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와 장성규, 이제는 자타공인 mc계의 최강자가 된 전현무와 떠오르는 샛별 장성규, 이 두 사람이 한 프로그램에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했다. 거기에 '뉴스'라 하면 공신력 1위의 jtbc에서 선보이는 '쇼'가 된 뉴스, <막 나가는 뉴스쇼>라니,  더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첫 회 앵커 브리핑 마지막에 전현무는 이 프로그램의 고정을 소원한다. 다음 주에도 봤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첫 회처럼 이런 식이라면 거의 '전파 낭비'가 아닐까 싶다. 상은 그럴 듯하게 차렸는데 막상 젓가락을 들고 보니 먹을 게 없어 쓴 입맛만 다시게 만든 <막 나가는 뉴스 쇼>, 예능이 된 뉴스의 앞날이 답답하다. 

 

 

귀신을 팩트체크? 
특종이 있으면 어디든 '막 나가겠다'는 각오로 포문을 연 <막 나가는 뉴스쇼>, 그 첫 번째 코너는 '팩트 체크'이다.  양푼을 뒤집어 자른 단발 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된 최양락과 최양락과 같은 가발을 쓴 장성규가 화제가 된 현장에 직접 나가 '팩트 체크'를 한다는 이 코너, 그 첫 번째 현장은 바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신촌의 영화관이다. 

영화관에 등장한 제작진, 우선 몇 사람이 타지도 않았는데 인원 초과가 울린다는 엘리베이터에 귀신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 몸무게를 공개하며 '팩트 체크'를 한다. 그리고 퇴마사와 고스트 헌터까지 동원하여 엘리베이터에 이어, 귀신이 관객석을 향해 바라보았다는 영화관을 훑는다. 결론은 퇴마사의 할머니 귀신 출현 주장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는 실제 인원 초과를 염려하여 초과 중량을 낮춘 것이고, 영화관 귀신은 취객이 스크린의 불빛을 피해 돌아앉았다는 것. 

무엇보다 과연, 제작진이 말하는 최근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다는 그 영화관의 귀신이 고정을 노리며 첫 회를 내보낸 프로그램의 첫 번째 코너로 적합했는지가 의문이다. 도대체 그 '화제성'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그 화제성을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은 최양락조차 어이없어 하며 돌아가는 그 '어설픈' 귀신 체험도 아니고 과학적 접근도 아닌 과정은 또 어쩔 것이며, 웃으라는 것인지, 진지하게 지켜보라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는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의 몫이 될 뿐이다. 차라리, 그 신촌 화려한 도심 한 가운데 각종 소송으로 인해 방치된 건물이 '괴담'의 진원지에서 헤어나올 가능성을 '팩트 체크'했다면 그래도 조금은 'jtbc'다웠을까?

 

 

김구라가 발로 뛴 '현장 PLAY'
그 다음은 방송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김구라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최근 '혐한 발언'으로 화제가 된 DHC 방송 패널들을 직접 만나보고자 했던 코너이다. 방송은 DHC 방송 중에 각종 '혐한' 발언을 한 패널들의 발언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최근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일본 내 '혐한' 코드를 짚는다. 그리고 방송 중에 기꺼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장담까지 한 패널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방송 전에 '인터뷰' 요청에 대해 답이 없는 상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김구라는 하쿠타 나오키 등을 찾아나선다. 

사실 이 '코너'는 이미 다른 방송에서 '강유미' 등이 했던 코너와 비슷한 모양새다. 하지만, 국내의 인물들을 거침없이 찾아나선 강유미와 달리, 해외, 그것도 최근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어 있는 일본 내 반한 인사를 찾아나섰다는 점에서 부담 요소가 큰 코너였다. 그러기에, 방송 전에 언론을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과 달리, 방송은 앞서 '팩트 체크'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애초에 목적한 바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물론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의 '태극기 부대'처럼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혐한 시위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온 외신이 거기의 태극기 부대 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것이 '보수'의 전형인 양 보도하면 '왜곡 보도'가 되듯이, 그 1인 시위자를 통해 일본 내 반한 정서를 대변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성과는 거리에서 만난 일본의 젊은이들과 시민운동가 다시와라 요시후미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아베로 대변되는 일본의 변화된 정서이다.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일본의 젊은이들, 하지만 '역사'나 '정치'에 무관심한 그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한국인들이 느낀 참담함은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후 세대의 '무지'함에 편승하여 전쟁 주범이라는 일본의 과거사를 떨쳐 버리려는 아베 정권의 야심을 방송은 정확하게 짚어준다. 차라리 '혐한' 패널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이런 '평범함' 속에 숨겨진, 일본의 변화를 냉정하게 짚어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어설프게 '강유미가 간다'와 비교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걸크러쉬 치타와 제아의 까칠한 취재
이어진 꼭지는 걸크러쉬한 치타와 제아를 앞세운 '까칠한 취재', 영화 <도어락>은 물론, 최근 화제가 된 사건으로 주목되고 있는 '도어락'을 취재한다. 건물을 시공하는 과정에서 시공업체가 임의적으로 설정하는 비밀번호, 1234 등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번호 순서라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쉬운 접근을 통해 홀로 사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는 갖가지 방법을 두 패널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론 취지는 시공업체의 안이한 도어락 접근방식이라던가, 취약한 도어락 비밀 번호 접근을 경고하자는 것임에도 막상 보고있자니, 흔히 '방송'을 통해 '모방범죄'를 양산하는 범죄의 함정을 보고 있는 느낌은 무엇인지. 

 

 

전현무, 장성규의 무러보라이브 
마지막 코너는 전현무, 장성규 두 MC가 최근 화제가 된 이슈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질문과 함께 전문 패널들과 함께 알아보는 <무러보라이브>이다. 이 코너에서는 최근 재벌가 자제들과 연예인들로 인한 '마약'에 대해 마약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전문가인 교수, 약사 등과 함께 궁금증을 풀어가는 시간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마약 사건, 굳이 누구누구를 들 것도 없이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마약 사건이 한 둘이 아니다. 이에 <막 나가는 뉴스 쇼>는 마약의 종류와 함께 그 독성, 그리고 중독의 위험성을 짚어본다. 

'마약을 하면 창의성이 좋아지나요?'처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질문을 통해, 흔히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약의 함정에 대해 밝혀주는 건 의미가 있다. 거기에 마약성 다이어트 약, 진통제 등 우리가 무심코 남용할 수 있는 마약성 약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실시간 질문때문이었을까,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마약 중독의 위험성은 광범위한데 비해, 질문은 두서가 없었고, 접근은 지극히 흥미 위주였다. 심지어, 마약을 소지하고 왔을 때 처벌과 관련하여, 장성규의 '그러면 차라리 많이 가지고 들어오는게 낫네요'라는 발언에 이르면, 도대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반문이 들기 시작한다. 

​​​​​​​

첫 술에 배부르랴? 
물론 첫 방송이다. 정규 편성이 기약되지 않은 방송이다. 하지만, 분명 고정을 기약하고픈, 심지어 최근 화제가 된 두 MC 전현무와 장성규, 거기에 김구라, 최양락, 제아, 치타 까지 내노라하는 인물들을 모아놓은 프로그램치고는 속된 말로 '허접'하다. 

