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좀비, 백과 사전적 정의로는 아이티에서 유래된 부두교에서 등장하는 살아있는 시체,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미디어 속 좀비는 전염병과 생물 병기에 의해 감염되어 파멸된 존재, 그래서 생각없이 생물적 본능과 반사 행동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좀비는 이제 시즌 6에 돌입하고 있는 미드 <워킹 데드> 시리즈를 정점으로, 스릴러 물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의 그림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산업 사회의 노동력으로, 혹은 상업적 소비 문화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좀비'를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장르는 웹툰을 중심으로 한 에니메이션 장르이다. '좀비'나 '뱀파이어'는 이은재의 <1호선>,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 그리고 최근 드라마화 하고 있는 <밤을 걷는 선비> 등을 통하여 '스릴러'에서부터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로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 오면 여전히 이들은 생소하며 이질적인 장르이다. 드라마화한 <밤을 걷는 선비>를 필두로 <오렌지 마말레이드> 등 여러 드라마들이 '뱀파이어'를 극중 주요 제재로 활요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좀비'는 더하다. 아예 공중파이건, 케이블이건, '살아있는 시체'는 한 발을 들이미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 가운데 8월 14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2015>의 세번 째 작품으로 좀비물이 등장했다. <라이트 쇼크>가 그것이다.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좀비물'<라이브 토크>
<라이브 토크>의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권력과 손을 잡는 다국적 제약 회사의 실험 과정 문제로 '좀비'가 발생한다. 제약 회사는 '좀비' 실험 참가자들을 죽여없애려고 하지만, 그 중 한 명의 실험 참가자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 살아남아, 생방송인 <금요 토론> 방송에 난입한다. 조종실에 들어가 인질들을 잡은 채 생방송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참혹한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실험 참가자(장세현 분), 하지만 약물로 잠시 잠재웠던 그의 '좀비' 증상이 다시 나타나고, 그런 그에 의해 습격당한 방송국 관계자들은 '좀비'가 되기 시작하고, 그 파급력은 거침없이 방송국을 집어 삼킨다.
그런 '좀비' 쇼크의 와중에 놓인 알바 사이트의 대표로서 생방송에 참가했던 은범(백성현 분)과 그 여동생 은별(김지영 분), 그리고 풋내기 방송 기자 수현(여민주 분)는 생과 사의 갈림김, 그리고 제약 회사의 숨겨진 비리와 희생된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들어간다.
거대 다국적 제약 회사의 숨겨진 음모, 그리고 거기에 결탁한 국회의원, 그리고 '좀비' 실험인줄도 모르고 '많은 알바비'에 '희희낙락'하며 찾아든 순진한 학생들, 그리고 은범과 은별 남매의 애끓는 혈육의 연, 거기에 신참 기자의 사명감까지, 한 편의 단막극이 설정할 수 있는, 그리고 이런 종류의 장르물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라이브 토크> 한 편에 수요되었다.
하지만 익숙하고도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남짓의 단막극 <라이브 토크>는 땀이 채 식기도 전에 후딱 지나가 버릴 정도로 '스릴'에 넘쳤다.
알바 희생자였던 '좀비' 실험의 희생자가 다국적 제약 회사의 비리를 알릴 장소로 선택한 '방송국', 그리고 생방송 토론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나갈 가장 절묘한 장소가 되었다. 마치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방송국과 생방송이라는 장소와 설정을 절묘하게 풀어가는 것처럼, <라이브 쇼크> 역시 생방송에 진입한 좀비,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번져가는 좀비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방송국'이라는 지형지물을 기막히게 이용하여 풀어낸다.
알리고자 하는 희생자, 하지만 알리게 놔두어서는 안되는 권력 측은 '방송'을 매개로 힘겨루기를 하고, 결국, 마지막 한 신참 기자와, 책임감을 가진 한 시민의 정의감은, 통제된 방송을 넘어,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진실'을 알린다는 결론은, '통제'된 현대 사회의 단면과 허상을 적절하게 설득해 낸다.
거기에 도시 한 가운데 있지만, 철문 셔터를 내리고 나면, 무법 천지가 되어버리는 거대한 방송국 건물은 그 자체로 '스릴러'가 된다. 그 어둠의 공간이 되어버린 방송국, 그 높은 빌딩의 복도와 복도, 그리고 나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밀실과도 같은 제작 현장들 사이로 좀비와 인간, 그리고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숨막히게 벌어지는 레이스는, 충분히 늦여름의 더위를 식히고도 남았다.
물론 얼굴에 돋아오른 수포 분장과, 구체 관절 인형처럼 꺽어져 버린 좀비들은, 등장한 첫 순간에는 좀 어설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드라마 스페셜>의 제작비로 따지자면,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 급 일 것이다. 그런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좀비'들의 출현을 상쇄시킨 아니, 극복한 것은 출연자들의 연기이다. 대부분 어디선가 얼굴을 한번 본듯한, 아니, 그 조차도 아닌 단역의 출연자들은 '혼신'의 좀비 연기를 선보이며 방송국을 질주하여, <라이크 쇼크>에 <워킹 데드>급의 공포를 안긴다. 높은 제작비와, 그에 따른 엄청난 물량의 미드의 공포물을, 방송국이라는 유리한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단역 연기자들의 투혼으로 상응한 공포물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라이브 쇼크>는 뻔한 듯 이어지는 스토리, 예정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리모컨을 이동할 수 없는 한 시간을 선사했다. 마지막 순간의 반전이라는 옵션까지 더해. 드라마에서 쉽게 선택할 수 없었던 이질적 장르물로서의 '좀비'물은, 가장 약소한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이 정도라면, 비록 매주 시간을 잃은 대신, 가끔씩 찾아드는 <드라마 스페셜>을 기다릴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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