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편의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싱스트리트>가 개봉되었다. 다음 작품이 또 다시 음악 영화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원스(once)>, <비긴 어게인(begin again)>, 이어 <싱 스트리트(sing street)>로 이른바 3부작이 되었다. 이들 세 작품이 3부작의 울타리로 함께 어우러 질 수 있는 것은 세 작품이 모두 '음악'을 다루는 음악 영화라는 점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임에도 모두 공통적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기도 하다. 




신드롬이 된 <원스>와 대중적인 <비긴 어게인>, 그리고 자전적 <싱스트리트>
2006년 몇몇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던 <원스>. 영화 중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처럼 실제 영국 인디밴드 리더인 글렌 한사드가 연기하는 그(the guys)와 역시나 영화처럼 동유럽 출신인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연기하는 그녀(the girl)가 보여주는 진정성, 그리고 그들의 다큐같은 설정에 빛을 발하게 해주는 <falling slowly> 등은 동심원처럼 우리 사회에 <원스> 신드롬을 일으켰다. 백수 취급을 받는 뮤지션과, 이민을 와서 음악 대신 가정부로 생계를 이끄는 그녀가, 피아노 판매점에서 양해를 구해, 함께 목소리를 맞추던 <falling slowly>는 그 어떤 세레나데보다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if you want me> 등을 비롯하여 영화 속 상황에 맞추어 등장하는 음악들이, 다큐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감동을 전했다. 

그렇게 노래 좀 분위기 있단 한다하면 <falling slowly>가 등장하게 만들었던 <원스>가 남긴 파문을 이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와 그룹 '마룬 5'로 잘 알려진 애덤 리바인이 합류한 <비긴 어게인>이 2013년 찾아왔다. 비록 스타가 된 애인 뒤에 남겨진 불운의 싱어 송 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 한때는 스타 프로듀서였지만 이젠 알콜 중독자 수준인 댄(마크 러파로 분이)라지만, 이미 <어벤져스>나 <캐리비안의 해적> 등으로 익숙한 배우들, 그 보다 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뉴욕'이란 미국 문화와 그만큼이나 대중적인 마룬 5 애덤 리바인의 노래 등은, 꿈을 찾아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성장담'이란 역시나 익숙한 성공담으로 <원스>보다 편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성취했다. 




이젠 익숙한 감독이 된 존 카니가 2016년 들고 온 영화는 <싱 스트리트>. 1980년대의 아일랜드 더불린을 배경으로  카톨릭 학교의 소년 밴드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 태생인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실제 존 카니 감독은 <원스>의 주인공이었던 글랜 한사드가 이끄는 그룹 더 프레임즈(the frames)에서 91년부터 약 2년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뮤지션 출신이다. <싱스트리트>는 실제 인디 밴드 출신 뮤지션과 동유럽 뮤지션을 기용하여 다큐적 성격을 강화시킨 <원스>, 그에 반해 이미 익숙한 기성 배우들과 스타급 뮤지션을 기용한 <비긴 어게인>는 중간쯤의 성격을 띤다.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만큼 아일랜드 더블린의 1980년대라는 배경에 기대어, 음악판 <빌리 엘리어트>와 같은 익숙한 성장담을 그려낸다. 

다른 배경, 하지만 같은 주제 의식의 3부작 
비록 그 배경은 미국의 뉴욕, 그리고 아일랜드의 더불린으로 달라졌지만,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는 모두 사회적으로 도태된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다. <원스>, 백수와 다름없는 거리의 음악가 그,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도, 댄, <싱스트리트>의 코너(페리다 윌시-펠로 분)도 그들은 음악에 기대어, 혹은 음악을 배경으로 살아가지만, 도시, 혹은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적 삶에서 배제된 그들은 '음악'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 '성공'하지 못한 혹은 배려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상처로 쭈끄러져 있다. 

영화 속 그들의 사회적 '배제'는 구체적이다. 2000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 공산주의가 무너진 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민을 와 생계 노동을 하는 사람, 그리고 여성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이 배제된 사람, 스타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온 프로듀서, 그리고 불황기의 아일랜드 가정의 소년, 소녀 까지. 이들 중 <비긴 어게인>이 보다 영화적이라면, 그에 반해 <원스>와 <싱 스트리트>는 아일랜드 출신 존 카니 감독의 배경에 얹혀져 그 리얼리티가 배가된다. 

