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의 아버지 귀도(로베르트 베니니 분)는 아들과 함께 끌려간 수용소의 상황을 하나의 게임처럼 아들이 여기도록 희화화시킨다. 심지어 탈출을 시도하다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에 조차, 아들과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그것마저도 놀이인 척 웃음기를 머금은다. 그렇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버지는 끝까지 아들에게 현실의 비극을 숨겨냈다. 덕분에 영화는 그런 아버지의 지극한 부성에 찬사를 보내면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안겼다. 아들을 위해 현실을 놀이로 승화시킨 아버지, 하지만, 현실 속, 그것도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의 아버지는 알량한 아들이 꿈꾸는 동화마저도 산산히 짓밟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꿈꾸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꿈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들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들의 1000점 획득 탱크 따기 게임이 수용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아버지가 만들어 낸 놀이라면, <낯선 동화> 속 삽입되는 동화는, 아버지 상구(김정태 분)가 만든 창작 캐릭터 봉봉이이자, 동시에 그 봉봉이로 인해 가족을 외면한 아버지 때문에 현실에 내던져진 아이 수봉(정윤석 분)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꾸려가는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가혹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플라시보 장치'이다. 하지만, 전자가 아버지에 의해 아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라면, 역으로 후자는 무능한 아버지로 인해, 아들이 스스로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환타지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궤적은 달라진다.
영화 속 아이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탱크 획득 게임을 위해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낸다. 드라마 속 수봉이 머릿속 동화도 아버지가 만든 것이긴 하다. 아버지가 창안해 냈고, 심지어 전국민적 인기 캐릭터마저 되었지만, 그 물질적 수혜는 아버지의 친구인 기풍(정희태 분)이 가져갔다는 것이 수봉이네 가족의 비극적 상황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창작물인 봉봉이를 빼앗긴 아버지는,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버지처럼 아들과 함께 고난을 극복하는 대신,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가족을 방치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되찾기 위해 고심하는 아버지를, 꿈만을 쫓아 무능력하고 이상주의적이라 생각한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한 채 집을 나가버리고, 그런 엄마를 아버지는 일본에 공부를 하러 갔다고 아이들에게 속인다.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가 지어낸 엄마에 대한 거짓말로 인해, 아들 수봉은 엉뚱한 동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전단지를 돌리며 돈을 모아,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대신 엄마를 찾아, 아니 엄마를 찾아내 행복을 되찾겠다는 꿈말이다. 그래서 전단지 등 각종 알바를 하는 소년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만든 캐릭터 봉봉이 형제가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아버지와 함께 성에 갇힌 엄마를 구출해 온 가족이 행복해지는 동화가 펼쳐진다. 수봉이는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 동화의 힘으로 여관방을 전전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전단지 알바를 하는 현실을 견딘다. 하지만, 아들의 통장마저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아버지, 그리고 일본대신 일식집에서 일하는 엄마는 소년의 알량한 동화마저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2015년 대한민국 아버지의 선택
<낯선 동화>의 현실은 현실적이지만, 그 현실을 이야기하는 화법은 말 그대로 낯설다. 창작자로써 자신의 콘텐츠 아이디어를 빼앗긴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되찾기 위한 재판을 하기 위해 아들의 통장에까지 손을 댄다. 그리고 드라마는 엄마의 입을 빌려, 그런 아버지를 낭만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 평가한다. 그렇다고 무능한 아버지 대신 엄마가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버리고, 핑계를 대고 가족을 떠나 버릴 뿐이다. 그리고 집나간 엄마들이 그렇듯 돈을 벌어 아이들을 데려오려 하지만 엄마가 만난 현실은 아버지만큼이나 극한적이다.
환타지적 요소가 강한 드라마라면 아마도 드라마 후반부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아이디어였던 봉봉이를 되찾았을 것이다. 엄마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낯선 동화>에 그런 이상향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탈출을 하다 잡혀가는 <인생은 아름다워> 속 귀도처럼,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통장을 거덜내며 시작한 재판의 잔금과, 아들을 괴롭히는 불량배가 요구하는 150만원과, 이제 돌아올 엄마도 없어 좌절하는 아들들이 기다리는 여관방이 있을 뿐이다. 고시원에서 사는 엄마는 아이에게 넌 이제 아이가 아니라고 눈물로 호소할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뒤늦게 그런 현실을 깨닳은 아버지가, 자신의 창작 아이디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노릇을 시작하는 것으로 그린다. 현실에서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불가능해보이는 재판 대신, 사기꾼 친구가 던져준 수표 몇 장으로, 불량배에 시달리는 아들의 위기를 막고,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낯선 동화'판 해피엔딩이다. 결국 2015년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자신의 아이디어 창작권을 고집하는 것이 '낭만적'인 것이 되었고, 비현실적 싸움 대신, 단 돈 몇 푼이라도 받아서 가족을 챙기는 것이,ㅎ현실적인 선택이 되었다. 이 '낯선' 화법이, 그나마 남은 가족을 위해 최선이 되는 세상, 그것이 2015년 대한민국에서 그려낼 수 있는 동화이다.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지 않는 사회,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제해 주는 제도가 없는 사회에서, 오로지 부모만이, 그리고 부모 중 한 사람이 부모이기를 포기하면 남은 한 사람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려낸 최선의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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