무엇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게, 쇼가 된 뉴스인지, 뉴스의 쇼인지, 그 취지가 애매모호하다. 가쉽조차도 되지 않는 소재를 '화제'가 된다며 코너를 편성한 것도 그렇고, 화제가 된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조차도 지나치게 '시선끌기'식이다.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다. 심지어 범죄 수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쇼가 된 뉴스의 최고봉이라면 이미 트렌디 셀러가 된 <썰전>이 있지 않은가. <썰전>이 당대 최고라는 평판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제작진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끄러운 시국에 과연 '쇼'로 보여줄 뉴스가 무엇이야할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웃기기 위해, 우스운 것을 보여주는 것으론 더는 시청자들은 웃지 않는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전현무와 장성규의 조합, 그저 화제가 된 인물들을 모아놓고 망한 숱한 프로그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제작진은 이 '쓸만한' 인물들의 쓰임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모처럼 '아나운서'처럼 돌아온 전현무는 여전히 뜬금없는 그의 자뻑 멘트만 차치한다면 신선했다. 반면, 유투브도 아닌데 눈만 똥그랗게 뜬 어벙벙한 컨셉으로 흐름과 맞지않는 질문을 던지는  장성규를 여기서 또 보아야 하는 건 벌써 지겹다. 이제는 날카로움도, 기동성도 떨어진 김구라를 지켜보는 것에도 '아량'이 필요하다면? 전현무와 같은 예능형 MC의 길을 걷는 장성규라면, 선배와 후배 사이의 긴장감을 충분히 자아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9. 9. 16. 16:47

각 방송사 별로 대상을 휩쓸은 유재석이 우리나라 mc계의 대표적 인물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유재석'이 나온다 하면 안봐도 유재석이 어떻게 할 것인지가 다 미리 그려지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함께 하는 웃기는 동생들을 구박해 가며 웃음을 뽑아내고, 게스트가 나오면 게스트의 웃음 포인트를 뽑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동시에 주변 패널들을 동원하여 게스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며 찬사를 거듭하는 등등 안봐도 그려지는 유재석의 장점이, 이제는 굳이 찾아보게 되지 않는 유재석의 낡은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어느 틈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오래된 가구처럼 되어버린 듯한. 

 

 

하지만 그런 유재석이란 이제는 진부해져 가는 듯한 '스테디셀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일로 만난 사이>이다. 뜻밖에도 이 프로그램은 언제인가 부터 진행에 가장 유능한 mc 유재석을 황량한 들판에 풀어놓아 버린다. 진행을 하고 싶어도 뭔가 토크를 하고 싶어도 일이 먼저이다 보니 일에 치여 토크를 할 틈이 없다. 토크라도 할라치면 함께 한 게스트가 뭔 녹차 밭에서 어색한 토크냐며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하루 고용하신 주인장께서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호시탐탐 잔소리를 하시는데, 그런데 '토크' 한번 제대로 하는 이 예능이 신선하다. 심지어 이제는 틀에 박힌 듯한 유재석의 '재발견'같은 생각까지 드니, 다시 한번 유재석의 전성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강호동, 이경규도 겪은 
어쩌면 다들 한번씩 겪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1박2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던 mc 강호동이 사회적 물의와 함께 돌아왔지만 그의 폼은 예전같지 않았다. 아니, 강호동은 예전과 같았지만 예능의 달라진 포맷이 더 이상 시끄럽게 호령하게 프로그램을 이끄는 강호동을 튕겨냈다. 침체기를 거듭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나영석 피디였다. 예전 <1박2일>을 함께 했던 나영석 피디와 함께, 심지어 당시만 해도 방송 편성조차 없이 컨텐츠로만 승부를 걸었던 <신서유기>는 좀 다들 모라잔 형들의 해프닝인 <1박2일> 초창기 컨셉에 열광한 젊은 층의 지지를 얻어 시즌6에 이르렀다. 거기에 역시나 강호동이 이끄는 이 아니라, 여러 패널 중 하나로 자리한 <아는 형님> 역시 강호동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카리스마 대신, 시끄럽고 에너지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면도 있는 '형님'이라는 면모가 강호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허기는 불세출 이경규만할까. mbc <일밤>으로 전성기를 열었던 그가 mbc가 아닌 kbs2에서 <남자의 자격>으로 새로운 예능의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집단 예능의 트렌드가 지자 각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다 심지어 <마이 리틀 텔레비젼>까지 진출하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예능으로 연결한 <도시 어부>로 끝없는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유재석은 <무한도전>, <런닝맨> 등과 함께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마침내 종영하고, <런닝맨>의 인기도 예전같지 않으며, 제 아무리 포맷을 변화시켜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해피 투게더>와 함께 유재석도 지지부진하게 대상 mc의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가는가 싶었다. 

유재석, 들판에서 헤매다 
그런 유재석을 구한 건 뜻밖에도 jtbc에서 그와 함께 <투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효민 피디였다. 오랫동안 예능을 떠나있던 이효리를 <효리네 민박>을 통해 대번에 트렌디한 예능인으로 끌어올렸던 정효민 피디, 묵은지같았던 유재석을 그를 도와주는 후배들이나 선배없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유재석이 제일 취약한 진행할 꺼리조차 없는 들판에 풀어놓았다. 

첫 회차는 녹차밭, 푸르른 녹차잎만이 무성한 녹차밭에서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함께 녹차잎을 따야 했던 유재석은 뜻밖에도 그간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안정감있는 진행을 팽겨치고 안절부절한다. 물론 종종 '깨발랄'한 '도발'을 감행했지만 그럼에도 유재석하면 안정된 진행의 대가였는데, 그러던 그가 단순 반복된 녹차잎 따기에 어쩔 줄 몰라하는 건 의외의 '포인트'다.

이경규가 그렇고, 강호동이 그랬듯, 이제는 '대가'가 된 듯한 유명인이 그들의 빈틈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 보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또 다른 면모에 새롭게 호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다. 그간 똑 부러지게 진행을 잘 하던 유재석이 녹차잎 따는 그 단순한 일의 반복에 어쩔줄 몰라하며 녹차밭 고랑을 헤맬 때, 그리고 진행할 꺼리가 없어 무기력해 하고, 이효리의 도발적인 질문에 어쩔 줄 몰라하다 솔직한 자신의 가정사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박제된 예능에서 유재석이란 사람이 끄집어 내어지는 듯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2회는 그런 감회를 배가시킨다. 유재석보다 더 말도 잘 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일도 잘하고, 심지어 잘생기기 까지 한 한때 <무한도전>을 함께 했던 차승원의 등장은 그간 늘 '제리' 역할을 맡아했던 유재석을 졸지에 '톰'의 위치로 격하시켜 버리며 뜻밖의 웃음을 제공한다. 

