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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오 나의 귀신님>과 sbs의 <너를 사랑한 시간>은 모두 여성들의 로맨틱한 감성을 설레이게 하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다. 케이블 평균 3% 내외의 시청률, 압도적인 상대 주말 드라마를 상대로 한 5%를 겨우 넘는 시청률과 무관하게. 매회 이 드라마 속 사랑의 진도가 세간에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이제 <오 나의 귀신님> 10회, <너를 사랑한 시간> 12회, 중반을 넘어선 이 드라마는 자중지난에 빠졌다. 물론 로맨스물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의 갈등이지만, 최근 이 두 드라마가 빠지고 있는 사랑의 딜레마는 그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갈등이라기엔 주인공의 정체성조차 흔들 정도로 치명적이다.
<오 나의 귀신님>- 선우가 사랑하는 건 순애일까, 봉선일까
로맨스물에서 '연적'이야 사랑의 승화를 위한 아름다운 갈등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연적이 귀신이라면?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깃든 귀신이라면?
아버지와 운전기사 식당을 하던 순애(김슬기 분)는 범인을 알아낼 수 없는 사고로 비명횡사한 처녀 귀신이다. 이제 이승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 한을 풀거나, 그게 아니면 남자를 만나 처녀의 한을 풀면 승천을 할 수 있지만, 기한 내에 그렇지 못하면 악귀가 되어 영원히 이승을 떠돌게 된 처지이다. 자신이 죽어간 이유를 알지 못하는 귀신 순애가 택한 방법은 애먼 여자들의 몸에 깃들어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내고자 하는 것, 하지만 처녀 귀신 순애의 음기를 이겨내지 못한 남자들은 응급실행이다. 그러던 중 서빙고 보살에 쫓겨 우연히 들어간 봉선(박보영 분)의 몸으로 만나게 된 강선우(조정석 분)가 자신을 구원해줄 '양기남'인 것을 알고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봉선을 생각할 정도였던 강선우가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변한 봉선과 점차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자, 귀신 순애의 처지는 애매해진다. 강선우가 봉선과 키스를 한 순간 튕겨져 나간 순애, 그저 자신이 악귀가 되지 않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선우에게 점점 '연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선우를 짝사랑하던 봉선은 선우의 사랑을 얻고, 자신은 악귀를 피해 승천하는 길을 얻으면 된다 했던 귀신 순애가, 선우가 제안한 1박2일에 고심을 하며 귀신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오 나의 귀신님>의 딜레마는 여기서 생긴다. 처음 셰프 선우의 말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봉선, 그녀는 선우를 짝사랑했지만, 정작 선우는 자신감없는 봉선을 답답해 하며 내쫓다시피했었다. 그러던 봉선의 몸에 순애가 들어오면서, 순애의 도움으로 방송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등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며 선우는 봉선을 달리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선우가 사랑하는 것은 봉선일까, 순애일까. 봉선은 사랑을 얻고 순애는 승천을 하면 된다했지만, 이제 순애가 선우를 사랑하게 되면서 문제는 간단치 않게 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주인공은 봉선인데, 실제 드라마 속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은 봉선의 몸에 빙의된 순애다. 결국 드라마의 제목이 '오 나의 귀신님' 인것처럼 순애가 주인공이라는 것일까? 이것이 묘한 것이 분명 박보영이 연기하는 봉선과 순애가 빙의된 봉선이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박보영이 보여준 연기의 절묘함때문인지, 설정의 애매함 때문인지, 마치 선우가 봉선과 순애 사이에 양 다리를 걸친 것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극중 실제 봉선의 비중은 현격하게 낮아지고, 그녀의 캐릭터조차 초반 자신없는 모습에서 갑자기 선우에게 적극적인 모습까지 개연성없이 들뛰다 보니, 더더욱 극중 여주인공의 위치는 봉선에 빙의된 순애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녀가 그저 봉선에게 빙의된 귀신이란 것을 잊지 않는다. 이것이 그저 사연이 아니라, 이제 10에 들어선 <오 나의 귀신님>에서 불편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 이 드라마의 딜레마이다. 결국 악귀가 되건, 승천을 하건 양단간에 결정이 날 순애, 그렇다면 남겨진 봉선, 그녀가 선우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이런 생각조차 들게 되는 것이다.
