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로 시작한 <드라마 페스티벌>이 벌써 5회를 넘겼다. 하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드라마 페스티벌>이란 걸 하는 지로 모를 성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첫번 째랑, 두번 째 작품이 <투윅스>와 <메디컬 탑팀>의 방송 중간에, 다른 방송국의 수목 드라마 스케줄을 맞추기 위한 희생 번트처럼 소용되었기 때문이다. 2007년 <mbc 베스트 극장> 종영 이후, 모처럼 벌인 축제 치고는 '뻘쭘한' 출발이다. 더구나, kbs의 <비밀>이 한참 탄력을 받으며 치고 올라가는 시점이었으니, 더더욱 1회성 단만극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과 <불온>은 조용히 사라져갔다.
다행히도, <소년, 소녀를 만나다>이후부터는 임시직이나마 고정적으로 목요일 밤 11시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어제는 그 11대마저 사수하기가 참 힘들었다. 코리안 시리즈가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에 했다가 수요일 밤으로 왔다가, 다시 일요일 밤으로 쫓겨가는 kbs의 <드라마 스페셜>이나, mbc의 <드라마 페스티벌>이나, 참 스페셜하지도, 페스티벌 답지도 않게 이리저리 쫓겨다니느라 옹색하다.
언제나 이런 단막극들을 통해 좋은 작가와, 제작진이 배출된다는 원론적 정의에는 이견이 없으면서도, 결국, 좋다는 드라마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이리저리 휘돌리는 신세에서 한 치도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kbs는 제작비로 인해 편수를 줄이기에 이르렀다. 출연진들이 거의 '무료 봉사'를 하는 것으로도 줄어든 제작비 충당이 되지 않는다니. '창조 경제'라는데, 창조적인 베이스를 만드는 데 인색한 방송국들이, '창조 경제' 공익 광고는 펑펑 해댄다.
느지막히 시작한 10월의 마지막 밤의 <드라마 페스티벌- 상놈 탈출기>는 버릇없는 양반집 자제가 상놈이 되어 고생하다 개과천선한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그 익숙한 이야기 구조는, 자신이 사랑하는 기생의 첫날 밤을 사려는 양반집 도령을 그 종이 팔아먹는다던가, 알고보니 팔려간 주인집의 주인과 노비가 사실은 노비와 양반의 신분이었다는 기막힌 우연을 통해 뻔하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향해 돌직구처럼 꼿히는 에피소드들로 풍성해진다.
버릇없는 양반 길들이기는 자신을 팔아먹은 '점백이'라 놀리듯 부리던 종놈과의 '우정'에 이르면 지금까지 달려왔던 이야기는 풍성해지다 못해 깊어지기 시작한다. 그저 기생과의 사랑을 위해 상전을 팔아먹은 줄 알았더니, 종놈은 어린 시절 자신의 얼굴에 상처까지 낸 상전을 늘 미워했었고, 결국 팔아먹은 결과는 사필귀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연은 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팔아먹은 줄 알면서도 상전인 양반은 같이 광에 묶여있는 처지가 된 종놈을 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두 사람은 서로 이름을 부르던 '친구' 사이였었고, 우연히 지른 불에 야단을 맞는 것이 두려워 친구에게 그걸 돌린 양반은, 그때부터 친구를 잃고 노비 점백이를 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상전인 양반이, 한낮 놀림거리이던 점백이가, 어린 시절 친구인 귀남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은, 그가 자기 자신이 양반임에도 얼굴에 숯검댕이를 묻히고, 허름한 복색을 하니 그 누구도 양반이라는 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즉 신분의 고하가 결국은 별 의미가 없다는 '혁명적 사고'에 이르는 과정이 된다.
옛이야기에서 보던 망나니같은 양반집 도령 길들이기는, 그것이 현대적 시각의 '인간 평등론'을 입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된다. 물론, 조선시대인 듯한 배경에서, 양반과 노비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된다는 사실은 역사적 재해석이라기에도 제법 많이 모던하지만,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환타지로서 충분히 흔쾌하다. 시대적 배경이 조선 후기인 듯 돈으로 신분을 사서 양반보다도 더 양반인 듯이 행세하는 강진사의 모습과, 돈이 없어 양반임에도 그의 노비가 된 벙어리 부자의 신세는 이상하게도 그저 과거의 모습만으로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노비가 되어서도 여전히 쩌렁저렁 울리는 목청으로 양반입네 하는 박기웅의 호연과 그에 못지 않는 점백이 서동원의 연기의 합은 상놈 탈출기의 재미를 더한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투자하기에 아깝지 않은 조촐한 페스티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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