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다수의 드라마들이 어긋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한다. 그 방향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람사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변형된 로맨틱 멜로<태양의 후예>마저도. 결국은 사랑꾼이었던 유시진의 입을 빌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무릇 국가라는 전체보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가 본래적 의도가 어떻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맘도 흔들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맘도 흔드는 사상적 정체성에 애매모호함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 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적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드라마들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진행시킨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 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를 달리해도 한결 같다. 1980년에서 90년대를 살아냈던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그리고 이제 한때 잘 나가던 검사였던 조들호(박신양 분)든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하지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은 화성 살인 사건, 홍제동 살인 사건 등에서 이제 거대 자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을 밟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에서 그저 하나의 사건이나 패배로 끝난 기록들을 복기하고 새로이 써간다.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비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제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싸움의 방식은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아직 결론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환타지이다. 뿐만 아니라 환타지라지만 현실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을 드라마를 통해 복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전복을 시도하고자 하는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의 방식에 고민한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처럼 작가는 작정하고 썼지만, 그 작정하고 쓴 대사들이 당국자들조차 감동시키는 광범위한 보편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고, <리멤버>처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에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형국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통쾌한 선을 선보자니 <동네 변호사 조들호>처럼 실소가 나오고 마는 어설픈 기승전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원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놓여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일신상의 입신양명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심지어 사전 제작이었음에도 아쉽게도 유시진의 멋짐에 편향되어 버렸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출세의 지름길인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주제는 아들의 전쟁이고, 유승호의 미모에 기댔지만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은 초반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 민 분)의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이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하여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통쾌한 반란으로 꾸려져 가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여긴 집요한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은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그리고 그 편에 기꺼이 함께 설 '사람들'이 필수다. 매 사건마다 '미담'이나 '감동 스토리'로 귀결되는 어설픈 법정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들호 앞에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서 그 해결의 키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 사람의 '변심'이 아니고서는 결국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고 드라마들을 입을 모은다. 




비행기 테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인간의 선의 
이런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이제 종영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비록 안타깝게도 최근 불거진 드라마 공모전과 관련된 '표절' 논란이 안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에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내세운 문제 제기와 의식은 가치가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도 최근의 여느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자각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k그룹의 기업 협상가로 잘 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는 경찰 무선을 따던 주성찬이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 드라마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협상'과 '대화'를 내걸었던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이었다. 그를 밝히기 위해 철거 현장의 총알받이로 차출된 전경 윤희상(유준상 분)이 도심 테러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15,6회 비행기 테러까지 자행한다. 



13년전 일어났던 철거 현장의 무모한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던 당사자들을 하나씩 밝혀가며, 그뒤에 k 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향한다. 마치 법정에서 소환되지 않는 증인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양은냄비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환타지 노선으로 급회항한다. 그토록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상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한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되었고,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길어진다는 것을,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6. 4. 27. 13:14

4.13 총선이 치뤄졌던 그 주말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여 <세타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 문서>를 방영했다. 이 방송을 통하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가 국정원이 관리하던 배였으며, 사고가 일어 난 후 해경 및 청와대는 승객들의 구출보다는 vip에 대한 보고가 우선이었다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렸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건 2014년,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에야 방송을 통해 숨겨졌던 의혹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본 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며칠 전 치뤄진 총선에서 현재와 다른, 선거날 당일에도 빨간 색을 입고 투표장을 향하던 vip의 노골적인 마음에 드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과연 16일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방영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진실의 포기가 강요된 기자, 괴물이 되다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언론'에 투신한 젊은이가 세월의 때를 묻히며 '정권의 나팔수'나 '개'가 되어가는 건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라고 <피리부는 사나이>는 말한다. 일개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딜'을 통해 나이트 라인 앵커가 되는 것이 '출세'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를 마비시키는 테러범들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는 길고 긴 여정을 에돌아 14에 이르러 비로소 이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된 다음 날 이 충격적 보고에도 불구하고 포털엔 이 프로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리트윗이 안되거나, 검색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기사도 등장했고, 검색어 연관도 되었다지만, 여전히 다큐의 충격적 진실이 세상에 펼쳐지기엔 어쩐지 언론의 반향이 적극적이지 않다. 드라마의 '한류' 기사는 너도 나도 하루에 몇 수십 개씩 쏟아내는 거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적은 수이다. 

