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가 종영되었다.

다른 시즌에서도 그래왔듯 그녀 신주연(김소연 분)의 집을 찾아든 주완(성준 분)과의 사랑을 이룬다. 무려 여섯 살 연하의 잘 나가는 뮤지션 남친이다. 주인공 신주연만이 아니다. 그녀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이민정(박효주 분)도, 정희재(윤승아 분)도 다 사랑을 쟁취했다. 다만, 신주연과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던 강태윤(남궁 민 분)과 오세령(왕지원 분)만이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침표를 찍지 못했을 뿐, 말 줄임표가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랑만이 아니다. 신주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앙숙이었던 오세령과의 우정을 회복했으며, 그 우정과 함께 사업에서의 윈윈을 얻게 되었다. 이민정은 당당하게 미혼모임을 밝히고서도 팀장의 자리를 누릴 수 있었으며, 정희재는 1년을 기다려주겠다는 착한 남친을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저 해피엔딩에 이르는 사랑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고구마였던 주완을 보살펴 주던 신주연에게 어른 남자가 되어 나타난 주완은 이제는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는 주연을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주연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그와의 커플링을 목욕탕 선반 유리잔에 던져 넣는 것으로 시크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주연의 냉랭했던 마음은, 동료의 걱정을 직장이라는 틀 속에 넣어 각자의 문제라 외면하려 했던 주연의 이기적인 태도는 진정한 사랑을 감별할 수 있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직장 동료를 넘어 우정이라는 관계에 도달하는 '성숙함'에 도달하게 되었다. 

20,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장르를 '칙릿(chick lit)'이라고 한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는 그렇게 칙릿의 장르적 특성에 충실한 듯 보인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의 일종인 칙릿을 굳이 로맨스 소설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용어 '칙릿'이라는 단어를 차용한데는 장르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산업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 여성들의 사회적 존재가 두드러지면서, 그들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장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칙릿을 굳이 로맨스 소설과 구분하는 장르적 이유를 들자면,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반영한다는 데 있다. 굳이 방점을 찍자면, 로맨스 보다는 '직업 의식'이나 라이프 스타일 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놓고 보면, 과연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는 두 장르 중 어느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리뷰 스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홈쇼핑 회사의 MD인 주연, 금요일 밤이면 원나이트 하는 남성을 만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성적 용구를 만족하는게 충실한 민정, 그리고 고시를 준비하는 가난한 애인을 둔 희재는 드라마의 시작 초반만 해도, 우리 시대의 젊은 여성의 리얼리티를 충실히 살려낸 듯 보였다. 그리고 매회, 마치 여성판 <마녀 사냥>이라도 되는 듯, 키스에서 부터 시작하여, 스킨 쉽,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적나라한 수다는, 그 예전 <SEX&CITY>의 그녀들의 수다 만큼이나 적나라했다. 어디 그뿐인가, 공중파 드라마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부모님 세대의 간섭 따위는 없다. 오로지 사랑도, 삶도 나의 선택인 듯 보인다. 쿨한 젊은 세대의 표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똑부러지게 당당한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의 대변자같은 그녀들이 사랑하는 남자들은 그녀들이 어릴 적 보던 만화 <캔디>의 안소니나 테리우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시절 고구마였던 주완을 보모처럼 주연이 보살펴 주듯이, 불현듯 멋진 남자가 되어 나타난 주완은 주연을 그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는 양 보살펴 준다. 피곤하고 상처 받아 돌아온 집에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는 우렁 각시같은 주완이 있다면, 직장에는 또 다른 키다리 아저씨 태윤이 팀장으로 음으로 양으로 주연을 보살핀다. 어디 그뿐인가. 원나이트의 상대자로 피지 못할 임신의 상대방은 알고보니, 애아빠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실남이다. 고생고생해서 뒷바라지 하자마자 고시에 성공한 애인이 헤어지자 하여 상처를 받을라치면 자기 마음을 자기보다도 더 잘 아는 자상한 동료 남친이 등장한다. 만나자마자 하는 키쓰에서 시작하여, 그것도 부족하면 상상으로까지 매회 충만했던 스킨 쉽의 실체는, 사실 여전히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백마 탄 왕자'들이다. 단지 그들이 탄 백마가 시대에 맞게 진솔한 위로와, 직장에서의 배려, 삶의 진정한 동반자로 변색되었을 뿐이다. 아니, 이것도 그들의 옵션에 불과하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속 그 어떤 남자도, 등장한 여주인공들만큼이나,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장 구체적 딜레마인 경제력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어릴 적 그녀들이 읽던 동화나 만화 속 왕자님에 버금가는 능력자들이다. 여전히 드라마 속 그녀들은 어떤 의미에선가 신데렐라들인 것이다. 

드라마는 적나라하게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듯 하지만, 드라마 속 그녀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사랑도, 일도 승승장구요, 미혼의 임신도 거뜬하며, 직장 1년 차에 속 시원하게 때려치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그들의 사랑 놀음에. 주연의 독백에 홀려 저건 내 이야기다 싶어 빠졌다 돌아온 현실은 그래서 더 초라하다. 제 아무리 <마녀 사냥>을 열 시청해도 막상 내 연애는 책으로 배운 것과 다를 바 없는 식이다. 내 앞의 남자는 절대 백마 따위는 커녕, 집값이 두려워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할 찌질남일 뿐이다. 
<로맨스가 필요해>가 시즌을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환타지는 강화되는 경향을 띤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여전히 신데렐라 이야기에 골몰한다. 현실이 압박을 더할 수록, 드라마는 황홀하다. 그래서 더 공허하다. 이제는 젊은 세대 사랑 문법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로맨스가 필요해>가 그래서 더 아쉽다. 


by meditator 2014. 3. 5.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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