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중식이 밴드다!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 월세 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는 라는 장미 여관 '서울 살이'를 통해   '전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의 페이소스를 한껏 심화시켰던 <mbc다큐 스페셜>이 이번엔 1회 인디뮤지션 대상을 받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을 통해 이른바 '3포 세대'의 서러움을 그려낸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다녀오자마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애인을 만나러 다니느라 불철주야 바쁘다. 하지만 해를 넘기는가 싶더니,결국 헤어져 버렸다.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쉴 틈이 생겼다며 한 숨을 내쉰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 뛰면서 하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라, 녀석에겐 그저 쉴 여가마저 없는 버거운 과제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연애는 젊음의 향유이자, 권리라 여겨지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mbc다큐 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는 이렇게 연애조차 버거운 젊음 세대, 결혼, 출산, 육아, 그것을 포기하는 세대가 아니라,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게 아니나며 반문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그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과 함께 전한다.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어쩌면 사랑이란 사치다.

빚을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은 해도 취직은 못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 알바 하러 간다' (중식이 밴드, 선데이 서울)

 

이렇게 피씨방 야간 알바를 전전하던, 하지만 그래도 노래를 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그 청년은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선데이 서울'이던 노래는, '아이를 낳고 싶다니'로 바뀌었다.

젊은이들 중 겨우 30%만이 하고 있다는 연애를 운 좋게 8년째 하고 있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더 이상 그에게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낮에 연습하고, 저녁에 공연을 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밤 11시부터, 땅 속으로 들어간다. 지하철에 통신 케이블을 깔기 위해, 위험한 천장을 딛고 다닌다. 피씨방 알바는, 통신 케이블 업체의 야간 임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단지 노래를 하고 싶은 중식이 밴드의 보컬 이야기만이 아니다.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청춘들의 삶은 대동소이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며 도서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며 알바와 공부를 오가는 삶에 연애란 사치이다. 심지어 대학 등록금, 아니,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커피 전문점 화장실을 치우는 야간 알바는 하는, 그러면서도 다시 다음 학기 휴학을 하는 처지에 놓인 대학생에게, 역시나 연애나 결혼은 그저 저절로 어느 틈에 포기해 버린 미래이다.

신혼집을 구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1억에서 2억, 결혼 비용이 남자 1억 5천 만원, 여자 9천 만원을 넘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결혼을, 그리고 그 결혼의 전제 조건인 연애를 포기한다. 아니, 당장, 살아가기 위해 연애를 할 시간조차 없다. 25세에서, 29세 남녀의 평균 미혼율이 무려, 8,90%를 넘는다. 거꾸로 가는 경제 정책을 내놓은 최규환 부총리에게, 순순히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다는 대자보가 연세 대학교에 붙었다. 이른바 명문대학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이 아니다.

 

어디 결혼 뿐인가?

아이를 낳고 싶다니....../ 나 지금 니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난 재주도 없고 재수도 없어/ 집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넌 지방대야/ 계산 좀 해봐/ 너와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뭐 애만 없으면 돼/ 너랑 날 지금처럼 계속 사랑만 하며 살기로 해(중식이 밴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바보 아냐? 라고 반문하는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이 하나도 허투루가 아님을 다큐를 보다보면 저절로 공감이 간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가 승계해주지 않는 임시직 때문에,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던 애인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낮에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밤에는 겨우 대리 운전을 하며 연명하는, 하지만 밀린 월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이제 결혼은 꿈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을 게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앳된 고등학생 시절 만나, 이제 남자가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커플은 여전히 연애 중이다. 그저 함께 만나있는 시간만으로도 좋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감히 엄두를 낼 수도 없는 사안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 밤, 남자는 홀로 사는 단칸 방에서, 여자는 엄마의 병구완을 위해 각자 홀로 밤을 보낸다.

 

결혼을 했다고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밥만 먹냐'

는 중식이 밴드의 가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삶이 이어진다.

어떻게 아이를 하나 낳아도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 아니,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삶에서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니, 맞벌이를 위해 시어머니를 주말 부부를 만들며 겨우 지탱하는 삶에서 또 한 명의 아이란 사치이다. 직장에서 만든 좋은 유치원이 있지만, 직장 근처의 집값이 너무 비싸, 아내는 먼 경기도에서 좌석 버스를 한 시간 여 타고 직장을 다닌다. 종종 걸음으로 퇴근하여, 아이를 찾아 돌아온 집, 엄마는 밀린 집안 일을 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엄마의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이렇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 3포가 아니라, 선택의 기회조차 놓쳐 버리고 사는 젊은 세대의 삶에 대해, 대학 교수는 결혼 하지 않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문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염려한다. 실제 일본에서, 4,50대 되어서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 교수는 말한다. 이 상태로 가면, 인구의 1/3이 줄어드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된 사회,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아 국가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 사회, 하지만, <연애만 8년째, 결혼 할 수 있을까?>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대학 교수들의 분석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나,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꽃다울 나이의 젊은이들이, 가장 본능적인 남녀간의 구애조차 미루며, 보장할 수 없는 미래의 스펙과 정규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 아니, 현재를 연명하기 조차 버거워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 그렇게 젊은이들을 '지옥도' 속으로 몰아넣은, 그 체계를 만든 기성 세대의 일원으로 '석고대죄'를 올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미안했다. 경쟁과, 스펙과, 더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해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신기루의 그늘에서, 현재의 젊은이들은 젊음을 유보 당한 채, 생존하기 위해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 그저 '문화'라 규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논하기에 당대의 젊음은 너무 처연하다. 도대체 이들의 젊음을 보상하고 책임질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by meditator 2015. 1. 2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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