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새롭지 않았다.  이미  2018년 소니 픽처스가 개봉한 에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스페인 히스패닉 혼혈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를 주인공으로 '스파이더햄',  '스파이더 느와르' 등등 평행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을 소환해 지구를 비롯한 '멀티버스'의 위기를 구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신선했던 설정, 하지만 '멀티버스' 속 히어로의 활약은 곧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이르면 비록 원작의 설정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어쩐지 히어로물의 생명 연장을 위한 '멀티버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기에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라는 장황한 제목을 가진 영화가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한다 했을 때 기대치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여전히 서사적 콘텐츠로서 '멀티버스'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그것이 가능한 건 무엇보다 '모성'과 '가족'이라는 영화 자체가 가진 서사적 설득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영화의 시작은 영수증 더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중년의 여인, 양자경, 아니 에블린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세대에게는 <예스 마담> 시리즈로, 그리고 <와호장룡>으로 익숙한 배우, 하지만 어느덧 그녀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맡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양자경이 이제는 미국으로 이민가 세탁소를 운영하며 찌들어 사는 여성이 되어 등장한다. 

위기의 세탁소, 위기의 에블린
하지만 왜 양자경이겠는가. 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한번 그들이 액션씬에 있어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의 루소 형제(앤서니& 조)이다. 그들은 미국살이 수십년에도 여전히 미국말이 서툴러 세탁소마저 압류 위기를 맞이한 에블린이란 인물을 매개로, 그녀의 평행우주 속 또 다른 에블린들을 소환하여 양자경이란 배우가 가진 무공의 연기력을 아낌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모처런 <예스 마담>이나 <와호장룡> 시절의 그녀를 보는 듯 예리한 그녀의 손매와 날렵한 발품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반갑다.

또한 역시나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스위스 아미맨>을 통해 황당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다니엘 관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도 마이너하면서도 독특한, 하지만 결국은 따스한 감성의 코미디를 현실적인 중국인 이민 가정사를 배경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제목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각각 세 파트 이야기를 이끈다.  우선 everything을 통해 에블린이란 인물이 가진 모든 것, 하지만 그리하여 그녀가 그 나이가 되도록 가지지 못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에블린은 고국에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에드워드(키 호이 콴 분)을 따라 이역만리 미국으로 온다. 영화 속 '멀티버스'의 혼돈 속에 자신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 에블린의 기억을 통해 소환되듯, 그저 '사랑'만 믿고 온 미국에서의 생활은 낡고 먼지 투성이인 세탁소의 문을 열 때만 해도 '이 세탁기가 모두 우리꺼야'하면서 기뻐하던 부부는 이제 '이혼 신청서'를 들이밀어도 시선조차 마주치기 힘든 부부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녀를 외면했던 아버지는 이제 늙고 병들어 그녀에게로 왔다. 그런 아버지에게 그녀는 번듯한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새해를 맞이하며 벌이는 파티에서 아버지를 환영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 그녀의 단 하나뿐인 딸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그리고 동성의 연인을 할아버지 앞에서 '아주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는 에블린에게 '절연'은 선포한다. 

언어가 능숙한 딸이 도와주기로 한 세무소 행,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데 남편이 이상하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어 이혼 서류를 들이밀어야 할 만큼 소심한 남편이 그녀에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  중년이 되어도 <구니스>와 <인디애나 존스; 미궁의 사원> 속 그 미소년의 얼굴을 지닌 키 호이 콴이 분한 에드워드가 펄펄 난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한다. 멀티버스 속 에블린의 남편 에드워드라고. 그리고 이제 에블린에게 '붕괴된 멀티버스'를 구할 임무를 부여한다. 

everywhere, 당장 오늘 안에 세금영수증을 제대로 정리해 내야하는데, 멀티버스에서 온 에드워드는 에블린을 자꾸 세무소 속 청소 정리실 안 이상한 세계로 끌어들인다.

 

 

왜 에블린이어야 할까? 
왜 에블린이어야 할까? 이게 바로 이 영화적 서사의 이른바 '킥'이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나온 꿈의 세상, 하지만 에블린은 이제 파산 위기에, 번아웃 위기에 놓인 중년 여성일 뿐이다. 반면, 또 다른 멀티버스 속 에블린들은 전혀 다르다. ,<쿵푸 팬더>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 쿵푸의 대가가 되어 있기도 하고, 에드워드를 따라가지 않는 대신 당대의 스타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에블린을 찾아온 다른 세상의 에드워드는 말한다. 다른 멀티버스 속 에블린들이 그렇게 '잘 나가는'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블린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서라고. 마치 시이소 게임이라도 되는 듯이, 에블린의 불행한 삶이,  다른 에브린들의 행복이 되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에블린을 찾아온 에드워드 세상에 '조부투파카'가 웜홀 같은 걸 만들어 모든 멀티버스를 다 빨아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부투파카를 막을 사람은 바로 에블린 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조부투파카는 '왜곡되어버린 딸'  조이(스테파니 수 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민 세대 가족이 가지는 세대 간 소통과 세계관의 문제를 멀티버스와 악의 신이라는 설정으로 풀어낸다. 괴물이 되어 모든 것 집어삼키려는 딸, 그런데 딸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다신 보지 말자며 떠나려는 딸에게 엄마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내뱉고 만다. '너 살쪘다'고. 이보다 더 모녀 관계의 애증을 대변할 대사가 있을까? 

아버지 앞에 여전히 인정받고 싶은 딸, 그래서 아직도 그날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랑하는 이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림자'로 드리우고 있는 여성, '세탁기가 모두 우리 꺼야'라던 희망이 무색하게 가압류될 처지의 오래된 세탁소 카운터를 지키며 늙어가는 엄마는 자신의 모든 '열정'을 딸에게 퍼붓고 딸은 그 엄마의 열정을 감당하지 못해 '왜곡'되어 버리고 마는 질곡의 모며 관계, 결국 에블린 인생을 짖누르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멀티버스 속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에블린은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는 독특한, 하지만 아름다운 두 장면을 통해 어수선한 멀티버스 소동을 감동으로 이끈다. 기괴한 소시지 손가락을 지닌 멀티버스 속 세무소 직원(제이미 리 커티스 분)과 만난 에블린, 하지만 그들은 덜렁거리는 소시지가 무색하게 기꺼이 사랑을 나눈다. '이 아니면 잇몸'이듯이,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손가락이 소시지인게 무슨 문제겠냐는 영화는, 그래서 산 정상 위에 움직일 수 없는 돌멩이가 되어 버린 조이, 혹은 조부투파키와 에블린에게로 이끈다.

과연, 움직일 수 없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의 지렛대는 세상 무능한 남편이라는 에드워드가 세탁물 보따리에 달아놓은 장난감 눈알이다. 삶의 붕괴, 그리고 가족의 붕괴를 막는 무기는 사실 아주 사소하지만 근본적인 것들이다. 그걸 알아보는 행운이 늘 도래하는 건 아니니 '멀티버스'가 붕괴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다행히도 용감한 엄마 에블린은 더 늦기 전에 그걸 알아보는 '미덕'을 지녔다. 알고보니 그녀는 모든 걸 가지고 있었다. 






by meditator 2022. 10. 15.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