그런 그들이 그녀(마르게리타 이글로바)와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 그리고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닝턴 분)이라는 뮤즈를 만나 '음악'을 통한 구원을 찾아간다. 사실, <비긴 어게인>이 키이라 나이틀리와 라크 러팔로라는 배우들의 연기의 맛이 곁들여져서 그렇지, <원스>나,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까지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단순하다. 

하지만 존 카니 감독의 영화를 스토리의 단순성만으로 폄하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단순한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스토리의 빈 공간을 채우는 구체적 사연이 깃든 음악들이다. <원스>의 <falling slowly>가 그랬고, <비긴 어게인>의 <lost star> 그랬듯이, tv에서 등장하는 듀란 듀란 등의 음악에 따라, 마치 커버 밴드처럼 밴드의 풍조차 변해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the riddle of model> 등이다. 특히 카톨릭 학교의 강압적인 교육에 대적하는 영화 클라이막스 <brawn shoes>는 통쾌하고, <go now>를 통해 거친 바닷 속을 헤쳐가는 작은 보트에 실린 소년, 소녀의 의지를 상승시킨다. 



존 카니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재능은 다른 성장 영화와 달리 이미 전제로 한다. <싱 스트리트>의 코너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데 시간을 투여하는 대신, 모델 지망생 라피나의 환심을 얻기 위해 시작한 밴드가 커버 밴드같은 모습을 통해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세세한 영화적 장치 대신 그들의 음악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원스>가 두 남녀의 음악적 사랑이 아일랜드의 고즈적한 정취를 풍미있게 만들고, 도시의 아웃사이더 두 주인공의 배회가 뉴욕이라는 도시를 화려한 불빛 이상의 정서를 배가하게 만든 반면, <싱 스트리트>는 80년대 불안한 아일랜드를 통해 21세기의 현재를 복기하게 만든다. 세 영화는 모두 아웃사이더들의 음악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시대 탓일까? 2006년의 가난한 뮤지션 그와 그녀, 그리고 2013년의 뉴욕의 아웃사이더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거나 되찾는 것으로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듯 보였다면, 거친 바닷 속의 일엽편주로 아일랜드를 떠나는 코너와 라피나의 미래는 'go now'만으론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노동조합의 욕을 들어 먹으면서까지 아들의 발레 학교 입학을 후원하는 아버지 대신, 이혼하고 집을 팔아버린 부모들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투명한 소년과 소녀의 미래에의 'go now'가 역설적으로 이전 작품보다, 음악을 통한 '구원'이라는 면을 진지하게 천착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싱 스트리트>의 불온한 소년의 미래를 위로하는 건, 정작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서둘러 나간 후 어른이 된 코너로 짐작되는 성인 밴드들의 여유로운 <the riddle of model>이다. 


by meditator 2016. 5. 26. 16:24

문명 사회 속에 원자화된 존재로 던져진 개인이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건, 기쁨이나, 행복, 성공보다는 오히려, 좌절, 실패, 소외, 그리고 슬픔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는 많은 작품들은 그런 개인들을 위로하고, 부축해 일으켜 다시 한번 살아가자고 토닥인다. 제목부터, <비긴 어게인> 역시, 다르지 않다. 그의 전작, <원스>처럼 <비긴 어게인> 역시 음악을 통해, 두 남녀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막상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오히려, 스토리를 능가하는 음악의 힘이 크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알맹이는,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실의에 빠진 두 남녀가 힘을 얻는 그 순간, 그 지점의 환희다. 어쩌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잠깐 스치듯 마주쳤던 무지개를 잊지 못하듯,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열정을 확인했던, 그 순가에 매료되어, 다시 삶을 지속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긴 어게인>의 오프닝은 스티브(제임스 코든 분)가 노래하던 술집 소파에 찌그러지듯 앉아있던 그래타(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마지못해 스티브의 부름에 불려나가 기타를 치며 나직이 읊조리듯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장면, 하지만, 객관적이었던 장면이, 그녀를 바라보던 댄(마크 러팔로 분)의 시점에서, 그리고 그래타의 시점에서 다시 되풀이 되면서, 영화는 비로소 이야기가 풀려나가고, 루저가 된, 그래타와 댄의 사연이 풀어내어진다. 

