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빌레라> 7회, 심덕출(박인환 분) 씨가 '알츠하이머'였음이 드러났다.
기승주가 데려간 발레단에서 잠시 공연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은 덕출 씨, 덕분에 아내와의 약속에 늦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덕출 씨가 흘리고 간 수첩, 앞에는 채록의 매니저로, 뒤에는 초보 발레리나로 덕출 씨는 모든 걸 기록하려 애썼다. '할아버지는~'하며 채록이 집어든 수첩, 제일 앞 장에는 심덕출 씨의 사진과 연락처, 그리고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74살, 친구의 죽음을 통해 더 나이들기 전에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보고 싶다'던 노옹의 소원은 7회를 통해 국면을 달리한다. 그저 더 나이들기 전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고,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나선 길이었던 것이다. 그간 왜 그렇게 덕출 씨가 조급해 했는지, 비지땀을 흘리며 홀로 연습을 했는지 보다 명확해 진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알츠하이머'라 시간이 없는 건 다른 것이니까.
'엔드 게임'
엔드게임,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의 저자 이현수 씨의 말처럼 어벤져스 시리즈의 부제가 아니다. '첫 늙음'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각자의 게임이다.
'기억, 운동, 감각, 언어, 신체 등에서 예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오류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드 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 시간으로 재단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들어'선 이 게임의 시간에 그 누군들 억울하지 않으랴. 더구나 그 '엔드 게임'의 엔딩은 공평하지 않다.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가진 재산이 많다는 것도, 엔딩은 불공평해서 공평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공원 벤치에 앉은 덕출 씨 눈 앞에 주마등 처럼 살아온 시간이 스쳐지나간다. 그의 마음은 발돋움을 하여 처음 발레 공연을 보고 혼자 거리에서 다리를 쭉쭉 뻗던 그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74살 덕출 씨가 울먹인다. '아버지, 어머니, 나 어떻게 해요.'
엔드 게임의 노년기는 불가항력일까?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는 이에 대해 '태도'를 말한다. ''못먹어도 고'의 상황에 놓인 자신을 충분히 자각하고, 아쉬워하고 나면 오히려 용감해지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선택의 폭이 좋아지면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치열하게 밀도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치열하고, 밀도있게
야심차게 발레를 시작하는 노년의 심덕출 씨를 보며 막연하게 그 '꿈'의 앞길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말 그대로 '엔드 게임'의 여정에서 심덕출 씨의 꿈에 무슨 그리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거기다 조금씩 무언가를 잊는 모습을 보여주는 덕출 씨의 일상을 통해 <나빌레라>가 결국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7회 마지막 수첩에 적힌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를 통해 <나빌레라>는 지금까지 '치매'를 다뤄왔던 다른 드라마와 다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걸 알게 된 덕출 씨는 공원에 앉아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자신에게 들이닥친 병마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암보다도 더 무서운 진단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덕출 씨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발레를 시작한 것이다. 충분히 자신에게 닥친 병에 안타까워 하던 덕출 씨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남은 생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집중'의 결과물이 '발레'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밀도있는 삶을 향한 여정이다.
동네 아줌마가 '춤바람'이라고 하는 발레를 74살의 노인이 선택하는게 어디 쉬웠을까. 당장 7회에서 '주책'이라는 말에 덕출 씨가 움츠러든다. 채록이는 연습만 해도 빛이 나는데, 덕출 씨는 연습복을 입은 모습부터가 스스로 '무안'하다. 나이듦은 '추레'하다.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그저 '존재'자체만으로 빛나는 젊음과 다르게 무엇하나 '뽀대'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차도 손녀에게 선사한 덕출 씨다. 그래도 식전 댓바람부터 연습실로 나선다. 선생님 채록이가 없어도 온종일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매일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운다. 그런데 일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뻣뻣하다. 연식이 유연성을 향한 훈련을 앞지른다. 한 달된 젊은 처자들이 쭉쭉 몸을 뻗는다.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로 끙끙거리는 처지다. 그런 처지여서 그런가, 다리 한번 들면서 부들거리시는 덕출 씨에 공감 만배이다. 다리 하나, 팔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제 아무리 해도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와, 천근만근인 다리, 하지만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꿈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다.
이모부님이 덕출씨와 같은 병마에 시달리신다.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최고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뭐든 배우고자 하면 스스로 독학을 해서 뚝딱 해치우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속절없이 변해가신다. 제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한 일이 많아도 '나이듦'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그 속수무책의 시간, 덕출 씨는 그냥 앉아서 자신의 병에 당하는 대신, 평생의 '로망'에 자신을 던진다. 엔드 게임의 시간을 맞이하는 덕출 씨의 태도이다. 엔드 게임의 시간은 우리에게 공평하지만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 되는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고 드라마는 전한다.
거기에 더해 나이듦의 미덕도 놓치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건 모든 게 다 나빠진다는 것이다. 신체적 기능도, 정신적 기능도 약화된다. 하지만 딱 하나 좋아지는게 있다고 한다. 바로 '지혜'이다. 다리를 다쳐 다가올 콩쿨에 나갈 수 없어 좌절하는 채록, 기승주도, 은교수도 달래보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채록의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다. 그때 덕출의 조언이 채록의 불안을 다독인다. 다음이 있다는 말, 그 평범한 말에 실린 덕출의 삶이 주는 '지혜'가 채록에게 한 발 물러설 용기를 준 것이다.
<나빌레라>가 빛나는 건, 노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어서이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퇴적층'이 되어가는 노년층을 지나온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갈 '꿈'을 꾸는 사람들로 그린다. 알츠하이머라는 최종 진단 앞에서도 말이다.
