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이가 들어 제일 두려운 건 '치매'에 걸릴까 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노인들은 '자신'을 잃어가는 치매를 제일 걱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노인 한 사람의 치매로 온 가족이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이한 고통이기에 더욱 그에 대한 하중이 커진다. 바로 그 '치매'에 대한 화두를 12월 5일 방영한 드라마 스페셜 2020 <나들이>가 다루고 있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
소파에서 잠을 깬 영란 씨, 그녀의 눈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듯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집안의 모습과 벽에 걸린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영란 씨는 현실의 시간에 한 발 들어선다.
잘 손질된 화단에 장독대, 마당까지 너른 번듯한 이층집, 그 안을 채운 시간의 더깨가 앉은 가재도구들, 그곳에 영란 씨라는 이름를 가진 노인이 홀로 산다. 한때는 음식 장사로 성공을 거두어 입지전적 인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던 영란 씨지만 이제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조차 내려서는 것이 버거운 노년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 장독 두껑을 챙겨 덮으며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청천벽력같은 '치매'라는 판정이다. '내가 왜?'라며 벌컥 화를 내는 영란씨, 정신줄 놓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그녀에게 치매라는 판정은 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판정과 함께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없던 시절', 그녀의 어머니도 '치매'였다. 밥그릇을 빼앗는 그녀를 문밖까지 쫓아와 '왜 밥도 못먹게 하냐'며 빗자루로 모질게 패던 어머니, 내림이듯 그 어머니의 병이 이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벅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치매'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처럼 '치매'라는 판정에 영란 씨는 자신이 보았던 그 '못볼 꼴'을 이제 당신의 자식들에게 안겨야 한다는 게 서럽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된 '손숙' 배우가 자신을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뇌'하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제일 겁날까. 우선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병이 자기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안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앞설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게 되는 '인지상정', 드라마는 그 여전한 모성을 담는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중
영란 씨와 순천 씨의 나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영란 씨는 나들이를 떠난다. 그녀의 나들이를 동행한 건, 아니 그녀를 모시고 떠난 건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잘난 자식들이 아니다. 영란 씨에게 어수룩하게 포도 송이를 빼앗겼던 트럭 행상 방순철(정웅인 분)이다. 한때는 출판사도 했었다는 그는 과일전을 펴놓고도 아이들이 맛보기 과일을 퍼먹던 말던 그 옆에 앉아 시집을 펼쳐보는 장사에는 젬병인 장사꾼이다.
그런 그이기에 물건을 떼기 위해 가는 원주 행에 함께 하고 싶다는 영란 씨의 떼쓰는 듯한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함께 떠난 여행, 물건을 떼는 농원에서 장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란 씨 덕에 바가지는 쓰지 않았지만 거래처를 놓치게 된 순철 씨는 그저 씁쓸한 미소 한번으로 삼키고 영란 씨가 원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나들이는 원주로 고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순철 씨라고 사정이 없을까. 사람좋은 만큼 세상살이 자기 것을 야무지게 챙길 잇속이 없던 순철 씨는 가족마저 잃은 채 팔자에 없는 트럭 행상 중이다. 늦은 밤 과일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집 앞에 놔두고 떠나는 그에게 딸은 '돈'이 필요하다며 악다구니를 한다. 빚쟁이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기 위해 이혼 도장을 찍어주는 게 다였던 순철 씨에게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대학을 다니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아버지 노릇을 요구한다.
드라마는 나이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을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엮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은 여의치않다. 자식을 위해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손이 곱도록 장사를 했지만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영란 씨의 자식들은 '만족'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런 자식들에게 영란 씨는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순철 씨 역시 뭐든 다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자식들은 다르지 않다. 가진 걸 다 퍼준 영란 씨 자식들이나, 가진 게 없는 순철 씨 자식이나 여전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요구'할 뿐이다.
그 '요구'를 채워주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일까? 드라마는 가진 걸 다 퍼부어 줬는데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늙은 엄마 앞에서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영란 씨의 자식들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묻는다. '배금주의' 사회의 이치를 따라 살아온 영란 씨의 의지가지할 데 없는 처지를 통해 반문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쏟아부으려 한다. 그 마지막 선택이 영란 씨는 더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치매인 엄마를 '의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순철 씨는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영란 씨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두 사람의 선택은 원하던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대신 각자가 홀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 그간 두 사람의 나들이가 헛되지 않았던 탓이다. 치매에 걸린 노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 그게 답이 있을까. 그래도 드라마는 답을 구한다. 드라마의 엔딩, 여전히 두 사람은 다시 '나들이'를 떠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황지우의 시처럼, 그거면 되지 않을까. 너른 세상 잠시 잠깐이라도 서로가 '벗'이 되어 떠날 수 있는 시간, 그거라도 있다면 삶의 족쇄는 조금은 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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