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사장의 권위가 '신' 저리가라할 사립학교, 그 사적 권위 아래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을 어깨을 움츠리며 '예스맨'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하느라 분주하고, 학교 폭력 위원회는 가진 것이 많은 부모들이 장악한 채 정작 그 대상자가 되어야 할 자신의 아이의 죄를 가려주는 '관례'가 되어간다. 그렇다고 아이들이라고 다르랴. 지망자가 몰리는 사립학교의 이름값에 걸맞게 입시 준비에 불철주야 매진하고, 부당한 학교 폭력 정도는 눈 질끈 감는 것이 '관성'이 되어간다.
'죽음'으로 결을 달리한 사학 비리의 클리셰
바로 이런 사학 교육의 비리 현장은 이제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설정이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정국 고등학교 역시 그런 일반적인 '학교 '시리즈가 품었던 비리 사학 재단의 풍경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그런데 그 부당한 갑과 을의 권력 관계로 시작된 드라마는 희생양이 되어 학교 폭력 위원회에서 강제 전학을 당할 처지에 놓인 이소우(서영주 분)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교정에서 눈에 쌓인 시체로 발견되는 순간, 이 '권력'관계의 심각성은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서둘러 사건을 우울증 증상이 있었던 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서둘러 종결하려 하는 학교, 굳이 거기에 토를 달고 싶지 않은 경찰과 무심한 학생들 덕분에 사건은 유야무야 끝나려는 찰라, '고발장'이란 이름의 훼방꾼이 등장한다. 고발장은 모든 학생이 기억하는 이서우 폭력 사건의 주범 최우혁(백철민 분)과 친구들을 살해범이라 지명한다. 무엇보다 수신 거부 혹은 수신 난감의 고발장은 사건의 동심원을 고서연(김현수 분)에서 그의 아버지인 형사 고상중(안내상 분)으로, 교장에게서 뉴스 어드벤처 박기장(허정도 분 )로 확장시킨다.
사건의 확장만이 아니다. 늘상 있었던 최우혁의 패악 정도로 넘어갔던 학교 폭력이 이소우라는 같은 반 학생의 죽음으로 이어졌을 때만 해도 놀랐던, 그리고 왜 죽었을까 라며 꺼림직했던 아이들, 그러나 이제 고발장과 관련하여 순진하기만 했던 박초롱(서신애 분)이 교통 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서있고, 이주리(신세휘 분)가 그로 인한 실어증으로 교실을 비우며 빈 자리가 늘어나자 아이들은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미 방송 전에 알려졌듯이 <솔로몬의 위증>은 우리나라에서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르는 일본 사회파 소설가 미야베 마유키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2016년 이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의 12월에 일본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졌던 이 소설의 드라마화가 주목을 끄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2014년 어린 죽음들을 연상케 한 '가만히 있으라'는 그 한 마디 때문일 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vs.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아이들
이제 1,2회를 마친 <솔로몬의 위증> 속 한 아이의 죽은, 그리고 그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또 다른 아이가 던진 고발장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 관계가 겹친다. 사학 재단과 학교 관계자들은 서둘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려고 애를 쓰고, 경찰은 자살이 아니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정확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눈치를 본다. 그런가 하면 탐사 보도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윗선에 들어온 외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애를 쓰고, 하지만 그 누구라도 '어른들'은 모두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한다.
이제 곧 한 달만 있으면 고3이니 그런데 신경 쓸 때가 아니라며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너희들이 신경 쓸 일 이 아니니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그리고 어린 너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겟냐며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정작 자신들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해 첨예하게 각을 세우면서, 친구들을 잃은 아이들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 거 조차 수험생의 사치인양 부추기며 외면할 것을 종용한다. 학교 선생님이든, 믿음직스런 부모든, 의심스런 부모든, 정의의 사도인 기자든.
그러나 교실의 자리가 하나 둘씩 비워가는 걸 본 아이들 중 몇몇은 더 이상 고3을 핑계로 '가만히 있을'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애초에 이소우의 싸움을 못본 척 한 그 외면의 순간이 이소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지로 모른다는 자책, 그리고 그의 죽음에서 혹시나 놓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이제 가만히 있으라며 저마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만 혈안이 된 어른들을 보며, 먼지로 가려지지 않는 진실을 찾아 떠나려 한다. 드라마는 촘촘히 각 캐릭터에 대한 공들인 묘사와 함께, 그들로 인한 엇갈린 이해 관계의 설정으로 학원물 이상의 질문을 던지며 판을 벌인다.
2회 비로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운을 띄운 아이들, 그들이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 발이 시작되었다. 2회에서 엿보이듯이 고발장의 내용 자체가 의심이 되는 상황, 그리고 정국고 파수꾼이라는 의문의 존재의 복귀, 학생들 저마다가 마주친 실존적 관계적 고민들 사이이 엇갈리며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찾아내는 진실이 뜻밖의 원치 않는 '헬 게이트'을 열 수도 있는 상황. 그 어느 것도 장당할 수 없는 학생들의 여정, 그래서 흥미진진한 <솔로몬의 위증>은 신선한 학원 드라마나, 장르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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