의 실패로 말미암아 곤두박질쳤고, 이제 김도진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그나마 그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의 기반들이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그의 뜻에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이동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경제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신의 지난 과오를 밝히기 위한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15회에서 보여지듯이 이동휘가 밝히려고 했던 과오가 과거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그저 드러나는 것은 김도진이라는 미치광이의 이동휘에 대한 한풀이이지만, 취조실의 문신만의 토로처럼, 그 뒤에는, 김도진이라는 미친 놈이 휘저어 주면 줄수록 혼란에 빠지는 대한민국에서 이해를 얻는 그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저 사는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하며 덮었던 과거사들이 우리의 오늘을 규정하고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쓰리데이즈>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동휘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다. 

또한 결전의 날이 지나고, 심판의 날이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드라마의 여명은 밝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이동휘를 지키던 경호관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속 시원한 한 판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적들의 기관총에 무기력하게 대통령을 지키다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경호관들 뿐이었다. 
<쓰리데이즈>는 말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환타지는 그리 쉽게 오는게 아니라고, 심판은 더더욱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라고. 어쩌면 당신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세상의 고됨을 잊고자 틀어놓은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반대되는 위로를 얻기를 원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재벌을 서민과 사랑을 나누고, 가진 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기어코 그들의 코가 납작하게 복수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하다 한다. 

(사진; osen)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지독하다.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사람들, 진실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김도진의 예언처럼 모두 죽거나 다친다. 이제 남은 한태경과 이동휘, 다음 회 그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쓰리데이즈>는 마지막까지 말한다. 종교적 용어로 흔히 쓰이는 '심판'을 굳이 <쓰리데이즈>의 세번 째 3일에 가져다 쓴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끝에서야 어렵게 얻어지는 그 무엇을 상징하게 위해서 였던 듯하다. 종교에서도 심판은 한 개인으로는 죽음 후에, 혹은 한 세상의 종말이 온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듯이, 새로운 세상은 피를 먹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10년의 한이 풀렸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동휘 한 사람의 결심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이제 마지막으로 이동휘 곁에 남은 경호관 한태경이, 즉 단 1%의 진심만이라도 움직여 진다면, 어쩌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16회, 기대해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4. 5. 1.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