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밥으로 사용하는 지렁이를 한 움큼 움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며 생명을 구걸하던 이인임이 4월 28일 31회 드디어 유배에 처하던 도중 생을 마감한다. 다음 회, 이성계와 길고 지리한 싸움 끝에 땅끝으로 유배를 당했던 최영도 명나라 사신의 안전을 위해 처형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일전일주제로 이성계파의 혁명적 전제 개혁을 무마시킨 이색의 저항은 다음 회 그의 수족에 대한 제거 작업을 시작으로 조만간 끝을 맺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인임, 최영, 이색의 몰락과 함께 고려도 무너져 갈 것이다.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개국 과정을 다룬 <정도전>은 그간 사극에서 간신 혹은 역적 이인임, 명장 최영, 고고한 학자로만 그려졌던 이색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 캐릭터로 재조명해냄으로써 사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정도전 이인임 박영규
(사진; tv데일리)

그 중 이인임은 역사 속에서 왕의 장인으로서 혹은 역적의 주모자로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던 인물이다.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역사속에서 만났던 간신이었던 이인임을 박영규라는 배우의 열연을 통해, 고려 말 권문 세족의 대표자로 새롭게 제시한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비를 제거하고, 그 아들의 양아버지가 되는,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노회한 정치가로써의 이인임은 아마도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고려 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던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권력의 경구들은, 때론 보는 시청자들조차 매료시킬만큼 정치판의 본질을 관통한다. 그의 활약 덕분에, 드라마 <정도전>은, 그리고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논리의 혁명을 넘어, 보다 복잡한 정치적 세계의 혼돈으로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인임의 예언처럼, 고려를 지탱해 왔던 이인임을 필두로 한 권문 세족의 몰락은, 무장 최영의 기대와 달리, 고려의 종말을 앞당긴다. 
이인임을 제거하고 야심차게 고려의 실권자로 등극했지만, 정치적 안목도, 변혁에의 청사진도 없었던 그저 결국 소박한 무장에 불과했던 최영의 치세는, 또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함께 단명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최영의 몰락은 일찌기 무신 정권 이후 후기 고려를 지탱했던 무신 세력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역적 이인임을 노회한 정치가로 그려내듯이, 역사 속 의인이었던 최영 또한 순수한 애국심은 있었으되, 그 애국심의 한계가 고려 왕조의 틀 속에 갇힌 협소한 시야의 인물로 그려내는데 고심한다. 한 인물의 열정과 노력이, 그 시야가 한정적일 때 가져오는 역사적 불행을 최영이라는 무장을 통해 철저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요, 제 아무리 한 개인적으로는 양심적 인물이라도, 백성의 삶을 걱정하지만, 정치적 야심에 있어서는 현실을 보살필 수 없었던 고려의 무장이라는 현실적 존재를 뛰어넘지 못한 역사적 존재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인다.

부패한 권문 세족을 제거했지만, 그보다 앞선 많은 무신 정권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왕이라는 언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순수한 하지만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열정은 자신은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거라는 형장의 애처로운 외침으로 끝을 맺고 만다. 

정도전
(사진; 텐아시아)

그렇게, 고려를 지탱해 왔던 권문 세족과 무신 세력이 축출되었지만 여전히 고려를 지탱하던 마지막 희미한  등불이 남아있었다. 바로 이색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대부 세력,.
고려 말에 과거 제도를 통해 정치 내에 개혁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들은, 어느 새 그 자신들이 권문 세족과 같은 대농장의 주인은 아니지만, 지주로 안정된 자리를 잡으면서, 정도전 등이 제시한 사전 혁파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신진 사대부 세력 내의 정치적 대립은, 결국 그 근간에서는 잃을 것이 많은 땅을 가진 지주와, 그렇지 않은 혹은 그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혁명적 세력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학자로 이름을 떨친, 조선 건국 이후 새로운 나라에 봉사하지 않았던 고려의 충신으로 칭송받았던 이른바 이색학파 등 재야 학자들의 본질을 드라마<정도전>은 낱낱이 폭로한다. 또한 어느새 중앙 정치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개혁의 반대 입장에 서게 된 신진 사대부들의 행태는, 또한 조선 건국 이후 조선의 한계를 규정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정도전> 속 정치는 경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땅의 경계가 하도 넓어 산과 강을 경계로 땅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세력이 정치의 실권자가 되어 고려를 농단했고, 그런 현실을 거들떠 보지 않은 정치적 열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저 조금이라도 좀 더 가진 자가 된 사람들 앞에 학문적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폭로한다. 이인임, 최영, 그리고 이제 이색이 축출로 이어지는 조선 건국의 과정은, 고려라는 나라의 정치 경제적 모순의 해결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정치적 쿠데타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을 지양하고, 나라의 근간을 뒤짚어 엎는 혁명으로서의 조선을 그려내는 고심의 과정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4. 28. 09:06
  • 익명 2014.04.28 09:26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meditator 2014.04.29 02:01 신고 EDIT/DEL

      현재의 또 다른 거울, 정도전에 딱 어울리는 정의네요, 사방을 둘러봐도 답답한 세상, 그나마 드라마나마 속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