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깨지고, 건물이 우그러진다. 세상의 위 아래가 바뀐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같다. 그런데 노은비라는 인물의 기억 속이다. 주마등 위기 관리팀의 주련(김희선 분)과 최준웅(로운 분)이 뛰어든 곳이다. 주마등 위기 관리팀은 왜 노은비의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바로 그녀의 우울지수가 극에 달해 '자살' 위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과연 위기 관리팀은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mbc의 금토 드라마 <내일>은 흥미로운 설정의 드라마이다. 때로는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때로는 기세 등등한 여왕의 모습으로 시시때때로 그 모습이 바뀌는 옥황(김혜숙 분)은 저승 독점 기업 주마등의 회장이다. 그녀가 이끄는 '주마등'은 '저승사자' 들이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곳이다.

자살자를 구하는 저승사자들
그런데 옥황이 이번에 새로운 부서를 하나 만들었다. 이른바 '위기 관리팀', 그런데 이 위기 관리팀에 대한 기존 저승 사자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오면 될 것을 굳이 스스로 죽으려는 자들을 '저승사자'들이 나서서 구해주기 때문이다. 옥황이 '위기 관리팀'을 만든 취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이 너무 많아 '지옥'이 붐비고,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그뿐일까? 

자살자의 죽음을 막지 못해 위기에 봉착한 '위기 관리팀', 주마등의 앱에 붉은 색 경고음이 울린다.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은 방송 작가로 일하는 노은비, 그녀에게로  팀장 구련과 '코마' 상태로 반인반혼의 존재 최준웅이 달려간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우울이 극에 달한 노은비, 위기 관리팀은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인셉션>처럼 그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위기 관리팀이 찾아간 그녀의 기억 속, 그곳엔 학폭 피해자 노은비가 있었다. 

노은비는 앞 자리 친구와 함께 재미난 일을 이야기 하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김혜원과 그 친구들은 노은비를 학교 건물 뒤로 불러내 마구 때린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부터 김혜원이 볼펜을 똑딱거릴 때마다 웃으라고. 김혜원 무리에게 마구 맞고 발로 채인 노은비에게 김혜원이 볼펜을 똑딱이고, 노은비는 결국 억지로 일그러진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들, 특히 김혜원은 볼펜을 똑딱여 노은비를 반 아이들 앞에서 이상한 아이를 만들고, 수시로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우유를 붓고, 사물함에 오물을 채우고, 반 아이들에게서 왕따를 만들었으며 가장 친한 친구마저 그녀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그 고통스러운 시절을 노은비는 견뎠다. 그래서 이제 어엿한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만드는 방송에 김혜원이 게스트로 등장한 것이다. 학폭 피해에 대한 웹툰을 그린 작가로, 노은비는 그런 김혜원을 인터뷰해서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노은비에게 피디는 겨우 예전 일로 그러냐고 '프로 정신'을 운운했고, 다시 나타난 김혜원은 다시 볼펜을 똑딱이며 노은비를 몰아부친다. 

또 다시 나락으로 빠져든 노은비, 학창 시절처럼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주지 않는 현실에 결국 건물 옥상 난간에 올라선다.  '과거'가 아니라 무한루프처럼 되돌아 온 '학폭'의 트라우마, 위기 관리팀은 그런 노은비를 어떻게 죽음에서 구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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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해답이라면, 죽어!
그런데 난간에 기대선 노은비에게 구련은 외려 뛰어내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죽는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며. 노은비는 죽으면 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 않겠냐고 울며 답하고. 구련은 말한다. 죽으면 자신의 죽음을 마음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짊어진 채 끝없는 후회의 길을 걸어야 하는 '지옥'이 기다릴 뿐이라고. 

'견뎌야 해', '이겨내야 해', 구련이 던진 말들, 그런데 그건 노은비가 바로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울며 했던 말들이다. 자신이 견뎌왔던 시간을 되돌이킨 노은비,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게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발을 헛디뎌 건물에서 떨어져 버리고 마는데, 그런 노은비를 '저승사자' 구련이 가뿐히 안아 구한다. 

그런데 아직도 '위기 관리팀' 속 노은비의 붉은 신호음은 꺼지지 않는다. 그때 특별출연 정준하와 나타난 최준웅, 노은비가 힘들때마다 꺼내본 <무한도전>의 정과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정준하는 예의 정과장이 되어 노은비를 웃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노은비를 최준웅은 안고 위로한다. 괜찮다고. 

구련이 노은비로 하여금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면, 최준웅은 상처입은 노은비를 품어 주었다. 드라마는 죽음의 위기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케 만드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의 늪에서 한 걸음  빠져나온 노은비가 세상에서 만난 뉴스, 그건 여전히 그녀 앞에서 가해자였던 김혜원의 가증스런 가면이 벗겨지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노은비는 용기를 낸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언할 수 있다고. 아마도 그 빌딩 옥상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면 노은비는 그런 뉴스도 볼 수 없었고, 스스로 피해자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구련의 말처럼 지옥의 길고 긴 후회의 길을 걷고 또 걷기만 했을 것이다. 

자살자 구원의 환타지로써 <내일>은 끝까지 그 몫을 다한다. 김혜원 앞에 나타난 구련은 김혜원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보낸다. 이젠 김혜원이 그 시절 김혜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이다. 배를 차이고, 우유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김혜원, 구련은 말한다. 겨우 한번을 당하고. 살려달라 하냐고. 너는 기억못한다는데 노은비는 내내 고통받으며 살아왔다고. 그리고 들려오는 김혜원의 실체에 대한 뉴스, 허물어지는 김혜원에게 죽지 말라고, 지금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구련은 자리를 뜬다. 

이처럼 <내일>은 자살 위기에 몰린 학폭 피해자를 죽음에서 구하는 에피소드로 '주마등 위기 관리팀'의 활약을 연다. 1, 2회 걸쳐 주마등처럼 스쳐간 노은비의 기억,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왜 노은비를 자살로 부터 구해내야 하는지 공감한다.

<인셉션> 식의 과거 탐험을 혼란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옥황상제를 필두로 주마등 주식회사라는 신선한 컨셉으로 등장한 저승사자의 자살자 구출 프로젝트는 신선하다. 구련이라는 사연깊은 캐릭터의 단호한 조처, 그리고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우선 자신을 던져 피해자를 구하고 보려는 최준웅의 따뜻한 인도주의가 맞물리며 '위기 관리팀'의 매력이 더해진다. 거기에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환타지로서의 통쾌함을 더한다. 

by meditator 2022. 4. 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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