 

 

이거야 말로 무모한 도전 
알고보니 일도 잘 못하는 유재석, 더위에 쩔쩔매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재석을 보다보니 문득 차승원과 함께 그 말도 안되는 연탄을 나르던 시절의 <무한도전>이 떠오른다. 아니, 그 시절의 <무모한 도전>말이다. 도대체 저게 무슨 예능이야 라고 했던 초창기 <무도> 시절 유재석은 동료들과 함께, 차승원과 그 고구마 밭에서 하루종일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듯 그렇게 예능을 했었다. 심지어 주인장의 대놓은 편파적 잔소리는 안그래도 일못하는 유재석의 면모를 한층 살려내며 예능의 대가가 아닌 유재석의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더한 건 진짜 말 그대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듯 연방 맛있다를 되풀이 하며 먹은 점심 후 정자에서 차승원과 나눈 '나이듦'의 이야기이다. 늘 예능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 애쓰던 유재석이 이제 오십 줄에 든 차승원과 함께 오십이 되어가는 시절의 자기 속내를 터놓는 장면이야말로 <일로 만난 사이>의 백미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저 세월을 견뎌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두 '베테랑'을 통해 전해듣는 울림은 또 다르다. 천하의 유재석이 이제서야 자신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내려놓고 편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솔한 고백은 '나 아니면 안돼'라는 이 시끄러운 시대에 그래서 더 담백하게 오랜 울림으로 전해진다. 

​​​​​​​

<일로 만난 사이>는 묘하다. 일 하느라 유재석이 잘 하는 '토크'할 사이가 없다. 그런데, 일 하다 중간에 먹는 새참이 꿀맛이듯, 일하다 중간에 서로 잠깐씩 나누는 대화의 깊이와 무르익음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이효리와 차승원을 초대해 '토크'를 했다면 이런 대화가 등장했을까. 나이듦과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는 녹차밭과 고구마밭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유기농 녹차와 바다를 품은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진득한 땀의 역사는 어떻고.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먹는 밋밋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찬 물 한 바가지처럼. 일 속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운 유재석과 게스트들의 진솔한 모습과 대화는 범람하는 예능 속의 또 다른 '해갈'이다. 

by meditator 2019. 9. 1. 16:49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 '탄핵'의 봇물을 터트린 주인공, 바로 , k 스포츠 체육 재단의 전 부장 노승일이 있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노승일 씨는 최순실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국정 농단'의 전말을 밝히는데 앞장선 '공익 제보자'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우리 사회 '갑질'의 대명사가 된 '땅콩 회항',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대한항공 사무장 박창진이 있다. 2014년 12월 많은 승객을 실은 대한항공 086편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vip였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지시로 이륙 도중 회항 박창진 사무장을 내리게 하였다. 기내 마카다미아 서비스 메뉴얼에 대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오해와 이에 대한 박창진 사무장의 설명에 대한 분노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사건 초기 사측의 압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을 강요 받았으나 박창진 사무장이 방송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폭로,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든 '땅콩 갑질 사건'의 분수령이 되었다. 

 

   

 


5월 31일 <거리의 만찬>에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는 그 사건의 주인공들, 당시 공익 제보를 했던 두 주인공 노승일 씨와 박창진씨를 초대했다. 과연 왜 그들은 공익 제보자가 되었으며,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본인들이 아니고서는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2001년 줄리아 로버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안겨준 <에린 브로코비치 (2000)>는 중금속을 배출하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한 여성이 끈질긴 소송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여성은 결국 지역 사람들을 지지를 얻어내 대기업을 굴복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에린 브로코비치' 공익 제보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그 주인공인 노승일 씨와 박창진 씨는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왜 '공익 제보자'가 되었나?
배드민턴 선수 특기자로 대학에 간 노승일 씨는 이후 증권맨으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최순실 씨를 만나 함께 일을 했지만 첫 번째 해고를 당하고, 다시 최순실의 부름을 받아 독일로 가 삼성과 최순실의 딸 정유라 사이의 커넥션의 목격자가 된 그는 '승마 공주 사건'이 벌어지자  다시 또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처지를 겪었다.

그가 일방적 해고에 부응하지 않자 모든 지원을 끊고 곰팡이 핀 마늘쫑에 간장에 소면을 말아 먹으며 독일 밭에 남겨진 감자를 주워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시절을 견디며 그는 자신이 목격했던 자료를 메모리카드에 넣어 신발 밑창에 넣어 귀국했다. 매일 밤 말 관리사가 없는 시간을 틈타 자료를 스캔하고 스캔한 자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불길로 인해 주민의 신고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전혀 신변의 보장이 되지 않는 환경을 견디느라 늘 주변에 칼을 두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료를 모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그가 지켜보고 목격했던 모든 것을 그 자료와 함께 만천하에 '폭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공익 제보'가 '복수'가 아니라 못박는다. 비록 일방적인 해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신의'를 강조했던 최순실 개인에게는 미안하다는 노승일, '사람'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가장 무섭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공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에 박창진 사무장은 자신의 공익 제보는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2005년 입사 3년차에 사무장으로 급속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2010년 팀장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vip들을 모시고 운항을 했으며, 그 중에서도 kip, 즉 대한항공의  vip들을 지속적으로 모셔왔던 장본인이었다.  심지어 안주인 이명희씨 꽃놀이를 위한 비행까지 동승했던 경험자로, 그런 vip들의 탑승이 예정될 시 한달 전 부터 마치 연기자들이 연기 연습을 하듯 메뉴얼을 습득해왔다는 박창진 사무장, 당연히 그날의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제공한 건 '알레르기' 환자에 대응한 새로운 메뉴얼에 따른 정당한 응대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현아 전 부사장은 '야, 이새끼가 어따대고 말대꾸야, 당장 비행기 세워'라는 강압적 지시를 내린 후 그를 홀로 겨울의 미국 공항에 내려두고 떠났다. 그리고 잇따른 질책과 회유, 언론은 집요하게 취재를 했지만 상황의 전개는 진실과는 다르게 전개되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참고인 진술로 검찰에 출두했지만 심지어 조사실 안에 대한항공 관계자가 있는 상태에서 마치 자신이 가해자인듯 사건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서 동앗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 인권 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마저도 '민간 업체가 관여할 수 없다'라는 회신을 받고 '열 수 있는 문이 없어' '나는 죽을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상황에서 tv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라 토로한다. 

 

 

제보 이후, 여전히 어깨에 얹혀진 내부 고발자의 무게 
그렇게 자신을 던져 공익을 제보했던 노승일과 박창진 사무장, 그 후 그들은 사회적으로 '보상'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노승일 씨는 서울을 떠났다. 검찰 조사만 6개월 등 서초동, 강남에서 계속 이어진 조사, 조사, 그리고 '내부 고발자'였던 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또 그럴 것이라는 낙인이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꿈 꿀 수 없도록 만들었다. 광주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자 내려간 곳에서 만난 폐가, 있는 돈, 없는 돈에 대출까지 받아 새로이 건물을 지어 무엇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그만 불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려운 상황이 전해지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을 해주셨지만 그 돈으로 자신의 집 대신 불이난 옆집 할머니 집을 세워드렸다는 그, 지금은 광주에서 자신이 그간 하던 일과 무관하게 삼겹살 집을 운영 중이다. 

박창진 사무장은 사무장 대신 지부장이란 직함을 얻었다. 하지만 사무장을 잃은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신상 털기부터 시작하여, 그를 향한 악의적인 가짜 뉴스와 루머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사람들은 가짜인 줄 알면서도 그게 대세가 되면 동조하는 세태, 사내 게시판은 역으로 그가 갑질을 했다부터 줄줄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기가 십상이란다.