윤희상도 그랬다. 14회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듯이 그는 용산 참사가 연상되는 13년전 철거민 참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의 일원이었다. 이젯 갓 대학에 들어가 전경으로 차출된 그는 철거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곤봉을 두들겨야 했던 청년이었다. 철거민이 있는 곳에 올라가 피 흘리며 쓰러진 철거민들과 부모를 잃고 절규하는 어린 여명하(조윤희 분)를 보고 주저앉아버린 순수한 젊음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어린 명하에게 기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약속했던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배경으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앞세워 13년전 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도시 테러를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의 신념은 변함없지만, 그 신념의 실현이 여명하 말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서건일과 다르지 않은 배후 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거민들의 목숨을 삼켜버린 가해자가 된 청년, 그 청년은 그 '가해'의 트라우마를 '진실'을 알리는 것으로 갚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에서 헛발을 짚었듯이 피해자 가족도, 피해자도, 피해자의 연인도 아니었지만, 그저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젊은 청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을 '기자의 사명감'으로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언론'의 현장에서 맞닦뜨린 것은 '정권의 시녀'로서의 '막힌 언로'였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그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로 시대의 비극에서 비껴설 수 없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설정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나 순수했던 첫사랑을 간직했던 청년 영호(설경구 분)는 5.18 진압군으로 복무한 이후 윤희상과는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연인을 망가뜨려 버린 그는 결국 막다른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렇게 영호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갔던 것에 비해,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헌신한 윤희상은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방식, 하지만 수세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방식이다. 

13년이 지나, 여러 사람의 희생을 바치고서야 알려진 진실
'진실'을 알리겠다고 명하에게 약속을 했던 청년은 13년이 지난 후에야, 경찰들이 들이닥칠 스튜디오,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될 나이트 라인의 마지막 멘트에서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잡히기 직전이 아니라면, 그에게 방송국에서의 입지가 좀 더 남아있었더라면 그의 약속은 어쩌면 더 지연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비로소 발설한 13년의 진실을 위해, 그는 주성찬(신하균 분)의 애인과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 그리고 결국 자신의 수족이었던 정수경(이신성 분) 등의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런 도발이 없었다면, 과연 13년전의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났을까 란 질문이 돌아온다.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진 용산 참사를 비롯하여, 이제 세월호의 진실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신의 방송을 잃었던 여러 언론인들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미처 다하지 못한 임무를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말하고자 애쓴다. 19일 방영된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아동 학대 사건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선 조들호(박신양 분)는 다수의 침묵에 대해 소리높인다. 분명 유치원 비리 내부 고발자 보복 사건인 아동 학대 사건,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침묵'에 진실은 덮여진다고 말한다. 다수의 침묵이 바로 진실을 덮게 되는 것이라고 법정의 방청객,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한다. 

물론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는 슈퍼맨같은 조들호의 활약과, 그의 진심에 사람들은 쉬이 감복하고, 법정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 용이한 감동이, <피리부는 사나이>로 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한 청년의 진심이, 13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리고 여러 사람의 희생이 더해진 도심 테러 사건으로 변한다. 법정에서 조들호의 호소는 속시원했지만, 그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진실을 알리려는 움직임은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힘들 정도로 침울한 시대라고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by meditator 2016. 4. 20. 05:54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모두들 투표를 하느라 애쓰고, 투표를 해야 한다 독려하고, 투표율이 얼마인가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마도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당락에 따라, 어느 당과 어느 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십일의 투표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현실은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들의 출사표가 얼마나 담아냈는지 점검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저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 의원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살 길을 제대로 살펴줄 것인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일 SBS 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방영 그 자체가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다. 한마음당(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국회의원 납치 사건을 둘러싼 한바탕 해프닝으로 펼쳐진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그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 아니 청렴하지 않은 의원만 청렴하지 않는게 만천하에 드러나는 속시원한 소동극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국회의원을 납치하는 철거민들
극중 나청렴 의원이 납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는 건 그의 지역구 행복구 낙원동이다. 미당 건설이 이곳을 재개발하려고 하고 그런 재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며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장을 내놓으라 못내놓겠다 철거 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민들을 나청렴 의원을 찾아와 도와달라 요청하고 그런 주민들에게 자신이 건설사 사장을 만나보겠다며 의원은 주민들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그날밤 철거 '알바'들이 들이닥쳐 낙원동을 마구 때려부수고 그 과정에서 희경(전미선 분)의 아들이 철거 용역에게 상해를 입혀 감옥에 갇히고, 영란(김현숙 분)의 남편은 의식을 잃는다. 정작 영란의 남편에게 상해를 입힌 용역은 무죄로 풀려나고. 결국 희경과 영란은 철거는 둘째치고 아들의 합의금과 남편의 병원비가 발등에 불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막무가내 영란의 시누이 슬기(이수경 분)는 은행을 털거나 납치를 하자고 하지만 희경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말린다. 그러나 정작 다음 날 하루 벌이를 위해 골프장 잔디를 뽑으러 간 곳에서 사실 이 일련의 철거 과정이 모두 그 뒤의 실세 나청렴 의원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의원 납치를 모의한다. 

