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자 한겨레 신문의 기사다. '도시와 농촌의 비만율 차이는 여성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2008년 0.1% 차이였던 도농간 여성 비만율 격차가 해마다 벌어져 2012년 10.7% 포인트까지 커졌다.' (중략)'도시보다는 농촌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연령대가 높은 여성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만율은 소득이 적을수록, 나이가 많을 수록 높은 게 일반적이다.'
이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비만율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렇게 지역에 따라, 나이에 따라 비만율의 차이가 드러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이데올로기가 내재화되고 있음을 수치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중, '농촌에 사는 여성은 도시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자유로워 자기 관리 욕구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표현이 있다. 즉, 우리 사회 여성의 날씬한 몸은, 경쟁 사회에서 생존의 지표가 되었고, 그런 스트레스로 인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 몸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는 통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 그리고 그런 날씬한 몸이 우리 사회의 경쟁 사회에서 성공의 지표가 되는 듯이, 그 반대로, 날씬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경쟁 사회의 표준화에서 벗어난, 패배주의적 현현이요, 따라서 지탄받아도 변명할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경쟁력이 된 이데올로기가 내재화된 현상은 tv 속에서 자주 조우할 수 있다. tv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뚱뚱한' 몸을 가진 여성들은 개그우먼들의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여성들은 tv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 질까?
8월 9일 <인간의 조건>에서 개그우먼 김영희는 새로 게스트로 들어온 박은지와 갈등을 일으켰고, 그 결과 거의 며칠간 <인간의 조건> 게시판이 '폭발'할 정도의 악평에 시달렸다. 물론 8월 9일의 <인간의 조건> 내용은, 마치 김영희가 박은지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그것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으로 상황이 편집되었고, 설상가상 그런 내용에 대해 시청자들의 불만이 '하차'를 논할 정도로 폭주하자, 그에 대해 김영희가 자신의 sns에 '반사' 등의 내용을 올림으로써 더 강화시켜가는 과정상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만약 새로 들어온 게스트가 박은지가 아니라 김영희였다면, 그래서, 김영희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몸매가 다 드러내보이며 요가 동작을 선보였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게스트로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김영희에 대해 박은지가 불쾌감을 드러내 보였다면?
아마도 여론은 십중팔구 그 반대의 양상을 띠었을 것이다. 어디 그런(?) 몸을 노골적으로 들이미냐에서 부터, 그런 김영희를 못마땅해 하는 박은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지 않았을까? 실제 <인간의 조건> 프로그램 내용 중에도 나온다. 이제는 친구가 된 김신영과 박은지이지만, 워낙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박은지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두 사람이 친구 사이가 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실제 그 다음 회에 이르기까지 박은지의 행동 하나하나는 <인간의 조건> 여성 게스트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무엇인가를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독불장군' 캐릭터인 경우가 많았다. 단지, 그런 박은지에 대해 다른 멤버 들이 '저 사람 뭐지?'하며 황당한 리액션을 하는데 멈춘 반면, 그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김영희는 대중의 포화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인간의 조건> 여성편을 하는 동안, 마치 엄마처럼, 늘 앞장서서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고 멤버들을 챙겨왔던 그녀의 공은 하루 아침에 온데 간데 없이, 그간 그녀가 해왔던 격한 태도들만이 부각된 채 김영희는 <인간의 조건>에서 퇴출될 몹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김영희가 조금만 더 이쁘고 날씬했더라도, 반대로 박은지가 조금 더 뚱뚱하고, 이쁘지 않았더라도 상황이 똑같이 전개되었을까?

이런 일련의 해프닝 과정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이 어쩌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뚱뚱하고, 이쁘지 않은 여성들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공감대가 아닐까?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 '선배선배'에서도 이런 의식들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대학교 신입생 이수지는 한 눈에 보기에도 그리 날씬하지 않은 통통한 몸매에 귀염성은 있지만, 이쁘다고 말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요즘의 평균적인 평가(?)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성이라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선배선배' 코너의 기본적인 웃음기는 바로 이런 그녀의 아이러니한 자아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통통한 그녀가 자신을 한껏 자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웃긴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주변 사람들, 선배인 정명훈이나, 류근지가 그녀를 '벌레보듯' 피하는 상황이 당연한 듯이 전개된다. 정명훈이나 류근지는 코너가 진행되는 도중 그녀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와 눈이 마주칠라 하면 허겁지겁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녀가 그의 말 한 마디에 삐져서, '선배! 마이너스 100점'하면, '다행이다'로 대꾸하고. 그런 선배의 반응에 눈치가 없는, 수지가, 이 코너의 백미를 이룬다. 거기에 덧붙여, 수지와 비슷한 덩치를 지닌 조수연이, 애인이 있고, 애인과 함께, 요즘 연인들이 하듯, 오그라드는 행동을 벌이는 것이, 또한 '착각' 혹은, '어불성설'의 서사로 전개시킨다.
이 코너의 전제로 깔린 것은, 날씬하지도 않은 주제에, 통통하거나, 성형을 거치지 않아, 자연스러운 외모를 가진 그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여성들이라면, 한껏 다리가 드러난 옷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며, 자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그 코너를 보며 웃음을 참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런 전제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배, 선배' 코너의 신입생 이수지의 당당함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퉁퉁한 개그우면 이국주의 '당당함'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김보성의 '의리'를 코스프레하며, 대놓고 '식탐송'을 불러대는 이국주를 즐긴다.그런 '당당한' 이국주가 인기를 끄는 것은, 실제로 날씬함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경제적 몸매를 내재화한 피로감의 표출이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대놓고, 선을 넘어 당당하게 즐기는 듯한 이국주에 대한 '선망'의 표현이다. '선배, 선배' 코너의 이수지를 보며 비웃는 그런 내재화된 몸매관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억눌려진 스트레스의 발현이랄까. 사실은 그들도 피곤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칼로리를 염두에 두고, 참다참다 못해 폭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이, 날씬한 몸매가, 자기 관리의 상징이 되는 이 '도시'의 삶을 견디는 피로의 발산이, 이국주에 대한 호응으로 나타난다.

'선배선배' 코너의 이수지에 대한 웃음기가, 이국주에 대한 호응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몸매에 대한 대중들의 분열된 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기는 피곤하지만,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마음껏 욕망하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자뻑은 '개그'일뿐, 진지한 인정은 아니다. 이국주는 웃기지만, 이국주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들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전 명화 속 그녀들은, '비만'에 가까운 몸매를 자랑하며, 풍요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극히 경제적인 여성들의 몸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꼬집의 살집조차 죄책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퉁퉁한 몸매는 죄의식이 되어야 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 그래서 자신과 다른 몸매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한껏 웃음의 소도구로 삼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회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나, 그 경제적인 몸매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떼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푸근한 삶의 여유나, 넉넉한 타인에 대한 아량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4. 8. 21.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