아마도 <거리의 만찬> 출연 이후에도 그럴 거라고 자조적으로 웃는 박창진 사무장, 불면증에 시달리고 수차례의 휴가와 병가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복직 후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큰 양성 종양을 수술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측만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같이 일한 팀원들이 자신의 감시자로 돌변하여 등을 돌린 현실, 다행히 직원 연대 노동 조합이 결성되어 지부장으로 자신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또 '공익 제보자'가 될 거라며, 대신 '코트'는 바꿔 입고 나가겠다며 넉살 좋은 웃음을 보이던 노승일 씨 하지만 자신의 고단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노승일 씨도, 박창진 씨도 언론 등에 인터뷰를 하면 혹시 또 다른 자신과 같은 '공익 제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밝게 웃고 힘있게 이야기 하려 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다. 


 

 
<거리의 만찬>은 이제는 가물가물해져 가는 사회적 사건의 두 공익 제보자를 초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그 사건을 환기한다. 그리고 두 공익 제보자의 여전히 무거운 현실의 걸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짚어본다. 

2015년 2월 12일 조현아는 항공 안전을 위반한 혐의로 1년 징역 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항로 변경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집행 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법원 상고심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7년 '항로 변경죄'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박창진 사무장과 마카다미아를 제공했던 승무원은 미국 뉴욕 주 법원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각하되었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우리 사회에 '갑질'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시켰던 계기가 되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 '사회적 책무'의 대가를 여전히 무겁게 짊어지고 가고 있다. 

by meditator 2019. 6. 1. 06:16

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 오늘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맞은 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고정 관념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등 남자 편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 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자다운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남자답게'가 끝났는데, 여전히 '여자답게'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 편,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그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두번 째 수업.
역시나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라면, 만약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며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Think outside of the box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난무하는 감각적 뉴스,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건들을 계속 자극적으로 양산해내고 아이들은 그런 '뉴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그거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자신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익힌 '응 니에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에서 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를 무분별하게 습득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감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의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성평등' 교육만이 이런 현실에 대한 '백신'이 될 거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야동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가 유투버로 부터 아이들에게 까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현실에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저 여성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들다는 성역할에 대한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한번이 당장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네,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아져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에너지로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거칠게 반응하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란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하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미개'해서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진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이라는 소회 끝에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 남학생보다 운동을 덜 좋아하는 여학생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에서,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꿔가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이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표현의  관행 자체에 대해 선생님들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간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 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의 신록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 딸끼 뷔페가 작은 보답을 전한다. 



by meditator 2019. 5. 4. 14:37

10년의 시간, 매 주 꾸준히 해왔던 게 있을까? 아마도 먹고 자는 거 말고는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일이라 쳐도 10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해온 사람들이 있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0주년, 440 회의 시간을 달려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이 특별한 시간, 하지만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유스케)>, 흔히 유스케라 부르는 이 프로그램, 이 약자의 본보기가 되었던 슈스케가 명멸해버린 지금도 밤 하늘 그곳에 늘 있던 그 별처럼 이번 주도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요즘 유스케가 언제 하는지 아시는가. 토요일, 일요일까지 오가던 이 프로그램이 요즘은 금요일 밤 11시 20분에 한다. 12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 하던 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평범 속의 진리 
그 특별한 10주년을 연 건 놀랍게도 10년의 시간동안 한번도 <유스케>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김현철이다. 유희열의 말처럼 이상하다. 몇 번은 나온 거 같은데, 언제더라  노총각 4인방이라고 하며, 윤상,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이 나와서 서로 놀리며 흥겹게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던 게. 그게 벌써 언젠가 싶게 다들 아기, 아니 얘들 아빠들이 되었다. 그 네 명이 노총각으로 나왔던 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였는지, <이소라의 프로포즈> 였는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르고 같았던 kbs2의 계보을 이어 오늘의 <유스케>가 있으니, 그 앞서 선배들까지 따지자면 유장함 뮤직쇼의 계보이다. 

어쨋든 그렇게 10주년을 맞이했는데도 여전히 <유스케>에 출연하지 않은 가수들이 있단다. 10주년 맞이 인터뷰를 한 유희열의 오랜 '고소원'인 조용필부터,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파릇파릇한 신인가수들까지. 

10주년을 맞이한 <유스케>가 특별했던 건, 바로 여전히 이 무대에 서야 할 가수들이 있고, 언젠가 이 무대에 설 가수들이 있다는 그 '존재감'의 확인이었다. 이제는 <복면가왕> 아저씨로 젊은 층에게 더 어필한다는 19살에 '천재'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던 <춘천가는 기차>와 <연애>의 김현철이 30주년 앨범을 기약할 수 있는 무대가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을까.

 

   

 

또한 정말 우주에서 온 음악같은 신비하고 묘한 본인들이 표현하듯 본데없고 그래서 자유로운 방송 처음이라는 우주 왕복선 사이들 미러의 '난 아마 회사에 뼈를 묻지 싶다, 가난은 나를 잡고 나는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 다치기 전 내 두 눈을 감기고 싶어, 150씩 일년 계약, 거둬주신다면 작업실에 쳐박혀서, 우싸미 하나 1back 하나, 정규 하나, 잘할 자신 만만, 나같으면 투자 가' 이라는 유희열의 표현대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이후로 모처럼 신선했던 '설마는 사람잡고 철마는 달리고 싶어'와 같은 음악을 들을 곳이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가 새로운 설레임이었다면, 볼빤간 사춘기는 그런 <유스케>의 '선구안'의 증명이다. 불과 몇 년 전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유스케>에서 첫 무대에 섰던 '볼빨간 사춘기', 그 이상한 그룹명과 함께 '서양 수박 1위'가 소원이 야무지다 느껴졌던 그 시간을 이제 다시 돌아온 <유스케>에서 여유롭게 자랑의 한 품목으로 펼친다. 어디 볼빨간 사춘기 뿐일까. 아이유에서 부터, 내로라하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첫 번째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유스케>였었다. 

그 어떤 화려한 팡파레와 축하 공연보다 김현철로 시작해서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로 마무리된 이 날의 <유스케>만큼 앞으로도 계속 유스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래 해서 계속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래 여전히 계속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낸 시간, 그래서 10주년 <유스케>는 빛났다. 

 

  ​​​​​​​

mc, 그리고 뮤지션 유희열 
또한 인터뷰에서 총무,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정의내린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의 음악과 함께 10주년의 곳곳에서 직조되어 빛났다. 30주년이 된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듣고 이런 사람과는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던 고등학생 유희열이 프로듀서 김현철이 말한 자신의 작품을 성취감에 대한 지론을 듣고 토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유희열 뮤직 월드의 시작은, 김현철 6집의 <이게 바로 나예요>이 병약하게 '술마시면 취하고 넘어지면 아파요'라고 읊조리듯 부르던 객원가수 유의열에서, 크러쉬를 객원가수로 하여  함께 부른 'you&me 수많은 사람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thar just you 너를 만난 건 믿디 못할 놀라운 기적' U&I를 거쳐, <무한도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그래, 우리 함께>,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었어'의 감사 인사로 마무리되며 mc 유희열과 그의 음악을 돋을새겼다. 

