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까지 진행된 tvn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거기엔 매회 억울한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테러범으로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추이를 따라잡은 주성찬(신하균 분)은 그들이 사건을 벌일 때마다 범죄 신고 센터에 휘파람을 불며 발빠르게 이들의 사건을 신고한 '피리부는 사나이'가 있음을 알아챈다. 즉,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사람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억울한 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심지어 해결해 주겠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유혹에 사람들은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저마다 사건을 일으킨다.
첫 회 동남아시아 인질 협상 과정에서 형을 잃은 동생, 2회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은행에 들어간 인질범, 그리고 가스통을 싣고 카지노롤 돌진한 심신미약자 등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그 누구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사람들이, 이른바 사건을 일으키는 '위기자'로 등장한다.
화염병을 들고 방송국에 난입한 해직 기자
하지만, 5회 사건이 달라진다. 해직된 기자가 방송국에 화염병을 들고 난입한 것이다. 물론 방송국에서 '해직'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앞서 다른 사람들처럼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것은 다를 바없다. 하지만, 방송 노조 위원장이었던 노기자의 억울한 사연은 앞서 위기자들의 개인적 사연과 궤를 달리한다. 한때 TNN 채널의 기자였던 노경석은 이제는 선배 이국장의 손발 노릇을 하며 그가 하라는 대로 하던 기사를 엎으라면 엎던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방송국에 반기를 들고 이에 해직을 당하자, 방송국 측에서 기자들을 사찰했다며 방송국 로비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말리던 후배 윤희성(유준상 분)과 몸싸움을 하는 척하며 그의 방송국 출입 카드를 손에 넣고, 화염병을 잔뜩 만들어 가방에 숨긴 채 방송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장실을 찾아가, 국장을 볼모로 삼아, 방송국에 숨겨진 기자 사찰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 맞서 다시 위기 협상팀으로 뭉친 주성찬과 여명하(조윤희 분)가 맞선다.
국장을 인질로 삼은 노경석에서 언제나 그렇듯 여명하가 다가선다.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시냐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런 여명하의 설득에 눈빛이 흔들리던 이전의 위기자들과 달리, 노경석은 그런 여명하를 비웃는다. 그래서 여명하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냐고 반문하며, 심지어, 들어주는 척하며 결국 너도 다르지 않다고 일침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자신도 너와 다르지 않았다고, 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막는데 앞장섰다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론을 반성하다
그렇게 노경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저 기자, 해직 기자 노경석의 개인적인 토로가 아니라,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이국장의 개가 되어, 그가 지시를 내리는 대로, 세상에 알려야져야 할 소식들을 묻어버렸던 노경석, 그는 그가 해왔던 대로, 한 부실 건설사의 비리 기사를 덮었다. 하지만, 그저 그가 덮어버린 그 건설사가 지은 터널이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붕괴 현장을 본 노경석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국장의 개 대신,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노조 활동에 앞장 섰고, 이제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기사들이 숨겨진 그곳에서, 언론인들의 목줄을 죄 흔적인 기자 사찰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애인이 테러 현장에서 죽는 바람에 기업 협상팀에서 경찰청 위기 협상팀이 되어 테러 현장에서 배후를 쫓는 주성찬과 여명하의 활약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건 현장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에 주목한다. 처음, 주성찬의 진실을 유일하게 다루었지만, 그 진실을 자신의 앵커 자리와 맞바꾼 윤희성에서 부터, 은행 인질이 되어서도 뉴스 속보에 마음이 앞서 위기를 초래한 신참 기자, 그리고 이제 노경석 기자의 참회까지 드라마는 줄곧 언론의 속살과, 그 속살을 통해 우리 시대 언론의 의미를 짚는다.
특히, 권력에 편승했던 노기자가, 해직 언론인이 되는 그 계기가 되었던 터널 붕괴 사건은, 그의 말처럼 자극적인 사건들에 덮인 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어져가고 있는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이 오버랩된다. 사람들은 지겹다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억울함'의 이면에는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끈질기게 따라가고 있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할 언론의 자기 방기가 있음을 드라마는 드러낸다.
더구나 5회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사연을 가진 소외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세상 그 누구도 없어, 음지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고, 그것을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에 의해 이용당해 테러 위기자의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테러까지 초래되는 사건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그 '소통'의 매개자여야 할 기자가 이제 가진 자에 야합하여 진실을 막는 주체가 된 방송사에 화염병을 들고 그 자신이 위기자가 되어 뛰어드는 5회의 사건은 더더욱 우리의 왜곡된 언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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