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논리같겠지만, '꽃보다 남자'까지는 참겠는데, 왠지 그 말 자체부터 '예쁜 남자'는 견디기가 힘들다.
'꽃보다 남자'는 언어적 유희로 볼 때 '비교법'이자, '상징법'이다. 즉 여성들이 가장 좋아할 대상인 꽃보다도 '남자'가 더 좋다는 직접적 표현이자, 남자가 꽃보다도 아름답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에 반해, '예쁜 남자'는 어디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도 없이 다짜고짜 남자가 이쁘단다. 이쁜 거야, 꽃도 이쁘고, 남자도 이쁠 수 있지만, 꽃보다 남자라고 하는 거랑, 그냥 남자가 이쁘다고 하는 거랑은, 그 말이 전달되는 당사자에게 닿는 느낌이 천양지차다. 물론 처음 '꽃보다 남자'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도, 남자가 꽃보다 낫다니 하며 면구스러웠지만, 이쁜 남자 쯤되면, 그 어떤 상상도 닫아버린 그 직설적 표현에 선제 공격을 당한 듯 움칠하게 된다. 즉 꽃보다 남자가 그래, 남자가 꽃보다 어떻다고? 하며 도전해 볼 여지가 있다면, 이쁜 남자는 듣는 즉시, 내가 그 편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노선을 정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드라마 <이쁜 남자>는 드라마를 보기도 전에, 궁금증을 유발하기 보다는 '선험적 정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기를 강요한다. 이쁘다는 남자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드라마 <이쁜 남자>도 마찬가지다. 대번에 주인공 독고마테(장근석 분)의 아름다움과, 그에게 반한 여자들을 나열한다. 부동산 재벌 잭희도, 여주인공인 김보통도, 그리고 독고마테가 가는 곳이 버스든 어디든 모든 곳의 여자들은 그에게 반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대놓고 아름다운 남자들을 들이대며, 호객 행위를 하는 방식은, 사실 이미 <꽃보다 남자>을 통해 증명된 방식이다. 왜 <꽃보다 남자>가 꽃같은 남자를 네 명이나 내세웠을까? 마찬가지로 <이쁜 남자>와 동시간대 방영되는 <상속자들>이 그들의 사연을 제대로 엮어주지도 못하면서 각 드라마에서 내로라 하던 꽃미남들을 긁어 모았는가 말이다. 말 그대로 취향대로 골라 감상하시라다. 그래서 늘 꽃미남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둘러싸고 치열한 지분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독고마테를 연기하는 장근석은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연기도 제법 한다.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물론 여전히 미스코리아도 뽑고, 미스 유니버스도 뽑지만, 길을 걷는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장근석은 아름답지만, 드라마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장근석을 아름답다고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러기에, <이쁜 남자>의 오프닝은 장근석이 이쁘다고 동의하는 사람만 모여라~ 하는 듯하다. 물론 2회 말미 이장우가 합세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다수의 여성들을 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뭐 그래도 장근석이 이쁘다고 동의한다고 치자. 그가 가는 곳이면 여자들을 홀리고 다닌다는 설정도 그렇다고 치자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스토리가 발목을 잡는다. 동생이랑 악을 빾빽쓰며 싸워대는 주인공 아가씨가 고등학생인가 했더니, 대학도 졸업한 백수란다. 그런데, 이 보통이 아가씨 첫 눈에 독고 마테를 보고 반했던 고등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백수처럼 지내다가 마테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달려간다. 자기가 마테 오빠를 지키는 슈퍼 우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껏 하는 일이 오빠 창고에 쌓인 양말을 내다, 이상한 마네킹 다리를 어깨에 걸고 세 개 천 원씩에 파는 식이다. 남자 주인공이 한심하면, 여자 주인공이라도 좀 인간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저 귀엽게 생긴 걸루 봐주기에는 하는 짓이 역시나 한심하다.
1회 말미, 홀로 투병을 해오던 마테의 어머니는 결국 마테에게 '암호'도 알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불현듯 나타난 유라(한채영 분)는 마테가 MG그룹의 서자란다. 그 사연을 들은 마테는 당연히 MG 그룹을 찾아가지만, 나홍란(김보연 분)에게 수모만 당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복수를 꿈꾼다. 그때 다시 유라는 복수의 칼을 갈기 위해 여자들을 잘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부동산 재벌 잭희를 통해 부자가 되는 수업을 받으라는 식이다.
헷갈린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마테가 지닌 출생의 비밀이 본류인가, 아니면, 그 조차도, 마테가 여자들과 어울리는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인가? 즉 본격 '제비'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드라마 사상 최초로 출생의 비밀을 이용한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냥 대놓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이야기로 이어가기 민망하니까, 어거지로다가, 같다 붙인 게 MG그룹의 서자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오빠에게 민폐를 끼쳤다며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 들고 나와 좌파을 꾸린 보통이가 우연히 최다비드(이장우 분)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개연성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쁜 남자>는 정말 참 만화같다. 하지만, 진지한 듯 하다가, 어느새 보면 찌질해져 버리는 주인공들 캐릭터는 딱 만화의 그것이고, 얼토당토않은 스토리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만화도 종류가 있다. 만화 같다고 해서, 만화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만화같은 드라마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쁜 남자>가 그 전략을 차용하고 있는 <꽃보다 남자>에서 정작 주인공들은 더할 나위없이 진지했다. 이른바 '병맛'코드는 찾아볼 수 없다. 종종 '병맛'코드가 등장하는 그 인기있다는 '원피스'조차, 그 병맛을 참아넘길 만큼, '해적왕이 될꺼야'라는 허무맹랑한 희망을 지지하게끔 만드는 설득력있는 논리적 전개가 있다. 그런데, <이쁜 남자>에서는 장근석이 이쁘고, 아이유가 귀여운 것을 넘어 선 그 어떤 것들을 찾아내기 힘들다. 진지한 듯 하다가 찌질해지다가도, 그들의 이야기에 설득당해 넘어가 줄 그 무언가가 없다.
1,2회 <이쁜 남자>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렉 선녀가 등장했던 부분이다. 전기가 흐르는 막대를 부딛치며 전기를 발생시키며 뒤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울부짖는 장면은 그 예전 <얼렁뚱땅 흥신소>를 연상시키는 괴기스러운 '병맛'의 최고봉이었다. 그 밖에도 소소하게 만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은 더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스크롤을 내리고 끝내 버리는, 혹은 뒤적이다 덮어버리면 그만인 웹툰이나 만화가 아니다. 드라마가 십여부작을 넘는 동안 시청자들을 사로잡아 두기 위해서는 순간 반짝이는 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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