평범한 듯 했지만,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가장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빛났던 시간,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빛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하지만 힘있게 강변했던 시간, 그래서 다음 중에 다시 만나러 가고 싶은 10주년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9. 4. 27. 06:01

'크리에이터'의 시대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공중파'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젊은 세대라 한정 지을 것도 없다. 나이가 지긋한 세대조차 이젠 공중파, 케이블, 종편, 거기에 더해 유투브까지 각자가 선호하는 미디어 선택에 한계가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유투브 등 에서 적극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일인 창작자들이다. 패션, 요리, 뷰티, 시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아프리카 방송, 블로그, 유투브 등 기존의 방송과 다른 채널에서 '아마추어'로 시작하여 이제 '중소기업'에 맞먹을 만한 콘텐츠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기존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대신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그리고 필요한 콘텐츠들을 찾아 크리에이터들의 개인 채널을 찾아든다. 

 

 

당연히 이들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은 기존의 방송계에는 '위기'다. 또한 다른 면에서 기회이기도 하다. 일찌기 지난 2015년 mbc는 발빠르게 이 개인 채널 방송을 방송용 플래폼으로 변화시킨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방영하여 이슈를 선점한 바 있다. 제한된 시간에 스튜디오 내 각각 다른 방에서 다양한 분야의 출연자들이 방송을 하며 동시에 시청자들과 소통하여, 그 결과물로 그 날의 승자를 선택하는 이 '이원 방송'의 형태는 선도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생방송과 공중파 예능이라는 이원 방송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에 정체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 시도가 이제 sbs의 추석 특집 <가로채널>로 다시 찾아왔다. 

이영애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에 힘입어 
여전히 '산소'같다는 이영애 씨의 출연에 대한 과도한 송그스러운 리액션과 '가로채널'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제스처를 둘러싼 강호동, 양세형의 대왕대비 마마 이영애의 '점지'를 바라는 식의 대결로 장황하게 시작한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 세 출연자의 일인 채널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이냐를 묻지도 않고 이영애의 출연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처럼, 방송 시작전 대부분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이영애의 예능 출연,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육아 브이 로그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공개했다는 사생활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이영애라는 화제성을 업고 출연자들의 개인 방송을 연다.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하는 방송이 어색해서 물묻은 시소에도 냉큼 올라탄 강호동과 달리, 시청자들은 그가 내세운 '강호동의 하찮은 대결'이 어쩐지 너무 익숙하다. 승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거리의 사람들과의 해프닝은 이경규와 함께 한 끼를 찾아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한끼 줍쇼>의 한 장면 같았고, 고심한 첫 출연자 승리와의 댄스 클럽 재연에서 부터 먹물 까지 동원한 하찮은 대결은 강호동의 또 다른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한 버전같았다. 프로그램은 가장 안정된 mc로서 강호동을 선택했고, 강호동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언제나 처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헌신적이었지만, 그게 신선하지는 않았다. 

강호동에 이어 바톤을 받은 건 양세형, 그는 스스로 인생의 90%라 할 수 있는 먹방에 도전한다. 맛집 장부, 맛집 도장깨기라 내세운 '맛장 채널'에서 양세형은 전문가 이용재와 신참자 제니와 함께 평양냉면의 다양한 맛에 도전한다. 

새 부대에 담겨진 새롭지 않은 술 
이제는 정말 흔하다 못해 지겨운 먹방 채널,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먹방의 채널을 운용한 양세형의 평양냉면 도장깨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콘텐츠이지만, 냉면에 대해 제법 깊이있는 식도락을 가진 양세형의 견문과 전문가와 신참자를 어우르는 진행 덕분에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이미 한번씩은 다 다루었던 평양 냉면의 먹방은 새 프로그램의 첫 방송의 '신선함'이란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차라리 그를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었던 숏터뷰의 다른 버전이었다면 새로웠을까. 

 

 

두 기존의 예능 mc와 다르게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을 만든 이영애, 여전히 '산소같다'는 싱그러움과 신비로움을 가진 이 여배우는 그런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제는 8살이 된 두 쌍둥이의 엄마로서 육아 브이 로그를 선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뿐이다. 도시의 다른 부모들과 달리, 양평의 마을에서 자라 '고향'을 가진 아이들과 다시 고향을 찾아 산책을 하고,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수확하고, 함께 송편을 만든 시간은 '아, 이영애에게 저런 면이'라는 화제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미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가지고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장악한 현실에서 '이영애'라는 이름만으로 다음을 기약하기엔 '예능적 요소'가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을 해도 너무도 익숙한 강호동, 왜 양세형이 굳이 먹방을, 그리고 엄마가 된 이영애라는 화두를 가지고 펼친 <가로 채널>, 과연 이 프로그램이 크리에이터가 된 이들의 일인 채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의 흡인력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콘텐츠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면, 새 부대에 어울릴 새 인물들의 조합이었다면 그 콘텐츠의 새로움을 담보해 내지 않았을까란 물음표를 더하며, 새 프로그램의 도전을 가장 안전하게 시작한 <가로 채널>의 다음이 그닥 궁금하지 않다는 게 안타깝게도 가장 큰 숙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8. 9. 26. 16:05

한동안 허영만의 <식객>이 붐이었다. <식객>의 묘미는 뭐였을까? 그 만화를 읽은 독자들 나름의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 우리의 맛에는 '내가 아는'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맛도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맛보고 싶은' 맛도 있다. 어린 시절, 혹은 지나온 시절에 맛보았던 그 맛들이 만화를 통해 재현되며 묻어 두었던 추억의 감성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함께 살아왔던 우리네 삶이건만 미처 알지 못했던 전국 방방곡곡의 사연어린 맛들이 독자들의 발길을 전국으로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올곧이 리네 삶이 지나간 흔적에의 공유이자 공감이었다. 바로 그 '식객'의 묘미가 예능으로 재현되려고 한다. sbs에서 7일 첫 선을 보인 <폼나게 먹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상징인 김상중이 예능을? 그 김상중이 하려는 예능이라면 뭐가 다를까? 라는 흥미를 부추긴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것이 알고싶다>의 '그런데 말입니다'로 프로그램의  서막을 연다. 매년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식재료의 수가 27000 개. 이런 진지한 김상중의 나레이션에 8년만에 tv로 돌아온 채림이 의문을 제기한다. 갈수록 갖가지 해외의 신기한 과일이나 식재료가 수입되며 우리의 식탁은 풍성해져만 가는데 사라진다니 라고 말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 농축수산물, 하지만 그런 가운데 토종 식물의 멸종이 우리 농업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 과연 우리의 토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까? 그 하나의 길로서 예능 <폼나게 먹자>가 제시된다.  <폼나게 먹자>는 먹방의 홍수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맛을 찾아가는 업그레이드 된 ' tv식객'의 포부를 연다.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7일의 메인 먹거리를 찾아나서기 앞서 에피타이저로 네 사람의 출연자 이경규, 김상중, 채림, 로꼬는 유현수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장장 30일간 숙성한 한우를 시식한다. 소고기를 30일이나 삭히다니. 하지만, 오늘날처럼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염장이나, 훈증과 함께 '삭히는'건 주요한 요리 방식 중 하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도, '회'도 사실은 삭힌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활어회'를 즐기는 이제 생소한 예외가 된 세상이다. 

