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가 고등학생이다. 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가장 원칙적으로는 수능을 잘 보는 것에서 부터, 논술, 자기 소개소를 기초로 한 입학 사정관제, 내신 등의 여러가지 채널이 있다. 모두 다 합치면 몇 수백 가지의 입시 방법이 있다. 마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현재의 수능이 양산해 놓은 입시 방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내 아이는 이 중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학교마다 복잡해서 설명해 놓은 입시 설명서를 정독하고, 각종 입시 설명회를 쫓아 다닌다고 답이 나올리가 없다. 혼돈에 빠진 학부모들에게,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 외에, 아이에게 맞는 입시 채널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스펙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른바 '교육 컨설팅'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에게 맞춤한 입시 전략을 짜주는 것만으로도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 몇 천만 원이 호가하는 교육 사업이 활성회돈 입시 전쟁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공부를 못해서라기 보다는, 정보에 어두워서 대학에 못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바로 이렇게 몰라서 대학을 못가는 현실을 포착한 한 편의 예능이 등장했다. 바로 6월 11일 4부작으로 선을 보인 tvn의 <성적 욕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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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욕망을 예능화하다.
대놓고 '욕망'을 제목으로 내걸은 이 불온한 제목의 예능은 말 그대로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올인하고 싶지만, 도대체 '이노무 교육이 아니 입시가 어떻게 돌아가나? 알 수 없어 불안한 학부모들의 불안한 욕망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아이를 대학을 잘 보내기 위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입시 컨설팅 업체를 찾아드는 부모의 불안함을, '돈을 들이지 말라'며 유혹하며, 대한민국 TOP강사들을 망라하여 성적표컨설팅에서부터, 풍문으로 떠도는 입시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낱낱이 까발리며 입시 전쟁에 갈 곳몰라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고품격 정보를 전해주겠다고 한다.
그 첫회, '욕망 아줌마'를 자처하는 박지윤과 아이큐 152에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이지만, 그 어떤 공익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함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강용석을 MC로 내세운 <성적 욕망>은 이 프로그램의 정서를 대변한다. 거기에, 그간 '겸손'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문과임에도 수학을 잘해서 연대 경영학과를 선택했노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아머리칸 스타일'방식의 자기 홍보를 쉬이 받아들이는 '공부'에 있어서는 빠질 수 없다는 오상진과,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고3 1년 동안 '양'에서 '수'까지 입지전적 성적 향상을 성취한 대세 개그우먼 장도연이 합류했다.
이렇게 첫 회부터 다짜고짜 내 코가 석자라며 내 자식 컨설팅부터 대놓고 맡기는 강용석을 필두로, 학부모의 '간절한 이기심'을 대변하는 MC진과 함께, <성적 욕망>의 그 욕망을 실현시켜줄 실현체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강사진들을 과목별로 포진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첫 사례로 국제고 학생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고려대를 희망하는 그 학생의 희망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준다.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더 공인받는 현실
첫 회 <성적 욕망>의 강사진을 채운 것은 학교 선생님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이 때리는 건 신고감이지만, 학원 선생님에게 맡는 건 '사랑의 매'라고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사교육 현실 그대로 자칭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들이 '컨설팅'의 주체가 된다. 그들의 존재는 프로그램 초기 화려하게 자칭 타칭으로 설명된 그들의 스펙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세 아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MC로 나섰다는 강용석의 아들도 들어봤다는 강의, 그리고 프로그램 후반부 '풍문'으로 들었던 입시 비화에서 '억'을 호가한다는 그들의 몸값 등이 강사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몸값'으로 드러난 존재의 부각은, '강사는 신발을 벗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는 마무리를 통해, 이들이 그저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군이 아니라, 소신있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리고 그런 '상향된 이미지'는 그들의 말 한 마디가, 한 강사의 의견을 넘어, 공신력을 얻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공신력을 얻은 그들의 성적표에 대한 말 한 마디는, TV를 보는 학부모들의 뇌세포를 자극시킨다. 그저 일개 강사의 의견이 아니라, 그 어떤 학교 선생님보다도 믿을 만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허긴 이미 교육이 교육이 아니라, 정보전이 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장땡인 것이다.
알려주는 방식도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탐구 성적이 시원치 않은 학생, 그 학생에게 사회탐구 강사가 제시한 방법은 사회 탐구를 공부하는 방법이 아니다. 학생이 선택한 과목에 대한 평가도 학생이 잘 하고 좋아하는 과목이냐 여부가 아니라, 점수가 나오기 쉬운 과목이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현재와 같은 외부 모의고사에서도 불안정한 성적이라면,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학생에게 강사는 차라리 제 2외국어를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그것도 본인의 취향이나, 미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유리한 아랍어나, 베트남어로. 거기에 덧붙인다. 올해는 아랍어가 유리할 것이라고.
'풍문'으로 들은 입시 정보에서도 나왔듯이, 이들 강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사례로 그 해 수능 문제 적중율과, 심지어 수능 출제자 예측율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강사들이 지칭하는 선생님이란, 결국 단적으로 '대학 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가르킨다. 성적표를 가지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성적 욕망>에서, 학생의 관심사나, 미래의 꿈은 나부랭이가 된다. 문과가 대학 가기 힘들다는 말에, 그럼 우리 아이들도 이과로 바꿔야 하나 라는 고민을 드러내는 강용석의 한 마디가 단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증명한다. 거기엔 오로지 단 하나, 그저 대학을, 잘 가는 욕망만이 존재한다. 대학을 왜, 무엇때문에, 가야 하는지 따위의 고민은 사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보 부재가 대학 입시의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는 '복벌복 수능'에서, 그나마 성적표에 근거하여, '무료로' 적나라하게라도 정보를 제공해 주는 '예능'이 감지덕지일 지도 모른다는 자조가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컨설팅계의 EBS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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