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본 영화가 그렇다고 '보편적'으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고레에다 다카에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라던가, 다케 마사하루 감독의 <백엔의 사랑>이 가지는 공통적 화두는 '변화하는 세상'의 '자존'이다. 이제 색다른 '멜로'의 장르로 찾아온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도 그 일련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 어떤 일본의 감독보다 압도적이다. 그 이유는 첫사랑을 겪은 성인이라면 한번쯤은 보거나 들어봤을 '오겡끼데스까?'라는 그 한 마디로 설명되는 <러브레터>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련한 첫사랑의 전설로 회자되는 <러브레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사실 그리 아름답기만한 내용은 아니다. 애인이 죽은 지 2년이 다 되도록 그를 잊지못한 히로코, 그 여자가 애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후지이 이츠키를 만나며 순애보였던 사랑의 뒷면을 알게되고 비로소 사랑을 마무리지는 '이별사'이자, 담담한 인생의 서사이다. 그런 어찌보면 쓸쓸한 삶의 서사가 아련하고 애틋한 이와이 슌지의 정서와 만나며 잊지못할 첫사랑의 명작이 된 것이다.
그렇듯 <립반윙클>의 신부도 한 여성의 수난사, 그리고 혹은 사랑이란 서사가 역시나 이와이 슌지의 정서를 통해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어디에?첫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편지'라는 고전적 매개체를 등장시켰던 <러브레터>처럼 <립반윙클의 신부>의 매개체가 된 것은 'sns' 플래닛이다. 임시교사로 재직중인 미나가와 나나미 (구로키 하루}가 의지하는 것은 그녀의 플래닛과 플래닛의 이웃들이다. 남편을 맞선사이트에서 고르고 그와 거리에서 만나 서로의 조건에 맞추어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가는 과정, 그 과정 속의 혼란과 의아심을 남편대신 플래닛의 이웃과 소통한다. 심지어 그런 그녀를 의심하는 남편에 플래닛을 없애는 대신 새 계정을 만들며 .하지만 그럴듯한 직업도 여의치않듯이, 그럴듯한 결혼 생활도 그녀에겐 역시나 여의치않다. 플래닛 친구를 빙자한 마스유키(아야노 고)의 사업적 이용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거짓'으로 채워진 그녀와 남편의 결혼 때문이었는지, 결국 그녀는 한밤중에 낯모를 거리를 헤매는 처지에 이른다. 영화는 결국 거리에 내던져진 나나미의 처지를 통해 '가족'과 '결혼'이라는 구 제도, 그리고 '플래닛'이라는 새로운 문물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쉬이 확립할 수 없는 오늘날의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면 아마도 <립반윙클의 신부>는 그저 현대 사회의 적나라한 비판서로 마무리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임에랴.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그렇게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확인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다시 관객이 보기엔 가장 믿지못할 인물인 마스유키에게 전화를 하는 어리석은 행보를 걷는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아르바이트 소개, 자신의 결혼을 파멸로 빠뜨렸던 그 결혼식장 알바 자리에 앉아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녀에게 찾아온 거액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거기서 다시 만난 사로나카 마시로(코코 분).첫 번 째 결혼이 파탄나는 과정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여주인공 나나미의 비주도성이다. 결혼을 하는 과정도, 그것이 파탄나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끌려다닌다. 심지어 홀로 나와 사는 삶에서 조차도 그리 주체적이지 않아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영화 속에서 했던 유일한 주체적 언어는 '같이 죽겠어요'다. 그녀가 행복한 웃음을 띤 결혼식은 마시로와 함께 한 장난같은 결혼 코스프레이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한 한 마디의 언어가. 천진난만하게 행복해하던 결혼식이 그녀를 살린다.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심지어 그녀와 함께 죽으려던 마시로도, 늘 그녀를 이용해 먹기만 하던 마스유키도 그녀의 천진한 교감 앞에 손을 든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그녀를 이용하려했던 사람들, 그녀 앞에서 끝까지 진실하지 못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삶을 움켜쥔 그녀에게 그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 나나미를 만났던 마츠유키는 초콜릿을 건네주며 당신의 마음이 문제라고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sns 시대이건 구시대의 유물같은 결혼이건. 동성애의 결혼이건, 그게 문제가 아닐지도. 연인의 숨은 첫사랑을 찾아내며 비로소 자신의 연애사를 직시하고 정리할 수 있었던 <러브레터>의 히로코처럼, 나나미도 연인의 죽음을 겪고 담담하게 자신을 마주본다. 동화같은 레스토랑에서 살아남은 건 립반윙클 대신 그의 아내 나나미다. 나가지마 미호가 있었기에 <러브레터>의 감성이 가능했듯, <립반윙클의 신부>는 때로는 답답하고, 하지만 그 천치같은 순수함으로 결국 자신을 살린 구로키 하루란 배우의 존재감에 의지한다. 거기에 때로는 sns 시대의 삶을 감각적으로, 혹은 몽환적으로 그려낸 이와이 슌지 감독의 감성이 더해져 신선한 멜로 한 편이 탄생되었다. 멜로라기엔 어패가 있어보이는, 하지만 본의 아니게 멜로가 되어버린 나나미의 순애보를 통해 시대와 사회라는 조건 속에서 사람과 사랑의 문제를 짚어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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