삭힌 소고기, 당연히 삭혔기에 일반의 소고기와는 다른 향취를 내는 이 고기를 유현수 셰프는 삭힌 고기만이 가능한 어만두로 출연자의 미각을 돕는다. 일반 고기는 질겨져서 가능하지 않은 다져서 만두피로 만들어 찐 요리, 그 '어만두'는 상상 그 이상의 부드러움으로 '삭힌' 식재료의 예외적 세계를 연다. 


 




그렇게 '소고기'가 아니라, '삭힘'에 방점을 찍은 에피타이저로 연 프로그램은 김상중의 폭염 속 오토바이 질주와 함께 한 국도의 여정을 따라 충남 예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우한 첫 회의 식재료. 

그 식재료와 첫 만남을 가진 이경규는 '쓰레기'가 아니냐고 대뜸 던진다. 허옇게 핀 곰팡이, 쓰레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여진 식재료의 모습은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만날 만한 시레기국 찌꺼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채림은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장담한다. 

이 서로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바로 '삭힌 김치'이다. 아니 <폼나게 먹자>며 사라져가는 식재료를 운운했던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이 겨우 삭힌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만화 <식객>의 실질적 주인공에 다름아니라 저자 허영만이 소개한 식재료 전문가 김재료, 아니, 김진영씨가 나선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가 '배추'가 알고 있는 개량 배추가 아닌 토종 배추, 제주도 대정읍에서 고집스레 지켜낸 토종 배추 구억배추로,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궈 먹던 방식으로 고춧가루를 치지 않은 채 새우젓에 파, 마늘, 생강 등의 양념만을 넣어 담궈, 조상들의 방식대로 깨진 장독에 대나무를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넣어 물기를 쫙 빼며 곰팡이가 필 때까지 삭혀지고, 또 삭혀진 김치. 
예산 고을에서도 겨우 10명이 지켜왔던 이 김치의 방식, 하지만 그 분들마저도 연로하셔서 이젠 겨우 2집만이 담그는 그 김치가 바로 첫 회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토종 씨앗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우리가 알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맛으로 지켜져온 전통의 맛, 그것이야말로 <폼나게 먹자>가 어떤 지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가장 걸맞는 첫 회의 주인공이다.


 


​​​​​​​

지난 늦가을 배추 수확 후 담궈져 찌는 듯한 여름까지 그 수 개월 자연의 공기를 고스란히 품어내며 삭아들어간 김치의 맛은 어땠을까?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의 소개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종 배추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맛보는 일반 배추처럼 부드럽지 않다. 마치 봄동처럼 질기고 쌉싸름한 첫 맛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따스한 봄의 전령사 봄동처럼, 토종 배추 역시 씹으면 씹을 수록 단 맛이 나며 맛본 이의 기억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그 구억 배추로 지난 가을 담궈진 예산 삭힌 김치를 맛본 네 명의 mc가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생각 외로 아삭거린다는 것이다. 보기엔 흐드러져 물러터질 것같은데, 아삭한 식감이 출연자들을 놀래키고, 쌀뜨물만 넣어 자작하게 쪄내어 들기름 한 방울 더한 그 별 거 아닌 삭힌 김치찜이 먹고 나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밥도둑'이라는 사실 또한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폼나게 먹자>는 그렇게 '과거'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예전 <국민교육 헌장>의 문장처럼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한식의 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원일 셰프에게 삭힌 김치를 들고 찾아간다. 옛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옛것이 여전히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젊은 감각'을 더하여, 그저 들기름을 넣어 조려졌던 삭힌 김치는 데친 얼갈이 배추를 더해 삭힌 맛을 중화시키고, 된장을 풀어 그 풍미를 더하고, 두부를 얹어 모두의 찬탄을 불러오는 대중적인 한 끼의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삭힌 한우로 시작된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진 충남 예산의 삭힌 김치의 본 레시피, 거기에 더해진 오늘에 되살려진 이원일 셰프의 된장 삭힌 김치 두부 조림을 통해, <폼나게 먹자>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를 깔끔하고 흥미롭게 살려냈다. 부디 오래오래 잊혀져 가는 우리의 맛을 소개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 9. 8. 14:22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이지안과 박동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반갑게. 그리고 잘 지냈노라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드라마를 함께 완주해왔던 시청자들은 안다. 저 마주 잡은 손이, 그리고 눈으로 묻는 안부가, 그리고 기꺼이 답하는 서로의 안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가 다리가 되어 이 자리에 '건재'할 수 있었던 그 '곡진'한 감정이 그 짧은 안부를 통해 전해지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갈 길을 향한다. 후계동으로 한번 놀러오라는 당부를 더하고,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이지안과 박동훈처럼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가 6월 3일 찾아왔다. 400회라 하여 주말의 피로를 견디며 닥본사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여전히 후계동처럼 그곳에 있었다. 




400회의 여정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뒤를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방영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400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만 9년차이다. 

100회를 맞이했던 <스케치북>은 떠들썩했다. 공중파 유일의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을 한껏 내보이는 4주간의 특집. 국내 정상의 프로듀서들을 한 자리에 모은 1탄 '더 프로듀서', 2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뮤지션들의 '더 레이블', 그리고 드라마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음악으로 길어낸 ost의 3탄 '더 드라마', 그리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 씨와 함께 했던 '더 뮤지션' 등을 통해 '가수'를 통해 표현되던 음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무대를 빛냈고,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자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한껏 드러냈다. 

200회, 정통 블루스&컨트리의 김태춘, 진보 하드록의 로맨틱 펀치, 실험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이언, 블루스계의 싸이 김대중, 작곡자이자 재지한 뮤지션 선우 정아까지, 당대 최고의, 혹은 인기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이효리, 윤도현, 장기하, 박정현, 유희열'이 자리를 바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무대를 함께 하며, 실력파 뮤지션을 세상에 재조명했다. 



300회,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등 각종 편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스케치북>은 이런 유행의 트렌드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본연의 정통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를 드러낸다. '선택 2015 발라드 대통령' 특집, 대통령 선거의 모양새를 내며, 유희열이 공을 뽑아 출연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은 남들 노래의 재편집이 아닌, 윤종신, 박정현, 거미, 김범수, 백지영, 자이언티까지 '발라드' 계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본연의 매력을 한껏 조명하는 자리를 통해 '음악'의 자리를 묻는다. 

'후계동'같던 400회, 음악의 '아버씨'가 된 유희열
그리고 400회, 이렇게 떠들썩했던 지난 특집에 비하면 400회 <스케치북>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조촐해보일 지도 모른다. 한 방청객의 말처럼 뒤늦어 버린 인생처럼 너무 늦게 시작하는 <스케치북>을 졸린 눈을 비비며 굳이 지켜낼 성의 대신, 손쉬운 '편집 영상'들이 '닥본사'를 대체한다. 스케치북하면 떠오르던 대명사였던 유희열을 사람들은 이제 <알쓸신잡>이나, <슈가맨>의 mc로 떠올려진다. <스케치북>이 아니라면 볼 수 없었던 기획이나 뮤지션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프로그램마저 떠들썩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선점하면서 굳이 그 늦은 시간을 기다릴 이유를 잃었다. 