납치 과정에서 부터 나청렴 의원과 박사장의 알력으로 얻어걸린 세 사람의 '납치'는 '납치'를 하기에는 모질지 못하고 어리숙한 세 사람과 납치를 당해서도 '갑질'의 기력을 다하는 나청렴 의원, 그리고 그의 하수인 박사장과 김사장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다. 드라마는 이름부터 아이러니한 나청렴 의원을 통해 말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자금을 불리기 위해 철거마저 무자비하게 강행하는 국회의원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소동극답게 경찰서까지 잡혀갔던 희경과 슬기는 영란의 지혜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고, 오히려 나청렴 의원을 협박하여 그의 비자금으로 철거민들에게 나눠주고, 그의 비리는 밝힌 후 다시 돌아온 행복한 일상으로 마무리된다. 일장춘몽처럼. 물론 당신들이 제대로 뽑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거라는 암시는 명약관화하다. 

클리셰같은 조들호의 승리 
또 한 편의 철거민의 승리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도 이루어 졌다. 조들호(박신양 분) 변호사가 평소그 사장님을 어머니라 부르던 시장 순대굿집에 철거반원이 들이닥친다. 건물주인이 재개발을 빌미로 순댓국집을 철거하려 했던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건물주의 뒤에는 대화 그룹의 아들, 바로 조들호가 밝히고자 하는 3년전 뺑소니 사건의 범인 마이클 정이 있다. 그는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주들을 내쫓은 뒤 리모델링하여 집세를 올려받고자 현재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을 밝혀낸 조들호는 법정에서 그 사실을 밝히려 하지만 그의 편에서, 순댓국집 할머니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조들호의 진심, 그리고 몇 십년간 시장 상인들의 어머니처럼 인심을 쌓아왔던 순댓국집 주인의 마음이 시장 상인들을 움직여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이런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승리는 철거민의 클리셰처럼 익숙하다. 2014년 방영된 <빅맨>에서도 주인공 김지혁(강지환 분)은 조들호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 상인들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 심지어 극중 중심이 되는 곳도 조들호의 그곳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어머니처럼 여기는 분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10여년이 지나도 쉬이 나아지지 않는 철거의 상흔 
하지만 늘 철거민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은 드라마 속 그들처럼 기분 좋은 승리를 맛보거나,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고발하지 못한다.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철거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 등장한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갈등의 근원지는 바로 13년전 k그룹의 철거 현장이다. 이제는 카지노가 들어서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이곳이 13년전에는 여명하(조윤희 분), 정수경(정수경 분)이 그의 가족들과 경찰들과 대치하던 곳이요, 가족들을 잃은 곳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명하는 위기 협상팀이 되었고, 정수경은 정반대로 피리부는 사나이의 하수인이 되어 각종 사건의 배후로 암약한다. 13년이 흘러도 '철거'의 상흔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을 지배한다. 

12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트라우마 센터 사람들을 인질로 삼은 이철용 형사(이원종 분) 사건에서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유준상 분)과 하수인 정수경의 입장은 어긋난다. 이철용의 도발로 생방송 토론에 나온 양청장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윤희성은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생각했지만, 정수경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트라우마 센터에 독극물을 푼다. 공지만 팀장(유승목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기 협상이 주가 되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위기 협상팀 주성찬(신하균 분)의 활약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기에 드라마는 사건과 그 해결 과정에 집중하지만, 12회에 드러난 윤희성과 정수경의 대립은 주목할 만하다. 정수경을 찾아가 각목으로 피가 흐르도록 그를 팬 윤희성, 그는 말한다. 니가 이렇게 맞아도 니 생각이 변하지 않듯이, 사람들은 이철용의 인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양청장의 비리 대신, 피리남이 저지른 횽포한 사건에만 주목한다고. 윤희성은 일련의 테러를 통해 k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 언론 법이 함께한 카르텔을 폭로하고자 하는 반면, 정수경은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질주한다. 폭로를 위해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 윤의성도, 당한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정수경도 결국 13년전 k그룹 철거의 상흔이다. 비록 드라마는 철거의 희생자였던 두 사람을 이제 최종 보스와 그 희생자로 한정해 가지만, 가장 현실과 가까웁게 '철거'를 다룬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철거의 희생자들은 그렇게 상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국회의원 납치 소동극이 등장한 단막극도, 그리고 월화 드라마 1위에 빛나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그리고 신하균과 유준상이란 걸출한 배우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분위기,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부진한 <피리부는 사나이>도 모두 우리 시대의 '철거'를 다룬다. 물론 이제는 클리셰처럼 '소재주의'의 경계에서 간당간당해 보이기도 하고, 통쾌한 소동극이 되기도 하고, 주객체가 뒤바뀐 듯 고민이 깊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선거판에서 활개를 치는 발전과 개발의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철거를 동시대의 드라마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4. 13. 16:56

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개구리들을 넣어 놓은 뒤 불을 땐다. 개구리들은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 오를까? 답은 개구리들은,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의 열기에 뜨거운 줄로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이다. 