<너를 사랑한 시간> 17년의 우정을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대만 드라마 <연애의 조건>을 리메이크한 <너를 사랑한 시간>은 하지만 원작 대만 드라마보다는, tvn에서 방영한 <응답하라 1997>이 먼저 연상되는 드라마이다.
이제 삼십대 중반 나이가 지긋한 두 주인공들, 애초 원제로 삼으렸던 '너를 사랑한 시간 7000일'처럼 17년을 넘게 '친구'로 지내왔던 이 친구들의 이야기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철없는 남녀 사이의 우정과 연인 사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른 중반이 넘도록 여전히 친구 였다는 두 사람 오하나(하지원 분)와 최원(이진욱 분).
고등학교 시절 철없는 소꼽장난 같은 사랑과 우정의 딜레마는 <응답하라 1997>에서 성인이 된 후 바로 '사랑'의 딜레마로 승화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더 이상 낯부끄럽게 '친구'니 하는 걸로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간의 사랑이건, '이성'간의 사랑이건 다르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가장 큰 일중 하나가 바로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너를 사랑한 시간>의 두 주인공 최원과 오하나는 말만 서른 중반이고, 얼굴의 액면만 그렇지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의 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직장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오하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일에 대한 지시를 내릴 때 외에는 영락없는 고등학교 시절 오하나에서 하나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최원 역시 마찬가지다. 아가능불회애니(我可能不會愛你)의 번안어 '너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고등학교 시절 외친 이유, 뚜렷한 이유없이 오하나를 '친구'로 대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최원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가 서른을 넘어 중반을 지났지만, 고등학교 시절 서로 오해하고 친구라 눙치던 그 자존심센 청소년들이다.
마치 '키덜트'의 상징체'와도 같은 오하나와 최원은 하지만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오래 산 부부'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들이 매번 보이는 똑같은 행동거지들은 마치 이혼한 부부들이 함께 살며 익숙해졌던 습관들을 되풀이 하며 보이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렇게 서로에게 의존적인 두 사람인데, 굳이 서른 중반을 넘어서까지 '친구'가 꿋꿋하게 우기는 '퇴행'이나 '자기 기만'도 이해가 가지 않거니와, 삼년 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사라진 약혼자의 출현으로 오하나는 흔들리기 까지 한다. 그의 실종에 대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믿어주고자 하는 오하나는 어떻게 17년간의 우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외면하려 하는 것일까. 결혼까지 약속한 서먹한 사랑과, 17년산 부부 같은 우정, 그것이 바로 <너를 사랑한 시간>의 딜레마이다.
귀신에 빙의된 사랑이나, 사랑과 우정 사이에 여전히 흔들릴 수 있는 서른 중반 커리어 우먼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소재로는 솔깃하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조정석과 박보영의 설레이는 사랑의 연기와, 하지원의 화려한 패션과 그냥 서있기만 해도 설레일 듯한 이진욱과 윤균상도 좋다. 하지만, 구색만으로 16부작 미니 시리즈를 이끌어 가기에 <오 나의 귀신님>과 <너를 사랑한 시간>의 스토리는 빈약하다. 심지어, 개연성에 의심이 가는 설정들이 마구 난무한다. 그저 여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로 구색을 맞추지만 말고, 그 속에 한번쯤은 '사랑'과 '인연'에 대핸 진진하게 들여다 보고 고민해 보게 만드는 '진심'이 담겨져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의 '퇴행'이나 '탐닉'을 강요하지 않고, 사랑 속에서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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