400회는 그렇게 '희석화'되어가는 <스케치북>의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윤종신, 이적, 아이유, 다이나믹 듀오, 오혁, 십cm, 멜로망스, 오연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 막 풍미하는 뮤지션들의 색다른 조합이야말로 9년 여정의 <스케치북>이 되었다. 

'땡스 투 뮤직'이라는 부제로 시작된 조촐한 무대, 뮤지션 혼자, 혹은 콜라보로 엮어지는 무대,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희열의 썰렁한 농담과도 같은 '역주행 좋니 좋아 상', '내가 니 애비다' 등의 기발한 하지만 적확했던  '땡스 투' 시상을 관통하는 건 이들 뮤지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했던 <스케치북>의 '자화자찬'이다. 2017년을 울려 퍼졌던 '좋니'를 다시 불렀던 무대, 멜로랑스라는, 십cm, 오혁, 심지어 아이유라는 신인을 자신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여전히 '링거'를 맞은 '다이나믹 듀오'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감이다. 

즉, <스케치북>은 토요일 밤 자정을 넘겨 '쭈그러져'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길어올렸고, 길어올린 음악들이 이 세상 속에 화려하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이다. 아버지같은 아저씨 유희열이 있기에 가능한. 



그래서 400회를 맞이한 <스케치북>은 마치 아저씨 세대와 젊은 세대와 정희네에서 한데 어울려 술 한 잔 하며 흔쾌히 '인생'을 나눌 수 있는 후계동과도 같았다. 그곳엔 '아버씨' 유희열이 있었고, 여전히 윤종신과 이적이 있지만, 오혁과 멜로망스, 십cm를 세상으로 인도할 여유가 있고, 이제 오연준이라는 '신인'이 그가 팬이라던 아이유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첫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 생성 중이다. 우리가 세상사에 지쳤을 때 찾아가고픈 후계동처럼, 그래서 <스케치북>도 오래오래 그곳에서 '음악'의 후계동으로, 아저씨가 되어 버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6. 3. 21:08

<수요 미식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음식'이 질펀하게 한 상 차려지지 않은 '먹방'이라니. 먹방, 인터넷의 bj 들이 시청자들을 상대로 음식을 먹는 걸 보여주며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이토록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bj들의 먹방은 곧 케이블을 비롯한, 공중파 프로그램 먹방의 홍수로 이어졌다.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했던 먹방 프로그램의 홍수 가운데에서 <수요 미식회>의 등장은 신선했다. 물론 '먹방'은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음식점에 자신들의 돈을 내고 사먹고, 그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수요 미식회>의 본질은 시각적 자극이 배제되거나, 극도로 제한된 먹망의 승화에 있다. 극중 출연한 홍신애의 기꺼이 자신의 몸을 사례로 든 고기 부위에 대한 상상에서 부터, 마치 한 편의 하이쿠와도 같은 이현우의 은유 가득한 맛의 평가, 황교익의 풍성한 평론의 잔치까지, 말로 풍성해진 식탁을 한 상 차려받는 느낌이 보여주는 먹방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었다. 



지난 3월 7일 새로이 선보인 히스토리 채널의 <말술클럽>과 3월 31일부터 ebs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 <상상식탁>은 바로 이런 <수요 미식회>의 맥락을 계승하여 특화, 발전시킨 프로그램들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3년 말로 풍성하게 차려진 <수요 미식회>가 3년 여를 거치며 그 말의 깊이가 옅어졌다. 여전히 게스트들의 맛집 순례는 맛깔스럽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출연진들의 멘트에서는 그들의 내공보다는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더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뜻밖에도 <알쓸신잡>에 등장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내공 깊은 '탐식'의 경륜과 지식들은 <수요 미식회>에서 한 발에서 더 나아간 '인문학'과 '먹방'의 콜라보,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전통주만큼이나 풍성한 인문학 술 이야기
<말술 클럽>은 말 그대로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술'하면 빠질 수 없는 애주가들에서 부터 '술칼럼니스트'들까지 한데 모여 술에 관한 질펀한 한 상 차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스토리'채널의 특색이 가미된다. 그저 술이 아니라, '전통주'이다. 2000 여개에 달한다는 우리나라의 전통주, 한번 맛을 보면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하지만, 정작 '광고'도, '홍보'도 없으면, 대통령 만찬주로 등장이나 해야 저런 술이 있어? 라며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전통의 명가'들을 탐미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술'을 매개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전통'이라는 색채가 더해지며 '한국'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로 전개된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일본식의 주조 방법이 아니라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청주'라는 본래의 갈래를 상실한 채 '약주', 혹은 '맑은 술'이란 애매모호한 장르로 둔갑한 우리의 청주, 그 연원에서 부터, 막걸리로 시작하여 주막과 돈이 무거웠던 시절, 서울 근교의 주막에서 돈을 맡기고 받은 영수증 하나로 매 주막에서의 지불은 물론, 마지막 지방 주막에서 돈을 거슬러 받을 수 있는 '주막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전통주라는 주제 하나로 뻗어져나가는, 심지어 수능 국어 영역의 '국선생전'의 묘미까지 이어지는 '한국사 탐험'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거기에 뜯고 맛보는 전통주의 미식 연찬회는 기본이다. 

주당 장진 감독, 박건형에, 주류계의 알파고라는 호칭에 딱 맞는 '전통주' 전문가 명욱의 해박함과, 이미 그의 <메이드 인 공장> 등을 통해 사물에 대한 재기발랄한 혹은 애정어린 천착을 선보인바 있던 김중혁 작가의 박학함 등이 어우러져 애정어린 '전통주 탐험기'가 완성된다. 



음식으로 부터 비롯된 비교사 탐험 
<말술 클럽>이 '전통주'를 매개로 한 계통적 한국사의 탐험이라면, ebs에서 선보인 <상상식탁>은 횡적인 비교사의 프로그램이다. 이제 2회를 방영한 이 프로그램이 선택한 주제는 사랑, 정치, 전쟁 등 개념정 명제들이다. 

정치의 편에서 정상 만찬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독도 새우'로 부터 2차 대전을 앞두고 방문한 영국의 조지 6세에게 대접했다는 미국의 길거리 음식 '핫도그', 비빔밥, 초콜릿 칩 쿠키가 정치, 그 중심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음식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지식'의 장을 연다. 전쟁의 편을 연 건 육포이다. '전쟁'하면 싸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관건이 되는 건  '병사들이 먹고 싸울 수 있는 식량', 바로 그 '식량 배급' 문제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한 몽골의 육포는 곧 그들의 세계 정복을 가능케 한 신의 한수라고 <상상 식탁>은 정의 내린다. 또한 전쟁이라는 과정 속에 또 하나의 변수가 된 전쟁의 식량으로서 영국의 '피시엔 칩스'를 조명한다. 1,2차 대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영국 국민들이 '배급 물품'에서 제외된 '생선'과 '감자'로 '기아'를 버텨냈다는 것으로 '음식'은 곧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미 <외부자들>을 통해 전문적 영역 mc로서 김구라의 대안으로 등장한 남희석이 '인문학'의 mc로서 도전장을 내밀며, 자칫 황교익으로 '과점'화될 우려가 제기된 음식의 평론계에서 새로인 등장한 유지상 음식 전문 기자, 건축이 직업이지만 음식 비평이 그의 특기가 된 이용재 비평가가 합류하여 음식 평론의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에 팟 게스트<지대넓얇>의 이독실이 공대생 특유의 장기를 살려 데워먹는 전투 식량을 실험해본다 하는 식으로 인문학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한 편에 박상희 심리 카운슬러, 정치 편에 전여욱 전 의원, 전쟁 편에 군사전문가 양욱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하여, 인문학적 전문성을 더한다. 