나이듦은 본의 아니게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심지어 그 갈아탄 열차의 종착지가 아주 다르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닌 노년의 열차, 하지만 그 여행길을 어떻게 가는가는 탄 사람에 달렸다고 <나빌레라>는 말한다.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과감하게 보낼 수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지난 1,2년 사이 열차를 갈아탄 듯하다. 그래서일까, 덕출 씨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무모하게 용감해졌다. 나에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였고, 그저 '하고 싶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래서일까, 발레를 향한 덕출 씨의 눈빛에 공감 백배이다. 그건 '사랑'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노년층, 사회적 시스템은 나이듦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저 시스템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이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여정의 삶에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빌레라>는 그저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듦의 시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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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루가 너무 길어'.
<나빌레라>의 주인공 덕출(박인환 분)이 편의점 배달원으로 일하는 후배에게 툭 던진 말이다. 이 보다 노년을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심덕출 씨는 한국 전쟁 때 태어났다. 쌀가게 점원이었던 아버지는 덕출이 몸쓰는 일 대신신 펜쓰는 일을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덕출은 77년 집배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평생을 우편 배달원으로 살다 퇴직했다. 최해남(나문희 분)과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았다. 아이들도 다 크고 은퇴도 했다. 이제 일흔, 하루가 너무 길다.
하루가 긴 덕출은 가끔 요양원을 찾았다. 친구 교석이 있기 때문이다. 처자식도 들여다 보지 않는 교석을 덕출은 찾아간다. 그런데 이제 그 마저도 갈 수 없게 되었다. 평생 배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배 전진호를 완성하지 못했다던 친구는 어느 날 밤 자신의 방 창문 앞에 펼쳐진 바다에 종이배 '전진호'와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늙으면 이별도 익숙해지니까' 친구를 보냈다. 하지만 마지막 만났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덕출의 가슴에 남는다. '덕출아, 너는 가슴에 품은 게 있냐? 지금이다. 아직 안늦었어. 다리에 힘있고 정신 말짱할 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저는요, 한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그를 끌어당긴 음악 소리, 그곳에서 다시 덕출의 가슴이 뛰었다. 발레를 하는 채록(송강 분)을 보며 자신도 다시 한번 훨훨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레를 하기로 했다. 나이 일흔, 너무 늦었을 지 몰라도,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
일흔,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22일 첫 선을 보인 tvn의 월화 드라마 <나빌레라>는 이미 다음 웹툰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Hun 글, 지민 그림으로 2016년부터 연재된 웹툰 <나빌레라>는 '발레'라는 생소한 소재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하는 70대 노인과 방황하는 20대 청년을 조우케 한다. <나쁜 녀석들>, <청일전자 미쓰리> 의 한동화 피디와 <터널>의 이은미 작가가 의기투합했고 덕출 역으로 박인환 배우와 그의 아내 해남에 나문희 배우가 합류했다. 이미 두 분의 출연만으로도 <나빌레라>의 정서적 온도가 전달된다.
드라마는 일흔의 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덕출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하루가 너무 길다.'는 덕출의 대사는 나이든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애써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나 역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도 하지 않은 오늘 하루가 무거운 경우가 많다. 힘들다 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던 시절에서 '방출'된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막막함이 아닐까 싶다.
'저는요. 한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까지는 아니라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시간은 삶의 방점이 늘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나 이외의 누군가에게 찍혀져 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면 그 '가족'에 찍혀졌던 방점이 방황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직장'에 다니며 '가장'으로 살아왔던 아버지의 자리는 '정년'과 함께 삶의 또 다른 국면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 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던 그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여의치 않은 시절, 그게 바로 나이듦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물론 <나빌레라> 속 덕출의 아내 해남처럼 여전히 다 큰 자식들을 자신의 품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말 품 안의 자식이 아니라, 그저 품안의 자식이라 여기고 싶은 경우가 많다. 아직 풀어내지지 않았지만 덕출의 도전만큼 자식과 남편까지 끌어안고 사는 해남의 행보도 그래서 궁금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온전히 '나'로 서기를 갈망하지만 막상 온전히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다가오면 두렵다. 왜냐하면 '나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빌레라>의 덕출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나이 70에 후배가 하는 패스트푸드점 배달 일이라도 하고자 한다.
그런 덕출에게 죽어가던 교석이 메시지를 던졌고, 발레를 하는 채록이 영감을 깨운다. 홀로 발레를 보러다니고 은퇴한 발레리노 승주의 팬이라 할만큼 발레를 좋아했던 덕출이 관객의 자리를 박차고 '무대'에 서고자 한다.
왜 발레였을까? 70대의 발레는 덕출의 말대로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우리 사회는 늘 '승산있는 싸움', '성공', '쟁취'가 화두가 되는 사회다. 덕출이 하겠다고 나선 '발레'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런 사회의 '링'에서 내려온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덕출의 세대는 평생 자신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언감생심'이었던 세대일 것이다. 어디 덕출뿐이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려왔던 많은 사람들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한 켠으로 밀어두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데 자식을 다 키우고, 정년을 하고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으로 서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남은 노년의 시간, 심지어 의학의 발달로 살아온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몇 십년이나 남은 시간을, 오로지 '나'만이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고. 늙은 사람들이 보내는 나머지 시간이 아닌 주체적으로 늙음을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드라마는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나빌레라>는 길고 긴 시간을 '나'로써 살아가야 하는 노년에 대한 유의미한 숙제를 안긴다. 과연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발레를 보는 덕출처럼 당신의 가슴이 설레이고 뛰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을까? 그 희망의 과정을 12부작 <나빌레라>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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