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ebs 다큐 <민주주의>는 2부 민주주의의 엔진, 갈등 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드러나고 있는 세대 갈등을 다룬다. 지난 2012년 선거를 통해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투표 성향은 세대 별로 삼등분된다는 것이다. 즉 억압적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한 세대와 민주화 세대, 그리고 imf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몸으로 겪어낸 세대는 시대 경험이 고스란히 정치적 입장으로 드러나고, 이는 곧 세대 갈등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앞서 살아온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낸 고달픈 삶에 대한 존경은 커녕, '꼰대'취급을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지만, 그런 어른들에게 존경을 보내기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물려받은 사회적 유산은 아버지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경제적 부에 대한 체감을 하기도 전에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듯 너무도 열악하기에 차마 존중조차도 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애증의 이웃 일본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세대 갈등'이 있을까? 최근 개봉한 미시마 유키코의 영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을 통해 내연화된 일본의 세대 갈등을 엿볼 수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앙>의 지켜야할 소중한 유산
최근 우리 나라에 개봉한 일본 영화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앙> 등에서 보여지듯이, 영화 속 일본 젊은이들은 그들보다 앞선 세대가 남겨놓은 유산을 계승한다. <바닷 마을 다이어리>의 세 자매는 엄마가 집을 나가 버려도 할머니가 남겨주신 지네가 나오는 오래된 집에 깃들어 서로 의지하며 산다. 큰언니 사치(아야세 하루카 분)는 함께 외국으로 나가자는 애인 대신 오래된 집을 지키며 자신이 다니는 병원에서 호스피스 간호사로서의 보람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빠가 남긴 엄마가 다른 동생까지 챙기며. 아마도 그녀가 동생들과 그곳에 남게 된 가장 큰 동인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오래된 나무에서 매실이 매년 열리는 할머니의 낡은 집을 빼놓을 수 없다. 동생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할머니의 오래된 집은 그녀들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어주는 문화적 울타리가 된다.
<앙>도 그리 다르지 않다. 도리야키 가게 점장(나가세마 사토 분) 앞에 나타난 도쿠에 할머니(키키 키린 분), 그는 그 할머니를 통해 그저 잘 팔아야 하는 대상에 불과했던 도리야키와 그 재료가 되는 팥이 '마음'의 매개가 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비록 할머니가 본의 아니게 숨겼던 병으로 결국 함께 하지 못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해' 팥을 다루는 할머니를 통해 '장인 정신'을 배워간다.
이렇듯, 똑같이 2015년에 만들어진 두 영화는, 젊은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 시간은 영화 속에서 그들이 이어받은 유산 속 그 시대로부터 그리 흘러가지 않는다. 도리야키 점장은 결국 할머니처럼 마음을 다해 팔을 삶아 도리야키를 만들게 되고, 사치 자매는 여전히 늙은 나무에서 해마다 매실을 따며 낡은 집을 지켜낸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그 누구라도 공감하듯, 영화 속 젊은이들의 그런 선택은 설득력을 지닌다. 해외로의 도전보다도, 오래되었지만 푸근한 낡은 집이, 그리고 많이 팔리는 대신 하나를 팔더라도 감탄을 자아내는 도리야키는, 21세기의 빠른 문명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리고 두 영화에서 젊은 이들은 이를 계승하며 시대와 시대를 잇는다.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은?
오히려 앞선 두 영화보다 1년 먼저 만들어진 <미나니 양장점의 비밀> 속 미나미 양장점도 시작은 같다. 할머니 시노의 장례식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옷을 입고 '추도'를 할 정도로 훌륭했던 할머니, 그녀의 남겨진 유일한 손녀 미나미 이치에(나카티니 미키 분)는 그런 할머니의 유업을 계승하고자 한다. 그녀가 만든 옷을 보고 단번에 반해 그녀에게 브랜드를 런칭하자고 찾아온 후지이(미우라 타카히로 분)의 제안도 단번에 거절한다. 심지어 할머니가 만드신 옷의 수선만으론 유지할 수 없어 만들어 판 옷조차도 할머니의 패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옷이라며 자신만의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 외면한다.
영화 속 미나미 할머니가 만든 옷은 양장이다. 그저 양장이 아니라, 세탁소 아줌마, 야구 중계를 보며 실랑이를 벌이는 부부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 줄만한 화려한 드레스와 정장들이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시노가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일상에서 벗어나 일년에 한번 '연회'를 벌이며 어른들의 축제를 즐긴다. 마치 서양의 19세가 무도회장이 연상되는 듯한 연회, 그 속에서 우아하게 '댄스'를 즐기는 선남선녀들. 21세기라기엔 생뚱맞게도 보이는, 이 고풍스러운 복식들은, 마치 전통의 일본이 서슴지 않고 받아들인 그래서 서양의 문화를 연상시킨다. 서양의 빵이 일본이라는 문화를 만나 카스테라가 되고, 소보루가 되듯이, 시노라는 장인을 통해 그녀만의 패턴과 무늬를 통해, 일상의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축제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복식들은 오늘날 일본이 이룬 화려한 문화 유산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노의 손녀, 미나미는 바늘 한 땀도 완벽한 할머니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여전히 그것을 애용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그녀의 빈틈없는 일상에 후지이가 등장하며,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이미 그녀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할머니의 유산이 주는 중압감에 견디지 못할 때면 동네 찾집을 찾아 치즈 케익을 과식함으로써 자신만의 욕망을 제어해 왔기에, 후지이로 인한 파문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미나미의 쉽게 흔들리지 않는 표정처럼 흐름을 이어가는 영화는, 연회에서 결국 미나미를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후지이가 떠난 그 지점에서, 여전히 강고한 유산의 무게로 남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후지이가 떠난 후 찾아간 찾집의 치즈 케잌맛이 예전과 다르듯, 그토록 완강했던 미나미는 어느새 자신이 예전 그렸던 패턴을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나미는 할머니 시노를 앞지르고자 한다. 하지만 그건 지난 시간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곧 할머니의 유산을 외면하는 것이란 부담이 아니다. 여전히 할머니의 유산은 훌륭하지만, 이제 더는 그 할머니의 유산이 현재형으로 남아있을 여지가 많은 상황을 시인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할머니를 미나미는 이겨낸다.
미나미의 오랫동안 뜸을 들인 선택은, 마치 일본이라는 화려한 문명적 성취을 이훈 앞선 세대를 둔 현 세대의 지난한 고민처럼 받아들여진다.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그래서 여전히 낡았음에도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집이나, 장인 정신이 담긴 '앙꼬'와 같은 선조들의 그것을, 그저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삶'으로서의 현세대의 당대성을 '옷'이라는 적절한 소재를 통해 영화는 풀어낸다. 낡은 집이난 팥소는 전통으로 지킬 수 있지만, 옷은 새로이 만들어 져야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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