STILLCUT

그렇게 시작된 그래타와 댄의 사연은, 아득하다. 힙합 독립 레이블로 시작하여 스타 프로듀서가 된 댄은, 몇 년 동안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한 채 함께 했던 회사는 동료에게 넘기고, 집은 아내에게 넘긴 채,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머물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자살까지 결심한 처지의 실패자이다. 그래타 역시 그다지 나은 상황은 아니다. 마치 원스의 남자 주인공처럼 영화 한 편을 통해 벼락 스타가 된 남자 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 분)와 함께 뉴욕 행을 택한 그녀는, 그저 스타가 된 남자의 연인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노래를 작곡해 주었던 음악적 동반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로 스타가 된 그의 곁에 그녀의 자리는 없다. 심지어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겼다. 이제 그녀에게는 그녀를 이루어 주었던 남자도, 음악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버틸 수 없어 뉴욕을 등지고자 한다. 그런 그래타가 마지못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를 댄이 듣는다. 

온통 음악으로 휘감은 듯한 <비긴 어게인>에서, 그런 충만한 음악 속에서도 더더욱 빛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지점의 음악이 그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술 기운을 빌어 지하철에 뛰어들겠다고 마음 먹은 댄은 술의 힘을 빌리기 위해 들린 술집에서 그래타의 노래를 듣는다. 그녀의 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독백하듯 읊조리는 그녀의 노래 소리에, 오래도록 그를 떠났던 영감이 다시 찾아온다. 오로지 기타 반주에 의존해부르는 그녀의 노래에, 저절로 피아노 건반이 반주를 넣고, 베이스와, 바이올린, 드럼이 등장한다. 완성되지 않은 곳이라며 채 마치치도 않고 자리를 뜬 그래타와 달리, 댄의 귀를 울린 그녀의 음악은 그토록 그가 찾아헤매던 바로 그 '곡'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댄이 진흙 속에 숨은 진주라며 그래타를 자신의 동료에게 데리고 가지만, 데모 테이프조차 없는 그녀를 알아줄리 만무하다. 하지만, 기적처럼 영감을 길어올린 댄은 포기하지 않는다. 데모 테이프 대신, 뉴욕을 배경으로 날 것 그대로의 그래타의 작품을 만들기로 한다. 대가를 음반이 나온 후 주기로 약속하고 함께 하기로 한, 그래타의 오랜 동료 스티브를 비롯하여, 고전 음악을 연주하던 예일대생 오누이, 발레 반주를 하던 건반 연주자, 오랜 친지를 통해 소개받은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 그리고, 거리에서 음반 녹음을 방해하던 아이들까지 합류해,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뉴욕의 거리를 배경으로 한 곡의 음악이 탄생한다. 조용히 해주는 댓가로 몇 달러를 흥정하던 아이들도, 아니 그저 비발비가 아니라면 그것으로 족하다던 음대생들도,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뉴욕 할렘가의 주민들도, 그리고, 노래를 하는 그래타도, 그런 그들을 지휘해 나가는 댄도, 이것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약도 잊은 채 잠시 잠깐 음악에 어우러져 흥에 겨웠던 그 순간, 그것이 바로 <비긴 어게인>이 빛나는 지점이요, 그래타와 댄을 좌절에서 길어올린 순간이다. <원스>에서, 우연히 들른 피아노 판매상 안에서 그(글렌 한사드 분)와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목소리를 모아 노래를 부르며 소통하는 그 지점이 겹쳐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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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그런 순간들은 반짝반작 빛이 난다. 그 어떤 시도를 해도 늘 어긋나기만 했던 아버지 댄과 딸 바이롤렛(헤일리 스테인 펠드 분)가 그녀의 기타 연주를 통해 화해하는 장면도, 그저 연인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교감을 이루었던 그래타와 데이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씌여졌던 데이브의 생일씬과 데이브에게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던 씬까지, <비긴 어게인>은 인간사의 교감을 음악을 통해 빛나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우리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계기라 밝힌다. 

마치 '썸'이라도 탄 듯이, <원스>에서도 그렇듯이, <비긴 어게인>에서도 두 남녀 주인공은, 사랑인 듯 사랑이 아닌듯 그런 관계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로써 족하다. 왜? 뉴욕 거리를 함께 거닐며 음악을 맘껏 들으며 교감했던, 함께 연주하며 음악을 나누었던 그들은, 서로가 함께 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았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비긴 어게인>은 그렇게 다시 삶을 살게 된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다시 서로를 통해 삶을 살아가게 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by meditator 2014. 8. 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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