이 우화적 문구는 <피리부는 사나이>10회에서 등장했다. 극중 윤희성(유준상 분)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들을 죽이고야 말 끓는 가마솥, 드라마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 끓는 가마솥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이제 4회를 맞이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익숙한 사회적 현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갈등의 진원지는 k그룹의 철거 피해 현장이다.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현장에 경찰들이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길이 번져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k그룹의 신입 사원이었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강제 진압의 불가피함을 설파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강제 진압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진압 작전에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과 양청장(김종수 분)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명하(조윤희 분) 등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도,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로 수배를 받게 된 정수경(이신성 분)도 모두 그 강제 진압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극중 주요 인물들을 얽히고 설키게 만든 뉴타운 재개발 철거 현장은 시청자의 뇌리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를 남긴 용산 철거 현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인명 피해까지 생긴 용산 참사를 기본 얼개로 하여, 매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10회 오랫동안 별러왔던 용역 우두머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정수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은 그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끓는 가마솥에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돕자며 정수경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매개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곳으로 몸을 던지게 유도한다. 

9,10회에 등장한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인질 사건이다. 드러난 사건은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을 볼모로 삼은 공장 점거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는 수시로 때리고 모욕을 주는 인간 이하의 대우는 물론, 결국 임금까지 체불한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와 그 하수인들이 있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부터,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피리부는 사나이> 속 사건들은 이미 우리가 시사 다큐를 통해 익숙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현실이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인들의 몰락
자신이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대화 그룹 회장 아들이 벌인 사건인 줄 알면서도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덮었던 사건으로 인해 보육원 시절 동생처럼 강일구(최재환 분)가 죽고, 노숙자 변지식(김기천 분)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로 살아가던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제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그가 변호해야 하는 변기식 씨는 설렁탕 집을 내고 가족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장사가 잘 되자 집주인이 그들을 내모는 바람에 결국 가족과 헤어진 채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다. 그의 아들까지 증인으로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1심에서 실패하고, 조들호는 방향을 바꿔 목격자인 치매 할머니를 등장시켜 항소심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동내 변호사 조들호'란 간판까지 걸고 본격적인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동네 변호사가 된 그의 첫 사건은 모처럼 함께 회식을 하러간 감자탕집에서 시작된다. 

줄 서서 먹었다는 단골집이란 말이 무색하게 파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감자탕집, 그곳에서 조들호 일행이 식사를 하려하자 집주인이란 사람이 빈 소주 박스를 말로 차며 시끄럽게 등장한다. 침을 찍찍 뱉으며 식탁에 발을 올리는 등 불손한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이곳을 재개발하려 하니 얼른 집을 비우라고 독촉을 한다. 분개하는 감자탕집 아들에게 '임대자 보호법'까지 운운하며 법대로 하잔다. 이어 철거 용역까지 등장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들호는 설렁탕집에 이어, 감자탕집 주인을 위한 본격 동네 변호사가 된다. 

4회 조들호 일행에게 밀린 가게 주인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조들호가 해결하지 못한 뺑소니 사고의 범인 정회장의 아들이 있는 룸싸롱이었다. 그는 그 일대의 가게를 모조리 사들여 또 하나의 '뉴타운'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노숙자가 된 변씨도, 이제 조들호의 단골 감자탕집도, 그저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서 살려고 하는데, 좀 살만하게 놔두지를 않는 또 하나의 끓는 가마솥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경찰 위기 협상팀과 변호사라는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목이 졸려가는 서민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터전은 빼앗기고, 그래서 가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범죄자로 몰리거나,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대한민국 을들의 강팍한 현실을 드라마는 극의 주요한 갈등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한때 자신의 영달에 눈이 멀어, 애꿏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던 '앞잪이' 노릇을 하던 주인공들의 '개과천선'이 더해져 정의의 싹이 핀다. 끓는 가마솥의 불길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성과 위로를 주기 위해 드라마가 솔선수범한다. 

by meditator 2016. 4. 6. 05:32

5회까지 진행된 tvn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거기엔 매회 억울한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테러범으로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추이를 따라잡은 주성찬(신하균 분)은 그들이 사건을 벌일 때마다 범죄 신고 센터에 휘파람을 불며 발빠르게 이들의 사건을 신고한 '피리부는 사나이'가 있음을 알아챈다. 즉,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사람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억울한 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심지어 해결해 주겠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유혹에 사람들은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저마다 사건을 일으킨다. 


