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액션' 영화의 오래된 갈증이 무엇이었을까? 나현 감독의 <야차>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4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이 영화는 사천왕을 모시는 8명의 신 중 하나인 '야차'를 제목으로 내세운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지만 '부처님을 수호'하게 되는 야차가 가지는 양면성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강인(설경구 분)와 '블랙팀'을 통해 한껏 구현해 낸다.

4년 전 홍콩의 뒷골목, 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지프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그 차를 들이받는다. 한바퀴를 돌아 나뒹구는 차, 보통 액션 장면에서의 호흡보다 한 번 더 나아가며 이 영화의 정체성을 각인한다. 그리고 들이받는 지프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지강인, 거래를 하려했던 인물은 동료들을 배신한 지강인과 한 팀이었던 인물이다. 그에게 총을 들이댄 지강인은 배후를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잠시 뒤 하늘을 울리는 총소리, 배신자에게는 '자비'없는 처단만이! 이렇게 '야차같은' 장르의 이름표를 내보이며 영화는 시작된다. 

 

 

선양을 배경으로 한 무한액션 
'한국' 사회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물론 그럼에도 요즘 장르물을 중심으로 '총기'의 등장이 빈번해지고는 있다. 하지만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액션 장르에서 황야의 결투처럼 총기를 들고 끝장을 보는 서사에 대한 갈증, 그 갈증을 풀어내기 위해 <야차>는  '선양'이라는 지역적 장치를 선택했다. 

선양, 한때 만주족의 수도였던 도시,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가장 큰 공업 도시가 된 이곳을 영화는 동북아 각 나라 스파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로 설정한다.  번성한 도시답게 밤에 더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하지만 조금만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잘해줄게'를 연발하며 데려가 신장, 간, 쓸개 등을 해체해 버리는 '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이다. 또한 마약 등의 사건에 현장범은 그곳에서 '사살'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대낮에 북한로동당에서 외화벌이를 총괄하던 문병욱이란 인물을 두고 북한 스파이들과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에 지강인을 팀장으로 한 국정원도 연루되어 있다. 애초에 블랙 팀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문병욱, 하지만 그 사건으로 문병욱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강인은 그를 되찾기 위해 D7라 불리는 일본인 스파이 오자와(이케우치 히로유키 분)의 아지트를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문병욱이라는 인물 찾기라는 사건을 씨줄로 선양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살벌한 쟁투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걸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를 묻다 
정의에 대한 질문, 그 시작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강직한 검사 한동훈이 등장한다.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공정은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한동훈 검사는 재벌 총수를 구속시키려 하지만 절차 상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 물러선다. 수사관들이 무단으로 총수의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된 밥에 스스로 코를 빠뜨리는 고지식함, 이렇게 영화는 한동훈이 내세운 원칙적인 정의의 한계를 먼저 내보인다. 

한동훈은 좌천되고 다시 돌아가 수사를 마무리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스스로 선양이라는 도시로를 택하게 만든다. 그저 선양 국정원 팀의 불투명한 보고를 감찰하면 된다는 명목이었는데 도착한 그를 맞이한 건 블랙 팀의 총격전이다. 

영화는 날 것의 액션씬에 더해, 지강인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의와 한동훈의 원칙적 정의를 대비시키며 서사적 흥미를 자아낸다.  적에 대해 가차없는 작전, 거기에 더해 배신자에 대해서도 추호의 용서도 없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문의 여성에게 고문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이 사사건건 한동훈으로 하여금 반발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첫 장면, 지강인이 같은 팀원이었던 인물을 '처단'하게 만들었던 '두더지'라는 암약하는 이중 스파이의 존재가 그 갈등의 고뇌를 깊게 만든다.

물과 불처럼 결코 섞일 수 없을 것같은 지강인과 한동훈, 그리고 블랙팀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한동훈에 대해 반발하는 블랙팀원들과의 신념과 인간적인 갈등을 영화는 주된 관전 포인트로 삼는다. <오징어 게임>에서 멀쩡한 대기업 직원에서 결국 자신의 승리를 위해 '협잡꾼'이 되어버린 상우였던 박해수가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고지식하고 원칙적이어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지식해서 종종 웃픈 상황을 자아내는, 하지만 그래서 지강인이란 인물과 '버디(BUDDY)'가 되어가는 캐릭터를 맡아 극중 주된 재미를 이끌어 낸다.

 

 

<야차>는 어떤 면에서는 '정의를 이루어 내는 모든 방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며 절차적 정의에 천착했던 , 순수했던 인물 한동훈이 '선양'이라는 공간에서 '정의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는 블랙팀의 작전을 통해 스스로 '정의'에 대해 물으며 변화해 가는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 성장의 결과물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통쾌하게 선사된다. 

물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동훈의 맞은 편에 배신을 하는 이는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 밑바당에 팀원들이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의리'를 장착한 지강인이란 중심이 우뚝 서있어야 한다. 설경구란 배우가 오래도록 우리 영화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기점으로 다른 질감과 색채를 가진 배우로 새롭게 다가왔다. <야차>에서 설경구는 <불한당>이래 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질감의 연기, 그 연장선상에서 '니 껍데기를 벗겨줄게'란 대사에 전혀 이물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야차'같은 캐릭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낸다. 

제작진이 해보고 싶었다는 총성이 마구 울리며, 거침없이 상대방의 머리를 겨누는 선양이라는 스파이들이 번성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한 액션, 거기에 '정의'의 방식을 둘러싼 주연들의 갈등과 화해라는 서사적 재미를 통해 <야차>는 흥미로운 장르물이 된다. 물론, 눈밝은 관객이라면 예측 가능한 악역들, 굳이 <야차>만이 아니라 액션 장르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보여주기 식 선악의 대결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도시에서 한동훈을 소환하는 지강인의 호출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4. 9. 14:10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