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 공식 초청작 <끝까지 간다>와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 <표적>에는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공통점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영화 초장부터 긴박하게 쫓고 쫓기는 액션의 진수를 보이는 이들 두 영화에서 중반에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는 형사 두 명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표적>의 송반장 역의 유준상과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형사 역의 조진웅이다.


광역 수사대의 송반장으로 등장하는 유준상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하듯이, 표적이란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영화 속 그가 등장해서, 정영주(김성령 분)가 수사하는 백여훈 사건을 가져갈 때까지, 그저 일련의 수사적 관행처럼 보여질 뿐이다. 유준상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었던 숱한 선량한 캐릭터들처럼 영화 속 송반장도 어떤 컬러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경찰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태훈의 눈 앞에서 그들을 쫓던 킬러들이 사실은 형사였다는 게 알려진 순간 송반장의 총구는 당겨지고,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악인의 등장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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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공 고건수의 사고부터 보여준다. 경찰서를 덮친 감찰반, 자신의 책상 속에 숨겨진 비밀 장부, 그 열쇠를 가지고 어머니 장례식장으로부터 경찰서를 향해 빗길 속을 달려가던 고건수, 길 한 가운데 있는 강아지를 피하며 가족과 통화를 하며 잠시 잠깐 한 눈을 팔던 그는 그만 사람을 치고 만다. 당황한 끝에 고건수는 사망자를 차에 숨기고, 다시 감찰관의 눈을 피해 그를 어머니와 함께 장례치뤄 버린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부터 시작이다. 그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 상대방은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를 줄줄이 다  꿰고 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어디에 묻어버린 것까지. 고건수 역시 자신에게 전화를 걸던 사람을 쫓아가려고 하지만, 놓치고 장면이 바뀌어, 고건수에게 전화를 걸던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다. 하얀 경찰복을 입은 우람한 체격의 박창민. <끝까지 간다> 역시 중반 부 이후 재미를 견인하는 주된 장치 중 하나는, 바로 박창민이 그저 고건수의 목격자가 아니라, 고건수가 재수없이 걸려든 거대한 악의 음모의 주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영화 <표적>과 <끝까지 간다>의 악의 축은 형사들이다. 그들은 직업만 형사일 뿐, 아니 오히려 형사라는 직책은 그들이 저지르는 비리의 배경의 한 요소로,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조직 우두머리 못지 않는 절대적 악의 권능을 뿜어낸다. 
광역 수사대의 반장으로 백여훈 사건을 맡지만, 실제 그의 목적은 백여훈을 없애고, 자신이 결탁한 아니 실제 자신과 자신의 팀이 저지른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광역 수사대와 그들을 대표하는 반장이지만, 실제 그들이 하는 일은 청부 살해를 비롯한 돈이 되는 그 모든 일이다. 영화는 오히려 법과 정의를 실현하는 광역수사대 반장 백여훈을 상대로,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정체모를 백여훈의 대결로 귀결된다.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역시 마찬가지다. 마약업자와 결탁한 그는 압수한 마약을 빼돌려 자신만의 마약 제국을 건설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른 자는 심장에 총구가 새겨진 교통사고 사망자로부터 고건수까지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덜 나쁜 형사대 더 나쁜 형사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영화 속 형사가 절대 악으로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영화만이 아니다. 드라마 속 형사들도 만만치 않다. <갑동이>에서 갑동이를  십 여년을 그토록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형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골든 크로스>에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대책없이 자기 딸의 살인범이 되어버린 과정에는 바로 권력의 손을 잡은 강력계 형사 곽대수가 있다. 그들은 정의의 편인양 등장해서, 법의 수호자인양 거들먹거리면서, 자신이 모시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그런 봉사의 핵심에는 바로 '돈'이 있다. 법률로 보장된직업적 소명은 아랑곳없이, 허울이 되고, 그들은 자신이 지닌 알량한 '권력'에 의지해 타인을 억압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고,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갑동이가 형사가 된 것이 기막힌 반전이라며 무릎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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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업자와 손을 잡고, 마약을 빼돌리며, 업자들에게 돈을 상납받는 형사들 캐릭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다수의 사건 사고를 통해 그런 비리를 익히 알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로 상징되는 법과 정의를 지키는 권력의 비리와 부도덕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 사회 법과 정의가, 약자들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을 무기력하게 인정한 우리들은, 그런 사실이 극단적으로 캐릭터화되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속 형사들이 익숙하다. 우리 사회 관권의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속성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갑동이> 속 연쇄 살인범 갑동이가 형사 반장이 되는 과정은, 결국 이 사회의 많은 범죄들이 가진 권력적 성격을 상징하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 <표적>과 <끝까지 간다>는 액션이 중심이된 오락적 성격의 영화임에도, 그들이 영화 마지막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법망을 피해 악을 저지르던 조폭을 무찌르는 액션 쾌감과는 또 다른, 타락한 권력이 정죄되는 '정의'의 심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표적>의 백여훈이 바란 것은, 이역만리 외국에서 자신의 목숨을 팔아 번 돈으로 동생과 함께 치킨 집이나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소박한 소망을 손반장은 자신의 편의에 의해 짓밟는다. 비록 고건수는 비리나 저지르고 자신이 친 시체를 숨기는 찌질한 형사이지만, 딸과 함께 살아보려는 소시민의 표상처럼 영화에서 그려진다. 그래서 그렇게 소박한 소망을 가진 보통 사람과, 소시민에의해, 그들보다 부도덕하며 그들보다 권력을 잘 이용해 먹는 악의 축들이 무너졌을 때 묘하게도 관객들은 억눌렸던 감정의 해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적>과 <끝까지 간다> 속 악인들은 개인일 뿐이다. 그들의 비리는, 영화 속 이들 개인의 비리처럼만 표상화된다. 그래서 그들의 제거로 어떤 여운도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신문에서 만나는 다수의 사건에서, 말단의 그 누군가를 제거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부도덕이 끊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바라볼 뿐이다. <골든 크로스> 곽대수는 거대 로펌 변호사 박희수의 하수인일 뿐이다. 그리고 박희수의 뒤에는 경제 정책 국장 서동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상위 1% 골든 크로스가 있다. 하지만 액션 오락 영화로서, <표적>과 <끝까지 간다>는 명쾌한 영화 미학을 위해, 감히 그것을 언급하지 조차 않는다. 어찌보면 하수인과 애먼 보통 사람과의 대리전이다. 죽도록 싸우는 강도윤과 곽대수의 결론을 골든 크로스의 지령을 받은 어깨들이 기다리고 있듯이,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한바탕 한풀이로 마무리된다.


by meditator 2014. 6. 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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