첫 회 동남아시아 인질 협상 과정에서 형을 잃은 동생, 2회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은행에 들어간 인질범, 그리고 가스통을 싣고 카지노롤 돌진한 심신미약자 등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그 누구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사람들이, 이른바 사건을 일으키는 '위기자'로 등장한다. 



화염병을 들고 방송국에 난입한 해직 기자 
하지만, 5회 사건이 달라진다. 해직된 기자가 방송국에 화염병을 들고 난입한 것이다. 물론 방송국에서 '해직'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앞서 다른 사람들처럼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것은 다를 바없다. 하지만, 방송 노조 위원장이었던 노기자의 억울한 사연은 앞서 위기자들의 개인적 사연과 궤를 달리한다. 한때 TNN 채널의 기자였던 노경석은 이제는 선배 이국장의 손발 노릇을 하며 그가 하라는 대로 하던 기사를 엎으라면 엎던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방송국에 반기를 들고 이에 해직을 당하자, 방송국 측에서 기자들을 사찰했다며 방송국 로비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말리던 후배 윤희성(유준상 분)과 몸싸움을 하는 척하며 그의 방송국 출입 카드를 손에 넣고, 화염병을 잔뜩 만들어 가방에 숨긴 채 방송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장실을 찾아가, 국장을 볼모로 삼아, 방송국에 숨겨진 기자 사찰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 맞서 다시 위기 협상팀으로 뭉친 주성찬과 여명하(조윤희 분)가 맞선다. 

국장을 인질로 삼은 노경석에서 언제나 그렇듯 여명하가 다가선다.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시냐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런 여명하의 설득에 눈빛이 흔들리던 이전의 위기자들과 달리, 노경석은 그런 여명하를 비웃는다. 그래서 여명하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냐고 반문하며, 심지어, 들어주는 척하며 결국 너도 다르지 않다고 일침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자신도 너와 다르지 않았다고, 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막는데 앞장섰다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론을 반성하다
그렇게 노경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저 기자, 해직 기자 노경석의 개인적인 토로가 아니라,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이국장의 개가 되어, 그가 지시를 내리는 대로, 세상에 알려야져야 할 소식들을 묻어버렸던 노경석, 그는 그가 해왔던 대로, 한 부실 건설사의 비리 기사를 덮었다. 하지만, 그저 그가 덮어버린 그 건설사가 지은 터널이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붕괴 현장을 본 노경석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국장의 개 대신,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노조 활동에 앞장 섰고, 이제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기사들이 숨겨진 그곳에서, 언론인들의 목줄을 죄 흔적인 기자 사찰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애인이 테러 현장에서 죽는 바람에 기업 협상팀에서 경찰청 위기 협상팀이 되어 테러 현장에서 배후를 쫓는 주성찬과 여명하의 활약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건 현장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에 주목한다. 처음, 주성찬의 진실을 유일하게 다루었지만, 그 진실을 자신의 앵커 자리와 맞바꾼 윤희성에서 부터, 은행 인질이 되어서도 뉴스 속보에 마음이 앞서 위기를 초래한 신참 기자, 그리고 이제 노경석 기자의 참회까지 드라마는 줄곧 언론의 속살과, 그 속살을 통해 우리 시대 언론의 의미를 짚는다. 

특히, 권력에 편승했던 노기자가, 해직 언론인이 되는 그 계기가 되었던 터널 붕괴 사건은, 그의 말처럼 자극적인 사건들에 덮인 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어져가고 있는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이 오버랩된다. 사람들은 지겹다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억울함'의 이면에는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끈질기게 따라가고 있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할 언론의 자기 방기가 있음을 드라마는 드러낸다. 

더구나 5회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사연을 가진 소외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세상 그 누구도 없어, 음지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고, 그것을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에 의해 이용당해 테러 위기자의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테러까지 초래되는 사건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그 '소통'의 매개자여야 할 기자가 이제 가진 자에 야합하여 진실을 막는 주체가 된 방송사에 화염병을 들고 그 자신이 위기자가 되어 뛰어드는 5회의 사건은 더더욱 우리의 왜곡된 언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by meditator 2016. 3.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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