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피틀', 이 말은 원래 살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난민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보트 피플'이 영국에 등장했다. 바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국의 청년들이 템즈강 일대에서 '보트'로 집을 삼아 살기 시작하며 영국형 보트 피플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트 피플'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되었다. 서울의 평균 집값이 7억에 달한다. 물론 이건 평균이다. 강남으로 가면 날마다 치솟아 몇 십억을 호가한다. 7억이라 해도  2백만원씩 30년을 모아야 하는 한 달에 2백만원을 벌지 못하는 청년층이 7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한다는 건 이제 '언감생심'인 세상이 되었다. 과연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신혼 여행만 4년째
2016년 12월에 결혼을 했다. 대학도 채 졸업하지 않은 채 결혼에 돌입한 전재민- 김송희 부부, 신혼집을 얻는 대신, 그 돈으로 항공권을 사서 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어언 4년 여, 이들은 어느새 '프로 여행 영상 제작자'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신혼여행(?)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행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까지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 부부는 이제 천만 원 정도의 10kg이 넘는 방송장비를 짊어지고 경관이 좋은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 프로 여행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경험은 두 사람을 어느새 독자 초청 강연회의 저자로 만들어 주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오늘은 행복하니까>의 저자 쨈쏭 부부가 바로 전재민-김송희 부부 자신이다. 강연회에서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트레키의 경험을 나눈다. 

새벽 누구보다 먼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나섰던 두 사람, 하지만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겨우 주변의 도움으로 정상을 정복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만 맞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만의, 우리만의 방향'에 집중하고 싶다는 두 사람, 이제 수익은 생겼지만 '평생 살아갈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집'을 마련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는 그곳이 '순간'이지만 어느덧 두 사람의 집이 된 지금, 인생이 곧 여행이 아니겠나며, 결국 인생이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라며, 평생 머무를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삶을 얻었다고 말한다. 

 

 
고시원 대신 캠핑카
김동해씨는 자신에게 온 택배를 받으러 차를 타고 가야한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택배 아저씨가 찾아갈 수 없는 '캠핑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구리시 왕숙천 천변 무료 주차장에 지금은 머무르고 있는 동해씨,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의 집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어릴 적 꿈은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올라온 서울, 현실은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삶이었다. 반지하, 고시원, 지금까지 동해씨가 살아온 공간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고시원 살이가 지겨웠던 그는 보증금 4천만 원으로 중고 캠핑카를 마련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대리 운전' 일을 위해 보다 더 기동성이 있는 '전동휠'를 마련했다. 

물론 자유로운 '집'을 마련했지만 캠핑카에서의 생활도 녹록치는 않다.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밖의 실온보다 5~6도가 높은 캠핑카에서 여름을 나는 건 고역이었다. 기능이 떨어지는 냉장고 덕에 식재료가 잘 상해서 애를 먹는 것도, 물탱크는 있지만 샤워 등을 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나름 고충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더위, 추위 등 자연적 환경을 피하는 곳이라는 집의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면 엄연히 캠핑카는 덜 스위트해도 그의 '홈'이다. 

햇빛이 들지 않은 고시원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는 동해씨, 어제처럼 살면 어제처럼 밖에 살 수 없다고 써놓은 캠핑카 속 그의 좌우명처럼 그는 이 캠핑카를 '고치'로 삼아 탈피할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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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한 달 살이 70만원이면 수영장 딸린 집이 
웹디자이너인 조희정 씨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디지털 노마드'족이다. 디지털 시스템 아래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한다는 디지털 노마드족에 걸맞게 조지아에서 서울에 있는 동료와 화상 회의를 통해 일을 진행한다. 

조지아에서 생활한 지 어언 28일 째, 세계의 여러 곳을 떠돌며 한 달 살기를 실행하고 있다. 이곳 조지아는 유럽과 같은 환경이지만 서울에서 장 한번 보면 8~10만원이나 들 비용이 이곳에서는 한껏 장을 봐도 2만2천원 정도, 한 달 40만원이면 충분해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한 때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러나 경쟁적인 일 관계 속에서 자신이 소모되는 게 싫어 독립을 했다. 그리고 이제 모바일 웹 서비스를 개발하며 세계를 떠돌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직업이 그녀의 방랑을 가능케 한다. 한 달이 끝난 그녀가 다음에 선택한 곳은 '독일', 그곳에서는 또 다른 한 달짜리 ' 새집'이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는 홀가분한게 가방 한 개를 들고 또 다른 '노마드'로서의 삶을 떠난다. 

 

 

쫓겨나는 대신 이동식 집을 
농사를 짓고 싶던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땅'이 없던 그에게 '농사'란 꿈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임대했던 땅에서 쫓겨난 청년, 홧김에 세계로 떠났다. 유지황 씨를 비롯한 청년 3인방의 2년 여에 걸친 무일푼 세계 농업 체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파밍 보이즈>라는 다큐 영화로 제작까지 되었다. 

그로부터 7년, 지황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를 찾아나선 제작진이 그를 만난 곳은 6평짜리 이동식 주택에서이다. 농사를 짓는 청년을 위한 이동식 주택, 입구에 일을 하고 온 작업복을 벗어 세탁할 세탁기에서부터 샤워실까지 이어지는 비록 작지만 한 사람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을 단 돈 천만원으로 지황 씨는 지었다. 

왜 집을 지었을까? 세계를 떠돌면서 텐트에서 지내다 보니 아늑한 집이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농촌에 많은 빈집을 이용해 보고자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말이 빈집이지 외지에 사는 자녀가 주인인 집을 임대하기도 쉽지 않았고, 막상 살만하게 고치려면 2~3000 정도 비용이 드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단다. 무엇보다 농촌에 정착하는 것도 잠시 쫓겨나는 경험을 했던 그는 집이라도 가지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위한 이동식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지은 자신의 집, 일년에 전기세 등으로 20~30만원 정도, 거기에 겨울에 난로를 떼는 비용으로 5~6만원, 더 이상 '월세'에 시달릴 염려가 없는 집, 그런 ''타이니 하우스'들이, 그런 집을 짓고 살고픈 청년들이 남해군 두모마을에 모였다. 지자체와 이장님의 적극 지원 아래  폐교를 빌려 6개월 정도 기한을 정해 뜻을 맞는 사람들과 벌써 6채 째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첫 농사를 짓고 쫓겨난 지 어언 7년 청년 지황씨의 꿈은 이제 ' 청년 공동체'로 부풀어간다.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시대>에 따르면 이른바 '386'이라 통칭되는 세대는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벌어서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청년 세대'들이 있다. 다큐는 말이 좋아 집을 버리고 세상을 찾았다고 하지만, 스스로 집을 얻을 수 없는 세대의 궁여지책, 저마다의 각자도생을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한 달 생활하기가 버거워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 집을 얻을 수 없어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리고 쫓겨날 수 없어 달팽이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집을 짓는 청년들, 과연 이게 요즘 것들이 자신의 '세상'을 찾는 보편적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을 '하우스 노마드'로 모는 세상, 이 땅에서, 세계에서 떠도는 청년 노마드들을 그저 세상에의 도전이라 퉁칠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9. 25. 15:15