물론 과연 이 프로그램들이 전통주의 홍보를 넘어, 혹은 이미 한편에서는 상식이 되어가는 인문학적 지식의 '편집'을 넘어서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가장 익숙한 주제를 '인문학'이라는 트렌트, 혹은 갈증, 발전의 영역으로 가지를 뻗어나가 시도하고자 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전통주래 봤자라거나, 음식의 역사라 봐야 하면서 발견하게되는 '인간들의 삶'은 먹고사니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디 이러한 시도들이 활발하게, 다각도로 진행되어, tv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 4. 15. 17:04

<비밀은 없다>는 호불호가 갈렸다. 평단의 일부에서는 역시 이경미라 극찬을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말하면, <전체관람가- 아랫집>을 보고 난 정윤철 감독의 느낌에 가까웠다. 이른바 '괴랄하다(괴이하다)'로 표현되는 이경미 감독의 세계를 존중한다 해도, 한 사람이 만든 거라기엔 영화의 톤은 울퉁불퉁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정체는 모호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홍당무>의 양미숙 못지않게 연홍으로 고군분투한 손예진은 빛났다. 그 해의 여우주연상을 손예진에게 준다면, <덕혜옹주>보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7년 춘사영화제는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에게 수상을 했다. 그렇게 이른바 이경미월드가 칭해지는 감독의 독보적인 세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배우의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단편 영화 <아랫집>에서도 마찬가지다. 12년만에 돌아온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괴랄하다. 





히로인을 통해 빛나는 이경미월드 
사전에는 없는 이 신조어, '괴랄하다', 괴상하다와 지랄맞다가 합성되었다 추측되는 이 단어로 응축되는 이경미 감독 영화를 대변하는 이들은 주인공인 여배우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면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다 못해 흡족한 '아하하하하' 고성의 웃음이 삐져나오고 마는 감독의 취향때문일까? 물론 그 취향에 기반을 두었겠지만, 하지만, 그저 어떤 색채의 프리즘같은 취향이라는 정의 이전에, 이경미 감독이 포착한 지점은, '정상'의 세상에 '정상'처럼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다. 

양미숙의 짝사랑 수난사를 그린 <미스 홍당무> 속 여주인공은 비인기종목 러시아어 교사에, 안면 홍조에 거기다 비호감의 언어를 툭툭 내뱉는 '사랑스럽지않은' 여주인공이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의 '사랑'을 내세워, '사랑지상주의'의 시대에 역설을 도모한 이 작품은 그래서, 다수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또 어떤가, 전라도 출신의 여성으로 경상도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시집와서, 현모양처연하며 정치인의 아내를 자처한 '딜레마'의 응집체이다. 딸을 잃고 무당 앞에서 접신을 하는 듯 자신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고향말을 묻고 타지역에서 이방인으로 묻어가야 했던 그 수난의 시절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이 희생을 하여 꾸린 가정이란 신기루마저 사라지고, 그 '아노미'의 상태를 '미친년'같은 연홍을 통해 이경미 감독은 적나라하게 연출해 낸다. 

그렇게, 사회가 제시하는 '그러해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거기에 끝내 맞출 수 없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몸짓을 포착하는데 이경미 감독은 탁월하다. 그래서 이경미 감독의 작품 속 여성들은 거개가 '제 정신이 아닌'듯하지만 그래서 공감이 가고, 그래서 마음을 울린다. 겨우 15분 여의 단편이지만, <아랫집>에서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다르지 않다. 11년만에 돌아온 tv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신사임당 역 이영애는 이뻤지만 어쩐지 박물관의 박제된 인물을 본듯했다면, <아랫집> 속 희지가 된 이영애는 표정 하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훨씬 생동감있다. 그리고 그 생동감의 원천은 바로, 아파트 담배 연기에 하소연하지만, 그 이면에 상실의 노이로제로 어찌할 줄 모르는 위기의 여성 희지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층간 갈등에서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화두까지
'미세 먼지'의 주제를 선택한 이경미 감독은 그 '미세먼지'를 아파트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말이 서로 다른 독립 세대지, 화장실과 하수구 등을 통해 서로가 연결된 공동체 아파트. 그 406호에 사는 희지는 아랫집 306호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화답으로 그녀는 매일 아침 청소기를 들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그걸로도 풀리지 않은 마음을 결국 편지에 담는다. 

영화는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 갈등의 주체가 되는 인물의 내면과, 그 인물이 부닥치는 또 다른 인물들을 통해 아파트란 공동체가 가지는 다양한 층간 갈등의 유형을 드러내고자 한다. 영화는 마치 '너구리잡기' 게임처럼 그 짧은 시간에, 희지라는 인물의 사실은 애닮은 상처와, 그 상처입은 인물이 마주한 세상의 잔인함, 그리고 그것의 역설까지 두루두루 섭렵하고자 애쓴다. 윗집에서 보내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그 평범한 장면에서도 ng가 날 편지지가 순조롭게 들어가지 않아 쩔쩔매는 그 씬에 ok컷을 외치듯, 그리고 정작 윗집에 담배 연기 고통을 호소하는 희지가 흡연자였다는 반전처럼 이경미 감독은 평범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일탈의 기운을 곳곳에서 포착해 내고자 한다. 덕분에 영화는 '괴랄한' 아파트 공동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동시에 더 '괴랄할 수 밖에 없는' 희지의 개인사에 대해 깊은 스펙트럼까지 더한다. 

앞서 이명세 감독이 데이트 폭력을 다룬 <그대 없이는 못살아>가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마주친 두 남녀를 통해, 그들의 현재와 과거, 이상과 현실을 조명하며, 그것을 이미지화시켜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이미지'로 전달된 느낌은 분명하지만, '이성'으로 독해하기엔 난해한 실험적인 영화가 되었다. 그에 이어 이경미 감독 역시 아파트 공동체 사는 다층의 층간 갈등의 요인들을 설명하며, 그것들은 '이영애'가 분한 '희지'란 대표적 인물과 '개구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역시나 실험적인 묘사의 계보를 잇는다. 메이킹 영상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이경미 월드! 하지만 그 '영상'의 실험은 이미 '이명세' 감독 편에서 제시된 바 '머리'로 이해하는,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영화적 방식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다. 아마도, 이명세 감독의 실험, 그리고 이경미 감독의 괴랄함은 이경미 감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작업했다는 소감에서도 느껴지듯이 '상업 영화'라는 궤도에서는 궤도 순항이 어려운 시도들이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빛이난 이명세 감독에 이어, 이경미 감독의 작업이, <전체 관람가>의 의의를 빛낸다. 



by meditator 2017. 12. 18. 14:53
| 1 2 3 4 5 ···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