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로 가까이에 인접하여 사는 집'을 이웃이라고 한다. 가족애가 우월한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웃을 '이웃 사촌'이라며 혈육만큼 진한 사이로 인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 사촌'도 옛말이다.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주차 문제'나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시시비비 혹은 심지어 살인까지도 초래하는 사건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 지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허긴 가까운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세상이다. 그렇게 변화된 의미(?)의 '이웃 사촌'의 세상에서, kbs2의 <인간의 조건>은 '이웃의 도움으로만 살기'라는 난해한 미션에 도전했다.
그간 주어진 <인간의 조건>의 미션들이 그 어느 것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었지만, '이웃의 도움으로만 살기'라는 미션이 더더욱 난감해 보였던 것은 바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곤란함에 있다.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나 '쓰레기 버리지 않기' 같은 것은 나 하나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친구'를 찾고, 돈없이 사는 데 필요한 '물물교환'을 위해 측근 누군가를 찾거나, 간혹 이웃의 도움을 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온전히 이웃의 도움으로만 6일을 살아야 한다니! 그것도 '요즘'같은 세상에!
여섯 멤버들에게 주어진 미션이 더더욱 난제인 이유는 그들이 미션 때마다 이용해 왔던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간 미션 과정 중에 가장 많이 이용했던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는 그만큼 촬영으로 인한 이웃들의 피해 정도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촬영이라는게, 그저 출연자들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촬영하기 위한 스텝에, 출연자 개인 스텝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공사(?) 이다 보니,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연남동 게스트 하우스가 그간 촬영으로 인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번잡했으며, 그로 인해 주민들의 피해가 작심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주변 이웃의 불만도 종종 표출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 난감한 상황을 제작진은 역설적으로 활용한다. 그저 주변 이웃에게 입에 발린 사과 몇 마디를 전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조건>의 미션으로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를 제시한 것이다.
왜 이 미션이 기발한 것인가는 3주에 걸쳐진 미션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설명된다. 당장 한 끼조차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연남동 동네 속으로 들어간다. 다짜고짜 이웃집의 문을 두드려 아침 밥을 구하고, 집에 남은 멤버들을 위한 음식 적선을 부탁한다. 거기서 조금 더 진화하면 체계적인 끼니 구하기에 돌입한다. 동네 문화센터에 들러 거기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이웃들 얼굴을 익혀가며 먹거리를 구하거나, 그곳 직원들의 식사에 숟가락을 얹는 식이다. 한 발 , 한 발 연남동 동네 주민의 삶 속으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스며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뜨네기 연예인들이, 야곰야곰 들어와 동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말 신기한 것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들어와 밥을 적선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끼니를 나누어주는 이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이 먹는 밥상에 수저 한 벌을 더 얹어 식사를 함께 하고, 곳간을 열어 가진 음식을 나누어 주고, 심지어 깨질지도 모를 그릇까지 선뜻 빌려주는 이웃이 여전히 서울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여섯 멤버들은 알아간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친근감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집 문을 열어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스스럼없는 행동을 하는 '이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미션은 일정 정도 성과를 얻은 것이라 보여졌다. 가까운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했다. 여섯 멤버가 6일을 이웃의 덕분으로 살아갈 만큼.
물론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가 그저 이웃집에 숟가락 하나 얹는 미션이 아닌 만큼 여섯 멤버들은 이웃에게 받은 도움을 갚아나간다.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는 여성들과 함께 늦은 밤길을 걸어주기도 하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위해 도시락 배달에 나서기도 한다. 그저 밤늦은 시간에도 시끌벅적한 촬영을 견뎌준 이웃에게 '떡 한 덩이'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벌였던 행사를 결국 연남동 동네 잔치까지로 확장하여 멤버들의 감사는 진화한다. 40여년을 한 곳에서 살아온 분들이 계신 곳이지만, 이제는 얼굴을 아는 이웃보다 그렇지 않은 이웃이 더 많은 곳이 된 연남동에서 동네 잔치를 통해 주민들은 이제는 서로 거기를 지나다 인사라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간다. 그저 동네에서 자주 민폐를 끼치던 연예인들이었던 <인간의 조건> 멤버들도 이제는 떠나는게 아쉬운 동네 주민이 되었고. 이웃에게 끼치던 폐를 갚기 위해 시작한 미션이었지만, 지금까지 미션 중 '자각'과 '계몽'을 넘어선 '뿌듯한' 결과물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성과을 얻어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연남돈 주민 잔치와 함께 병행하여 보여졌던 박성호가 벌였던 구미시 동네 잔치는 상대적인 초라함의 기억만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동안 연남동 주민들 사이에 스며들어 차곡차곡 관계가 쌓여진 행사와 그렇지 않은 행사는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지방판으로 속편의 형식으로 기획했다면 더 좋았을 부분이다.
또한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의 과정이 연남동 주민들과의 관계 설정에 치중한 부분도 아쉽다. 그간 <인간의 조건>이 매 미션마다 그 미션에 어울리는 공공부분의 견학을 했던 분량이 꼭 들어갔었는데, 이번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 미션에서도 실제 마을 공동체를 잘 꾸려내고 있는 '성미산 공동체 마을'이나 실제 <다큐3일>을 통해 방영된 '산새마을'같은 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예 '성미산 마을 공동체'같은 경우는 '공동체로 살아보기'란 미션으로 권장해 보고 싶다.
멤버간 대화에서도 등장했듯이 파일럿으로 잠깐 방영된 <인간의 조건> 여성편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결국 남성판 <인간의 조건>의 숙제로 남는다. 이제 멤버별 개성이 충분히 알려진 상황에서, 결국 미션 별로 진행되는 <인간의 조건>이 계속 승승장구할수 있는 방향은, 탁월한 기획력 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에게 끼쳤던 민폐를 '이웃의 도움으로 살기'란 미션을 통해 연남동 동네 잔치로 승화시킨 이번 미션은 성공적이다. 더더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시 멤버 개인으로 돌아가 자신이 실제 사는 곳의 이웃을 방문하는 후일담까지 곁들인 마무리는 '화룡점정'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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