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서동하(정보석 분)는 감옥으로 갔다. 금융위원장은 한민 은행 불법 매각 사실을 시인했고, 마이클 장 역시 구속을 면치 못했다. 강도윤(김강우 분)이 밝혔던 대로, 서동하 뒤에서 그 모든 것들을 조정했던 경제 실세들의 모임, 골든 크로스도 사법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민은행은 복구되었고, 직원들에게 돌아간 주식은 강주완기금이 되었다. 


마지막 회, 다시 한번 강도윤과 서동하가 대치한다. 서동하는 일갈한다. 나는 네가 강도윤이던, 테리영이던 상관이 없었다고, 네가 강도윤을 버리고, 테리영이 되는 그 기간 동안 충분히 너는 '돈의 세계'를 맛보았을 테니 자신을 이해하고, 그 세계에 젖어들었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영으로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텐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도윤이 어리석다고 한다. 
그런 서동하의 지적을 강도윤은 거부하지 않는다. 서동하로 인해 총격을 입고 땅속에 묻혀 죽어가던 강도윤이 테리영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오로지 '돈'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시간이었으며, 그만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부'의 유혹도 컸다고 시인한다. 하지만, 쾌락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누웠을 때 자신의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결코 테리영으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강도윤은 자신의 동생과 아버지를 죽인 서동하에 대한 복수를 완성했다. 검사보로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복수를 향해 치달렸고, 강도윤으로서 그를 도왔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자신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상황을 넘어, 자신을 버리고 테리영이란 금융계의 실세로 거듭나면서도 결국 복수를 포기 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동하를 땅에 묻어 버리려고도 했지만, 대신, 내 가족의 원수를 갚은 인적 복수를 넘어,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서동하라는 경제계의 실세와 그의 뒷배를 봐주던 골든 크로스를 붕괴시킴으로써, 보다 내 혈육에 대한 사적 복수는 물론, 대승적인 사회적 복수도 완수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홍사라까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강도윤은 '정의'를 실현했다. 

물론 강도윤의 복수가 '찰지지'는 않았다. 검사보 강도윤으로서의 폭로가 골든 크로스라는 장벽에 갇혀 외로운 독백으로 사라졌다면, 이제 서동하의 인사 청문회에 불려 나올 만큼의 위치가 된 테리영의 폭로는 너무도 순탄했다. 물론 강도윤이던 시절에 비해 보다 풍성해진(동영상과 전 한민 은행장 등의 증인들) 그의 폭로 하나만으로, <개과천선>에서 차영우 펌의 농간에 놀아나던, 금융위원장은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시인했고, 법원은 순순히 서동하와 그의 조력자 박희서(김규철 분), 마이클 장, 골든 크로스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켰다. 비슷한 상황인데, <개과천선>에서 벽에 부딪쳤던 그 장애가, <골든 크로스>는 마지막 회라는 이유만으로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런 명쾌한 혹은 환타지같은 결말이 <골든 크로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강도윤이게 굳이 살 생각이 없지 라며 총을 겨누던 마이클 장의 말처럼, 마치 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던진 강도윤의 복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길은 있고, 언제라도 정의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골든 크로스>는 20부의 시간을 걸려 어렵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자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박희서와 함께 밀항을 하려다 잡히고 만 서동하는, 강도윤에 의해 잡혀 가는 도중 끊임없이 박희서와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설전이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세상 모르고 날뛰다 걸린 철부지 어린 아이들 같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좌장과, 그의 조력자 최고 로펌의 대표, 그들이 보인 모습은, 한 마디로 유치하다. 애초에 마음에 두었던 젊은 여자 강도윤의 동생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에 차서 날뛰며 골프채를 휘두르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가장 고상한 척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잡을 마다하지 않고, 그러다 이익이 갈리면 서로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하고, 서동하가 노출되자, 도마뱀꼬리처럼 그를 자르려고 했던 서동하의 장인이자, 골든 크로스의 대표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의 모습도, 그리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홍사라가 지적한 대로, 머리가 좀 똑똑해서 행시에 붙어 가죽 의자에 앉으니 세상이 다 자기 맘대로 돌아갈 것 같았던 서동하는 매번, '감히 니들이' 하며 강도윤과 그의 가족을 깔보다가, 막상 강도윤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자 답삭 꼬리를 내린다. 다시 강도윤으로 돌아온 테리영이 이제 자신을 그 예전 자신이 강도윤에게 했던 것처럼 죽이려고 하자, 무릎을 끓고 싹싹 빈다. 살려만 달라고, 그러면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하겠다고. 

아마도 <골든 크로스>의 가장 큰 성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정의이기도 하지만, 20회 동안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은 서동하와 그 일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에 있기도 하다. 말끝마다 '피플'을 들먹이는 박희서처럼, 상위 1%의 자신들을 제외한 다수를 그저, 보통 명사 피플로 퉁치며,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한 도구나 희생양으로만 쓸 줄 아는, 멸사봉공과 애국심을 논하지만, 사실 그런 마음따위는 한 톨도 없이, 어린 아이처럼, 내 것밖에 모르는 '얘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상위 1%라는 것을 <골든 크로스>는 명징하게 밝힌다. 그런 이기적인 욕심들에 의해, 한 나라의 경제 정책이 좌지우지되고, 다수의 사람들의 밥그릇이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강도윤의 복수는 늘 벽에 부딪치고 좌절했지만,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통해 이 나라 상위 1%의 실상을 거듭 학습할 수 있었다. 

장르 드라마로서의 한계에 봉착하여 그리 높은 시청률의 성취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플'을 유행어로 만들며, 골든 크로스 폐인을 양산했던 이 드라마는, 몇 %의 시청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시대 장르물의 시금석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사회면에서 벌어졌던 실제 금융 사고의 이면을 유추해 낼 수 있었고,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상위 1%의 실상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짓밟히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자각도 명료하게 해주었다. 

주인공 김강우는, 2009년 <남자 이야기> 이후 오랜만에 대표작을 리뉴얼 할 수 있게 되었고, 정보석은, 미운데 어쩐지 '웃픈' 근자에 보기 드문 절대악을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자이언트>의 조필연을 잊게 만들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강도윤 역의 김강우와, 서동하 역의 정보석이 발군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운데, 마이클 장 등 그외 주변 인물에 대한 캐릭터로서의 풀이 과정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나, 서이레나, 홍사라 등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 인물로 정립되기 보다는, 누구의 딸, 누구의 조력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설정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by meditator 2014. 6. 20.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